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장수 오 서방과 지필묵장수 유 생원은
자주 붙어 다니는 아삼륙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갓을 사는 사람도, 지필묵을 사는 사람도 부잣집 양반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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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헤어졌다가도 대갓집에서 만나고
이 장터에서 찢어졌다가 저 주막에서 뭉쳤다.
경북 상주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안동 영호루 나루터에서 다시 만난 오 서방과 유 생원은
강변 주막에 들어가
국밥에 막걸리 한병을 비우고 함께 객방에 들었다.
“형님 먼저 주무시오. 나는 손금 좀 보고 올라요.”
다섯살 아래 오 서방은 노름판에 끼고
유 생원은 연초 한대를 피운 후 목침을 베고 금방 코를 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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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 독장수 장가(家)가
객방에 들어와 오 서방 조끼 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잃어버린 돈을 돌려달라며
통사정을 했지만 오 서방은 매몰차게 뿌리쳤다.
안동장에 자릿세 낼 돈이라도 달라는 말에
오 서방은 곰방대 연기만 내뿜을 뿐이었다.
결국 유 생원이
장가에게 열냥을 찔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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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이 파한 후 오 서방이 제안했다.
“형님 안동 옹천리에 있는 서당에 들렀다가 영주로 올라갑시다.
내가 훈장님이 머리에 쓰던 탕건을 손볼 동안 형님은 학동들에게 지필묵을 파세요.”
옹천리 서당에 닿아 오 서방은
훈장 탕건을 고쳐주고 바가지를 씌웠다.
유 생원은 예상 밖으로
학동들에게 지필묵을 쏠쏠하게 팔았다.
“형님 술 한잔 사시오.”
오 서방은 얼마나 인정머리가 없는지 소개비를 챙기려 들었다.
유 생원은 고갯길 주막에서 닭발 안주에 동동주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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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장을 거쳐 이튿날 풍기장에 들렀다가
소백산 허리를 가로질러 단양으로 가는 길이 만만찮았다.
진눈깨비가 내려 옷이 다 젖었다.
장마철 소나기를 맞은 듯 옷이 속살에 착 달라붙었다.
어둠이 내리고 진눈깨비가 폭설로 변했다.
매서운 칼바람까지 몰아쳤다.
젖은 옷이 얼어붙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허기까지 느껴졌다.
폭설 속을 걷자니 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길도 잃어버렸다.
그러다 오 서방이 바위에 걸려 고꾸라졌다.
홧김에 바위를 걷어차자 신음 소리가 났다.
바위가 아니라 중늙은이 털보가 눈에 파묻혀 끙끙거리고 있었다.
유 생원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 차리시오. 여기 쓰러져 있으면 죽습니다. 같이 내려갑시다.”
그때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게 오 서방이 소리쳤다.
“유 생원이 업고 오든지 끌고 오든지 맘대로 하시오. 이러다간 모두 죽어요!”
결국 오 서방은 혼자서 눈길을 헤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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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깻죽지에 박힌 화살을 빼주시오.”
털보는 몸이 성치 않았다.
유 생원이 화살을 잡아당기자 피 냄새가 진동했다.
유 생원은 바지를 찢고 솜을 빼내어 피가 용솟음치는 털보 어깨를 막았다.
겨우 그를 일으켜 세워 한걸음 두걸음 내려가자 털보가 말했다.
“이 근방에 큰 소나무가 있을 거요.”
유 생원이 그를 둘러업고서 일러준 큰 소나무에 다가가자,
나무 뒤에 큰 바위가 기대어 있고 틈새로 동굴이 이어져 있었다.
동굴 안은 뜻밖에 깊고 훈훈했다.
한편에 장작이 쌓여 있고 부싯돌이 감춰져 있었다.
훈제된 노루 다리도 있었다.
“나는 소백산 속에 조그만 산채를 차려놓고
부하 둘과 산적질을 하다가 오늘 관군에게 기습을 당했소.
부하 둘은 죽고 나는 화살을 맞은 것이오.”
털보가 사연을 털어놨다.
“산적생활을 후회한 적은 없소.
양민이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빼앗은 적은 맹세코 없고 더러운 재물만 빼앗았소.”
산적 두목이던 그는
그날 밤을 못 넘기고 유 생원 품에 안겨 숨을 거뒀다.
☆☆☆
이튿날 아침,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햇살이 눈부셨다.
유 생원은 동굴을 빠져나와 허리춤까지 쌓인 눈밭을 헤치며 내려오다가
눈 속에 파묻혀 동사한 오 서방을 발견했다.
눈을 덮어 가묘를 쓴 후 오 서방 가족에게 알려줬다.
그러고는 영주로 내려가 서천교 아래 거지 대장을 찾아갔다.
서천교 움막에선 바글바글 어린 거지들이 모여 살았다.
거지 대장은 마흔 중반쯤 되는 절름발이였다.
유 생원이 산적 두목 털보가 동굴 속에서 숨을 거뒀다고 알려주자
여기저기서 대성통곡이 터졌다.
죽은 산적 두목은 원래 서천교 거지 대장이었다.
산적질을 하며 더러운 재물을 털어 다리 아래 거지에게 나눠 줬단다.
죽은 산적 셋을 장사 지낸 후 유 생원은
산적 두목이 숨을 거두기 전에 품속에서 꺼내준 보물지도를
절름발이 거지 대장에게 건넸다.
후에 거지들은
보물을 팔아 드넓은 야산을 사서 개간해 농사꾼이 됐다.
※ 아삼륙(二三六)
1. 마작에서 쓰는 골패의 쌍진아 ․ 쌍장삼 ․ 쌍준륙의 세 쌍.
쌍비연이라 하여 끗수를 세곱으로 친다.
2.서로 꼭 맞는 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