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지파크 우니버시티 오브 매릴랜드[총 6만명의 학생]정문 앞 건물옆의 노천정거장.
앞에보이는 상용건물은 지하철 정거장이 가까워 '워킹 디스턴스(walking distance)'에 지은 새 건물이다.
열차와 지하철이 나란히 가는데 청나라어 번역관의 아들인 변수선생도 이곳에서 열차사고로 사망을 했다.
이전에 그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변수와 그의 친한 친구들은 조국을 휩쓴 정치적 혼란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 분쟁에서 극도의 개량주의자로서의 편수의 행동으로 인해 관리들은 그를 배신자이자 한국 정부의 적으로 낙인찍었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한 변수와 그의 친구들은 홍콩에서 훔친 돈을 사용하여 사랑하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편수의 가족은 운이 좋지 않았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믿어지는데 그는 많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최책감 콤프렉스가 있었을것으로 사료되는데 그가 스스로 선택한 자살설도 있단다.
그의 고손 조카 버지나어주 하원의원 해롤드 변은 신문에 나오니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한다.
그의 친구가 묘비를 세워 주었다는데 묘에는 Pyon Su 라고기재를 하여 벨트스빌(Beltsville)의 1번도로 옆 천주교 묘지에 묻혔는데 가장 높고 가장 넓은 묘지터를 소유했다.
오래전 워싱턴 회장단이 기념식수를 했고 싱글재킷을 입고찍은 사진이든 묘비도 돈을 많이들여서 세운 것을 내가 직접 가보고 오석돌에 새겨진 그의 모습과 설명을 사진으로 담아서 이 블로그 어디엔가 올려 놓았다.
내가 이동네에 살적에는 이 묘소가 지도상의 직선거리로 250m이었는데 10년간 살다가 새집을 지어서 현재의 주소로 이사를 했다.
변수(Byun Soo, 1861-1891)는 뒷줄 맨 오른쪽에 위치하는데 한인으로는
사상 최초의 미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고 변수는 최초의 사망자가 된다.
레판트 플라자 환승 지하정거장이며 교차로가 되는데 복잡함을 희석시키려고 230m옆 겔러리place 에다가 다른 교차로 정거장을 1개더 마련하였다.
전철표가 그전에는 약간 두꺼웠었는데 지금은 얇은 종이로 만들어 진 것을 보면 지갑에 들어가기가 쉽고 또한 절약 재활용을 꾀하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지하철 천정은 미국에 사는 건축설계자 106명이 천거를 한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다.
메트로는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와 워싱턴DC등 3개주를 연결 하는 로선인데 원명은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 교통 공사[Washington Metropolitan Area Transit Authority:WAMATA, ‘와마다’라고 부른다]이지만 그냥 메트로 라고 부른다.
로폭이 1.435m, 전원이 지금은 750볼트DC, 길이 171km, 86개의 정거장에 6개의 로선이 있는데 그중 40개는 워싱턴DC에 위치하고 47개의 정거장은 지하에 위치한다.
공사비용의 90%는 연방에서 부담을 하고 10%는 주정부에서 충당을 했단다.
하루에 최고로 많은 승객이 탑승을 한 것은 2009년 1월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날 112만명이 되며 평균 하루에 77만명이 승차를 한다.
그날 나와 동갑내기의 저울로 달아서 먹는 교통성 1층의 뷔페식당매상은 2만달러, 앉을 자리가 없으니 모두들 서서 먹었단다.
화장실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한줄을 섰는데 어떤 여인이 사람들 보고 양보를 해달라고 말했는데 모두 거부를 하니 치마밑으로 손을 넣어 손바닥에 피를 묻혀서 보여주니 양보를 했단다.
지하철은 1976년에 문을 열었는데 내부의 디자인은 미국에 사는 건축설계사 106명이 추천을 한 아치형으로 형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벽의 패턴을 범죄자들이 보면 은연중에 단념을 하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를 않았고 워싱턴 벨트웨이가 있기 때문에 천천히 시작을 하게 되었단다.
공사비용은 연방이 90%를 부담했고 나머지 10%는 로컬머니를 사용했단다.
버지니아주의 우드 브리지 자동차 딜러에서 일하는 뤤디 밀러라는 여자의 음성으로
"doors opening" "Back doors closing" please stand clear of the doors, thank you."
를 녹음하여 사용하다가 1996년 콘테스트에 의해서 센디 케롤이라는 여인의 음성이 녹음이 되었다.
***내가 수십년전 이 지하철회사의 정비공장에 다닌적이 있는데 자동차정비소를 하려고 사임(resign)했는데 잘 한 짓인것이 자영업은 노력을 많이하고 종업원이 나를 도우므로서 이익금이 5배로 늘어났기때문이다.***
첫댓글 저에게는 배울것이 많고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