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번째 편지 - 엉뚱한 짓
기업의 창업 이후 1년, 5년, 10년, 30년 생존율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 어느 통계를 보면 1년 생존율 65%, 5년 생존율 35%, 10년 생존율 16%, 30년 생존율 1.9%라고 합니다.
지난주 화요일 한국감사협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부정 감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저희 회사와 업무 연관성이 있어 MOU를 체결하러 갔습니다.
한국감사협회는 1977년 창립된 순수 민간기구입니다.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를 받지 않는 자체 사업으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직원은 10명이고 1년 매출은 16~17억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회의실 벽에는 역대 회장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 회장은 18대 회장입니다. 2~3년에 한 번씩 회장이 바뀐 모양입니다. 회장들 면면은 전문 경영인보다는 정치권에서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에 도전한 분들도 제법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1977년 창업된 이 조직이 47년간 생존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정부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너 경영 체제도, 역대 회장들이 전문 경영인 출신도 아닌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기업이 50년을 살아남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인데 어떻게 이 조직이 거의 50년을 살아 남아 있을까요. 이욱희 회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제가 평생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면 이런 작은 조직이 살아남는 비결은 두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 회장이 엉뚱한 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어느 회장이 엉뚱한 짓을 하더라도 불과 2~3년밖에 못 하니 그다음 회장이 빠른 시간에 이를 시정할 기회가 있다는 점입니다."
참 재미난 통찰이었습니다. 통상 기업이 장수하려면 오너가 장기 비전을 가지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시대와 시장에 적응하여야 하는데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장이 이야기한 "엉뚱한 짓"이 무엇일까요? 그 기업이나 조직의 고유 업무에서 벗어난 다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중견 그룹들이 경험이 없는 다른 분야의 기업을 거액에 인수하였다가 같이 파산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도 13년간 자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늘 더딘 성장률에 갑갑증을 느껴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시도를 수없이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대개 실패였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처럼 아이디어가 많은 경영자는 늘 "엉뚱한 짓"을 꿈꿉니다. 게다가 제가 오너이니 2~3년에 한 번씩 리더십이 바뀔 기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임원들에게 평소에 "내가 제안하는 엉뚱한 짓이 여러분 생각에 아닌 것 같으면 서슴없이 반대해 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 의견이 들어오면 포기합니다.
저의 엉뚱한 짓 버릇은 집안에서도 발휘됩니다. 가급적 엉뚱한 짓을 벌이지 않으려 하지만 벌이고 싶을 때는 가족들을 설득한 후 벌입니다.
지금도 제가 벌인 <엉뚱한 짓>하나 때문에 이 폭염 속에 가족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집 일부를 리모델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설득하여 여름 휴가철 동안에 공사를 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하여 시작하였지만 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 엉망친창입니다. 엉뚱한 짓이 낳은 결과입니다.
국가도 사회도 기업도 가정도 모두 '좋은 의미의 <엉뚱한 짓>에 해당하는 <변화와 혁신>'을 하여야 한다고 늘 들어왔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변화와 혁신이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요.
1981년 시작한 세계적 장수기업 모임 에너키언(the Henokie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icentenary family companies)이라는 협회가 있습니다. 가입 조건은 '장수성'(최소 존속 기간 200년)과 '영속성'(가족이 회사의 소유주 또는 대주주여야 하며 창립 가족 중 한 명은 여전히 회사를 관리하거나 이사회의 일원이어야 함)입니다.
모임 명칭은 성경에 죽지 않고 오랜 기간 산 인물인 Henok(또는 Enoch)에서 따왔습니다. 그가 하늘로 올라갔을 때 905세였습니다.
현재 56개의 회원사가 있고 프랑스 15개, 이탈리아 14개, 일본 10개, 스위스 5개, 독일 4개, 네덜란드 2개, 벨기에 2개, 오스트리아 2개, 영국 1개, 포르투갈 1개 기업 등입니다.
에노키안 회원사의 장수 비결을 연구한 '16,000 Years of Family Business: The Leadership Model of the Hénokiens'라는 논문을 보면 장수기업의 요소로 5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첫째 가족 재산의 활용(Leveraging Family Assets), 둘째 장애물 극복(Overcoming Roadblocks), 셋째 계승 계획(Planning Succession), 넷째 전문화(Professionalization), 다섯째 적응과 혁신(Adaptation, Innovation)을 들고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도 한 요소이지만 가족, 전통, 계승 등에도 무게가 주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장수기업이 되려면 적응과 혁신을 하되 쓸모없는 엉뚱한 짓을 하지 말고, 엉뚱한 짓이 잘못된 경우에는 가족, 전통, 계승 등의 문화에 비추어 이를 시정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수하는 삶, 장수하는 기업, 장수하는 국가를 생각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9.2.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
첫댓글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담아낸 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