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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지만
마음과 생각이 통하여 작
은것에도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실수로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믿음과 애정이 가득하여 어떤
일에도변함없이 나를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불만으로 가득한 지친
시간이지만긍정적이고
명랑하여 언제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늘 질투와 욕심으로
상심하는 날들이지만
이해심과 사랑이 충만하여
나를 누구보다가장
아껴주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
그 많은 선물들을 갖기에는
부족함이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소중한 사람들을만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가장 큰 선물입니다.
/박물관과 문방구/
지나간 과거를 알고 싶으면
박물관으로 가면 됩니다.
다가올 미래를 알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학교 앞 문방구점이나
어린이 장난감을 파는
완구점에 가보면 됩니다.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 뭘 가지고
노는지 보면 됩니다.
지금 가지고 노는 것들이
미래에 그들의 삶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가 보셨어요?
총, 탱크, 괴상한
이름의 로봇,
국적 불명의 인형,
외계인인지 기형적으로
생긴 캐릭터 제품,
최신현대무기를 완벽하게
축소해 놓은 살인무기들,
사치의 대명사인 영국
귀족들이나 썼던 화려한
의상과 장식을 본 딴
여자들의 공주 인형,
이런 것들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정서 속에
무엇이 담길까요?
정말 끔찍하지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흙과 친해지고
생명 있는 것들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있는 곳에서,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라
너는 내가 있고
나는 네가 있어
씨알의 숨결은 훈훈하다.
훈훈한 숨결이 있어
역사가 산다.
씨알들이여, 이제는
떨어짐만이 남아 있다.
어디에고 떨어져라
속히 떨어져라.
떨어질 곳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너무 느리다.
그 사이 운명은 더욱
크게 팔을 뻗친다.
씨알의 소리를 들려주라.
운명은 없다 씨알은
언제나 확실한 것,
착실한 것, 떨어지는
곳마다에 꽃이 핀다.
줄기차게 그리고 예쁘게,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쥔다고 역사가
바로 서지 않습니다.
또한 목청껏 미움을
폭발하는 것도
정의가 아닙니다.
물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겠죠.
물론 미운 일은 없어야겠죠.
너와 나를 살리고 우리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이
모여야 되겠지요.
또한 사람을 비하하고
우리를가르는 일이
바로 미운 일이겠지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를 초대하는
준비를 합니다.
나 또한 아침에 일어나면
언젠가를위하여 오늘도
초대의 준비를 합니다.
내가 비록 이름 없는
삼류악사이지만 기타도
연습하고 나팔도 연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형편없어도 어쩌겠습니까?
다른 건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데,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 have,
where you are.
(있는 곳에서,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라)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
기독교대학교의 하버드’
라고불리는 미국 시카고의
명문 휘튼 대학교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감리교 목사님들이
세웠습니다.이 학교의
중앙 홀 2 층에는
휘튼대학교가 배출한
선교사들의 명단과
사진이 붙어있는데
이중 몇몇 사진에는
십자가 표시가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전하러 떠난
이억 만리 사역지에서
순교를 당한 선교사
들의 표시입니다.
남미 에콰도르의 아오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목숨을 잃은 이야기
로유명한 짐 엘리엇도
이 학교 출신입니다.
짐 엘리엇은 학교를 다닐
때 큐티를 하며 묵상한
내용을 노트에 적곤
했는데 그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세상엔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젊음도 지나가고,
명성과 쾌락도 결국은
지나가고, 아무리 많은
물질도 결국은마지막
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세 마디의 말,/
세상의 모든 현명한
사람들은말을 중요
하게 여겼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은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
라고 했고루크는“말
한 마디에 세상을
지배할 힘이 있다.”
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어둡게
바꾸는 세 마디 말이
있다고 합니다.
1. 다 그런 거지 뭐.
2. 나 하나쯤이야 괜찮아.
3. 다른 사람도 다 그래.
반대로 미래를 더 밝게
바꾸는세 마디 말
이 있다고 합니다.
1.“다 그런다 할지라도”
2.“나 하나만큼은”
3.“다른 사람이 다 그래도”
단 세 마디의 말만 바꿔도
정말로 인생이 바뀝니다.
왜냐하면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행동은 말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
옛날 희랍의 전제국가의한 왕이
24시간 여색과주지육림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위하여
쾌락도와 행복도를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상금을 걸고
천하에널리 구하게 하였다.
쾌락을 즐기기 위한
별별 기발한 새 아이디어들이
실험되었으나왕은 행복에 대한
갈증은날로 가중되기만 했다.
새 아이디어의 제공자들은
그를 실망시킨 벌로 감옥에 갔다.
어느 날 왕 앞에 행복의
새로운 제안자가 나타났다.
수도승이었다.
수도승은왕 앞에 나타나서
꾸짖는눈빛으로,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행복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고행복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은무언가를
깨달은 듯지난 날의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행복에 이르는길 12 가지/
1. 더 이상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나누라.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잔고
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2.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얼마나 갖고 있는가
가 아니라,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자유로워져 있는가
에 있다.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인간을 제한하는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3.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4.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스스로 물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 주는가,
내가 내 삶을 만들어
갈뿐이다.
5.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6. 자주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하라.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7.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
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8.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살라.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살 수
있다면여기에는 삶과 죽음
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9.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 내고 마는 것이다.
10.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11. 삶의 장비를 최대한
간소하게 갖추라.
집, 식사, 옷차림을
단순하게 하라.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지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말고, 때로는 밤에
텔레비전도 끄고,
촛불이라도 한번 켜 보라.
그러면 산중은 아니더라도
산중의 그윽함을간접적
으로라도 누릴 수 있다.
12.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늘 물으라.
단 10분이든 30 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벽을 보고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라.
이렇게 스스로 묻는 물음
속에서 근원적인 삶의 뿌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인간은 늘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서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좋은 글 /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들을
많이 만들어 놓거라.
그 중에 하나 둘은
안그랬다면 말도
붙이기어려울 만큼
예쁜 아가씨로 자랄 것이다.
목욕할 때에는 다리 사이와
겨드랑이를 깨끗이 씻거라.
치질과 냄새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거든 주방장에게 간단한
메모로 칭찬을 전해라.
주방장은 자기 직업을
행복해할 것이고너는 항상
좋은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든 반드시
추천을 하거라. 너도 행복하
고 세상도 행복해진다.
여자아이들에게 짓궂게
하지 말거라.
신사는 어린 여자나나이
든 여자나 다 좋아한단다.
양치질을 거르면 안된다.
하지만 빡빡 닦지 말거라.
평생 즐거움의 반은 먹는
것에 있단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친구가 너를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가 즐거워할 것이다.
하나님을 찾아 보거라.
만약 시간의 역사(호킨스),
요한복음(요한)을 이해
한다면 서른 살을 넘어서면
스스로 서게 될 것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너무 예의바른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말거라.
굳이 일부러 피곤함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
똥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누거라.
일주일만 억지로 해보면
평생 배 속이 편하고 밖에
나가 창피당하는 일이 없다.
가까운 친구라도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속을 보이지 마라.
그 사람이 바로 내 흉을
보고 다닌 사람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청춘
만큼이나 재미있단다.
그러니 겁먹지 말거라.
사실 청춘은 청춘 그 자체
빼고는 다 별거 아니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빈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주거라.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고
여자친구 엄마는 널
사위로 볼 것이며
네 아내는 행복해할 것이다.
양말은 반드시 펴서
세탁기에 넣어라.
소파 밑에서 도너츠가
된 양말을 흔드는
사나운 아내를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하는 결정이
당장 행복한 것인지
앞으로도 행복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법과 도덕을 지키는
것은 막상 해보면
그게 더 편하단다.
돈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거라.
돈에 눈이 멀어진다.
돈을 너무 멀리 하지
말거라. 너의 처자식이
다른 이에게 천대받는다.
돈이 모자라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사용해라.
너는 항상 내 아내를
사랑해라. 그러면 네
아내가 내 아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으면 최소한세 명의
의사 진단을 받아라.
생명에 관한 문제에
게으르거나 돈을 절약할
생각은 말아라.
5년 이상 쓸 물건이라면
너의 경제능력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결과적으로 그것이
절약하는 것이다.
베개와 침대와 이불은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숙면은 숙변과 더불어
건강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너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친구가 되거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 같으면 아버지를
택해라. 친구는 너 말고도
많겠지만아버지는
너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줌을 눌 때에는 바짝
다가서거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될 것이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락이 거의 없던 이가
찾아와 친한 척하면 돈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분명하게 '노'라고 말해라.
돈도 잃고 마음도 상한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면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줘라.
그러나 먼저 네 형제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해줬나 생각하거라.
네 자녀를 키우면서
효도를 기대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키우며,
너 웃으며자란 모습
으로 벌써 다 받았다.
/글자 한 자 차이/
Wife는 Life가 될 수도
있고 Knife 가 되기도 한다.
Bed time이 Bad time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글자
한 두자 차이일 뿐이다.
Star(별)와 Scar(상처)도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환경을
Curse하면 Scar만 남게 된다.
/어떤 환경도 좋아요/
누가 나를 미워하면
난 나를 더욱사랑할래요.
누가 나를 필요 없다 하면
난 나를 귀히 여길래요.
누가 나를 사랑하면
난 님을 더욱 사랄할래요.
누가 나를 동리에서 밀어
내연 난 거룩한 님의
품에서참 행복을
누리며 살래요.
누가 나를 "왕따" 시키면
천사의 노래 들으며
더 좋은 세계를 위해
준비할래요.
어떤환경도 좋아요
모두 행복의 씨가
되도록 옥토에 심어
아름다운 나무
키워 볼래요.
환난이 와도 대적이 와도
가난이 와도좌절이 와도
감사하며 감사하며
님이 주신 꿈 키워 갈래요
성령의 인도로 가는
생명의 길 행복의
나라 사랑 실천의
정원 한 송이의
백합화로 곱게 피어
나는아름답고 귀한 길
달려갈래요 -난 태양
을보리라 중에서-
/주께 드리는 나의 時/
나의 모든 기도가 주님께
드려지는 아름다운 시가
되게 하여 주소서.
나의 모든 찬양이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모든 생각이 주님께
올라가는 향기로운 향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나의 모든 행실이 하나의
예배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크고도 놀라운
사랑을 의지하며
경배드리니 나의 고통
과 나약함을 사랑
으로 감싸주소서.
오 전능하신 주여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고
주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날마다 찬양
하게 하여 주소서.
/마음에서 마음
으로 가는 길/
행복은 근사한
말이 아닙니다.
행복은 마음 속 깊은
데 숨어있는 진실이며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
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행복은 또 스스로만족
하는 데에 있습니다.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한 두가지나은 점은
있지만열 가지 전부
가 남보다뛰어날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복이란 남과
비교해서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만족할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올해 여름/
여름엔 신(神)을
잃는다던가 여름되기도
전에 내 하나님길
떠나시어 이름 모를
곳 깊이 드셨으니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나리,
전날에 펴놓은 일들은
빛 바래어 시들을 것인가,
눈물에 적시는 빵만으로
힘을내어 나날의 삶의
무게들어 올리고
아울러소망의 벽돌을
쌓을 수있을는지 바라느니
사랑하던 때 온마음으로
껴안던 만상의 밝고 맑은
은혜로움으로 상을 차려
손발에 못박히신 분께 봉헌
하고 싶건마는 베품의 근원
이신 분께 답례하고
싶건마는 엎드려 엎드려라.
통회하는 영혼의 순이 벋어
바람 부는 곳 들풀밭 이루면
차만들 추수하러 오시리니
그 때에 나 일어서리라.
엎디었던 자들
모두일어서리라.
신앙을 잃은 여름
슬픔이 달궈진돌 위에
눈 감았으되이로써
전부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 한 가지
알고는 있다.
- 김남조 -
/차이와 다름에서
힘이 나온다!/
사람들은 '가르침'
받기보다는'자극'
받기를 원한다.
어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면 잘 읽지
않는다.그러나그 책
을 읽고 깨달은점과
그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말한다.
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그 책이 많은
청년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극보다 강한 전달
방법은 없다.
자극은 속에 있는
잠재력을끌어
올리는 힘이 있다.
자극 잘하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다.
사람이나 사물은
서로 힘을 주고받는다.
질량의 차이로 인해
중력이 생긴다.
온도 차이로 인해
공기가 움직여 바람이 된다.
물의 위치 차이가 크면
클수록낙차로 인한 강력
한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힘은 더욱 커진다.
차이에서 힘이 나온다.
남자와 남자가 같이 있을
때는 별로 긴장감이 없다.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으면긴장감이
돌면서 힘이 생긴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름에서 이성적
매력이라는 힘이 나온다.
차이나 다름을 나쁜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힘의 근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다름에서
힘을 뽑아내는 것이
리더십이다.그러나 차이가
너무 크게 나면서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핀란드에 유명한 가수가
있다고 해도 한국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
너무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아바 그룹은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고,한국
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스웨덴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특이함과 영어라는
익숙함이 결부되어서
강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사람들은 차이에서 힘을
얻지만,공감이라는 연결
고리가있어야만 전달된다.
동남아에 한류가 강한
영향을 미친 이유는
'사랑 희생 가정'이라는
보편적 주제의공감대와
같은 아시아인이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공감과 한국적 특이성
이라는 차이가 강한 한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연결고리 없는영향력은
불가능하다.서로 자극을
주고받다 보면차이는
사라지고 서로 비슷해진다.
자주 접하다 보면 식상해진다.
다름과 차이가 주는
힘이 반감되는 것이다.
그래서 친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강한 영향을미치기
위해서는친해져야하는데,
친해지면 식상해진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깊어지는 것이 답이다.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계속해서 깊어지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성과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익숙함의 식상함을 깨는
길은또 다시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깊어지는
길밖에 없다.
깊어지면 다시 다름과
차이를느끼게 되고,
그 속에서 힘이 나온다.
깊이를 놓친 사람은
항상 떠돌이가 된다.
처음에는 차이와 다름으로
인해 영향을 준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비슷해져 식상해진다.
이제는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다.그러면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처음
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감에 빠져든다.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너무 잦은 이직, 이사,
교회 옮김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가?
결국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는
길은있는 자리에서
깊어지는 것이다.
깊이로 인한 차이와
다름은 장소 옮김을
통해얻는 차이와
다름보다더 강하고
지속적인힘을
일으키는 원천이다.
/범사에 감사가 습관화 된 사람/
늘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감기에 걸렸는데
도 감사해야 하나요?
그야 당연하죠.
“암에 걸린 사람은
감기에 안 걸린다지요.
암세포가 어찌나 센지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잡아먹어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감기에 걸렸다는
것은 암세포가 내 몸 속에
없다는 뜻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가 습관화 된 사람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감사
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애리조나 돈을 셀 수 없이
많은 갑부들이 고향을 떠나
노후를 보내는 썬밸리라는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청정도시로서
소음도 없고, 쓰레기 없고 ,
최고의 주거환경과,지상낙원
으로서 최고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
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최고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치매 발생율
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한국의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이 도시를 방문해서
원인을 알아보았습니다.
연구결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첫째로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가 없고,
둘째로 생활고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셋째로 생활에 ‘변화’
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병을 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 도시의 문제
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아무런
문제가 없는 조용하고
똑같은 일상이 반복 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의 사람들이
다시 문제가 있고 시끄럽고
복잡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스트레스 없는
세상에서 새장 속의
새처럼 나약하게 사는
것보다는 여러 어려움들
을 겪으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이 더
건강해지는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썬 밸리보다 더 조용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은 무덤입니다.
이 세상에는 문제 투성
이입니다.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들을
말씀과 믿음으로 극복
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그날은 있다/
인생에는상징적으로 세 종류의
‘그 날’이 있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비
내리는 날이 있습니다.
실패 배신 좌절 병고
고난 절망의 비입니다.
실로 고통스러운 시기
이지만 이상한 것은
인생의 찬비,고통스러운
비를 맞을 때 비로소
연약한 나를 알고 이웃
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분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햇빛
비치는 날이 있습니다.
썰물이 있으면 곧
밀물 때가 옵니다.
동트는 새벽,영혼에
햇빛이 비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노래하며
사는 것입니다. 감사
하며 사는 것입니다.
받은 바 축복을 나누
며 사는 것입니다.
신나게 사명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그물잡아당기는 날
이 있습니다.천국은
마치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47절).
이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그물을 던진
사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 인생의 역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또 얼마 동안은 좋은
물고기와 나쁜 고기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48절).
교회 역시 알곡과 가라지
가공존하기 때문에
(마 23:24-30)
지나치게 구별하지 말고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심판
때가 있습니다. 종말이
오면 다 드러납니다.
그럴 듯하게 보일지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48-50).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현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할 일이 있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루는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될지 모릅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사랑하십시오.
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전에
장미가 피고가슴이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으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지금 당신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하나님의 것,지금 이 시간
만이 당신의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그 날이
있습니다. 단 한번뿐인 인생!
멋있게 아름답게위대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과 땅,누구에게도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하지않을까요?
이제 기도하면서,사랑하면서,
나누면서,봉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날을 생각하며 사명을
위해 불꽃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누구의 인생이든
‘그 날’이있음을
깨닫고 때를 분별하여
바르게처신하는 지혜자
가 되게 하소서.
/배움과 깨달음의 책/
인생 수업에는 행복
하라는 숙제 뿐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
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교훈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
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두 사람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살아있는 우리에게
강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강의의 제목은
(인생 수업)이다.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도
예외 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시간이 하루 24
시간인 학교에,
살아있는 한 수업은
계속 된다. 그리고
충분이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행복 등이 이 학교
의 과목들이다.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 지상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
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
를 주었으니까,
위리가 지구로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나비가 누에를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허락된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집에서
신에게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나비처럼 떠날 수 있고,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배워야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수업은 궁극적
으로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깨달음
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것이 이 수업의 완성이다.
그 ‘나’는 죽음으로써
사라져버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모습을바꿔가며
배움을 계속하는 존재인가?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
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직면한 이들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의 설교
보다도 뛰어나다.
그들은 책이니 경전
에서 얻은 경구가 아닌,
자신들의 육성으로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일깨운다.
때로 부조리하고, 하찮고,
무의미한 것 투성이
인 이 삶에서 추구할
것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즐겁지
않은데도 웃고,
본질에 가닿지 않으면
서도 화를 내고,
황홀하지 않은데도
새벽을 맞이한다.
가슴이 맞닿지 않는데도
관계를 맺고,
절망적이지만 밥을 먹는다.
죽음은 가장 큰 상실
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이들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고 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
으로 살아가지 말라’ 고,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발고 ‘삶’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숱한 등장
인물들의 말을 빌리면,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음이고 놀이이다.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
에게 달린 일이다.
세상이 보여 주는 최상
의 것을 배우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다
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우리가 이
지상에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어는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
를 주었으니까.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갈 거예요.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 거예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여인,
삶과 죽음에 관한 한
모든 이들의 교사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
며 그렇게 말했다.
악기를 배웠더라면
연주하고 노래할텐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비록 모든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할지라도,
세상은 그녀로 인해
더 나은 곳이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평생을 바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슴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시작한
의사이며, 사상가였다.
왜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를 물을가?
그것은 우리가 해아래
서 살기 때문이다.
나이는 태양을 중심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연륜이다.
우리는 지구 아래서
살고 있기에 나이가
있고 죽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살면 나이가 없다.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
에서 천 날 보다 낫다.
하루가 천 년,
천 년이 하루.
-예수 안에 있으면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요3: 14-15, 요24-29.
-나이가 필요 없다.
하나님 안에 살면
나이가 없다.
그러나시시90:12-나이를
헤아리는 지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죽음의 기원-죄-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삶의 기회를
위대한 사람과 대면할
때 우리는 위대한
것에 이끌린다.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인간은 창문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다고.
태양이 밖에 있을 때는
반짝이고 빛이 나지만,
어둠이 드리울 때 스테인드
그라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의 빛에서 나타난다.
폭풍으로부터 골짜기들
을 보호해야만 할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폭풍우로 인해 생겨난
그랜드 캐년 같은 장관
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
다운 사람들이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이들이다.
그들은 동정심과 따뜻함,
사람과 배려로 가득한,
곧 삶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우연
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러기들은 언제 태양을
향해 날아가야 하는
지 어떻게 알까?
우리 인간은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어떻게 알까?
인간의 죽음에 대해 가장
많이 이해하게 해준 한
여성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타당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이곳에서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인류에게 이보다 더
큰 공헌을 한 사람
에게도 죽음은 해당된다.
그러므로 너무 늦을
때까지 삶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
2004년 8월.78세의 나이에
에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그렇게 은하수로 춤추러
떠났다. 40년 동안 삶과
죽음을 화두로 삼은
연구자 답게 그녀의
장례식 또한 독특했다.
가족적으로 치러진 고별식은
흑인 성가대가 부르는 성가곡
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리고 장례식 때는 유대교
랍비를 비롯해,아메리카
원주민 치료사,티베트
불교 린포체 등 평소
그녀와 개인적으로
까가웠던 성직자들이
미리 받은 종이 봉투
에서도 수많은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
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번데기에서
부화해 나비가 되어
죽음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에 태어났음을,
그녀가‘나비의수수께끼’
에 빠진 것은 소녀 시절
자원 봉사자로 폴란드
마이데넥 유대인 수용소
를 방문했을 때였다.
수용소 내부 벽에는 곳곳에
손톱이나 돌조각으로 새긴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왜 나비일까?
그녀는 무척 궁금했다.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그로부터 스무 해가 흘러
스위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뉴욕과 시카고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 때였다.
스스로도 유체이탈 등
다양한 신비현상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인간의 몸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번데기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
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도 그녀처럼
‘영혼의 영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인생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평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죽음에 대한 책을
써온 나는 곡 책 한 권
을 더 쓰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과 살아가는 일에
대한 책 말이다.
삶의 끝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글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아직까지 삶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음미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한다.”
작별을 고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엔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
행복해지지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는가?
마지막으로 멀리 떠나본
적이 언제였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
이 언제였는가?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으라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상실과 이별의 수업/
/영원한 하루/
죽음을 앞둔 사람들
이 가장 후회하는 것
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
어야 했다’ 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
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 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동시에, 즐거움으로
부터 일을 떼어
놓기 위해 애써야 한다.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놀이
를 잊어버리게 된다.
놀이는 이따금씩 주어
지는 휴식의 순간
이상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시간
을 할애해야 한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상실은 무엇이 소중
한지 보여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
한 모습을 가르쳐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두려운, 분노, 죄책감
조차도 훌륭한 교사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도 성장하고 있다.
삶은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태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다.
/1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
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인간 모두의 깊은 내면
에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진정한 나’에서
멀어져 갈 때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
으로든,인간은 삶
속에서 인간은 배움
을 얻으려 하고
그 해답을 찾습니다.
두려움과 후회와 싸우고,
의미와 사랑과 용기를
추구하며, 상처와 상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이해하려
고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
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나
종교, 신, 또는
그런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장소에서
해답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이들이
돈과 지위, 완벽한
직업 등에서 의미
를 찾으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것들
에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발겨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그것들이 고통
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삶의 의미를 깊이 이해
하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따르다 보면,
삶의 의미 따위는 없으며
행복은 그전 환상에 불과
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지식이나 진리의 추구,
또는 창조적인 일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불행이나 죽음
앞에서 그것을 발견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암 판정을 받거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싸우거나 지진과 해일
같은 재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종착점에
서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문 앞에
서 있기도 합니다.
불행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경청해야
만 했습니다.
이 배움이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수십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들이 결국은 누구
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즐겁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
에 왔습니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입니다.
삶의 이 여행에서 우리가
맞붙어 싸워야 할 것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지만, 결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
의 것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는
사람은 결혼을 여러 번
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돈에 대한 배움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전혀 갖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지나치게 많이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 같습니다.
그 수업들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 관계와
관련된 단순한
진리들을 배웁니다.
오늘 우리기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해 충분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런 사랑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대부분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려움, 불안, 기대
심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지구라는 행성 위를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우리들 각자는 외롭고,
무기력하고,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대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
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지
만 진정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배움을
얻는 주체는 누구인가?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
아마도 이것이
첫 번째 진문이면서
가장 어려운 진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
없이 이 질문을 던집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경험 자체인가,
경험하는 자인가?
나는 이 육체인가,
아니면 나의 잘못들인가?
내가 앓고 있는 병
이 곧 나인가?
나는 내가 자란
과정의 결과물인가?
나는 변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변화한 후에도
여전히 나인가?
아니면 돌에 박힌
화석처럼 변화할
수 없는가?
당신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결점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당신은 아닙니다.
병에 결렸을 수도 있지만
그 병이 당신은 아닙니다.
재산이 많을 수도 있지만
타인의 은행 잔고가
당신은 아닙니다.
당신은 결토 당신의 이력서,
배경, 성적, 실수, 육체,
역할, 직함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 안에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불변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없었거나 나이
질병,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 안에는 태어날 때
부터 갖고 나온,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왔으면 죽을
때도 함께 할 진정
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당신은 변함
없이 당신인 것입니다.
병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들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실수, 잘못, 질병들
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것들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오직 ‘그 사람’
만이 보일 뿐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그렇다면 삶의 시작과 끝
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것일까?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단순한 진리가
드러나는 것일까?
그런 상황이 아니면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의 진정한 모습
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입니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삶의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법
을 배워야만 한다.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랑, 정의 내리기조차
매우 힘든 이것은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
에 있습니다.
또한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환상과 꿈, 공허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은
진실의 근원입니다.
사랑이 가진 모든 힘과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렵습니다.
평생 사랑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을 얻으면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
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갖게
된 그림들입니다.
가장 흔한 그림은 갑자기
누군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완벽하다고 느끼며
, 모든 것이 멋져 보이고,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낭만적인 이상형입니다.
그러다가 현실의 삶에서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한
상황들에 맞 닫뜨릴 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크게 상처받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 간의
사랑도 각자의 기대와
요구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기대와 요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현실의 사소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몽을 만드는 씨앗이 되고,
우리는 결국 사랑 없는 관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낭만적인
환상에서 깨어나
어릴 적에 꿈꾸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냉정한 세상
과 마주합니다.
이제 어른의 시선으로
사랑을 보면서,
분명하고
현실적이고 씁쓸하게
사랑을 바라봅니다.
다행히도 진실한 사랑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우리가 꿈꾸는 사랑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방법으로는
그것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완벽한 동반자나
가장 좋은 친구를
찾으려는 꿈속에서는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무조건적인 사랑,
곧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 없이
우리 자신에게 바쳐
지는 사랑을 원합니다
. 만일 운이 아주 좋다면
인생에서 몇 분 동안은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삶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매우
조건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해주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재미기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잘하기 때문에,
살림을 잘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구실을 찾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삶, 사랑,
모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도
그것들을 시도해서는
인되는 이유들로만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들은 언뜻 우리
를 보호해 주는 듯하지만,
사실은 우리를 가두고
삶에 거리를 두게 합니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만일 타야 할 자전거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그것을 할 때입니다.
사랑에 대한 배움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 내가 연구해 온 많은
사람들처럼 나 또한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것을 가장 큰 도전이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은 어렸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법
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은 옳지 못한 일
이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도취나 이기주의와
종종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잘 맞는 짝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대개
‘보상’에 불과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부를 잘하고,
할머니께 웃음을 보이고,
손을 자주 씻으면 ‘
사랑 받을 것’
이라고 배웠습1니다.
그것이 가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사랑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사랑이 그토록 많은
것들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때는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로
삶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좋은
일’이라고 배운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일 뿐입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늦잠을 자는 쪽이 영혼
에 더 많은 영양을
공급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영혼에 더 많은
영양을 공급할수록
우리 주위 모든 곳에
있는 사랑이 흘러들어
올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이미 저지를 행동을 후회
하거나 자신을 학대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걱정 마. 누구나
그러는데 워.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스스로를 쓸모
없고 실패한 사람
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오히려 남
에게 더 관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는 연습
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은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있는 사랑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입니다.
자기 주위에세워 놓은
장벽들을 감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장벽들은 엄연히
그곳에 있고,
우리의 모든 관계
에 개입합니다.
신 앞에 서게 되는 날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는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또 받았느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사랑하고
사랑 받을 무한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기회들은 주위 모든
곳에 널려있고,
우리는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진들이나 그저 친절한
행인들이 심지어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면서 곁을
지켜주는 것은 사랑의
강력한 행위입니다.
청소부, 어머니, 친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
를 품에 안아준 경찰관,
사랑에 대한 배움은
모든 형태로,모든 종류의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주위의 사랑에 마음을
열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모든 아름다운 경험
속에, 때로는 비극
속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불어넣는
순수한 재료입니다.
사랑은 살아있고
만질 수 있으며,
우리 안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과 신성함
에 대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손을 뻗어 그것
을 붙잡기만 하면 됩니다.
/3.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자신 안에서 세계의
영혼을 발견하고,
인간 안에서
신의 정신을 보라.
그것이 진정한 관계이다.
삶은 거울과 같다.
삶에 미소 지르라.
그러면 삶이 당신에게
미소 지을 테니까.
전 생애 동안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배우자나
연인, 친구처럼
우리가 선택해서
맺은 관계도 있고,
부모 형제처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관계도 있습니다.
그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기회를 갖습니다.
관계가 곧 배움의 기회
라는 말은 언뜻 이상
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관계들이 때로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위험에 빠뜨리며,
가슴 아픈 경험을 심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가족,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만나는 사람 모두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선생님,
가게 점원일 수
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 년에 단 한
번 만나는 의사와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짜증나는 이웃
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들은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관계이지만,
또 많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
에서부터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맺고 있는
각각의 관계들에는
‘나 자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 하나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하는 태도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관계들에서도
똑같이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불완전하고, 미숙한
사람이며, 혼자서는
사랑을 느낄 수 없고,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없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정한 대답은 그런
특별한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당신의 배가 물에
뜨지 못한다면
아무도 당신과 함께
물을 건너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을 찾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배울 준비가 된 사람
에게만 스승이 나타
난다는 것을.
당신이 관계를 맺을
시기가 되면
‘특별한 누군가’
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아마도
그 특별한 사람을 발견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모습
그대로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고
사랑스런 존재입니다.
당신에게는 이미
행복할 자격이 있으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삶이 제공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을
했든 혼자 살든,
당신은 이 세상에
소중하고 독특한 선물입니다.
외부적인 어떤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당신은 이미 완전
한 사람입니다.
그 해답은 낭만적인
사랑에 있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든 독신이든,
당신의 삶에서 더 많은
사랑을 원한다면,
당신의 삶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헤어졌다가
또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남아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지만 대로 겉으로는
관계가 이미 끝났지만
마음속으로 그것을 완성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삶에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무리란 관계의 완성과
실패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관념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관계에 실수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일어납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작별 인사까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
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
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
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4.상실과 이별의 수업/
당신이 아람다운
정원에 앉아있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
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 우주가 자신을
상실이라고 하는,
인생의 박사과정에도
등록해 놓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집과 자동차, 직장,
돈과 젊음,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까지도
우리가 잠시 빌려온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이들도 우리
곁에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각으로,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경험들의 소중함과
사물들의 가치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입니다.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필요한 시기에
우리를 보살펴 주는
사랑하는 이들,
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자각하기도 합니다.
상실과 이별은 우리의
가슴에 난 구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담아 둘
수 있는 구멍
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창조해 낸 완벽한
세계인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상실을 겪으며
이 고통스런 세상
에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언제나 먹을 것이
공급되지는 않는,
또는. 자신을 돌봐 줄
어머니가 없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어린 시절 언제나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던 우리는
갑자기 땅 위에 홀로
서야 할 순간을 맞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은
이사 등의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가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부서지거나 사라지고,
야구 시합에서 패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첫사랑과는 결국
헤어지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이별들은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우리는 선생님을 잃고,
친구들을 잃고, 어린
시절의 꿈을 잃습니다.
청춘, 꿈, 자유와 같은
무형의 것들과 결국은
사라지거나 퇴색해 갑니다
.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온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주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현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연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리고 상실을 막으려는 어떤
시도도 허사로 끝납니다.
우리는 삶을 이런 식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삶 속에 있는 것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처럼 가장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상실인
죽음을 똑바로 바라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놀라운 일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환자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질 때
까지도 다가올 순간을
숨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어야
할 상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죽어가는 이에게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습니다.
병원 관계자 또한 아무
말도 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삶의 끝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
을 모른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근시안적인가요?
게다가 이것이 그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당부합니다. “내가
죽어간다는 것을 숨기려
하지 말아요.
어떻게 그런 걸
숨길 수가 있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죽어간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을 모르겠어요?”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잃어
가는지 알고 있으며,
그 가치를 이해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 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유대 격언에도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그대가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인 그대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
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
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에서부터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실은 다양합니다.
죽음처럼 영원한 것도 있고,
출장을 갈 때 아이와
떨어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도 있습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은,
삶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상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대의 아이가 지각
장애아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대는 아마 다음과 같은
반응을 거칠 것입니다.
첫 번째 반응은 부정입니다.
“의사는 아이가 앞을
못 볼 것이라고 했지만 ,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아이는 정상적으로 될 거야”
두 번째 반응은 분노입니다.
“의사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우리에게 좀 더 빨리
알려줬어야지!
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지?
세 번째 반응은 타협입니다.
“아이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자라서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난 견딜 수 있어.”
네 번째 반응은 절망입니다.
“이건 끔찍한 일이야.
아이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
그리고 다섯 번째
반응은 수용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우린 이겨 낼 수 있어.
아이는 그래도 사랑으로
가득한 멋진 삶을 살 수 있어.”
모든 사람이 상실에 대해
매번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거치지는 않으며,
반응이 항상 순서대로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또는 한 단계를
반복적으로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여러 가지 형태로
상실을 경험하며,
그것에 반응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상실의
경험은 삶에 더 잘 대처
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대가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입니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에게,
“넌 부정의 단계에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야 해.” 하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치유의 과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실을 경험했을 때,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실은 우리
에게 공허감과 무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하루 종일 잠만 자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식욕이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눈에 뛰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
치우기도 합니다.
이런 단계들을 거치는
것이 치유의 과정입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그 모든 것을 치유
하리라는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치유의 과정
이 언제나 직선적
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프의 상승선처럼
빠르고 분명하게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온전히 빠르게 회복해
가다가도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역행하는 것 같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시 시작점
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입니다.
결국 그대는 치유될 것이며,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대가 잃어버렸다고
슬퍼한 사람이나 사물이
결코 그대에게 소유
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한 편으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소유하게 되리라
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기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입니다.
상실감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애쓰고,
때로는 그것을 미화시켜
보기도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이나 사불과의
헤어짐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마음을 성장시켜
주지만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독감과
공허를 안겨 줍니다.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또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장
없이는 상실의 경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매번
상처를 받는지도 모릅니다.
이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교사는 일찍 자식을
잃은 부모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해가
지나면 어떤 부모들은
그런 비극이 자신들을
성장시켰다고 말할 것입
니다. 물론 자식을 잃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상실이 뜻밖의 방식
으로 자신들에게 도움
이 되었음을 알아차리
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중 누구
도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
보냈고 해서, 예 그 아이
가 때어나지 않은 시절
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 우리
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한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합니다.
상실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머리카락
은 조금 빠지지만,
외모 못지않게 내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퇴직하면
수입은 없어지지만,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노년에 이르면 자식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베풀었던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소유하던 것을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자신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가볍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때로 관계가 끝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이 아닌,
홀로 있는 자신을 말합니다.
어떤 물건이나 능력을
잃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다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
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상실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사랑하는
사람, 목숨, 가정,
아니면 돈과 같이 중요한
것들을 잃는 경우
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상실이 주는
배움을 통해 어느 순간
당신은 삶에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상실에 대해
흥미 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로
부터도 다음의 공통된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 째, 그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둘 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셋 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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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
희망이 없어”라는 말은
인간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기보다는
사랑 없음이 기초
가 되어 터져
나온 말입니다.
서정호 목사
(010-5617-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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