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롭고 어여쁜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탄력 넘치는 계절 봄에 난 주체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신음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던..질긴 정신력으로 육체의 아픔이나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 회복이란 길로 저만큼 가 있는 것 같던 내 길은 어느 새 이만큼 다시 병상으로 돌아와 있음을 자각하던 힘겨운 시간을 살았다.
알 수 없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의 꼬리가 서러워 질 즈음..내 머리 속에..가슴 속에..하루종일 떠나지 않던..'함께'..'오래도록'.. 그 사소한 단어가..아픈 시간동안 내게 목숨보다 소중함을 깨닫고 보무도 당당하게 다시 현실과 마주하던 날. 마음의 정리도 할겸 얼마 되지 않는 살림살이들 정리를 했다.
서랍정리를 하다가 아주 낡은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빛바랜 종이에 금박으로 새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들어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의사들에게 금과옥조가 되어온 이 선서문은 '의술은 인술' 임을 강조하면서 의사로서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가슴 벅찬 사명감을 안겨주는 맹세의 증표이기도 하다.
5 년전, 여러 날 동안 혼수상태였다 깨어났을 때 내 주치의가 내게 준 아주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었는데, 당장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그런 세월이 어찌어찌 지나면서 내 삶의 중요한 순위에서 밀려 서랍 속에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마음 다해 정 주고 아끼던 사람들에게 묵직한 해머같은 걸로 뒤통수 맞은 것 같고, 무심한 또는 과도한 말의 홍수 속에서 날카롭고 예리한 걸로 후비는 것 같은 가슴에는 선혈 낭자한 생채기가 났지만, 그래도 다시 현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기로 결심했기에 오랜만에 친지들과의 저녁 한 모임에 갔다가 이 액자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학적인 도움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한 여자가 불쑥 나서며,
"어머어머! 소크라테스의 선서 말이군요!" 하며 이야기에 끼어 들었다. 나는 그 여성의 실수를 덮어주느라 얼른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까짓거 크라테스는 크라테스니까.
얘기는 흘러흘러 최근에 절친한 친구의 아들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들 갑절로 축하하며 샴페인 한 병을 터뜨렸다. 그 때,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아까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났다.
"쌍둥이라구요? 정말 일석이조네요! 호호호.. 그러니까 쌍둥이는 엽록소가 같을 때 나오는 거 잖아요 그쵸?"
'아이구 맙소사 엽록소라니 염색체라구요 아줌마!'
나와 안면이 있지는 않지만 모임에서 여자는 그 여자와 나 단둘이었기에 더 이상 조마조마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괜히 먹지도 않을 크래커를 집으며 대화에서 빠질 폼을 잡았다.
그러나 여자는 의학적 도움으로 크고 예뻐진 눈을 두어 번 깜박거리더니 계속 했다.
"십 수 년 전부터 의학계나 종교계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코닝문제 말인데요 여러분들은 그거 어떻게 보세요?"
코닝이라니 튼튼하고 안 깨진다는 미제그릇 얘긴가? 그게 언제부터 의학계나 종교계의 관심사가 되었을까? 아니지 클론 ( clone; 복제생물, 무성생식 )을 얘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들 아이큐는 의심이되 시사문제에는 관심이 많으신 이 성형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력이 역력했다.
좌중의 리더가 된 이 여자는 자신이 현재 한 유명대학의 평생교육 과정에서 몇 가지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의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예의를 다해 말대꾸를 해 주었다.
"그래, 무슨 공부를 하십니까?" 여인은 높고 오똑한 콧대를 쳐들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트 히스토리 ( Art History ; 미술사 ) 한 과목 하구요, 소셜 라이즈 쪽에서 두 강좌 듣고 있어요."
'뭐라고? 소셜라이즈? 소시올로지 ( Sociology: 사회학 )을 말하는거겠지.'
'아아~~~, 불쌍한 영어!'
나는 이민사회에서만 쓰이는 괴상한 영어 단어들이 떠올랐다. 이상한 영어보다는 우리말이 더 정서적이고 아름답게 느겨지던 그 정체불명의 영어들이.
나는 사람은 언어로 사고한다는 말을 신봉한다. 그렇다면 말을 제대로 가려서 사용하는 사람이 사는 일에도 사려깊고 신중하게 살게되지 않을까? 말을 대충하면 사는 것도 대충 살게 될까봐 두렵다.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약속도 아무렇게나 하게 될 것만 같다.
그나저나 영어는 불쌍하다. 얼마 전에 DMV에 갔더니 엉터리 영어를 쓰는 한 아랍게 남자가 창구에 앉은 오리지날 네이티브 스피커 직원에게 고래고래 큰 소리로 따지더니, 나중에는 배짱좋게 이렇게 말 하는게 아닌가!
"정말 답답하네! 너 지금 영어 이해하니?"
첫댓글 무서운 영어..... 아찔 --"
불쌍한 영어가 아니라..아찔할 정도로 무서운 영어 였나요...
하하...재밌네요
재미라고 생각해야 스트레스 안 받아요..한국말처럼 고급스러운 표현이 안될 땐 얼마나 속상한데요..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나서고 싶고, 끼고 싶고, 알아주기를 바라고,,,,,,,,아마도 어쨌거나 엄청 외로운 분이셨을 꺼 같아요. 분에 넘치려 하는 것이 문제이겟지만요.
오우..노우...나무라긴요..저하곤 안면도 없는 분이고..절대로 그 분을 폄하 하려는 의도로 쓴 글은 아니예요...미국에 살다보니 생긴 해프닝을 적어본거예요...
아휴 안타까운 국어...ㅎㅎ^^~
재미있게 읽었어요.. 외국어라 실수를 해도 웃을 수 있어 그나마 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셔 고마워요..한국말이든 영어든 고의적으로 나쁜 의도만 아니라면..다 ..괜찮겠지요...
그녀는 잘 있을까요? 누군가 지적을 좀 해주는 친절도 좋을텐데요...그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모두들 나빠요~~~ㅎㅎㅎ ^^
맞아요..내가 젤 나빴어요..내가 알고 있는걸 그녀가 모른다고 겉으로는 nice하고 친절하게 대랬어도..속 마음은 은연 중 비교 우위에 서려고 했었던 것 같네요..다음 모임에서 또 만나면 사알짝 지적해줄게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ㅎㅎ 근데.. 엽록소..? 엽록체....? 혹시..세포안에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식물이 아닌 동물의 염색체를 뜻하는 말은 아닐런지....
글을 쓰고나면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데..오자나 탈자 같은거 말예요..워낙 게을러 그렇지 못했네요..교정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