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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망상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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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23) ]
20230911
스물세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
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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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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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대개 발심에서 수행을 하고저 하면은 그릇 삿된 마구니에게 떨어지니 슬프지 아니 한가.
조사가 이르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에 지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염불하면서 만약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염불은 참된 염불이 아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돌이켜 비추어서 어둡지 않음이 다름이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본래의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내가 만일 너를 속인다면 장차 십팔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네가 나를 믿지 않을 것 같으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리라."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이야기가 어찌 황당한 말씀이랴.
(26~27p)
~♡~
(단어 풀이)
★ 발심(發心)
수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
불교적 의미로는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는 뜻으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을 의미한다.
★ 마구니
내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망상 등을 이르는 것,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것,
(기독교에서는 사탄의 유혹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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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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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도 경허선사가 수행에 관해서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만 하고 계시는데요. ^^
★ 그렇습니다. 경허선사 말씀대로 대개 발심에서 수행을 하고자 하면은 삿된 마구니(번뇌와 망상 등)들이 수행을 방해하고 괴롭히지요? ^^
그래서 슬픔 정도가 아니라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좌선을 하고 앉기만 하면 온갖 망상과 잡생각들이 들끓기 때문인데요.
특히 초보자분들은 더 하지요. ^^
그 이유는 평생 동안 의식을 밖으로만 두고 살다가 갑자기 안으로 돌리자니 나의 육식 (六識)과 육근(六根)들이 놀라서 발광을 하는 것인데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겪는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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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에는 이렇게 해 보십시오.
만약에 좌선을 하면 집중도 안 되고 잡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에는 그냥 서서해 보십시오.
서서 하든, 아니면 걸으면서 하든, 운전을 하면서 하든, 밥을 먹으면서 하든, 일을 하면서 하든, 대화를 나누면서 하든 전혀 문제없답니다.
예를 들면 서서 하는 경우라면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몸에 긴장을 풀고 마음은 편안히 하고 적당한 수인(手印)을 골라서 손의 위치를 잡고 눈은 4~5m 정도 앞 바닥에 떨구고 알아차림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좀 더 집중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는데요.
이때 좌선을 하거나 아님 의자에 허리를 펴고 앉아서 하시면 훨씬 집중이 잘 된답니다.
뭐든지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잖아요?
수행도 그렇답니다.
서서히 하다가 본인이 하고 싶을 때 발동을 걸어 보라는 뜻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좌선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라 꼭 좌선을 안 하더라도 전혀 무방하답니다.
물론 좌선이 맞으면 하시면 되는 것이고요.
어떤 자세나 형태에 너무 구애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말은 괜히 폼 잡고 좌선을 한답시고 하다가 힘이 들어 포기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로 많음)
제가 초보자분들에게 일러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행은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이지 참으면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어쩌다가 선방에 앉아서 몇 시간씩 빡세게 앉아 있어봐야 고생만 할 뿐이지 효과는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단 1초라도(찰나 삼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답니다. (※)
제 경우는 자랑 같지만 단 하루도 안 거르고 눈을 뜨자마자 기지개를 켜면서 본성부터 챙기는 경우인데요.
그러고는 항상 어느 순간이든 의식이 깨어서 본성 자리와 함게 일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글도 쓰려고 노력을 한답니다.
의식이 다른 곳에 빼앗기면 다시 본성 자리로 돌려놓고, 또 빼앗기면 다시 돌려놓고 하는 것이 저의 일상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계속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 보면 일을 하든, 말을 하든, 어느 순간이든 자동으로 되게 되어 있답니다.
부처님처럼 100%는 어렵더라도 95% 정도는 채우려고 저도 엄청 노력을 한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행은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이지 참으면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자면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발심(發心)이랍니다.
이렇게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끈질기게 화두를 들고 있어야 하고,
호흡관으로 하시는 분들은 들숨과 날숨을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끈질기게 알아차리면서 하셔야 하고,
조사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나의 마음을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끈질기게 지긋이 바라보시면 되고,
위파사나로 하시는 분들은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두시고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끈질기게 알아차리면서 하면 되고,
본성 자리를 찾으신 분들은 그 본성 자리를 무엇을 하든지 꾸준히 끈질기게 챙기면서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시간은 1초도 좋고, 1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1시간 이상이면 더욱 좋은 것이고요.
그 대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셔야 한답니다.
한꺼번에 오래 하는 것보다 짧더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깨닫고 나서도 마찬가지랍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본성 자리를 찾으신 것이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그렇지 못하신 분들보다는 훨씬 재미나게 할 수가 있는데요.
왜냐하면 깨닫지 못하신 분들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먼 산을 보고 수행을 하는 기분이라 재미가 없지만,
깨달은 사람들은 본성 자리를 보면서 하기 때문에 훨씬 재미도 있고 효과도 바로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때부터는 경허 선사처럼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수행에 빠질 수 박에 없게 된답니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서 자만에 빠져서 의식이 본성 자리에 가 있지 않고 천도재 같은 엉뚱한 곳에 가 있으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랍니다.
일단은 수행자들이 돈 쪽으로 의식이 가 있으면 끝장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돈 보다 더 큰 마구니는 없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의 생활은 굶지 않을 정도면 된다는 것입니다.
출가자는 더 그러하고요.
그러자면 어른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답니다.
그래야 한국 불교가 바로 설수 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부처님 자신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그런 수많은 제자들이 따랐던 것이고 불교를 부흥시킬 수 있었던 거랍니다.
지금처럼 어른들이 천도재나 지내주려 하고 제사나 지내주었다면 과연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어른들부터가 욕심을 버려야 한답니다.
오죽하면 부처님도 궁궐을 버리고 생활을 하셨을까요?
물론 부처님과는 다른 선택을 하셨지만 경허선사도 오죽했으면 당시 불교를 버리고 파계를 하고 함경도로 가셨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경허선사의 선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차라리 경허 선사의 그 당시 선택이 진정한 만행(萬行) 길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경허선사에게 있어서 그곳보다 더 불구덩이가 어디 있을까요?
수행의 길은 이런 거랍니다.
여러분들도 꾸준히 하셔야 한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아직은 알아차림이 안정이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중간에 하다 말다 하면 말짱 꽝이라 그렇답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시다 보면 나중에는 완전히 숙달이 되어서 내 것이 되는데요.
이 상태를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하셨답니다.
이때부터는 수행에 힘이 붙고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데요.
그전에는 사실 수행이 재미없게 느껴져서 안 하게 된답니다.
★ 조사가 이르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에 지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였으며,
이 말씀 또한 맞는 말씀이랍니다.
수행 중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을 떠나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백날 천날을 앉아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경허선사는 지금 친절하게도 다른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이렇게 해보라고 하십니다. ^^
★ 또 이르기를 "염불하면서 만약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염불은 참된 염불이 아니다." 하였고,
이 내용은 아주 의미심장한 내용인데요.
흔히 수행을 할 때에는 생각이 끊어져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특히 처음 수행을 하시는 분들은 더 하고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앉기만 하면 잡생각들이 들끓잖아요?
이럴 때 보면 대부분이 그 잡생각들을 없애려고 싸우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잡생각들과 싸우고 있다 보면 수행이고 뭐고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왜냐하면 수행은 고사하고 잡생각들을 없애려고 싸우느라 시간만 다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대로 받게 되지요.
절대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힘이 없기 때문에 잡생각들과 싸운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옛 분들이 마구니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마구니의 비유는 마귀나 귀신들은 항상 사람들을 홀려서 가는 길을 방해하잖아요?
그래서 옛 분들은 마구니라고 표현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번뇌와 망상들이 수행 길을 자꾸 방해하니까요..
경허선사 말씀은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라는 얘기입니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좌선을 하지 마시고 염불수행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님 위에서 제가 나열한 방법으로 하셔도 되고요.
초보자분들은 좌선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일어날 때가 많이 있지요.
그래서 아직은 좌선이 익숙하지도 않는데 갑갑하게 앉아서 고생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서 하거나 의자에 앉아서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하다 보면 생각도 그쪽으로 가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서서히 수행에 근기가 붙어서 힘이 생기게 되어 있답니다.
평생을 의자에만 앉아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좌선을 하게 되면 다리도 저려오고 온몸이 뒤틀려 오는데 거기다가 번뇌와 망상까지 겹친다면 무슨 수행이 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하면 점점하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래서 염불 수행은 처음으로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나 여성분들이 하기에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답니다.
흥얼흥얼 노래 부르듯 염불을 외우면서 생각은 다른 곳에 두지 마시고 염불에 두고 해 보시라는 것이 오늘 경허선사의 말씀이고요.
그러다가 마음이 한곳으로 모이면 그 염불조차도 놓아버리시는 겁니다. (※ 이 부분이 중요함)
왜냐하면 깨닫기 전의 사람들은 본성을 찾아 들어가는 원리가 이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화선도 화두가 하나로 뭉치면 그 화두를 버리셔야 하고요.
이것이 [의단]이고 [화두타파]랍니다.
지금 경허선사 말씀은 생각으로 생각을 막는 방법이고요.
대념처경(大念處經) 할 때에 대념(大念)의 뜻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렇게 모든 수행은 방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방법만 다를 뿐이지 사성제(四聖諦) 안에서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사성제를 벗어난 수행은 수행이라 할 수 없는 것이고요.
염불을 외는 생각으로 다른 잡생각들을 없애는 방법이 경허선사의 말씀이랍니다.
가정 일로 생각이 많거나 아이들 일로 생각이 많을 때 그 생각들을 염불에 두라는 것입니다.
가사를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잡생각이 일어날 때 이렇게 하시다 보면 서서히 마음도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본격적으로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림을 하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알아차림의 대상은 화두에 두셔도 되고, 마음에 두셔도 되고, 현재 이 순간에 두셔도 되고요.
깨닫기 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세존께서도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방편이라 하는 것이고요.
세존께서도 삼승(三乘)은 일불승으로 가는 방편이라고 하셨거든요.
불타는 집(생각)에서 세 가지의 수뢰 쪽으로 생각이나 의식을 돌리는 것이 바로 이런 원리랍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경허선사 말씀처럼..
★ 이르기를 "돌이켜 비추어서 어둡지 않음이 다름이다."
가 된다는 얘기랍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 또 이르기를 "본래의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이 내용은 참으로 멋진 표현인데요. ^^
그리고 생각만 하면 뭐 하겠습니까?
본성 자리를 찾아서 지키는 것이 우선이지요.
그 본성을 찾는 방법은 "지금 염불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려보라는 것이고요.
지금 염불을 하고는 나가 나의 몸인지? 아님 머리가 알아차리고 하고 있는지? 아님 의식이 알아차리고 하고 있는지? 아님 그 어떤 무엇이 알아차리고 하고 있는지? 말이지요?
지금 염불을 하고 있는 놈은 누구인지? 말이지요?
이것이 화두(話頭)랍니다.
그래서 "이뭣고"인 것이고요.
이렇게 본성을 찾아서 지키는 것이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거나 부르짖는 것보다는 백배 천 배는 낫다는 이야기가 오늘 경허선사의 말씀이랍니다.
그리고
★ 내가 만일 너를 속인다면 장차 십팔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네가 나를 믿지 않을 것 같으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리라."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이야기가 어찌 황당한 말씀이랴.
이 말씀은 경허선사의 지금 이 말을 믿고 한번 따라 해 보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면 호랑이에게 잡혀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고요.
옛날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재미있지 않나요? ^^
이 말의 뜻은 번뇌 망상 등에(마구니나 호랑이로 비유로) 잡혀먹히지 않으려면 지금 이 말을 믿고 따라 해 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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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고승열전] 경허대선사 3편 : 폐문 수행에 들다.
(내용 설명)
지금부터는 중요한 내용이라 보충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
비록 이번 동영상이 만화이기는 하지만 엄청 배울 것들이 많이 들어있는데요.
저와 같이 하는 분들은 대부분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들이 많아서 추가 설명을 하는 것이니 오랫동안 수행을 해오신 분들은 이해를 좀 하시고 보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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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가 역병이 돌고 있는 어느 마을에 들어갔다가 자신도 역병에 걸려서 죽을까 봐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장면인데요. ^^
이런 자신을 보고 지금 경허는 크게 실망을 하고 있는 장면이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경전에 대해서 잘 알고 유명한 강의를 하는 박사면 뭐 하겠습니까?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요.
그래서 지금 경허는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있는 거랍니다.
경전에는 지금 경허의 말처럼 생사일여(生死一如)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살고 죽는 것은 본래 없다는 뜻인데요.
자신은 지금 역병에 걸려서 죽을 것 같아 떨고 있는 자신을 보니까 한심스러웠던 것입니다.
머리로만 유명한 강백(講伯)이었지 마음은 일반 중생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겁니다.
경허도 지금 [생사일여]라는 말은 알겠는데 그 실체(불성/본성/성령/마음)는 전혀 모르겠다고 하지 않던가요?
아직은 그 실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고요.
본성의 자리는 생불생 사불사(生不生 死不死)라 "살아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자리"를 아직 경허는 깨닫기 전이라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경허는 가던 길을 돌려서 다시 동학사로 돌아와 모든 학인 들을 돌려보내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에만 매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
깨닫고자 하는 이런 굳은 각오가 바로 발심(發心)이랍니다.
참고로 본성 자리를 깨닫게 되면 그 자리는 죽고 사는 자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답니다.
풍선이 아무리 터져도 육체는 아무리 죽어도 풍선 안의 공기와 밖의 공기는 같은 것이듯 안과 밖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본성 자리를 깨닫게 되면 잘 알게 된답니다.
드리고 본성 자리를 깨닫게 되면 그 자리는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유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한번 다 같이 아래의 동영상을 보실까요?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JYFujY9Emvk?si=4ytHbqXpIPSZ9z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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