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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감독과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도 주인공이다. 국내야구는 그간 좋은 코치에 인색했다.(사진 이휘영) |
강속구 투수는 좋은 어깨를 타고난다. 그 다음이 투구 메커니즘이다. 좋은 투구 메커니즘만 갖춘다면 3~5km 정도의 구속은 증가한다. 투수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투구 메커니즘이고 연습도 그쪽에 주안점을 둔다.
투구 메커니즘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투구 메커니즘은 피칭 자세다. 올바른 피칭 자세를 갖춰야 구속이 증가하고 제구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 부상위험이 줄어든다.
선발 윤석민과 마무리 한기주를 예로 들어보자. 원래 강속구 투수이기는 했지만 KIA 입단 후 공이 더 빨라졌다.
(한)기주는 체중 이동이 지나치게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했다. 당연히 팔의 스피드가 좋을 리 없었다. (윤)석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체중 이동을 지나치게 빠르게 하는 버릇을 고치도록 연습을 시켰고 선수들의 땀이 더해져 구속과 제구가 좋아졌다.
그러나 모든 투수들이 같은 투구 메커니즘을 습득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누구나 할 수 없고 같을 수도 없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은 투수들의 투구폼은 손을 댈 필요가 없다. 주로 성장기에 있는 어린 선수들이 대상이다.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는 선에서 투구 메커니즘을 잡아주고 각 투수에 맞는 투구폼을 고안해야 한다. 이때 코치들이 판단을 잘해야 한다. 선수 스스로 어째서 이런 투구 메커니즘이 필요한지 충분히 이해하게끔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선수와 코치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충분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
국내 야구계에서는 선수들의 개성을 살려주기보다 정형화된 폼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폼 교정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폼에 손을 댈 때에는 반드시 선수와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하고 선수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성과를 증명해줘야 한다. 잘 던지는 투수라면 누구도 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잘 던지지 못하니까 잘 던지자고 폼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나는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굳이 폼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구속을 늘리기 위해 투구 메커니즘을 제외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나.
컨디셔닝(워밍업, 근골격계 및 심폐 지구력 강화훈련)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우리 팀 투수들은 가을철 훈련 때 80%의 기술훈련과 20%의 컨디셔닝을 한다. 스프링캠프에서는 기술훈련을 60% 정도 하고 40%는 컨디셔닝에 치중한다.
코치 준비를 독학으로 했다고 들었다.
현역 막바지에 코치 준비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외국서적도 많이 읽고 교육리그에 참가해 열심히 공부했다. 내 나름대로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한 셈이다. 하지만 어디 나만 그랬겠는가.
당신의 투수 보호는 유명하다. 투구수 관리에도 가장 철저한 투수코치라는 평이 있다.
어느 투수코치라도 투구수에는 예민하다. 내 경우는 ‘이 선수가 즉시 전력감인지 시즌 중에 활용할 수 있는 선수인지 아니면 내년이나 내후년을 기약해야 하는 선수인지’에 따라 투구수를 고려한다.
시즌 전과 시즌 때의 투구수 관리가 다르지 않나.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투구수를 체크한다. 시즌 전에는 투구수 100개를 넘지 않도록 한다. 시즌에 들어가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과거에는 1,2이닝을 시범 삼아 던지고 다음날 완투하지 않았나. 그런 게 주요한 부상 원인이었다. 근력은 점진적으로 만들어야 부상이 찾아오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선수에 따라 투구수 120개도 가능하지 않나 싶다.
올시즌 바뀐 스트라이크 존은 횡보다는 종으로 변하는 변화구가 유효하다. 당신은 몇 년 전부터 체인지업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구종에는 점과 면이 있다. 점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체인지업류의 공이고 면은 옆으로 흐르는 슬라이더 계통의 공을 뜻한다. 아무래도 면보다는 점을 치기 힘들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공은 헛스윙 아니면 땅볼이다. 체인지업을 구사하지 못하는 투수들은 결정구가 없다. 결정구가 없으면 투구수 관리에도 실패한다. 올시즌 (윤)석민이가 좋아진 이유도 체인지업 완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각 팀의 에이스의 경우 이제 체인지업은 기본 구종이 됐다.
맞다. 하지만 체인지업은 던질 줄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체인지업이 ‘던지기 힘든 구종’이라고 하는데
반반이다. 체인지업은 대체로 서클 체인지업과 스플리터 두 가지다. 나는 선수에 맞게 서클체인지업과 스플리터 가운데 하나를 배우도록 한다. 윤석민은 서클체인지업을 던진다. 그렇다고 체인지업을 던지도록 강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피칭의 궁극적인 목표는 땅볼로 쉽게 아웃 카운트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기용한다.
체인지업의 중요성을 언제 처음 깨달았나.
1991년 쌍방울에서 현역으로 뛸 때 마티 드메리트라는 투수 인스트럭터가 계셨다. 그분이 우리 팀 투수들에게 ‘스플리터’라는 공을 알려줬다. 그분은 기술적인 면과 이론적인 면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 줬는데 특히 ‘왜 체인지업 계통의 공을 던져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현역 시절 막판이었던 나도 깨달은 게 많아 스플리터를 배웠다. 실제로 던져보니까 ‘아, 이거 괜찮겠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동안 국내 야구계는 체인지업을 외면했다.
체인지업을 구사하면 어깨를 다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체인지업을 던지다 다치는 경우는 공을 잘못 쥐거나 필요 이상으로 많이 던졌을 때다. 직구가 좋은 선발 투수의 경우 한 경기에 12~14개가량의 체인지업 구사는 매우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4월 22일 두산전에서 선발 윤석민이 98개 공으로 완봉승을 거뒀다. 유독 땅볼이 많았는데 이 역시 체인지업의 효과가 아니었나.
글쎄, 그날 경기에서 (윤)석민이가 체인지업을 정확히 몇 개나 던졌는지 기억하기 힘들지만 15개 안팎이었을 것이다. 석민이는 커브와 슬라이더도 잘 던지기 때문에 체인지업을 그렇게 많이 구사하는 편이 아니다.
당신의 ‘투구철학’을 듣고 싶다.
모든 투수코치들이 그렇겠지만 ‘투수진이 몇 승을 거둘 수 있느냐’보다 ‘과연 이 투수진이 풀시즌을 뛸 수 있느냐’에 관심을 둔다. 장기레이스에서 부상은 가장 큰 적이다. 그래서 투구수를 어떻게 안배하느냐가 중요하다. 시즌 종반 승부처가 아니라면 투구수를 신경 써서 우선적으로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선수들이 오랫동안 현역생활을 하기 바란다.
2002년 KIA 투수코치였을 때 투수운용과 관련된 문제로 해임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승을 위해 투수혹사를 묵인하기 바라던 사람들과 투수보호에 원칙을 지켰던 당신의 ‘투구철학’이 대립했던 것 아닌가.
그런 게 없지는 않았다. ‘투구철학’이라고 하기에는 건방지고… (잠시 생각하다)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분들의 생각이 조금 어긋났을 뿐이다.
투구수를 관리해 투수를 보호한다는 말이 국내프로야구 여건상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가지 의식해야 할 것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페넌트레이스는 긴 여정이므로 투구수 안배를 잘해야 투수들의 부상을 막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팀 승리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서정환 감독이 당신에게 투수진 운용의 상당 부분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투수 로테이션을 비롯해 투수진 운용의 많은 부분을 맡겨 주셨다. 그렇다고 내가 다 하는 건 아니다. 감독님의 허락과 결재를 받아 일을 진행한다.
KIA에는 좋은 신인투수들이 많다. 스카우트팀의 선수 보는 안목도 뛰어나다. 서감독과 당신의 역할이 궁금하다.
신인선수 스카우트는 전적으로 스카우트팀에서 하고 나나 감독님은 스카우트 팀이 올리는 보고서를 읽고 조언을 해줄 뿐이다. 스카우트 팀에 계신 분들은 모두 야구를 직접 했고 오래전부터 선수들을 지켜봐 매우 정확한 안목을 갖고 있다. 야구는 정신력이 중요한 스포츠다. 코칭스태프가 모르는 선수들의 집안 환경이나 성격 등을 스카우트팀이 더 잘 알지 않겠나.
조언을 해주는 과정에서 유망주들을 지켜볼 텐데 주로 어느 점을 눈여겨보나.
얼마나 강한 팔을 갖고 있는지 유심히 본다. 구속이 느린 선수들은 아무래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
투수들에게 주로 무엇을 강조하나.
‘공격적인 피칭을 하라’고 강조한다. 빠른 공을 갖고 있는 어린 투수들의 경우 소극적으로 도망가는 피칭보다는 공격적인 피칭이 더 효과적이다. 마운드 위에서 공격적이지 않을 경우 간혹 “너 자꾸 이러면 2군으로 내려 보낸다”하는 식의 거짓말도 한다.(웃음)
공격적인 피칭이 정답이긴 하지만 실점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젊은 투수들이 걱정하는 게 그런 것 아닌가.
투수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투지를 갖고 던지라”고. 투수에서 ‘투’자는 ‘던질 투(投)’이지만 한편으로는 ‘싸울 투(鬪)’이기도 하다. 우리 팀의 젊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은 상대 타자들이 치고 싶다고 쉽게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어제(4월 24일) 삼성전에서 4회까지 역투하던 선발 양현종이 5회 들어 흔들렸다. 결국 5회에 두 번 마운드에 올라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5회 처음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에는 맞아도 좋으니까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던지라고 주문했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넘겨받을 때에는 “현종아, 수고했다. 참 잘 던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던졌지만 다음에는 더 오래 던지도록 애써 보자”라고 말했다.
공격적인 피칭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볼넷이 적어진다는 점이다.
맞다. 어제 경기에서 (양)현종이가 잘 던지다가도 볼넷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나. 야구는 확률의 스포츠다. 무사에 사사구를 허용하면 점수 내줄 확률이 50%를 넘는다. 잘 던지고도 안타를 맞는다면 볼배합을 비롯해 검토도 하겠지만 볼넷은 답이 없다. 투수에게 볼넷은 ‘정신적인 에러’다.
투수코치 가운데에는 신인투수들이 많이 맞아야 성장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대량 실점을 한 뒤에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
난 그런 방법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선수를 완전히 죽이는 행위다. 투수는 좋을 때 마운드에서 내려야 한다. 젊은 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다음 경기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코치론’을 듣고 싶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내가 현역으로 뛸 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강제적으로 지도하면 반발한다. 따라온다고 해도 몸만 따라오게 마련이다. 선수와 코치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선수들의 취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코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내 경우 질책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다른 팀 선수 가운데 특별히 관심이 가는 투수가 있는가.
다른 팀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인상적인 선수가 없느냐”고 질문을 바꿔 하자 한참 망설이다가)롯데 최대성이 지난해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김수화도 인상적이고.
KIA 2군에도 좋은 투수가 많지 않나.
(활짝 웃으며)2군에도 좋은 투수들이 넘쳐난다. 최근 2군으로 간 곽정철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왼손투수가 필요해 2군에 있던 진민호를 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간 경우다. 곽정철, 진민호는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언더핸드 손영민은 경기운영을 잘해 롱 릴리프가 가능하다. 차정민은 올해 입대를 예정했는데 경찰청 야구단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도 못 쓰고 있다.
지금 투수진으로 전반기 마운드를 운용할 예정인가. 에이스 김진우의 복귀시점도 궁금하다.
감독님이 판단하실 문제지만 현재대로 끌고 가지 않겠나. (김)진우는 5월 말까지 지켜봐야 한다. 너무 서두르면 선수나 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1군으로 올려야 부상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한기주는 올시즌 붙박이 마무리인가.
(한)기주가 다시 선발로 가기에는 구종이 단조롭다. 감독님의 구상은 기주가 계속 마무리를 맡는 것이다.
현재 KIA 투수진의 리더는 누구인가.
(이)대진이다.
이대진은 어떤가.
보통 인내심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재활에 성공한 선수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이런 선수는 팀에서 도와줘야 한다. 대진이에게 늘 주문하는 게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대진이는 5일 간격 100개 투구수를 지켜주자는 것이 감독님의 뜻이다. 대진이는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아는 선수다. 관록으로 던지는 투수라 재기를 확신한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젊은 투수들의 경험 부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수들이 크는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