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다.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다 문득 일어설 때
심한 어지러움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 때가 있다.
전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어 이런저런 검사를 해봤는데
의사와 의료기기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언젠가 친구와 이런 저런 추억거리를 되새김질 해보다
병원에 가볼까 고민했더니 그럴 나이란다.
보약이란 원래 몰래 먹는 건가 보다.
나만 이러고 살았다.
이미 여러 가지를 먹어 본 녀석의 말로는 징코민이 더 좋다는데
약사의 말로는 비슷한 효능이라서 써큐란을 샀다.
내가 저렴한 인생이라 그런지 결국 판단할 때는 가격으로 쏠린다.
증상이 모호한데 비싼 것에 모험할 이유도 없다.
<위장에 좋다고 해서 옻을 먹고, 또라이 될까 걱정돼 써큐란을 먹고.....>
병원 처방약도 제때 먹지 않아 뒹굴어 다니다 결국 버리는데
아침 저녁 꼬박꼬박 먹은 내 정성이 대견스런 것은 아니다.
그만큼 절박해진 게다.
먹어도 별 차이를 못 느껴 한통을 다 먹은 후 잊고 있었는데
요즘 느닷없이 그 증상이 또 나타나 시내에 갔다 오는 길에 또 샀다.
이 나이쯤 되면 뒹구는 지푸라기 하나도 허투로 보이지 않는다.
가격도 시내라 그런지 읍내 보다 3천원이나 쌌다. 1만5천원.
가끔 내게도 또라이 기질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아픈 것이 간헐적으로 지속되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것이겠지.
그래서 가끔 머리가 아픈 게 아닐까 진단해 보기도 한다.
내가 특히 답답해질 땐 일상을 돈으로 환산해 볼 때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그리 하니 머리가 아프고,
했던 말을 다시 하자니 답답해진다.
밭에서 쪼그려 앉아 일하는 내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기어이 그런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신다.
"그렇게 날마다 힘들게 일하지 말고 며칠 인부 얻어 해라.
품은 내가 주마."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안쓰러워 하신 말이련만,
잠시 일어나 하늘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나는 힘든 이게 좋아서 하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아버지, 그 인건비 안 나온당께라'
할 말이 더 있었으나 하지 않는 게 효도일 게다.
돈으로만 따지면 인건비를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자라게 내버려두고
아버지가 줄 돈을 내가 챙기는 게 그만큼 버는 것이다.
팔십이 넘은 아버지는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덧셈, 뺄셈까지도 잊으셨나 보다.
아버지의 셈법으로 하자면, 나는 내가 일한 만큼 몸을 축낸 것이다.
<엔젤트럼펫(천사의 나팔)>
갑자기 머리가 아파 막바지 허브 잎을 따다 말고 담배 하나 피워 물고
하우스 안을 둘러봤다.
식물도 주인을 닮는 것일까?
우리 집의 꽃들은 늘 계절에 뒤처져 남들이 한창 필때도 자라기만 하고,
다른 집 꽃들이 다 질 때쯤 뒤늦게 핀다.
노지에 있던 것들은 얼마 전 추위에 잎이 다 물러져 오그라들고,
하우스에 있던 것들이 뒤늦게 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이것들이 펴 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던 게다.
<진저>
<투베로사>
향기가 없는 것은 꽃이 아니다.
향기가 없는 것은 그저 식물일 뿐이다.
우리 집에서 가끔 죽어나가는 것들은 죄다 꽃만 이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른 것이라 해도 안타깝지도 않다.
투베로사. 진저. 파인애플 세이지...
나는 적어도 꽃을 처음 봤을 때만큼은 정확히 기억한다.
더군다나 이것들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처음 느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지
그 향기에 익숙해진 지금도 첫 경험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던데
나도 그 추억을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꽃만 보면 그간의 어지럽던 일이 모두 지워지고 편안해진다.
어디서든 시계는 돌고, 내가 하우스 안에 있을 때도 해는 저물어가지만
내가 이것들과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시계도 돌지 않고 해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꽃 냄새를 맡고 잎을 손으로 비벼 맡으면 온 몸에 전율이 온다.
<파인애플세이지>
요즘엔 밭에 널린 게 허브라 줄기를 쑥쑥 잘도 자르지만,
아직도 꽃을 자를 땐 섬뜩하다.
라벤다 꽃을 차로 달이면 보랏빛이 아름다워 지난 여름 수확해 말려 팔았는데
건조된 잎의 색이 이상하다는 클레임이 들어왔다.
여름 고온기에 건조한 것이라 때깔이 좋지 않은 것은 인정하는 바지만,
향이 연하다고 하는 데는 더 이상 변명하기가 싫어졌다.
소비자가 왕이므로, 그리고 그닥 힘든 일도 아니므로,
새로 말려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보내 주기로 하고 다시 쪼그려 앉아
허브 잎을 따는 내 모습이 잠깐 처량해 보였다.
그래도 이런 저런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없이
이 놈들과 함께 있으면 좋다.
풀 냄새도 좋고, 흙 냄새, 거름 냄새도 좋고, 식물 냄새도 좋다.
나를 이렇게 미치도록 좋게 만든 것은 그들의 향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꽃을 꺽을 일이 없으므로 화병이 없다. 임시로 믹서기 용기로 대신했는데
해 놓고 보니 참 이쁘게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뭔 일을 해도 잘 하는 거 가트다. ^^*>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대신할 최상의 선물은 꽃을 주는 것이다.
음력 9월 9일은 어머니 생신이라
생전 처음으로 꽃을 한아름 잘라 온 가족이 모인 생일 상 옆에 뒀는데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한 것을 내가 보고, 내가 즐거워 하고, 내가 슬퍼하고 있었다.
처량한 것, 불쌍한 것들을 누군가는 꼭 돌봐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행복해지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비가 오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처럼.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워 눈물 뚝뚝 흘리는 것처럼.
한 해가 저무려 하니
올해 꼭 하려 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심난하다.
희망이 없으면 무기력해지는 법이다.
희망이 없는 삶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다.
미련은 불가능한 것으로 어떻게 확인되더라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밤 잠을 설치는 일이 많은데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이가 들어가니 귀찮아지는 것 중의 하나가 문제 메시지다.
핸드폰의 문자판 글자는 어찌나 작던지 답장 하는 게 고문이다.
막 잠이 들려는 때 오는 이런 무뢰한이 어디 있을까.
받아볼까 말까 망설이다 열어봤다.
발신처가 색다르다.
사용하던 애견용 이발기가 시원찮아서 다른 기종으로 새로 구입할까 하고
쇼핑몰 가격을 비교해 보다 제일 착한 가격의 쇼핑몰에 회원등록을 했는데
거기서 개인정보가 샜나 보다.
나 같은 촌놈의 정보도 마구잡이로 들어간 게다.
어쨌든 메시지는 여태 내가 받아본 것 중 최고였다.
나는 그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놈은 이미 나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같잖게도 내가 얼굴 따지는 건 어찌 알았을꼬.
<이게 얼마 만에 받아 보는 프로포즌가. 빈말인 줄 알면서도 떨린다>
인간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까지는 읽어 내지 못했나 보다.
나는 지금은 얼굴도 안 따진다.
세월은 오직 가능한 것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요구대로 꾹 누를까 하다 말았다.
일일이 버튼을 누르려니 복잡한 것이 첫째 이유였고,
한 번 보기만 하는 데 3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해서 단숨에 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서 있는 땅이 너무 자주 돈다.
자는 동안에도 돈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지구가 돌아서 어지럽다맞는거 같습니다.
그쳐 맨날 돌드라구여.
내가 받아본 것 중에 최고였다.극적인 반전 하이라이트가 압권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인데 꽃으로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들듯 멋진 글을 만드신 것,또 삶의 페이쏘스 쓴맛도 있고 좋습니다. 저도 지구가 도는 것처럼 현기증을 느낀 경험이 있는데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아니면 알지 못합니다. 제 생각으론 나이가 들면 뇌혈관이 좁아져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경미한 치매현상이 오는 것도 그렇고 징코민이 혈행개선제니까 좋겠지요. 천마도 좋다고 하더군요.
제가 세상사 잊고 지낸 지 몇 년 되다 보니 이제는 속세 이야기만 나와도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나이 먹으면 뇌질환에 취약하다고 해서 은근 걱정이 되드라구여. 그래서 신경 좀 쓰고 있습니다.
향기가 없으면 식물이 아니다..이 말을 정말 꼽십어야 될 말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산천부터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학비료의 남용.화석연료의 사용이 어마 어마합니다. 향기가 있는 식물 허브가 진짜 식물입니다. 식물에게서 추출되는 오일은 식물의 혈액과도 같은데 이것이 없다면 피가 없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어쩌면 우리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저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향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구 종말이 오면 하나 더 심기 보다는 있는 것들 잘 가꿀랍니다. ^^*
...(현실적으로 얘기 할 수 밖에 없음 ㅜㅡ은 ..) 어지럼증은 '귀'하고 무진장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귀안 돌맹이라죠.. 그것땜에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혹시나 이빈후과에 함 가서 진찰받아보심이...
네..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엠알아이 찍어봤는데 거기엔 이상이 없다더군요.
아.. 그리구.. 갠적으로... 향이없어도 꽃은 꽃이라 불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존재가 ..가여워지니까요..
제가 어렸을때부터 앉았다가 일어서면 세상이 깜깜해지면서 뒤로 떵~ 나가떨어졌어요..엄마아빠는 못먹고 못살아 영양부족이라고 하셨지요..^^...울 엄마가 지어주신 병명은 선빈혈 이었습니다... 어쩌다 작년에 의사들이랑 간호사들이랑 이야기할기회가 있었는데 제 상태를 설명했더니 심장이 안좋아도 그럴수 있다고 검사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5년주기로 애 셋을 수술해서 낳으면서도 다행히 심장 안멎고 잘 살아남아서 일부러 갈일은 없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딱 심장있는부분이 가끔 쑤시기도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는건 느끼겠거든요...혹시나 병원가실일 있으시면 심장쪽도 한번 검사해보세요...
어지럼증이 나가 떨어질 정도까진 아니구여,저도 빈혈이 의심스러워 혈액검사를 해봤는데 그게....거...정상이드라구여.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는데 검사를 받으니 이젠 검사받는 게 제일 아까워요.ㅠㅠ
전 지금도 앉았다 일어서면 어지러워서 천천히 일어납니다...세상은 검은색으로 변하고 은색 점들이 막 날아다니면서 나한테 몰려오는거 맨날 경험하고 있어요..ㅎㅎ.... 물론 어려서부터 빈혈검사해도 모두 정상으로 나왔었구요...
네..그렇군요. 천안엔거리가 있어서 더 자주 돌아 긍거 아니까 시퍼요..
아지구가 맨날 돌아서, 그래서 그렇게 나도 현기증이 났었구낭......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40이 넘으면 혈관에 이물질이 끼고 기름진 것이 붙겠죠 당근 혈관은 좁아지지요.뇌혈관이 희미해지면 만성적인 인지저하 현상이 옵니다. 천마가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혈관 질환에 좋다고 미교포들이 선호한다고 합니다.당뇨엔 야콘이 좋다고 합니다.
네..제가 기름기 있는 음식은 잘 먹지 않는데 담배는 많이 피는 지라 그것 땜에 걱정이 좀 되긴 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병원서 들었는데 혈관에 구멍이 났다나 뭐 그래서 일수도 있데여. 그러니까 빈 혈관이 뇌쪽으로 돌면 그때 어지럼증을 느끼는거 같다고..... 물구나무를 서 보라는 어떤 입원(다른질환으로)환자가 말하던데요 자신도 그러구나서 이젠 안 어지럽다는군요.
허걱! 혈관이 줄줄 샌단 말이져?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요.지금까지 살아있는 걸 보니..
저도 앉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운데 ........지구가 돌아서 였는지 이제사 알았어요.
내 말이 근디 사람들이 병원에만 가보라고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