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가까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니라, 인생 저마다의 개성이 깃들어 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사랑 행위이다. 그
사랑에서 비로소 역사의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는 사랑으로 살림을 시작하나, 나중에는 오히려 살림에 묶이는 일이 있지요. 하늘 아버지 앞에서도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Hong, 1210)
노동과
선교 / [Audio]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가까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니라, 인생 저마다의 개성이 깃들어 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사랑 행위이다. 그 사랑에서 비로소 역사의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지난 시간에 해 드렸던
74장, “이 땅에서 아버지의 나라는 세 가지의 의로운 행실에 의하여 견고히 서게 된다. 하나는 저마다의 가정에서 이루는 행실이고, 또 하나는
저마다의 일터에서 이루는 행실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밖의 자리에서 이루는 행실이다”라는 말씀과도 연결이 됩니다.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하면서 경제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하는 것을 요즘 말로 ‘알바’라고
하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류역사에 있어서 ‘노동’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사고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노동을 선교를 위한 경제적 방편으로 삼았던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입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 18장에 있지요. 1절, “그러고 나서 파울루스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투스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폰투스 태생인 아퀼라라는 유대인을 만났습니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왔는데, 파울루스가 그들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직업이
서로 같았기에, 파울루스는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일을 하였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이 그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파울루스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스인들을 설득했습니다.”
여기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가 가난한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이 그들의 직업이라고 하였는데, 단순히 동네어귀에서 간이수공업 형태로 하는
천막수리공이나 천막업자가 아니라, 군인들의 막사나 공연장의 그늘을 가리는 천막 등을 만들던, 굉장히 큰 규모로 고수익을 올리던 천막업자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굳이 그 일을 돕지 않더라도, 그가 먹고 입고 쓰는 것 정도는 프리스킬라 일행이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과 같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고 유대인들과 헬라스인들을 전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대표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천막을 만드는 일에 일조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바울이
거기서 무슨 경영에 참여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알바생’ 정도의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 “직업이 서로 같았기에”라는 문구가
있어요. 그렇다면 바울에게도 ‘직업’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숙련된 기술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깨너머로 보면서 그저 천막
구멍에 노끈이나 끼워서 엮어 내는 단순 보조작업을 하는 알바생이 아니고, 어느 정도 숙련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바울이
성장한 길리기아 다소는 목축업이 발달해서 염소털이나 염소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업이 융성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가내수공업 규모가 아니라, 국가나
관공서를 대상으로, 또는 군대를 대상으로 대규모의 물량을 제공하는 그런 차원의 도시 역점사업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인 바울이 랍비
학교에서, 즉 가말리엘 문하에서 랍비가 되는 신학공부를 하면서도 이러한 직업을 위한 수공기능을 같이 배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의 생활문화였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은 제사장과는 달리, 자기들이 가르치는 이들에게서 충분한 ‘생활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다가다 “이것 좀 잡숴 보세요” 하면서
감사하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생활비를 받지 않는 것이 공식적인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소규모로 샌들을 만든다든지, 혁대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바울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든지, 빵을 굽는 제빵사 같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고 정결한 직업을 더불어 갖추었습니다.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립공부를 같이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울이 이처럼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에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회에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다”라는
인식이 편만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선교사이기 때문에 선교를 해야 하는데, 경제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일정기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인식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분명 잘못된 생각은 아닌데, 오늘의 말씀은 “노동이 곧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노동과
사랑
기독교
선교사들의 그러한 삶의 자세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인류가 삶을 영유하면서 이루어 가는 ‘직업으로서의 노동’이 곧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인 방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인생 저마다의 개성이 깃들어 있는, 인류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류에 대한, 자연에 대한 ‘사랑 행위’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직업으로서의 노동이.
왜냐?
그러한 노동 행위를 통해서 사랑이 나오고, 그 사랑에서 비로소 역사의 생명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업’은, 어떠한 형태이든
‘노동’을 겸하는 직업은 누구나 반드시 가져야 하는 저마다의 ‘사랑의 책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가 하는 차이가 있기에, 그것을 무르익혀 가는 것이 곧 ‘직업 공부의 본질’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직업
그렇다면
예수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곧 예수님의 ‘직업’은 아닙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이라는 글자 속에 투영되어 있는
모든 것이 곧 예수님의 ‘일’이고 ‘사명’이고, 딱딱한 표현으로는 그분의 ‘직업’이었습니다. 가르치고 병자를 고쳐주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애쓰고, 하나님과 성령님의 세계에 대하여 예리한 말씀을 전하시던 모습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태’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그리스도’ 개념은
예수님 일대기를 설명하는 일부분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목수’이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인식 속에서 ‘목수’와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개념이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목수이면서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목수 일’만 하셨겠습니까? 성장하면서 양과 염소도 보살피셨을 것 아니에요? 나귀도 길러 보셨을
것이고. 베드로처럼 직업적인 어부는 아니셨어도 상황에 따라서 어촌에 나가 심부름도 하고 어부들의 어망 손질도 도와주면서 한 푼이라도 버셨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러한 어업 활동과 목축 활동도 예수님의 이력 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종교적인 개념의 ‘그리스도’로 특화시키고 그분을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 집어넣는 이들은 주로 기독교 목사들, 카돌릭 신부들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시각에서 자기들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저지른 본성적인 실수입니다. 왜? 자신들은 ‘목수’가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좁아지신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선생님’이시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월명동 조경관리사의 모습 아닙니까? 오히려 그 세계에 관한 말씀이 더 많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노동자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잖아요?
이처럼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니라, 인생 저마다의 개성이 깃들어 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사랑 행위입니다.
그 사랑에서 비로소 역사의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갇히시면, 우리의 인생 속에 ‘노동’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의 영역 밖에 있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 주시는 ‘선교사의 모습’으로만 이해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상황에 따라 경제행위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에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난 지금 선교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길이 아닌데, 이것은 예수님 삶의 모습과는 격리되어 있는 영역인데…” 하면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산어보
조선
후기의 정약용 선생의 형인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그 어촌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거기에서 물고기에 관하여 공부했잖아요?
그래서 그의 관찰과 섬세한 탐구가 결국 「자산어보」라는 조선 후기의 실학세계를 대표하는 일종의 어류 백과사전이 만들어졌잖아요? 그분은 본래 손에
흙을 안 묻히고도 살 수 있는 양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인 위기를 겪고 흑산도로 귀양을 오지 않았더라면, 한양에서만 살았다면,
「자산어보」라는 엄청난 보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양 땅 양반가의 ‘정치인 정약전’의 울타리 속에 정약전을 집어넣고
생각하면,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탄생시킨 그 ‘정약전 선생’은 손실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흑산도의 정약전 선생이 조선 후기
실학세계에서는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라는 말 속에 예수님을 집어넣다 보면, 갈릴리 호수와 나사렛 돌산 길에서 생활하시던 예수님의 사생애는 우리들의 눈매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나사렛 산골에서 갈릴리 호수 일대를 오가면서 성장하신 그 예수님의 사생애 삶의 모습을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본받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의 경지 속으로 우리가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 온 2000년 기독교의 엄청난
손실이고 상실이고 공백 아닙니까?
이처럼
노동은 선교를 위한 하나의 경제적 방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인류 저마다의 사랑의 책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비로소 역사의 생명이, 자산어보가, 예수님이, 또한 우리가 잉태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동의 생명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 노동과
직업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얼마나 깊고 넓고 높고 그 이상이 얼마나 섬세한가에 따라서, 우리의 직업을 통하여 생성되는 우리의
‘자산어보’와 ‘예수님’이라는 열매가 얼마나 향기롭고 귀하게 빛을 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좌우됩니다. (Hong,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