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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차이나 붐’, 韓기업들 실적 휘청
[차이나 쇼크가 온다]
中 침체에 對中 수출 곤두박질
“한중FTA 강화 등 관계 재정립을”
석유화학업체 DL케미칼은 올해 2분기(4∼6월) 매출액이 1년 전보다 30.7%(1490억 원) 급감했다. 국내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경제마저 얼어붙으면서 수출 실적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 컸다. 중국에서 자국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 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어 수출이 다시 회복되기도 쉽지 않다.
대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롯데케미칼은 올 2분기 770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전년보다 적자 규모가 556억 원 불었다. 5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낸 롯데케미칼의 누적 적자는 약 1조 원에 이른다. 롯데케미칼은 이달 8일 실적을 발표하며 “2분기 초까지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수요 등으로 제품 마진이 개선됐지만 이후 경기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에도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 1∼7월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은 전년보다 40.4% 줄었다. 디스플레이의 감소 폭은 45.7%로 더 컸고, 화장품(―25.3%) 석유화학(―22.5%)도 20% 넘는 감소세를 보였다. 월간 전체 대중 수출액은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째 적자를 보이고 있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조차도 중국을 상대로 펼치는 경제, 외교 정책을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크(위험 축소)로 설명하고 있다”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식으로 새로운 대중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출기업 80%, 中침체에 실적 영향… “韓 내년도 1%대 저성장 우려”
〈下〉 한국 기업 충격 본격화
10곳중 8곳 “中 부진 이어질것”… 현지 공장 매각-사업 철수 잇달아
경제 원로들 “탈중국 능사 아냐… 시장변화 맞춰 품목 다변화해야”
중국 부동산발(發) 불안과 중국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지면서 국내 대중(對中) 수출기업 10곳 중 3곳은 이미 매출 등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경제 원로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만큼 외교적으로 중국 정부와의 소통 채널을 넓히고 수출 다변화를 통해 교역 관계를 새로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수출기업 80% “이미 실적에 영향 또는 향후 우려”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중국 경제 동향과 우리 기업의 영향’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중 수출기업의 32.4%는 “최근의 중국 경기 상황이 이미 매출 등 실적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상의가 이달 8∼23일 전국의 대중 수출기업 302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응답 기업의 50.3%는 중국 경기 불안이 장기화하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까지 중국 시장에서의 경영 실적에 대해선 절반이 넘는 기업이 올해 초 세웠던 목표보다 저조(37.7%)하거나 매우 저조(14.7%)하다고 답했다. 앞으로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해선 79.0%가 “부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원인으로는 ‘산업생산 부진’(54.5%)과 ‘소비 둔화 추세’(43.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아예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현대제철은 1분기(1∼3월) ‘현대스틸 베이징 프로세스’와 ‘현대스틸 충칭’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2003년 설립한 베이징 법인은 2017년 적자로 돌아섰고 충칭 공장은 설립 이듬해인 2016년부터 줄곧 적자에 시달렸다. 현대자동차가 제5공장인 충칭 공장을 매각하기로 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HL만도 역시 브레이크나 서스펜션 등을 만들던 충칭 법인을 청산했다.
● “중국이 필요한 제품 공급해야”
수출 부진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8개 글로벌 IB가 전망한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9%다. 글로벌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던 수출이 힘을 받지 못해 내년 경제성장률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원로들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 관계가 예전만큼 긴밀하진 않더라도 지나친 탈(脫)중국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이념적으로는 중국과 가치를 공유할 수 없더라도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중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실리를 챙기는 경제 동맹 관계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구조와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한국의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국도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며 대일 무역 구조를 바꿨듯이 중국 역시 필요한 수입품이 달라지고 있다”며 “탈중국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중국 산업이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실리적으로 바람직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나치게 높아진 대중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은 “(미국 같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틀 속에서 굴러가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중국 편중도를 완화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일부 손해를 볼 수 있겠지만 인도와 동남아 등으로 눈을 돌리는 방법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김도형 기자,, 변종국 기자
원화-위안화 ‘동조현상’ 뚜렷… 약세 지속 땐 환율상승 부담 커져
[차이나 쇼크가 온다]
위안-달러 환율 오르면 원-달러도↑
환율 상승, 주가 하락 부추길 가능성
中 증시 하락에 국내 투자자들 한숨
중국 부동산발 경제위기는 실물 경제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위안화 약세가 원화 약세를 부추겨 외국인 투자가 이탈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29일 원-달러 환율은 3.7% 상승했다. 중국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미국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21일 환율(달러당 1342.6원)은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달 초와 비교하면 5.3% 치솟은 것이다.
환율 상승은 주가를 떨어뜨리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가뜩이나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2.0%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이라 외국인 투자가 이탈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최근 위안화와 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원화와 위안화의 상관계수가 0.96(1.0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높음)까지 상승해 동조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위안-달러 환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원-달러 환율도 0.44%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증시 하락에 따른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9일 기준으로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는 총 37개로 투자액은 4조3637억 원이다. 이 중 29개(78%) ETF의 주가가 이달 들어 상장 이후 최저가로 떨어졌다. 일부 ETF는 현재 주가가 상장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홍콩H지수와 연동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돈을 넣은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도 커졌다. 홍콩H지수는 2021년 2월 12,000 선을 돌파했지만 최근 6,000 선으로 내려앉았다.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해 2021년 무렵 출시된 ELS 상품 대부분이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 최근 한 시중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관련 ELS 상품은 원금 대비 40% 이상 손실이 발생했다. 앞으로 6개월 내 만기가 돌아오는 홍콩H지수 ELS 규모는 약 4조 원이다. 홍콩H지수의 반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원금 손실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중국 상장사들의 올 2분기(4∼6월) 실적 발표와 맞물려 중국 증시 하락세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침체의 직격탄을 맞는 부동산, 금융업종 기업들이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내놓으면 투자 심리가 악화돼 주가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훈 기자
유커 돌아왔지만… 씀씀이 줄어 ‘경제효과’ 미지수
[차이나 쇼크가 온다]
中, 6년여 만에 韓단체관광 허용
자국 경제위기에 소비력은 급감
중국 정부가 6년 5개월 만에 한국행 단체관광 금지를 해제했지만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 유입에 따른 경제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부동산발 경제위기로 중국인들의 씀씀이가 크게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한국에 앞서 중국인 단체관광이 재개된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올 5월 방문한 유커 수는 4년 전에 비해 60% 이상 급감했다. 한국은행도 2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달 중국 해외 관광객 수가 2019년 대비 일본 44.3%, 태국 37.3%, 인도네시아 37.1%에 각각 그쳤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중국 경기 침체로 유커들의 소비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홍콩여행발전국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중 ‘쇼핑을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2019년 27%에서 올 5월 19%로 줄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CNBC는 “3년간의 혹독한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중국인 해외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지만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 경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집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코로나 이전인 2017년 3월부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로 한국행 단체관광을 금지했으나 이달 10일부터 이를 해제했다. 국내 관광·유통·식품업계에서 유커 귀환을 계기로 그동안의 매출 타격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중국 경제위기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유커 수가 점차 늘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저축을 늘리고 소비는 줄이는 성향이 뚜렷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