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봉황면 욱곡리에서 배농사를 짓는 나성채씨(왼쪽)가 24일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떨어진 배를 살펴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나주=이문수 기자
전남북·경남 등서 낙과 발생 농가 “곧 추석 대목…” 한숨
시설하우스·돈사 파손 등도 농협 “지원방안 서둘러 마련”
2012년 이후 6년 만에 내륙을 관통한 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오전 11시께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솔릭은 초기에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62m로 기록될 만큼 강한 태풍이었지만 23일 밤 육지에 상륙한 뒤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이에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었지만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과수 낙과, 농경지 침수 등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유재도 전북농협지역본부장(왼쪽 두번째), 신용빈 진안 백운농협 조합장(〃 네번째), 김형만 NH농협 진안군지부장(맨 오른쪽)이 사과농가의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진안=김윤석 기자
◆과수 낙과피해 잇따라=솔릭으로 인한 피해는 주로 과수농가에 집중됐다. 애써 키운 농작물이 강한 비바람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 욱곡리에서 약 4960㎡(1500평) 규모로 배 과수원을 경영하는 나성채씨(75)는 “태풍으로 인한 낙과율이 35%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24일 새벽 3~4시 사이 비는 크게 내리지 않았지만 강풍이 불면서 과일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자체 추산 850만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는 나씨는 “수확을 겨우 2주 앞두고 당한 일이라 더욱 안타깝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손해사정사 등이 현장을 방문해 실사에 나서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남 보성과 순천에서도 상당수 과수원에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보성군에 따르면 지역 내 배밭 58㏊에서 낙과율 50%를 기록했고, 사과밭은 6.4㏊에서 15%의 낙과율을 보였다.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서 5000㎡(1512평) 규모로 배를 재배하는 황인철(63)씨는 “낙과율이 70% 이상인데 그나마 붙어 있는 배도 상품성이 없어 가공공장에 보내야 할 것 같다”며 “9월5일쯤 수확해 추석 대목 덕을 볼 요량이었는데 다 소용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24일 태풍 ‘솔릭’이 휩쓸고 지나간 전남 곡성군 입면 박철현씨의 사과 과수원에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박씨가 허탈한 표정으로 떨어진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곡성=김병진 기자
경남 일부 지역에도 태풍의 흔적이 남았다. 함양군은 지역 내 과수면적 146㏊ 중 2~4%가 강풍에 과일이 떨어지는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진주시도 문산읍 고지대 농가를 중심으로 재배 중인 배 일부가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전북에서는 사과농가를 중심으로 피해를 봤다. 진안군 백운지역 사과 재배단지 34㏊ 중 수확을 앞둔 <홍로> 9㏊에서 낙과피해를 봤다. 백운면 백암리의 사과 전업농인 박지용씨(50)는 “태풍의 위력이 생각보다 약했다고는 하지만 <홍로> 30%가량이 떨어지는 피해를 봤다”며 “나무에 달린 사과도 30% 정도만 괜찮을 성싶고, 나머지는 내다 팔 수 없을 만큼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걱정했다. 진안을 비롯해 장수지역에서는 이번 태풍의 영향으로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불어 사과나무가 쓰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신용빈 진안 백운농협 조합장은 “올해 사과농가들이 언피해와 폭염피해에다 이번에 태풍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청 관계자들이 2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한 애플망고 비닐하우스를 찾아 태풍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비닐하우스 8동이 반파되거나 완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사진=연합뉴스
◆시설물 파손·농경지 침수도 여러곳=과수 낙과 이외에 시설물 파손, 농경지 침수 등도 잇따랐다. 전남농협지역본부에 따르면 24일 새벽 6시 기준으로 벼 53㏊가 침수됐고, 축사시설은 1080㎡(327평) 정도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4일 0시 기준 1000㎜가 넘는 기록적인 누적 강우량을 보인 제주에서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에서 390㎡(118평)~990㎡(300평)의 소규모 채소류 비닐하우스 3동이 각각 전파됐고, 무릉리의 애플망고 비닐하우스, 보성리의 <한라봉> 시설하우스 한동의 철제 파이프가 휘어지고 비닐이 훼손됐다. 일과리의 한 양돈농가는 돈사 지붕 일부가 바람에 날아갔다.
강인봉 구좌농협 경제상무는 “막 싹이 나오기 시작한 당근이 강풍에 휘감기면서 잔뿌리가 약해지는 현상이 관찰돼 정상 생육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파나 대파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홍 애월농협 경제상무는 “양배추농가의 20%가량만이 현재까지 아주심기(정식)에 들어간 상황인 데다 일부가 침수됐지만 다행히 유실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