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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의 표정은 거의 무너지는 듯했다. 마지막 부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했겠지만. 하긴 대체 누가, 해내야 할 복잡한 인생이 그토록 많은 마당에 평생 순진하게 살기를 선택하겠는가? 특히 비즈처럼 훈련 중인 초인이라면 말이다. 밸은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순간에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밸이 끝없이 끌어모아야 했던 에너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과거가 무너져 내렸기에, 현재가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했다. 나는 밸에게 몸을 기대고 웅크리며 그녀가 나를 안도록 했다. 최대한 세게 나를 꽉 안으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날 뭉개 버려도 좋아. 밸의 힘은 놀라웠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단순히 에너지 고갈의 연료라는 걸 깨달은 게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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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쉬운 답은 내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없는데 과연 누가 완전히 괜찮을 수 있을까? 내 말은, 평생 아무렇지 않게, 꾸준히 자신감 있게, 불가피한 신경쇠약을 겪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없다는 게 공백의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그 동굴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넓은 공간에 펜 라이트를 비추면, 익숙하고 끔찍한 윤곽선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실 그 동굴은 훨씬 더 춥고 거대한 의문의 극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로비일 뿐이다. 그래서 펜 라이트를 서둘러 꺼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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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틸러. 어떻게 그러겠느냐? 결국 우린 모두 평범한걸. 신체적 존재로서 말이지. 그래 나의 소중한 콘스턴스조차 말이야! 우리는 우리의 차이점과 예외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노력하고 밀어붙이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자신을 설득해.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우리 세포의 복제 속도가 느려진단다. 아니면 내 질병이 그렇듯이 그 복제가 멈추지 않게 되지. 너는 젊고 쉽게 세포를 재생할 수 있는 긴 시간을 앞두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은 진정한 기적이야. 심지어 마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 분수 수준에서 필요한 무수히 많은 작용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건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코드야. 죽음과 삶의 춤. 이 춤이 우리의 구성 성분 안에 있어. 언제나 말이야. 문제는 그 코드가 잘못됐을 때 다시 설정할 수 있느냐는 거다. 만일 다시 설정한다면,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서구에서는 연금술사들이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 같은 일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금이라니! 끝에 가서 금이 무슨 소용이라고. 하지만 연금술에 관한 초기 도교의 문헌을 읽어 보면, 사람들이 영생을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걸 알 수 있어. 통일 중국의 첫황제 진시황도 그런 사람이었다. 퐁은 도교 연금술은 물론 진시황에 대한 수많은 문헌과, 그와 관계된 다른 철학적인 저작들을 보내 줬어. 진시황은 의원들에게 특별한 약초와 광물로 만든 약을 준비하게 했지. 그중에는 비상과 수은도 포함돼 있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불멸의 꽃을 채취하라고 전설 속 섬의 산으로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