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이 초중고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얘기를 나눈게 천우신조였습니다.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고교 국어교사의 증언입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자료를 수집하여 국어교과 수업과 평가 정상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할까 합니다. 아래 글은 어제 일에 대한 단상입니다.
어제 모임에서 서울시 교육청 소속 고등학교 국어교사의 국어수업과 시험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들었다.
실질적인 국어사용능력과는 관계 없는 가공의 시험으로 오로지 순위를 매기기 위해 국어 시험이 기형적으로 변했는데도 누구도 정상화를 위한 의견 개진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보들의 행진이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바보들의 행진이 가속하는 상황이다.
수업은 시험을 위한 수단이기에 학교 수업이건 학원 수업이건 시험을 위한 방법이라면 모든 걸 동원한다. 학생 입장에선 학원에 기대는 것이 더욱 수월할 것이다. 시험을 보자마자 학교 교사가 문제지를 걷어가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학원 선생님께 전송한다. 시험 문제에 조금의 하자가 발견되면 국어교사는 재시험을 실시할지 항변할지 고민에 빠진다. 자기검열이 일상화될수록 국어수업의 정상화는 머나먼 길이다.
시험 문제에 대한 하자를 줄이고 내신성적 간의 차이를 선명하기 위해는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낼수록 유리하다. 그것도 적당히 어려워야만 학생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다. 수업은 평이하게 하여 학생들의 저항을 줄이지만 시험 문제를 위해선 문제지의 지문 양이 엄청나다. 얘들을 시험 시간 내내 시험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문제지 쪽수가 대개 15쪽~20쪽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어 교과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한다. 학생들은 국어 과목에 대해 이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이에 적응하지 않으면 명문대는 물 건너 간다. 고등학생 내내 이런 시험에 적응하기 위해 학원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수많은 시간을 엄청난 지문에서 시험 기술을 숙달시켜야 한다. 과연 이런 상황에 "속뜻사전 활용교육"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이런 미친 시험 문제를 내는데 촌음을 아끼는 교사에게 어휘력을 강조할 틈이 있을까?
생각을 깊이하고 말과 글을 조리있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할 국어 수업과 평가가 가공(架空)의 시험을 향해, 학생들의 미래를 망치고자 거친 날을 휘두르고 있다. 국어 교사들의 양심 선언이 필요하다. 국어 수업의 정상화를 위해 현행 국어 수업과 평가를 해체해야 한다.
국어수업과 평가 연구에 교대, 사대 국어교육과 교수들과 연구 기관의 국어교육 연구자들은 작금의 현실을 가슴에 안고 기나긴 반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문제의 장본인들이 스스로 깨우치기 어려우니 국민 운동으로 일어나 몰아내야 한다.
수포자 운운하며 수학 수업에 돌 던지기 일쑤지만, 가장 커다란 책임을 져야할 교과는 국어 교과다. 국어사용능력이 이토록 처참한 상황인데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책임 전가한다. 이 문제를 이제는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는 들고 일어나야 한다.
제목 : 앞으로 닥칠 국어 커리큘럼의 세 번째 變故변고
빙산의 일각만 봐서는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수면 아래의 거대한 진실을 대면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한국 국어 교과의 족보를 캐야 합니다. 대표적인 집단이 서울사대 국어교육과이기에 교수진의 역사로부터 더듬는 것이 순서가 될 수 있습니다.
국어교육과가 어떻게 성립되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까지 자진하여 국어교육과로 들어간 교수는 없습니다. 전부 국문과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대, 교대 교수들로 메워집니다. 국어학(음운론, 통사론, 문법론), 고전문학, 현대문학(시, 소설)에서 뛰어난 연구자가 인문대학의 국문과에 자리잡고, 사범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교육”에 비중을 두면서 사대, 교대 교수들은 2류 학자로 전락합니다. “교육”이란 토끼 한 마리가 뛰어드니 자기 전공과 함께 집중력이 분산하기 때문입니다. 8.15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한글전용표기 정책이 추진되고 사대의 국어교육과에서는 한문과 한자, 한자어를 강조하는 교수진이 점차 사라지고 사범대 교육학의 영향에 따라 1970년대부터 “국어교육”이라는 별도의 전공 영역이 서울사대에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국산 토종 “국어교육” 전공이 싹을 틔운 것입니다.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안에서 얼마나 시끌했을까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교수진 사이에서 국어교육과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국어교육파”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교육학”의 이론의 수준이 빈천했기에 “국어교육”의 이론 또한 빈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생적인 “국어교육”을 지향하는 교수가 생겨나고 이 아래서 제자들이 길러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힘은 미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노명완 교수가 바로 變故변고의 주인공입니다. 이 자는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인데, 미국 유학을 통하여 “언어 교육”으로 금의환향하여 1989년부터 시행되는 “5차 교육과정”의 “국어 교육과정”을 획기적으로 뜯어 고칩니다. 문학 영역을 줄이고,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4가지 영역의 기능 중심으로 국어교과내용을 확 바꿉니다. 사대의 반발이 있었지만, 미국 유학파의 파고는 사대 교수들을 압도하고 학교 국어교과과정을 기능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1990년대 중반부터 시행된 수능시험을 통해 지금까지 기능을 빙자하여 架空가공의 시험 체제로 오히려 국어사용능력을 옥죄는 교과로 전락했습니다. 노명완은 한국교육개발원, 서울교대, 고려대 사범대를 거쳐 얼마 전에 퇴임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괴물이 되어 비판과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노명완의 국어교과 이론체계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다음 이어질 변고는 더 지독합니다. 이 놈 역시 미국 유학하여 거기서 교수 노릇까지 하다가 몇 년전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들어왔습니다. 조병영. 오자마자 문해력을 들먹이며 대중 방송에 얼굴을 들이대고 시끄럽게 굴었습니다. 문해력이라는 언어 게임에서 확실히 자리잡자, 이제는 문해력을 “리터러시”로 바꾸고자 노력합니다. (이 자의 행태를 보면 연예인이 학계를 변화시티는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사대, 교대는 학자다운 학자가 사라진 곳입니다.) 이 자가 아직까지 망신창이가 된 국어커리큘럼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국어교과에 이 자가 기획하는 리터러시가 조금씩 스며들 것입니다. 미국 유학파 2명이 우리의 국어교과를 망신창이로 만드는데도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못합니다. 빙산 아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병영의 족보를 캐보니 고려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석사과정까지 했습니다. 바로 노명완의 제자입니다. 노명완의 성공처럼 조병영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스승처럼 감투를 쓰고자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언어교육인 리터러시와 학습 등을 전공하고, 그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들여와 적용시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조자도 많아져 사대, 교대 교수들 중 “국어교육” 전공자들이 이제는 조병영을 따릅니다. 국어교육과를 보면 “국어교육” 전공자가 노명완 이후로 대폭 늘어 전국 사대, 교대 어디든 “국어교육” 파트에 꼭 1~2명씩 들어있습니다. 이제는 국어교육과의 주인이 “국어교육”이 주인이고, 고전문학, 현대문학, 국어학은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제 글을 보시면 변고의 순서가 어떻게 되고, 과연 “국어교육”의 이론이 무엇인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첫 번째 변고는 미군정기에 시작된 “한글전용 표기정책”이며, 두 번째는 노명완의 “국어교육”, 세 번째가 지금 물밑에서 착실히 진행하고 있는 조병영의 “리터러시”입니다. 노명완과 조병영은 뭔가 거창한 듯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잡학 투성이입니다. 학계의 사대주의로 인하여 잠시 유행을 타는 것입니다. 노명완은 30년, 조병영은 ?년 정도겠지요. 그동안 국어교과의 커리큘럼은 유행을 타면서 거지꼴로 변하고 앞으로 계속 대수술 운운하면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전 교수님의 “속뜻학습법”이 우리말의 어휘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이론이기에 국어교과에서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엉터리 국어교육이론을 해체시킬 새로운 이론체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국어교과의 정상화를 추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