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 싸, 억수로 싸다.
김 선 구
진열장을 정리 하다가 동물모형의 장난감을 발견했다. 개, 고양이 그리고 새 모습의 도기제품들이다. 특별히 귀엽거나 앙증스러운 것도 아니고, 문양이 화려하거나 특색 있는 것도 아니다. 크기는 손바닥 안에 들어 올 만큼 작고, 값을 치면 세 개를 다 합해봐야 우리 돈으로 일만 원 정도였다. 여행 중 우연찮게 구입하고는 진열장 한구석에 넣어 두었었다. 그동안 관심 없이 지내다가 오늘 실물을 대하고 보니 옛 기억이 새로웠다. 구입한 곳이 이스탄불 최대의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였다.
오래 전에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국제양계박람회와 함께 세계가금학회가 열렸다. 양계박람회는 양계산업의 동향과 정보를 교환하기위한 행사였고, 가금학회는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논문을 발표 할 사람들과 양계산업 종사자들이 서로 섭외하여 행사에 참가했다.
터키는 멀고 생소한 나라였지만 당시 한일월드컵 경기를 계기로 관심이 높은 때였다. 더군다나 이스탄불은 역사적으로 유명 한 도시이며 국제적인 관광지여서 더 호감이 갔다. 공항에 모인 멤버들이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하여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지만 고작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 등의 지명이거나 십자군 전쟁, 동로마 재국의 멸망 등 역사시간에 들은 내용들이 전부였다. 유명 전통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 대한 애기는 없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6시간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먼저 이스탄불엑스포센터에 가서 학회등록을 마치고 행사장과 박람회장을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시간을 내어 시내관광에 나섰다. 문명의 요람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곧 넘어 질 것 같은 허술한 건물들이 보수도 되지 않은 채 서 있기도 했다. 도시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어서 함부로 처리 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 도시였지만 경제가 어려워서 문화제를 보수 할 여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스탄불은 지정학적 위치 자체가 특이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보스포러스 해협 양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 유럽 쪽 지역은 골든혼(golden horn)이라는 바다에 의하여 남북으로 갈려져 있어서 도시전체가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골든혼 남쪽이 역사가 깊은 구시가지역이고, 북쪽이 신시가지지역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 건너가 아시아지역이었다.
구시가 지역은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시대를 구가했던 곳이다. 로마처럼 일곱 개 언덕을 선정하여 새 도시를 축조한 곳이 이스탄불 구시가지역이었다. 제1언덕 주변에는 오스만토이기의 톱가프궁전을 비롯하여 로마시대에 지은 소피아 성당, 그리고 블루모스크가 있었다. 제2언덕 주변에는 그랜드바자르가, 제3언덕 주변에 이스탄불대학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눈길을 끌었다.
학회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거쳐 내륙중심부에 있는 카파토키아로 옮겼다. 카파토키아는 기암괴석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넓은 지대를 일컬어 붙인 지역 명이었다. 일찍이 대규모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분출되고, 그 주위에 화산분진이 내려앉아 응회암으로 굳어져서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만들었다. 거대한 힘이 요동을 치고 간 것 같았다. 대자연의 장엄한 파노라마였다. 특히 버섯모양, 도토리 모양, 갓모양의 바위들이 널려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 골짜기 마을에도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꾸준히 살아왔고, 실크로드가 통과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깊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남겨놓고 있었다.
관광을 마치고 서쪽 에게 해변의 산업도시 이즈미르로 이동 하였다. 도로는 시원하게 잘 뚫려 있었지만 주변은 한산하고 척박한 산지로 보였다. 빛바랜 목초지에서 양과 소들을 방목하는 모습은 원래 터키인들이 유목민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에는 유목민들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다. 이 곳 또한 옛 상인 들이 지나던 길임을 짐작케 했다. 점심 때 들린 식당은 모래사막 가운데 창고처럼 서있는 큰 건물이었다. 옛날 동서양을 오가던 대상들이 잠시 머물던 곳을 개조하여 옛날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 길이 결국 이스탄불을 거쳐 서구로 연결하는 비단길의 한 노정으로 보였다. 그때 대상들이 가져간 물건들이 이스탄불 바자르로 흘러들었을 것임을 추측케 했다.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다시 바자르에 들렸다. 그랜드 바자르라는 명칭처럼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시장이었다. 시장면적이 30헥타르, 출입구가 18개에 80개여 개의 거리가 시장 안을 종횡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점포가 3천5백, 상인이 1만 5천여 명이라고 했다.
조그만 점포들이 즐비하고 여러 갈래의 길이 얽혀 있어서 시장 안이 마치 미로와 같았다. 이 시장은 오스만제국시대 상업중심지로 경제활동이 활발했다. 오스만제국은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로마인 유태인 아랍인등 이민족들은 포용했다. 그 것이 시장을 활성 시키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현란한 색체와 다양한 모습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시장 입구 쪽 점포에서 한 상인이 힘차게 소리를 외쳤다. “싸다, 싸. 억수로 싸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호기심이 생겨 걸음을 옮겼다. 잡다한 도기 류 물품들을 펼쳐 놓고 있었다. 아니 이 복잡한 틈바구니에 경상도 사투리가 판을 치다니! 물론 우리 일행을 유인하려는 상술이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상술은 아닐 테고. 대구에 월드컵경기를 보러갔던 터키상인이 대구서문시장에 들렸다가 배워온 것일까? 아니면 경상도 상인이 관광객을 가장하여 이스탄불 바자르에 수출한 것일까?. 신기한 기분에 휩싸여 기념품 세 개를 사들고 왔었다. 그 물건들이 이십년 전의 이스탄불 전통시장으로 나를 인도했다. 개 고양이 새가 합심하여 한마디씩 지껄이는 것 같았다. 싸다, 싸. 억수로 싸다.”
첫댓글 터키는 6.25 사변에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준 형제의 나라입니다. 터키의 역사와 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전 실크로드로 동양의 문물이 서양으로 전파되듯이 우리나라의 시장 풍습도 다시 거기로 수입되는 느낌입니다. 낯선 나라에서 우리나라 말로 하는 호객 행위로 귀여운 공예품을 사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싸다 싸! 말 한마디의 인연이 오랜 세월을 회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옛날을 오늘로 다시 데려오는 걸 보면
그것도 인연이라 해야 할까요.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요.......
터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터키와 월드컵 3, 4위전을 직접 본 기억이 나네요
이스탄불의 바자르 시장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덕분에 터어키 구경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경상도 말씨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투박하지만 애교도 있습니다. 터키여행 잘하였습니다. 몽골여행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