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생 법인 산하 '희망원'은 노숙인 거주 시설입니다.
마땅히 쓸 게시판이 없어 앞서 제주 공생 법인 선생님들 글을 소개한 '장애인게시판'에 남깁니다.
12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제주에 갔습니다.
네 번 만나 함께 사회사업 글쓰기 공부했습니다.
바르게 실천하며 기록하는 선생님들 이야기에 감사합니다.
제주 공생 희망원
김동환 선생님 실천 이야기
관우 아저씨 이야기
어느 날 관우 아저씨가 병원 운행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러 간다며 슈퍼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하셨다. 모셔다드리며 술은 드시지 말고 조심히 희망원으로 돌아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직원이 두 시간 뒤 업무를 끝내고 희망원 생활원지원실로 복귀하였다.
얼마 뒤, 그렇게 술 마시지 말라고 부탁했던 관우 아저씨가 잔뜩 술에 취한 모습으로 할 말이 있다며 나에게 찾아오셨다. 왜 술을 드셨냐고 따져 물으려고 하던 때, 아저씨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오늘이 아버지 기일인데 산소를 찾아가겠습니다. 그냥 나가도 되지만 담당 선생에게 말하고 외출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 외출 부탁하려고 다시 희망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담당자 처지에서는 술 취한 상태로는 외출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걷기도 불편한 상태에서 외출했다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또한 원내 규칙상 음주 상태로 외출은 허락되지 않았다. 술을 깨고 다음 날 외출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설득이 쉬지 않았다.
“내 아버지 산소를 기일 날 찾아가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문제 제기 하겠습니다.” 말씀하시며 언성을 높이셨다.
일본에서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장남으로서 아버지 제사를 못 챙겨 드리는 미안함 때문에 술 마신 게 이해되었다. 희망원 규칙에 따라 외출을 돕지 못한 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이 일로 오래 이야기 나눴다. 관우 아저씨 마음이 이해가 되고 또 이해가 되었다. 과장님에게 말씀드리고 의논했다. 국장님에게도 여쭙고 의논했다. 하지만 원내 규칙이 있고, 한 사람에게만 편의를 봐준다면 또 다른 사람들도 편의를 봐 달라 할지 모른다고 하셨다. 상황이 안타깝지만 잘 말씀을 드리라고 하셨다. 희망원 상황도 이해되었다.
다시 관우 아저씨께 말씀드리며 이해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저씨도 지지 않았다. 아저씨는 술기운 때문인지 더욱 아버지에게 죄송하고 찾아뵙고 싶다는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관우 아저씨께 한 가지 제안을 드렸다. 담당 직원과 함께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여쭈었다. 아저씨는 흔쾌히 좋다고 답하셨다. 국장님도 담당 직원과 가면 가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여전히 관우 아저씨는 술에 취하셨지만, 아버지 뵈러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차례를 지낼 음식을 사고 싶다고 부탁하셨다. 산소 가는 길 잠깐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잠시 뒤 관우 아저씨는 양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차에 올라타셨다. 아저씨는 아버지 뵈러 가는 내내 길이 많이 바뀌어버려 산소를 못 찾으면 어쩌나 계속해서 걱정하셨다.
다행히 예전 길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가족 묘지가 모여 있는 장소에 다다랐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 와서인지 아저씨는 계속 갸우뚱 하시며 차를 멈추고 내리기를 반복하셨다.
“이쪽인가?”, “아니, 저쪽인가?”
몇 번을 헤맨 끝에 겨우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아저씨는 안도에 한숨을 내쉬며 작은아버지가 산소도 못 찾는 당신 모습을 보았다면 혼쭐을 냈을 거라며 웃으셨다. 관우 아저씨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찾았는지 느껴졌다.
“희망원에 가서는 국장님에게 아버지 산소를 찾으려고 한참 헤맸다고 말하지 마세요! 다음에는 안 보내줄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미안해요. 술 기운에 억지 부려서… 그래도 오니까 너무 좋네요.”
아버지 산소를 찾지 못해 창피해 하면서도 이렇게 찾아와 아들노릇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감사했다. 아저씨는 온종일 억지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미안해하셨다. 뿌듯해 하면서도 내게 미안해 하는 아저씨 모습에 온종일 목이 쉬어라 원칙을 되풀이하며 힘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관우 아저씨가 고맙고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우 아저씨는 아버지 산소를 간단히 다듬고 검은 봉지에서 마트에서 사온 빵과 과일 그리고 술을 꺼내셨다. 깜빡하고 접시를 못 사왔다며 한탄하셨다. 급하게 빵 봉지와 과일 포장지를 접시 삼아 산소 앞에 음식을 진설하고 제를 지냈다. 아버지도 격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관우 아저씨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좋아하실 거라며 위로해드렸다.
제를 마치고 둘이 마주 나란히 앉아 지는 석양을 보았다. 제상에 올렸던 빵과 과일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도 부모님에게 효도 많이 하세요. 나이가 들어가니 죄송하고 옛 생각이 많이 나네요.”
눈물을 글썽이는 관우 아저씨가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오늘 아저씨가 외출하고 싶어 하실 때, 퇴근 시간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빨리 일을 마무리하려고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좋아하시고 오고 싶어 하셨는데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오늘 하루를 반성하며 조금씩 나도 진짜 사회복지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풍수지탄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可追者年也 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見者親也 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시네.
출처 : 한시외전(韓詩外傳)
첫댓글 [제를 마치고 둘이 마주 나란히 앉아 지는 석양을 보았다.] 당사자인 관우 아저씨와 동환 선생님의 사람 사이의 정이 넘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동환 선생님의 의중과 가치를 느길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를 위해 노력하는 동료로서 응원과 고마움을 표현 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맞아요.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있는 김동환 선생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늘 인격적인 만남을 생각하는 김동환 선생님이 고마워요.
답글로 동료 응원하는 성우 선생님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