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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가사처럼 강 같은 평안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5월 우리는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오늘은 특별히 스승의 주일을 맞으며 스승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우리의 스승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삶의 지식, 정보, 삶의 지혜를 스승에게 다 배웠습니다. 그래 스승을 귀하게 여기고 스승을 대단히 존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스승이 없습니다. 스승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스승이 있어도 스승에게 묻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요즘은 누구에게 묻나요? 요즘 여러분 누구에게 묻나요?
AI에게 묻습니다. ai에게 물어보면 모든 것을 다 답을 다 해줍니다. 그러니 스승이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마치 가 AI가 스승이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에 여기고 여기에 목을 매다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부작용도 많고 탈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인간관계나 삶의 의미를 무너질 수도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삶의 도움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만, 우리 인간의 삶을 치유하거나 평안함을 줄 수 있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지식, 과학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요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하나님이 없는 AI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왔다라고 하신다면 예배 시간만큼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아니면 휴대폰을 완전히 끄고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지지난주부터 그렇게 순종해 주셔서 예배 시간에 벨이 울리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한 번씩 벨이 울리게 되면 여러분들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굉장히 집중이 안 되고 예배드리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예배 시간만큼은 예배에 집중하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평안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은 그것이 우연한 것 아닙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누군가 먼저 땀 흘려 수고한 결과물이고, 우리가 마시는 우물물은 누군가 먼저 깊이 판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우연히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랜 세월을 지나오신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인생의 수많은 고비마다 나를 붙잡아 주었던 그 손길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도 이나마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 목회자로서의 삶을 보여주신 좋은 스승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직 이분뿐이겠습니까?
저에게는 수많은 스승이 있습니다. 순간순간 그분들의 만남과 도움이 있었기에 저는 이 자리에 있었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러니 그분들이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분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소중한 분들을 보면 길을 열어준 분이라고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길을 열어준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오늘 데살로니가 이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분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아는 것이 겸손이고 은혜를 표현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먼저는 그분들의 은혜를 기억 하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뭘 해야 된다고요?
기억해라. 우리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 12절의 말씀 시작
아멘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고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어떻게 알고 이 안다는 것은요. 단순히 얼굴을 안다 이름 정도만 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가치를 인정할 정도로 안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본래 이 망각의 동물입니다. 화장실 갈 때 마음이 다르고 갔다 온 이후에 마음이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울 때 어려울 때는 큰 간절히 도움을 구하다가도 상황이 좋아지게 되면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끊임없이 그분들을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기억하라고 하신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세월 속에 누가 복을 주시고 누가 이끌어 주셨는지를 기억하라 기억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지 못하면 지켜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억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 여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그런 삼중고를 겪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사람이 있는데 바로 셀리반 선생님이었습니다. 셀리반 선생님은 48년 동안 헬렌켈러의 곁을 지키면서 손바닥에 글자를 새기며 세상을 알려주었습니다. 헬린 켈레가 훗날 유명해진 뒤에 사람들은 그녀의 천재성을 높이 칭송을 했습니다.
하지만 헬런켈러가 늘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행운은 큰 행운은 설리반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내가 오늘 보는 것은 선생님이 나에게 보여준 것이고, 내가 오늘 말하는 것은 선생님이 나에게 대해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룬 성취 뒤에 숨겨진 선생님의 눈물과 수고를 단 한 번도 잊어버리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이 가져야 할 망각의 치유가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에 경북 교육청에서 스승의 날에 대한 교사들에게 지침서가 떨어졌는데 너무나 황당한 지침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스승의 날 아이들과 축하는 하되 교사들은 아이들과 같이 케익은 나눠 먹지 말라는 그런 황당한 지침서가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 교권이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서 선생님의 사기를 떨어뜨리는지 도무지 때로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런 교육으로는 좋은 스승이 있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나를 처음 교회로 인도해 준 사람, 내가 힘들고 낙심했을 때 말없이 나의 손을 붙잡아준 사람, 성경의 기초를 가르쳐준 교사들, 또 나를 위해 지금까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사람들, 그분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오늘이 있게 한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나 혼자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겸손한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한 분들은 다 잊어버리고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내가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도 특별히 잘난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줄로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믿고 살아왔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왔기에 도와줄 사람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오늘 우리 자신도 혹 내 지금 자신의 앞날만을 생각하느라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성공, 나의 잘됨이라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돌봐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 감사를 혹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억해 낼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람을 기억해내는 것만 감사할 수가 있거든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슨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잊어버린다면 또 누군가는 혹 나를 나를 나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다음 세대일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여러분의 자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 여러분의 스승, 여러분의 좋은 영향력을 끼친 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말씀을 가르쳐 영혼을 돌보는 자들을 가장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3절의 말씀 시작 아멘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어떻게 여기며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뭐 하라 화목하라. 그들의 역사, 그 들의 역사라는 것은 사역을 말합니다.
즉 그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또 장로님, 구역장님 교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특별한 완벽 완벽한 사람이어서 흠과 티가 없어서 여러분 존경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분은 존경할 만한 것이 있어야지 존경하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건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그 직분, 이 수고 때문에 그들을 사랑으로 대우하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기에 우리가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잘나서 완벽해서 훌륭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니까 수고하는 자들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수고하는 자들, 애쓰고 힘쓰는 자들을 말합니다. 지도자들을 귀 여기는 마음은 단순히 그 개인을 대접하라는 그런 뜻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것은 결국은 나 자신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 자신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생이 수업 내용을 잘 받아들이듯이 영적 지도자를 귀히 여기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달게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혹 나를 치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 영적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칼빈은 목회자를 하나님의 입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비록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직분이기에 그것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겁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영혼을 돌보는 일은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영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고 회산의 수고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성도들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 영혼이 실족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그 수고를 알아주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하고 없이 여긴다면 그것은 좋은 습성을 망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도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부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분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시지, 저분이 나를 위해서 말씀을 먹이시는 분이시지 그렇게 수고의 무게를 알아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목회자에게 기도해 달라라고 하신다면 그분을 귀히 여기는 마음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기도를 해달라고 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하면서 무시하고 조롱하고 없이 여긴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힌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히 여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육체적으로 대단해서 훌륭해서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지위가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말씀 전해주는 것을 가장 기쁘게 여길 때 우리가 함께 공동체에서 귀하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면 나도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도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 아니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냥 복받고만 살겠다 그것만 아닙니다. 나에게 길을 열어준 분들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이제 나도 누군가의 앞길을 닦아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지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은혜를 베풀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는 것도 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굉장히 미련한 사람이에요. 나는 주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고, 그냥 나만 위해 살 거야 이런 사람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이제 누군가에게 영적인 어른이 되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우리 달성 교회가 3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를 비교한다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 30군의 역사도 그리 짧은 역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반드시 영적인 성숙 성장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영적인 성수 성장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도태될 수가 있고, 나이만 먹게 되다 보면 그저 세월만을 자랑하는 것은 결코 좋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봅니다.
내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예전에 이런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이제 내가 당신의 손을 내가 잡아주겠습니다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정말 귀한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초신자 여러분들 여러분을 돕는 손길을 보시면서 나도 저분처럼 저렇게 남을 도와줘야지 그렇게 느끼는 초심자가 정말 귀한 초신자일 겁니다.
이제 말씀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 교회 안에는 많은 스승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 다른 성도들과 아이들을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애쓰고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누가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꼭 기억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위대한 스승님이 한 분 계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야말로 우리를 위해서 하늘 길을 열어주신 최고의 가장 귀한 스승님이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가 영생의 생명의 길로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결코 잊어서 안 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내 곁에서 그 길을 함께 걸어주신 동력자들과 앞서가는 지도자들의 수고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아는 것이 겸손이고, 그 은혜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성도의 마음의 자세인 줄을 믿습니다.
요즘 시대가 참 각박합니다.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삽니다. 잊어버리는 세상 여러분 고마움도 감사도 없는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 오히려 이런 세상일수록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나에게 신앙의 길로 인생의 길을 열어주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안부 전화 한 통을 돌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