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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결혼한지 8년만에야 큰누나를 낳았는데 늦게야 애기를
갖었기에 얼마나 좋은지 몰랐답니다
그해 애기낳기 (음7.18일) 한달전쯤 퍽더울때인데 외할머니와함께
춘수리 임실아저씨 생일이라고 기별이와서 (초대) 갔드랍니다
음식 솜씨좋기로 소문이난 임실아짐은 찰시루떡 식혜 호박전 파전이랑
잘장만 했기에 외할머니랑 미역국을 떠먹으면서 맛있게 먹고있는데
조금늦게 오시던 외할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오시면서 닷자곳자
(무조건) 외할머니에게
" 너이잡것 그러지 말라고 맷번이아 일럿는데 왜또 종대애미에게
첩년이라고 여그 저그 사방에 흉을보고 댕기냐 이썩을년아 "
하면서 외할머니의 머리채를잡고 귀싸대기를 때릴려고해서
우리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면서 얼른 일어서는 바람에 걸게잘차린
잔치상이 뒤집어져 버렸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울면서 큰소리로
" 왜금산댁 말만듣고 에먼사람 (죄없는사람) 뚜들어 "
하면서 악을쓰면서 외할아버지의 손을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대다가
하도 화가나고 미워서 엉겁결에 오른쪽 팔뚝을 꽉물어 버렸드랍니다
외할머니도 화가나니
" 야이 썩을잡놈아 나랑너그 집구석에가자 가서 금산년허고 물마금을
(옳고 그름을가림) 대보자 내가 누구한티 첩년이라고 힛다디야
이백정놈 같은놈아 저거렁뱅이 같은놈네것들은 평생을 우리어머니
우리아부지 덕으로 안굶어죽고 산것들 아니냐 이잡어나 먹을놈아
조강지처 배리고 (버리고) 작은각시 얻어사는놈이 인자는 다늙어감서
머리끄댕이잡고 뚜둘어 이썩은놈아 징그랍다 징그라 지딸 여울때 (결혼때)
콧배기도 안비춘 백정놈만도 못헌놈이 군수 저런것이 먼군수여 내가
누구한테 금산년 흉을봤다디야 이썩은놈아 "
하면서 악을쓰는 바람에 여나믄명 (10여명) 모인잔치가 싸움구경이
되어버렸 드랍니다
우리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하지도안한 억울한 누명을쓰고 머리채가 잡히고
귀싸대기까지 맞을뻔한게 너무나 분이나서 외할머니 안보이는 곳에서
여러차례 눈물바람을 했드랍니다
만일어제 내가 없었드라면 늙은 우리어머니는 어쨋을까를 생각하니 분하고
억지소리를 밥먹듯이 해대는 금산 외할머니가 참으로 죽여버리고 싶도록
미웁드랍니다
수시로 공연한 트집을 잡아서 억지소리를 해대는것 때문에 속이 상해서
금산 할머니와는 해마다 몇번씩 악을쓰고 욕을하면서 싸우기도 하고있지만
어제일은 외할머니가 머리채까지 잡힌게 너무나도 화가나서 아침밥을 할려다가
밥도안하고 아버지한테만 춘수리에 간다고 이야기 하고는 외갓집에
싸우러 갔드랍니다
부억때기랑 (식모) 아침을 준비하던 금산 외할머니가 눈을 부라리면서
" 아침부터 누구를 물어 뜯으로왔냐 사람을 물어뜯는년 저년이빨을
뺀지갖고 다뽑아 버릴란다 헛청에가서 뺀지갖고 와라이 "
하니까
" 얼렁 이빨을 뽑아보소이 주둥이만 벌리면 거짓말로 멀정한사람 모략만하는
금산네 그놈의 주둥이도 바늘로 꼬메 (꿰메) 벌랑게 "
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동내사람들이 다들으라고 작정을하고 아주 큰소리로
악을 쓰면서 싸웠드랍니다
" 누가 금산네를 첩이라고 했단가 그게 누구여 누구냐고 그말을 지어낸것이
금산댁 자네제 누가 그런말을 금산네한티 해준단가 옛기 비러먹을 썩을인간
그러고 그말을 고지들은 (바른말로) 우리 아부지도 금산네랑 계묻으면 좋것네이
금산네가하는 거짓말만듣고 낼모래가 환갑인 우리어머니 머리끄댕이를잡고
뚜들려고혀 군수나 면장은 거짓말하는 여편네 말만듣고 애멘사람을 (죄없는)
무조건 뚜드는것 이데여 "
등등 아주 큰소리로 악을쓰면서 퍼붓으며 따졌드랍니다
안방에서 다듣고있던 외할아버지가 한참만에 문을열고 나오면서
" 어서 가그라 인자 고만하고 어서가 몸도 무거운것이 뱃속것한티도 해로운게
어서 가그라 "
하시 드랍니다
그렇게라도 싸우고 퍼붓고오니 속이좀 개운하고 화가좀 풀리드랍니다
집에오니 외할머니께서 아침밥도 다해놓으시고
" 쌈히서 본전은 찾었냐 어저끄는 (어제는) 새끼덕에 그개잡녀르 잡것한티
귀싸댕이도 안맞고 다행였어야 그렁게 새끼는 꼭있어야 허것드라이 "
하시드랍니다
음력 1927.7.18. 초저녁에 우리집에는 경사가 났드랍니다
결혼한지 8년만에 우리 어머니가 큰누나를 낳으셨답니다
우리 아버지도 좋아서 어쩔줄을몰라 하였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참으로좋아 하시면서 산후조리를 아주잘해 주셨답니다
애기가 젖먹고 잘때나 젖달라고 울때나 우리집은 애기덕에 날마다
웃는소리가 끄치질 안했답니다
외할머니는물론 우리 아버지도 애기만보면 좋아서 한나절씩
쳐다보시면서 좋아 했드랍니다
애기가 솔차니 자라서 업드리던 무렵인데
술을거의 못먹던 우리 아버지가 소주를 먹었다고 하면서 얼굴이
빨간해져서 오는날이 몇번인가 있었 드랍니다
평소에는 애기를보면 좋아하면서 얼리고 웃으면서 좋아했는데
술을먹고 온날은 술에 보대껴서 애기도 안쳐다보고 버선도안벗고
옷도안벗은체 잠을자버리 드랍니다
우리 아버지 형제간 4형제중 큰아버지는 보통으로 잡수지만 작은아버지
두분은 말술을 먹을정도로 술을 잘먹었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막걸리 반잔이 정량이고 그것을 먹고도 얼굴이 아주
빨간해지고 머리가 아파서 잠을자야 했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을하고 와서도 손을씻고는 애기손을잡고 흔들어보고
얼굴도 만져보면서 혼자서 웃으면서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드랍니다
그런데 소주를 먹고온날은 저녁밥도 안먹고 잠을 자버리 드랍니다
그이유는 소주와함께 고기를 좋아해서 닭고기와 닭죽을 많이얻어먹고
왔기때문 이었답니다
닭을잡아서 못먹는 소주를 대접한 사람은 터안사는 작은 외할아버지
이홍기님 이었답니다
작은 외할아버님은 춘수리 터안에 사시면서 부자인 형님덕으로 근근히
가난하게 살면서도 우리 어머니와 동갑인 큰아들 종규외삼촌은 5년제인
정읍 농중학교를 보냈답니다
그학교는 지금의 정읍농고 였답니다
(종규 외삼촌은 중2때 3살 더먹은 검은바우 부잣집딸과 결혼했고 17명의
졸업생 동창중에는 도지사1명 군수2명이 배출되었다고 했습니다)
투전도 (노름) 잘하고 사기성이 농후했던 이홍기 작은 외할아버지는 어리숙하고
말랑말랑한 우리 아버지를 꼬이는라고 너댓번정도 닭을잡아서 대접하면서 살살
구슬리며 꼬셨드랍니다
고기를 좋아하시는 우리아버지는 맛있는 닭고기에 푹빠져서 처작은 아버지가
오라고만하면 언제든지 터안으로 달려갔드랍니다
갈때마다 오서방 오서방 하면서 닭을잡아주니 처작은 아버지가 한없이
좋기만 했드랍니다
남자는술도 잘먹어야 큰일도하고 부자가 된다고 하며서 닭고기와함께 수시로
술을 못먹는 우리 아버지에게 거의강제로 소주도 (증류효주) 먹였답니다
그러다가 우리 아버지를 면사무소에 데리고가서 인감을 내주었답니다
그때 작은 외할아버지와 정읍에가서만든 인감도장은 쌀한말값인 4각우유빛
상아도장인데 아주멋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도장이 제일로 비싸고 멋있는도장 이었답니다
그상아 도장도 작은 외할아버지가 자기돈으로 파주었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도장으로 인감을내갖고 일본사람한테 돈을빌릴려고 하는것은
꿈에도 몰랐드랍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때도 성적표나 보호자 도장을 찍을때는 그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도장으로 춘수리앞논 7마지기 부안촌앞 4마지기를 담보로 정읍에서
돈장사를하는 일본사람한테 쌀80가마니 값을 빌렸답니다
작은 외할아버지 이홍기님은 그돈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광목 10구루마를
(달구지) 줄포항으로 들여왔답니다
어느날 작은 외할아버지가 광목이 오사카에서 왔으니 함께줄포에 가보자고해서
줄포에 갔더니 광목이 창고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드랍니다
그날은 줄포마부를 불러서 말구루마에 광목 한구루마를싣고 정읍 시장안에
와서파니 돈이 밀가루 자루에 거의반자루가 되드랍니다
" 오서방 내말이맞제 인자 우리는 노낫네이 노가낫어 광목이야기는 아무한티도
허면 안되네이 도둑놈이 끌면큰일나 솜니 군산 전주에다가 맥일것인게 (팔것)
입을 봉허소이 "
하면서 밀가루 포대에서 돈을 한뭉치를 꺼내더니 우선 가용으로 쓰라고
주드랍니다
인감도장을 찍어주고 받아온 돈이라고 말할수도없고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말도 안하는게 좋을것 같아서 그돈을 시렁의 석작속에 (대나무 그릇)
감추어 두었드랍니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솜니도 데리고가고 군산이랑 전주도 데리고 간다더니
사흘이 지나고 닷세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터안 작은 외할아버지 집에가니
작은 외할머니께서는 댓세전에 군산간다고 하면서 오서방이 오면은
당신이와서 부를것인게 일이나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하드랍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거의 되어가도 작은 외할아버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드랍니다
답답하고 애가타서 날마다 터안에가서 작은 외할머니 한테만 아무런 소식이
없냐고 갈때마다 똑같이 물어봤으나
" 왜 안오는지 나도 모르것소이 오서방이 왜그양반을 지두르고 있는지 모르것소이 "
하시기에 근한달만에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나니
" 이게 먼사단이대여 논잽히고 일본에서 광목을 열구루마나 들여왔다고라우 큰일났네
큰일이 나버렸그만 "
그날은 점심도굶고 냇가뚝길로 마랫들앞 원두리 난생이를 거쳐서 줄포에가서
물어보니 광목은 들어온지 3일만에 솜니 (익산시) 장사꾼이 아도를쳐서 (전부다란뜻)
정읍으로해서 기차로 솜니로 다가져갔다고 하드랍니다
맥이풀리고 허기가져서 걸음을 못걷겠으나 돈도 하나도 안갖고갔기에 우물에서
짭잘한 물만 한바가지 마시고 하도 배가고파서 연동리를 거쳐서 한약방을하는
메다리 6촌형님집에 갔드랍니다
조카들이 아버지는 정읍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구상리에 가셨다고 하드랍니다
염치불고하고 10살짜리 조카한테 광에가서 쌀한중발 (한공기) 떠갖고 오라고해서
밥을해서 배부르게 먹고왔다고 했습니다
가을걷이가 거의끝나고 나락을 (벼) 훝어야 하는데 우리아버지는 춘수리 터안에만
신경쓰고 있던차에 하루는 흥덕을 거쳐서 알미장터까지 갔다가 쫄쫄굶고 집에오니
큰사단이 일어나 버렸드랍니다
우리집 마당에 쌓아놓은 크고둥근 나락배눌과 부안촌앞 논뚝에 10다발씩 쌓아놓은
나락에묻에 정읍세무서에서 집달리가와서 빨간차압을 붙여놔 버렸답니다
일본놈 전주는 본전도 이자도 안들어오고 돈을 차용해간 사람이 코빼기도 안보이니
법대로 집행해 버린것입니다
근한달 전부터 우리 아버지가 넋이나간 사람처럼 이상해서 어머니가 먼일이냐고
여러번 물어봤으나 대답을 안하기에 궁금했었는데 이런 엄청난일이 벌어진것입니다
점심과 저녁을 굶은체 우리 아버지는 외할머니와 어머니한테 밤이깊도록 이야기를
전부 했드랍니다
그날밤 우리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 뒷산 유가들 낭갓 (산) 에가서 목메달아 죽어버리든지 만수동댁네 (할머니네집)
집으로 가버려 "
라고 했드랍니다
외할머니께서는
" 10년도넘게 가실이면은 (가을이면) 새끼들하고 먹고살라고 쌀도 서말씩 퍼주고
콩이랑 팥이랑 고구마도 퍼주었는데 이홍기 이잡어 먹을놈이 내가심에다가 대못을
박었네이 이것을 어째야 쓰까이 "
하셨답니다
그래도 친정 아버지라고 아침밥도 안먹고 춘수리에가서 자초지종을 다이야기하니
" 늬 작은애비가 광목판돈을갖고 어쨋다냐 또 노름했다냐 지금 어디가 있다드냐 "
금산 외할머니는 입을꾹다물고 턱을쳐들고 있는것이 잘되었다하는 표정이기에
더속이 상했답니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답답하고 환장을 하겠드랍니다
젖이퉁퉁 불어서야 애기 생각이나고 애기가 울것같아서 뛰다싶이 집으로 왔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 애기앰씨가 (애기엄마) 애기를 놔두고 먼지랄을 하고댕기냐 "
하시면서
" 요놈의 일때문에 서울가서 흥덕아재 ( 이석재님 고위공무원) 한테가서 상의하고
올랑게 오서방 볶아만 먹지말고 밥이나 잘맥여라이 지속은 (자기속은) 오직허것냐 "
하시면서 서울에 가셨답니다
어제 두끼나굶은 우리 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아침밥을 해주시니 얼마나
배가고팟던지 한그릇을 먹고도 근한그릇을 더먹었다고 했습니다
이석재님은 외할아버지와 먼친척인데 어릴때부터 부자인 외할머니네덕을
아주많이 보았기에 지금은 아주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답니다
그덕에 석재할아버지의 초대로 여러번 서울에가서 박람회도 구경하고
창경원에가서 호랑이도보고 여시랑 (여우) 사슴등 여러짐승들도
보았드랍니다
지금 우리집 두영이네집 이모네 집에있는 100년도 훨씬넘은 외할머님
흑백사진도 그때 석재 할아버지덕에 서울에서 찍어온 사진 입니다
내가 원본사진을 사진관에 갖고가서 인화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서울에 한번씩 갔다오면 강고리할머니 우리 큰어머니등등
새내 이모까지도 서울 남대문 임금님이 살았다던 경복궁 창경원등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었드랍니다
서울에서 두밤을자고온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데리고 정읍경찰서에 갔답니다
경찰서에가서 시동생 이홍기가 조카사위를 홀겨서 (사기쳐서) 일본전주한테
돈을 차용해서 그돈으로 일본에서 줄포로 광목을 10구루마 들여와서 혼자서
솜니사람한테 팔아먹고 어디로 숨어버렸다고 고소를 했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처작은아버지 이홍기님을 찾는다고 줄포 곰소 흥덕 알미장터 법성포
순창 복흥 쌍치 정읍 태인 칠보 영원면 도마다리 등등 이곳저곳에 다니느라고
고무신이 두컬레나절단 낫드랍니다
그때는 고무신이 잘도 닳아지고 찟어지기도 잘했다고 했습니다
광목 한구루마를 정읍에서판날 작은 외할아버지가 준돈은 쌀두가마니 값이었는데
쌀다섯말값은 우리 아버지가 작은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면서 없어졌답니다
우리 외할머니가 고소를한후 한달이 조금못되었는데 소성지서에서 순사가 일부러
우리집에 찾아왔드랍니다
이홍기를 부안 백산면에서 잡아왔는데 백산면에다가 논을 근100마지기 정도를
사놨다고 하더랍니다
외할머니는 하도 고마워서 순사를 못가게하고 우리 아버지에게 닭도 잡으라고해서
잘장만해서 저녁밥을 잘대접 했으며 안받는다고 사양하는걸 사정해서 여비도 솔차니
드렸답니다
소성지서 순사는 조사가 닷세걸리니 닷세지나서 경찰서에 가라고 하드랍니다
그래서 닷세를 기다렸다가 외할머니와 우리아버지와 큰누나를업은 우리 어머니가
정읍경찰서에 갔더니 작은 외할머니와 큰아들 종규 외삼촌이 경찰서에 와있드랍니다
작은 외할머니가
" 성님 얼렁돈을 맹글아서 다갑을것잉게 형무소만 안가게 히주시요잉 얼렁취하를
히주시면 논을팔아서 돈을 금방갚어 버릴께요잉 "
하면서 사정 사정하드 랍니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좋아하던 종규조카의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하다가 검다희다는
말도없이 한숨만 몇번을 쉬고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이홍기 작은 외할아버지는 정읍경찰서에 두대밖에없는 자전거를타고간
긴칼을찬 일본 순사한테 잡혀서 포승줄로 묶인체로 코가빠져서
순사가 타고간 자전거를끌고 순사의 감시를 받으면서 정읍 경찰서까지
한나절을 걸어서 왔드랍니다
형님이 소성면장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거들먹 거리고 살다가
포승줄에 묶여버렸으니 체면이 구겨지고 말이 아니었을것 같았습니다
여러정황 으로봐서 서울에계신 이석재 할아버지의 조언과 도움이
컸던것 같았습니다
외할머니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젖먹이 큰누나까지 넷이서 면회를 했는데
포승줄에 묶여있는 작은 외할아버지는 그래도 입은살아서
" 성수 내가그돈을 왜안갚것소 갚을라고 돈을 만들어노면 좋은논이 나오고
또나오고해서 그놈을 사느라고 못갚었는디 금방 낼이라도 갚을것 잉게라우
취하좀 히주시요잉 아이고 나죽것네 내가잘못 했시라우 성수 얼렁 취하좀
해주시요잉 아이고 내가 잘못했서라우 형무소만 안가게 히주시요잉 "
하면서 울듯이 사정만 하드랍니다
그렇게 사정을 하시자 외할머니 께서는
" 어디다 둘러먹을디가 없어서 서방뺏기고 혼자사는 성수를 둘러퍼먹어
이잡것아 오서방이 그렇게 애가타고 똥이타면서 찾아댕겨도 지까짓놈이 나를
어떻게 찾어힛지 잘퍼먹고 놀놀하게 잘지냈제 돈갖고가서 빚갚고 오기전에는
절대로 안되야잉 씨잘띠없는 잔소리말고 얼렁 해결하면 취하를 할것인게
그리알어잉 "
하니 성수 나죽것네 나죽것어만 하드랍니다
" 논한때갱이없이 다섯이나되는 새끼들허고 굶지말라고 가실이면 쌀도서말씩
보테주고 콩이야 폿이야 (팥) 고구마도 퍼주고
없는 살림에도 종규가 중학교 갈때도 쌀닷말을주고 장개갈때도 쌀을닷말이나
퍼주었는디 인자는 나를이렇게 골뱅드려놔 오서방을 둘러다가 (꼬셔 사기쳐서)
그돈갖다가 백산다가 논을100 마지기를 사놨다고이 애끼 (옛기) 빌어먹을잡것
빚을개리고 오기전에는 천하가 없어도 안되야잉 알었제 "
하셨답니다
" 아이고 성수 종규 애미가 금방갚고 해결할것잉게 얼렁취하만좀 해주시요잉
아이고 나죽것네 재판받고 형무소로 넘어가버리면 맺년을 살어야 헌다는디
이놈의일을 어쪄야 헌당가 아이고 나죽것네이 성수 성수 나좀살려 주시요잉 "
경찰서에서 순사가 우리아버지를 조사하는데 처음에는 한쪽구석 걸상에 (의자)
외할머니와 우리 어머니를 앉아있으라고 하더니 우리아버지가 순사가 묻는말에
오갈들어서 (겁을먹어서) 더듬거리니 외할머니가 조리있게 대답을 잘해주니
외할머니를 우리 아버지 옆자리에 앉히드랍니다
아침밥을 먹은둥만둥 일찍먹고 시오리길을 걸어가서 경찰서에 갔다가
저녁밥을 먹을때까지 피해자 조사를 받았답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 작은 외할머니와 종규외삼촌이 빵떡과 엿이 들어있는
종이봉지 를들고 서있드랍니다
작은 외할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빵떡을 한개드리니 손으로 내리쳐버리니 빵떡이
땅에떨어져 버렸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작은 외할머니가주는 빵떡과 엿봉지를들고 난감해 하다가
빵떡을 크게한입 물어서 먹으니 우리 어머니는
" 맺사람이 죽냐사냐 하는디 빵떡이 주둥이로 들어가는가 "
하였드랍니다
나중에 자세히보니 점심도굶은 우리 아버지는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빵떡을 먹는걸 보고는 짠하고 안쓰러워서 어머니도 함께
훌쩍이면서 우니 외할머니께서는
" 먼초상낫간디 둘다울어 싼다냐 오서방은 얼른 쇠고기나한근 사갖고와
잘먹어야 산게 애기앰씨가 잘먹어야 젖도많이 나오제 연전으로 찬챙이
(천천히) 갈것잉게 싸게갔다와이 "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작은 외할머니가 계속따라 오면서
" 성님 이것을 성님이 용서안해주고 취하를 안해주면 형무소에가서 맺년을
산다는디 어쪄야 쓰것는가요이 "
" 춘수리 임실네 이서방 대서물네 최서방이랑 터안 유생원이랑 모두들
자내냄편 이홍기가 아주 나뿐놈 죽일놈 이라고허데 취하바래고 자네가보낸
사람들 아닌가 이제다 알았은게 돈갚고 차압 들어온것을 풀어야 안헝가
그래야 나락도훝고 방애도 (정미) 찧을것 아닌가 "
" 예 그려라우 얼릉얼릉 해결지을랑게 우선취하 부터해주어야 종규애비가
나와서 논을팔아야 허지라우 "
하니까 외할머니 께서는
" 시방 (지금) 먼소리를 헌당가 나보고 자네서방 이홍기를 지금 빼노라고
그러면 금방 논을팔아서 갚는다고
자네는 초저녁에나서 새복에 (새벽) 컷는가
그런 시잘띠없는 소리는 듣기싫응게 그만히여이
옛말에 사람은 똥을 싸러갈때허고 똥을 싸고나서허고 다르다고 했네이
그말이 이홍기 헌티는 딱맞는 말이여이
여러소리말고 얼릉논이나 내놓고 팔아서 빚부터 개리고 (갚고) 오소이
인자 자네도 입아풀것인게 그만혀이 "
알었제 하시드랍니다
작은 외할머니를 쥐엇다 놧다 하면서 나무래서 띠어 놓고나니 쇠고기를
사갖고오는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작은 외할머니에게 퍼붓는 소리가
들리드랍니다
" 내가 웬수 안맹글라고 참고 참고 힛는디 으런이 (어른) 되어가지고 다알고
있음서도 나는 모른다 왜소식이 없는가 궁금하다고 안힛소 간장항아리
꼬추장단지가 발이달려서 백산면까지 저혼자 갔다요 내가 영원면
도마다리까지 갔을때를 생각하면 참말로 괫심허고 참환장 허것어라우 "
(도마다리와 백산면은 오리도 (2km) 안되었음)
" 오서방 싸게와 (얼른와) 그소리 허다가는 날생게 (날샌게)
얼렁가서 저녁밥 먹어야헝게
나지밥도 (점심) 굶고배덜 고프것네
자네 입으로는 그사람을 못히봐
그사람은 똑똑헌 이홍기한테 30년동안 아조 많이배운 사람이여이 "
하셨답니다
연전 기차가다니는 철다리 옆에서부터 집에올때까지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한테 나무래는말을 한마디도 안하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들들 볶아대면서 집에까지 왔드랍니다
" 어머니와 초순이허고 우리셋이만 살것인게 낭갓티 (산) 가서 목메달아
죽어벌던지 큰집으로 기어가 버리든지혀
인감도장은 당장 외양간 소죽끓일때 부석작으다 (부억) 너어버려이
닭고기쪼게 얻어퍼먹고 이난리를 맹글었단가
우리집닭을 한달에 두마리를 잡어먹든지 서너마리를 잡어먹어도 누가
말안혀 먹도못허는 소주나 얻어퍼먹고 얼굴은 삘건히갖고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혀 "
등등 잔소리를 아주 많이했어도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를 못했드랍니다
" 아이고 멋이 (무엇이) 이쁘다고 오서방 오서방 하고 닭을잡아 주었것어
이렇게 둘러퍼 (사기쳐) 먹을려고 달래는것을 (꼬시는것) 모르고 자빠졌을까이
인자 이노릇을 어째야헌당가 "
듣다못한 외할머니께서
" 몸땡이 병낭게 (병나니) 인자 그만히 (그만해) 두거라이 "
하시드랍니다
우리 아버지깨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말대꾸 한번도 못하드랍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백산 작은 외할머니는 논을내놨으나 살사람이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기만하고 빚을갚고 해결할 생각을 안하드랍니다
외할머니는 그것들과는 더이상 이야기할것이 없다며 곶감과 마른명태를
선물로 갖고가 빚을준 일본사람을 찾아 갔드랍니다
서는이렇고 후는이런데 우선 눈속에있는 나락을 집으로 들여서 훝어야지 들에서
들쥐들이 다먹어 버린다고 하면서 사정을하니 우선이자로 쌀6가마니값을 갖고오면
차압을 풀어준다고 하드랍니다
춘수리 외할아버지는 그정도는 충분히 빌려줄 능력이 있지만 잘못하면 금산댁과
큰싸움이날 우려도있고 올봄 모심기전에 춘수리앞 우리논 반마지기를 (100평)
흙으로 메워서 정자를 짓는다는 문제로 외할아버지와 금산할머니와 대판싸운것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볼품없는 사위를 보디가드로 데리고가서 이틀만에 흥덕에서 5가마니
알미장터에서 한가마니등 부자로 잘살았던덕에 쌀6가마니값의 보관증을 만들어
갖고 왔답니다
그이튿날 새벽밥을먹고 외할머니와 우리 아버지는 정읍법원옆 일본사람
집에가서 쌀6가마니값 보관증을주고 차압을 풀었답니다
일본사람은 춘수리앞논은 좋은논 이라고 소문이 났으니 살사람이 많을것인게
설쇠고 봄에는 좋은값으로 경매로 팔아버릴 예정이니 그안에 얼른 해결하라고
하면서 겁을 주드랍니다
그날 오후부터 놉도둘을 (싹군) 얻어서 저녁 늦게까지 동내앞 너마지기의 나락을
집으로 들여왔는데 논에서 들여온 나락은 1/3은 들쥐들이 먹어버렸 드랍니다
가을걷이가 끝난들판에 볏다발이 쌓여있으니 쥐들에게는 아주좋은 식량창고
였을것 같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말은 부안촌은 물론 춘수리와 등거물 쥐들까지 다몰려와서 퍼먹은것
같다고하였습니다
설을쇠고 한참있다가 작은 외할머니가 이받이를 (떡 전 과일등) 해가지고 왔는데
내일 모래곧 전주형무소로 넘어간다고 하면서 어쩌면 좋으냐고 대성통곡을
하드랍니다
논을 내놨어도 살사람이없고 부자인 고부 은생원은 반절값으로 먹어버릴
려고만하니 팔수도없고 이노릇을 어째야 하냐고 하드랍니다
면회를가면 얼른논을 반값으로라도 팔아버리라고 하면서 죽것다고 하면서 얼른
빼내도라고 눈물바람을하며 괴로워 하면서 울드랍니다
외할머니는 담배대통으로 담배만 거푸잡수시면서 한숨을 여러번 쉬고는
" 이받이는 먹은것이나 다름없응게 이것을 가지고 춘수리로가소 가서 자네
시숙한티 서는 이러고 후는 이러니 논을잡고 쌀92가마니를 만들어 내라고하소
알것는가 그러면 논을 반값으로 안팔어도 될것아닌가 한뱃속에서나온 지동생이
형무소가는데 그것이야 안들어 주것는가 얼른 춘수리로 가소이 "
한참을 망설이는 작은 외할머니께 이받이 보따리를 들려주면서
" 얼렁 춘수리 자네 큰집에 가보소이 시가 급허다면서 뭉구적 거리는가 "
하면서 작은 외할머니를 춘수리로 보냈답니다
외할머니는 매달 한번씩 소고기나 마른명태를 사갖고 일본사람 한테가서
어떻게든 빚을곧 갚을것인게 경매를 늦춰주도록 사정을하고 다녔답니다
그덕에 음력5월까지 쌀2가마니 값을같다주고 농사를 짓도록 했드랍니다
작은 외할머니가 한달만에 기가 팩죽어서 우리집에 왔는데 열흘에 한번씩
전주형무소에 면회를가면 얼굴이 반쪽이된 이홍기 작은 외할아버지께서는
" 내가 여그서 관속으로 들어가서 누어서 나가기를 바라는가 절반만 받고라도
얼렁 팔아서 해결해버려 저녁마다 쇠창살 문닫는 소리가 호랭이 (범) 소리보다
더겁나서 나죽것다네이 "
돈이많은 고부 은생원한테 사람을 보내봤어도 안산다고하고 춘수리에 가봤어도
조께더 (조금더) 기달리라고 만하니 이노릇을 어쩌면 좋으냐고 하셨답니다
그래도 형제간이라 외할아버지가 서둘러 주어서 터안 유생원과 임실아저씨가
고부 은생원한테 논3필지 18마지기를 쌀100짝 을받고 팔았다고 했습니다
정읍 일본사람한테 이자까지 쌀92가마니 값을갚아주고 저당압류를 풀었답니다
외할머니가 일본사람한테 고맙다고 건명태를 사가지고 인사를 갔더니
일본사람은 웃으면서 아주 고생했다고 하면서 생각지도안은 쌀2가마니
값을돌려 주드랍니다
그리고는 자기집 서기를 시켜서 경찰서와 법원에 갖다줄 서류도 만들어
주면서 나중에라도 무슨일 이든지 있으면 부담 갖지말고 무엇을 사갖고
오지말고 그냥 빈손으로 오라고 하드랍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일로인해 평생동안 일본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일본에도 아주 우호적 이었습니다
" 일본 사람들은 양심이 아주 올발라 일본법은 참으로 확실혀 조선사람
같으면 택도없제이 누가 그쌀두짝을 돌려주어 그사람들은 가난하고
없는사람이 자기집에 가드라도 오차도 한잔씩주고 과자도 주드랑게 "
하셨습니다
합의서를 제출했는데도 근달포가 (45일) 지나서야 전주 형무소에서 출소한
작은 외할아버지는 정읍 경찰서에서부터 전주 형무소까지 8개월만에 자유의몸이
되었드랍니다
이홍기 작은 외할아버지는 떵떵 거리면서 잘살다가 5-6년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춘수리나 부안촌에는일체 발걸음을 안하셨다고 했습니다
그사기사건 바람에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어머니한테 코가꿰여서
언제나 싸울때마다 KO 패를 당하셨습니다
종규 외삼촌은 자기 아버지때문에 곤역을치룬 사촌매형을 늙어가면서까지
깍듯이 예우해주시고 큰어머니한테 세배를 드리고 나서는 사촌매형인 우리 아버지
에게도 꼭 세배를 하셨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5년제농중을 졸업한 키도크고 풍체도좋고 존경하는 사촌처남 이지만
세배를 할때는 점잔하게 맞절을 해야하는데 항상 자기가 먼저절을 해버렸드랍니다
그래서 종규 외삼촌이 세배하고 간날은 언제나 우리 어머니한테 체신머리 없다고
잔소리를 들었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10번도넘게 겨울이면 해마다 아무런 이유도없이 백산으로
외삼촌집에 손님노릇을 간답니다
백산에가면 종규 외삼촌 께서는 언제나 V I P 대접을 해주시면서 닭을잡아
주셨답니다
몇번인가는 외할머니께 갖다 드리라고 인절미 찰떡도해서 대나무 석작에
떡을 가득담아 주면서 차비도 넉넉히 주셨기에 였답니다
처음에는 이틀밤을 자고왔는데 우리 어머니한테 속없다고 욕을많이 먹고난
다음부터는 하룻밤씩만 자고왔다고 했습니다
백산에 다녀온후에는 언제나 아버지는 자기와 절친한 부안남포리 할아버지
황새고개 겸호당숙 터안 정판형님 우리동내 안상님등 부안촌 사람들에게
농중나온 이종규 사촌처남을 입이달도록 자랑하시면서 이야기 끝무렵에는
꼭 사람은 어쨋든지 많이 배와야혀 (배워야) 하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