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어느 시집에도 넣지 않고 내던져 버린 소위 ‘친일적’이라는 시 몇편이 있지만 그것은…조선총독부의 또 하나의 새로운 이름인 ‘국민총동원연맹’의 강제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쓴 것들이니 이점은 이해해주셨으면 고맙겠다.”(‘나의 문학인생 7장’)
미당 서정주는 생전에 친일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자 자신의 친일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강압설은 친일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일제말에는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숙명론이나 ‘작품이 친일행적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문학지상주의도 친일 비판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김재용 교수(원광대)는 “일제 말기 친일 문학은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며,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통념은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김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협력과 저항’(소명출판)에서 1938년 10월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 말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을 분석,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친일에 동참했다는 통설을 부정하며 친일에 동참한 협력그룹과 일제에 맞선 저항그룹으로 명확히 구분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협력’ 작가로는 서정주·채만식·최정희·송영을, ‘저항’ 작가로는 김기림, 한설야, 김사량을 꼽았다.
김교수는 ‘협력’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들의 친일은 자발적이었으며 매우 정교한 내적 논리까지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이들 작가가 친일문학으로 진입하게 된 계기로 1938년의 중국 무한 함락과 40년 일본 괴뢰정권인 왕정위 정부의 수립을 들고 있다. 채만식의 경우 일본제국이 조선, 대만, 만주뿐 아니라 중국 본토까지 진출하는 국제적 현실을 목도하면서 친일파시즘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채만식은 일본의 전체주의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복으로 인식, 일본의 전체주의를 ‘신동아 질서 건설’로 미화한다. 김교수는 이러한 채만식 친일논리를 ‘멸사봉공의 이데올로기’라고 이름붙였다. 서정주는 1942년 2월 이후 친일문학을 지속적으로 발표한다. 서정주의 친일의 바탕은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론. 특히 대동아공영론은 초기시에서부터 서구 근대문명의 속물성을 비판해온 서정주에게는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동양의 자각과 대동아공영론을 구분하지 못한’ 서정주의 친일은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게 김교수의 진단이다. 김교수는 또 최정희의 친일문학에서는 동양론을 매개로 한 모성과 국가주의가 결합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저항’ 작가들은 ‘친일은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옹호론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침묵으로 저항한 김기림, 우회적 글쓰기로 저항한 한설야, 망명한 김사량 등의 작가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저항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간 일제말 저항문학 연구가 전무한 상태. 윤동주, 이육사 정도로 알려져 있는 저항작가의 저변을 확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재용 교수는 “친일 협력을 했던 이들보다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 엄연한 문학사적 현실”이라며 “친일문학 연구는 저항문학에 대한 연구가 깊어질 때 전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