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16신]아버지, 동거 1년기념 파티 함 합시당!
아버지, 양력으로 해가 바뀐 지 금세 사흘이 흘러 3일입니다.
오늘 일요일 ‘노치원’에 가셔 킬링 타임도 못하니 더욱 답답하지요. 날씨는 또 오사게도(심하게) 춥네요. 바람까지 부니 현관문을 나서기도 겁나지요. 이럴 때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떻겠어요? 그저 정부의 시책대로 ‘집콕’하는 수 밖에 없지 않아요. 거실에서 트롯 프로그램 몇 개 보느라 오전이 훌쩍 지나가고, 오후에 생각해 보니, 오늘이 바로 아버지와 제가 고향집 동거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작년(2020년) 1월 3일(금요일) 오후, 경기도 여주에서 둘째동생네와 11개월을 살다가 내려온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하여, 제가 깜짝쇼를 생각했지요. 면소재지 중국집에서 팔보채 요리와 야끼밥을 시켜 고량주 한잔을 따라드리며 우리의 동거 1주년을 축하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얼마 전 저에게 주신 농민수당 상품권을 이런 때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생일은 아니지만, 1년이 된 날이니만큼 아주 작은 케이크도 사 초도 한 개 꽂을 생각을 하니, 둘이만 하면 너무 밋밋할 것같아 동네친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차출당한 친구네도 사연을 듣더니 케이크는 자기네가 사겠다고 우겼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흐흐. 깜짝쇼 얘기를 듣으니 아버지도 기분이 좋으셨지요? 고래적 이야기를 친구부부에게 다 하셨지요.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디예요? 저야 골백번 들은 얘기이어서 귀를 막고 싶지만 말입니다. 말씀할 마당을 채려준 것만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감히 저를 '효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른 것은 전혀 아닙니다. 흐흐.
제가 얘기했습니다. 아버지도 평생 자식하고 이렇게 단둘이 살아본 경험이 없고, 저도 아버지와 살아본 경험이 없으므로, 사는 데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게 모두 엄청날 것은 뻔하지 않겠냐구요? 어떻게 보면 본의 아니게 갈등의 연속이었지요. 낫낫한 딸내미들하고는 또 다르므로, 처음에는 서로 많이도 어색했지요. 생활습관이 다르고, 서로 못마땅하게 생각한 게 어디 하나둘이었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저는 저대로. 아버지는 자식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낳아 길러 초등학교 5학년만 되면 전주로 유학을 보냈지요. 그러니 제대로 일주일, 한 달을 같이 살아본 경험이 없지 않아요. 지금도 적응이 안된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게요. 크리넥스 화장지를 두 쪽, 세 쪽으로 찢어 사용하는 것, 제발 그만두면 안될까요? 그것 좀 아껴 무슨 재산 축적이 되겠다고, 게다가 바지에 남은 휴지를 그대로 넣어둬 세탁기에서 뒤죽박죽 섞이는 것은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는 그러시겠지요? 전기고 물이고 흔전만전, 아무 개념없이 쓰는 저를 보고 쯧쯧쯧 혀를 차시겠지만, 아버지,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었답니다. 절전節電, 절수節水 다 좋은 말인데요, 과연 그 노오력만큼 대가代價가 돌아올까요? 보일러 문제도 그래요. 아버지는 제 말은 안듣지만, 제 친구 말은 잘 듣잖아요. 겨우내 실내 온도를 20도로 맞춰놓고 손대지 마시라해도 저만 없으면 18도로, 16도로 내려놓잖아요. 사실은 그게 더 낭비라는데, 어쩌면 좋아요. 거실 불 좀 켜놓으면 전기세가 얼마나 나온다고, 제가 돌아서면 꺼버리시잖아요. 어찌 그런 예가 하나둘이겠어요? 속이 터져 뛰다 죽을 일도 많지요. 아버지도 물론 그러시겠지요. 힘이 다 빠진 호랑이신세를 한탄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산 세상하고, 저희가 산 세상은 이미 여러 가지로 달라도 엄청 다른 것을 어찌 설명한다고 이해가 되고 수긍을 하여 실천하는 단계가 될까요? 이른바 ‘세대차이 generation gap’입니다. 1세대를 30년으로 치니까 아버지 95세와 저 65세,. 딱 한 세대 차이입니다. 예전엔 30년도 큰 차이였겠지만, 지금은 10년 차이도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대 차이가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한없이 깝깝하기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어 전전긍긍한 나날이 삼백예순다섯 날이었다면 아버지 어쩌겠어요? 물론 아버지 어머니가 일제강점기부터 사신 신산한 세월을 가슴으로는 이해합니다만, 머리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십리도 넘은 소학교를 이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다는 것을 어찌 우리가 알겠습니까? 요즘 유행가로 떠들썩한 ‘보릿고개’를 부르는 트롯 신동 정동원이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할 말은 없긴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그 흐름이나 추세에 발맞출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 사실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버지와의 동거1년이 결코 쉽지만은 안했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천만다행, 보행에 문제가 없으셔서 면소재지 노치원에 출퇴근형식으로 다니는 것만도 해도 저는 천복天福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십 평생을 논밭에 허리를 묻고도 눈곱만큼 시간만 있으면 밭으로 달려가는 아버지의 노동, 자식인 입장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문拷問이나 마찬가지였답니다. 캄캄할 때까지 일하다 밭두렁에서 넘어지거나 고관절에 금이 가면 어떻게 하겠냐며 악을 써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지요? 그것은 아닙니다. 제발 적선하고, 일은 해도 좋은데 어지간히 하라는 간청입니다. 죽기살기, 전투적으로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어느 자식이 반기겠습니까? 아무리 일이 몸에 배었다해도 이러면 안되겠구나, 자식들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생각하면 적당히 하는 지혜를 발휘하셔야지요.
아버지, 얼마 전 장성 축령산 어느 펜션에서 제가 노래재롱을 펼쳐 드렸지요. 그게 솔직한 제 심정인 것만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년(2022년) 1월 3일 저녁에도 또 오늘처럼 깜짝파티를 벌였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세상을 이만큼 사셨으니,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백 년을 살아보니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자식들한테 지고 젊은애들 말 듣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 세상을 관조觀照하시며 나날을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하루라도 활자活字를 못보시면 힘드시는 ‘활자중독’ 환자같은 아버지가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요. 이것저것 눈에 띄이는대로, 닥치는대로 읽으시고, 돌아서면 곧바로 잊어버릴망정, 그 망각현상을 탓하며 한번 보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던 총기 좋은 젊은 시절 생각에 속상해하지 마시고, 자연自然스럽게 늙는 방법을 알지 않으면 아버지만 괴롭습니다. 아직도 눈이 좋으셔 어두운 데서 책도 읽으시는 아버지,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면 거시기하지만, 이제 다 내려놓으세요. 어떤 미련이나 희망도 갖지 마시고, 총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희미하게 웃으시며 박수를 보내주세요.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요. “예쁘다” “잘한다” “잘 살아라” "지금 죽어도 원도 한도 없다" 그런 마음으로요.
제가 왜 외람되게 이런 말씀을 드리시는지 너무나 잘 아실 아버지. 세상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저희도 놀랄 정도이니, 아버지는 오죽하겠습니까? 옛날엔 1백년이나 가야 조금 변할까 하는 것들이 지금은 10년도 안가 몰라보게 변해버리는 세상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속도는 아무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성인聖人도 여세출與世出이라고, 세상 따라 살 수 밖에 없다는 말도 있지 않아요. 무엇이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셔야 마음이 편할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요. 우리 전라도 방언으,로 “내비둬”가 있지 않아요. 그냥 내비두는 심정으로 ‘이놈의 세상’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아버지, 장수하시면서 한번 봐보세요. 아버지 말도 맞고 저희 말도 맞을 거예요. 뭐이거나 부정적으로, 안되는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아버지 총생들이 그런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면 좋겠어요? 부디 총생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잘 되겠지’ ‘잘 돼야 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빌고,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남은 삶을 영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 바라는 것은 딱 그뿐입니다. 물론 건강하시는 것은 무조건 ‘영순위’이지만요. 세상 흘러가는 모든 것이 너무 못마땅하셔 혀를 끌끌끌 차는 소리가 늘 제 귓전을 때리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인력人力으로 안되는 일은, 안타깝지만 기를 써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물이 흐르듯 저절로 흘러가기를 바라야지요. 아버지와 ‘동거 1년’이 되는 오늘, 제 바람은 오직 아버지의 건강과 심기心氣의 평안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그동안 저의 불경스런 언행이 많이 있었겠지만, 오늘로써 다 용서하시고 흘러보내시면 고맙겠습니다. 또 내일이 밝아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삼백예순다섯 날, 내내 강녕康寧하소서. 편히 주무소서.
불초 넷째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