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인생] 24
1#준수의 오피스텔 방안(밤)
준수의 격렬한 입맞춤.
온몸을 준수에게 맡기고 있는 혜진.
갑자기 입술을 떼는 준수.
가쁜 숨.
혜진을 노려본다.
두 눈을 감고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혜진.
괴로운 준수.
다시 혜진을 와락 끌어안는다.
마치 잠이라도 든 듯이 준수의 어깨에 얼굴을 떨어뜨리듯 묻는 혜진.
준수: (속삭이듯) 둘이 같이 떠나고 싶었어요. 이 세상 어디든.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었다구요.
혜진: ...
준수의 어깨에 얼굴을 더 묻는 혜진.
준수: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혜진: (꿈꾸듯) ... 왜.
준수: 나는요.
혜진: (더 파고드는)
준수: (혜진을 잡아 일으키며) 난 사람을 죽였다구요.
혜진: ...
손을 들어 준수의 입을 막는 혜진.
움직이지 못하는 준수.
준수의 얼굴을 여기저기 쓰다듬는 혜진.
혜진: 말했지. 난 준수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준수: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난 사람을 죽였다니까요.
혜진의 몸을 거칠게 잡아 흔드는 준수.
여전히 그런 준수에게 몸을 맡기고 미소 짓고 있는 혜진.
준수: ...
순간 혜진을 놓아버리는 준수.
휘청하는 혜진.
돌아서는 준수.
냉정해진다.
준수: 약속하세요. 날 잊어버리겠다고.
혜진: 싫어.
준수: (악쓰듯)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구요.
혜진: (대들듯) 같이 도망치면 되잖아.
준수: 평생 좇기며 살 거라니까요. 강 회장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날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돌아서며) 혜진씨두 다친다구요.
혜진: 그럼 어때... (장난치듯) 같이 죽으면 되지, 뭐.
준수: ...
혜진: (웃어 보인다)
준수: ...
손을 들어 혜진의 얼굴을 감싸 쥐는 준수.
부들부들 떨리는 손.
준수: 당신은 날 용서해줘도 난 날 용서할 수가 없어요.
혜진: ...
준수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있는 혜진.
준수: 나 때문에 당신까지 더러워지면 안돼요. (울음이 터지듯 웃으며) 당신 때문에 살고 싶어졌는데 당신까지 더러워지는 건 못 참아요.
혜진: 난... 준수씨 난.
준수: (울음을 집어삼키며) 안돼요, 당신이 불행해지는 건 견딜 수가 없다구요.
혜진을 얼싸안으며 주저앉는 준수.
그대로 서있는 혜진.
준수: (무릎 꿇고 고개를 가슴에 묻으며) 그냥... 나 혼자... 떠나게 해주세요.
숨죽여 흐느끼는 준수.
기다리고 서있는 혜진
울음을 삼키느라고 온몸을 떨고 있는 준수.
혜진: ... (중얼거리듯) 죽으려는 거지.
준수: (멈추는)
혜진: 날 보내놓고...
준수: ...
준수와 마주 무릎 꿇고 앉아 준수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쥐는 혜진.
혜진: 파리로 떠난다는 건 거짓말이야. 날 버리고 떠날 리가 없어. 그렇지, 죽으려는 거잖아.
준수: ... (바라보는)
혜진: 내 사랑에 걸고 맹세해봐. 죽으려는 거잖아, 아냐.
준수: ...
지쳐서 맥이 풀리듯 쓰러지듯 누워버리는 준수.
혜진도 맥이 풀려 준수 옆에 주저앉는다.
준수: (가만히 웃으며) 무서운 생각을 했었어요... 같이 죽어버릴까...
혜진: ...
준수: (보더니) 그럼 날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두 없을 거 아녜요.
혜진: (울음이 터질듯)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어떡하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준수: ...
손을 들어 혜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준수.
혜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두 못하잖아. 충격 때문에... 그러니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혜진의 입을 막으며 일어나 앉는 준수.
준수: 세상은 내가 그리워하는 대로 변해요.
혜진: ...
준수: 내가 바다를 그리워하면 세상은 바다가 되구요. 내가 산을 그리워하면 세상은 산이 되요.
혜진: ...
준수: 내가 혜진씰 그리워하면 세상은 온통 혜진씨로 변하구요. 당신이 날 그리워하면 세상은 온통 내 모습으로 가득 찰 거예요.
혜진: ...
와락 치미는 슬픔을 흐느끼듯 집어삼키는 혜진.
준수: 난 항상 나 혼자서 죽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요. 무서웠어요. 혼자서 죽는 게.
혜진: 잘못한 거 없어, 준수씬. 성구라는 그 사람은.
준수: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죽을 거니까요.
혜진: (신음하듯 울음을 내뱉는)
준수: 세상은 온통 당신으로 가득 차 있을 거니까요.
혜진: ... (울음 그치는)
준수: 가세요, 이젠.
테라스로 걸어가는 준수.
“차라리 내 앞에서 죽어.”
준수: ...
멈춘다.
혜진: ... 내 앞에서 죽으라구, 준수씨...
준수: ...
돌아서 혜진을 본다.
오히려 편안한 혜진의 눈길.
준수: ...
이윽고 준수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
준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혜진.
준수: (웃으며) 참 대책 없는 아줌마네.
혜진: (흠칫해서 보는)
준수: 그냥 날 놓아주면 안돼요. 헤어지자는데 꼭 그런 식으로 붙잡고 늘어져야겠냐구요.
혜진: (미소)
준수: 그럼 아주 상스럽게 헤어질까요. 그래야 날 놔주겠냐구요.
혜진: ... (바라본다)
준수: ... (그 눈길에 흠칫)
혜진: 어떻게 살라구.
준수: ...
혜진: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 앉아서 누군가 준수씨 소식을 알려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라구.
준수: ...
혜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준수씨 소식을 기다리면서... 때로는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서 춤이라도 추어대고 때로는 그나마 소식이 끊겨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그런 날들을 나보고 어떻게 견디라구.
준수: ...
혜진: 죽었나 보다 준수는... 이름모를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쓸쓸하게 죽어갔나 보다.
준수: 그만... 그만하세요.
준수의 낮은 신음.
혜진: 그렇겐 못 살아. 평생을 준수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기다리면서 살아갈 순 없어. 그러니 내 앞에서 죽어.
준수: ...
혜진: 똑똑히 지켜볼 거야. 준수씨 마지막 모습... 준수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 마음에 새겨둘 거야.
준수: ...
숨죽여 웃기 시작하는 준수.
지켜보는 혜진.
점점 미친 듯이 웃는 준수.
준수: 나두 그러고 싶어요. 당신 앞에서 죽고 싶어요. 그래야 당신이 죽는 날까지 날 잊지 않을 거 아녜요.
준수가 달려와 혜진을 끌어안는다.
준수: 싫어요, 당신이 날 잊어버리는 거 싫어요. 당신이 나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은 보기 싫다구요.
혜진이 준수를 얼싸안으려고 한다.
그런 혜진을 밀치듯 꽉 잡는 준수.
준수: 하지만 안돼요. 날 잊어버려야 돼요. 당신은 행복해져야 한다구요.
혜진: 안 된다고 했잖아. 준수씰 혼자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
준수의 손을 뿌리치고 준수를 끌어안는 혜진.
혜진: 난 준수씨 그리워하며 살아두 돼. 내 마음 속엔 항상 준수씨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준수씨 대신 내 마음을 채울 순 없어.
준수: ...
혜진: 난 매일같이 내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준술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볼 거야. 북해도 공항에서 처음 만나던 그 순간부터 하나씩... 하나씩.
2#몽타쥬
-치도세 공항에서 혜진의 차에 올라타는 준수를 당황하고 어이없어 쳐다보는 혜진. 넉살 좋게 차의 시트를 젖히고 잠이 들어버리는 준수.
-오타루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준수.
-오타루에서 곰 인형을 들고 흔들던 준수가 난간에서 떨어지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혜진.
-오타루에서 눈싸움을 하다 눈 위에 몸을 던지는 준수와 혜진.
-오타루의 눈꽃축제.
불꽃놀이.
준수를 찾아 헤매는 혜진.
뒤에서 안아주는 준수.
불꽃을 배경으로 첫키스.
첫 정사.
눈꽃 축제가 끝난 쓸쓸한 거리.
치도세 공항으로 달려오는 준수.
혜진을 발견하고 달려가 포옹하는 준수.
여행용 가방을 쥔 채 몸을 맡기는 혜진-
3#준수의 오피스텔 안(밤)
벽에 기대앉아 준수를 안아주고 있는 혜진.
어린 아이처럼 몸을 맡기고 미소 짓고 있는 준수.
혜진: ...
준수를 어루만져주며 생각에 잠겨 미소 짓고 있는 혜진.
4#몽타쥬
-미술관에서 준수를 지나쳐가는 혜진.
-나리와 나래를 태우고 가는 혜진의 차 앞에서 모터사이클 곡예를 부리는 준수.
쓰러지는 모터사이클.
놀라서 달려가는 혜진.
길바닥에 누워 웃고 있는 준수.
-사내들에게 린치 당한 준수가 빗속의 혜진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혜진의 손을 잡고 뛰는 준수.
놀이터에서의 격렬한 애무.
-혜진의 아파트 앞을 장식한 장미터널.
-식당에서의 데이트.
손잡고 가다 물에 빠지는 준수.
맨발로 난간의 길 걷는 혜진.
-혜진의 아파트에서 음식 만드는 혜진.
거실을 바라보면 복순이와 놀고 있는 준수.
-혜진의 아파트 부엌.
음식을 만들어 놓고 준수를 기다리는 혜진의 모습.
5#준수의 오피스텔 안(밤)
생각에 잠겨있는 혜진.
문득 활짝 미소를 지으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는다.
혜진: ...
혜진의 가슴에 안겨 누워있는 준수를 내려다본다.
잠든 듯 움직이지 않는 준수.
혜진: ... (마음의 소리) 혼자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 눈을 감겨줄 사람도 없을 거 아냐... 그렇게 내버려둘 순 없어. 차가운 길바닥에 혼자 누워있게 할 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준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혜진.
눈물 한 방울이 혜진의 눈에서 뚝 떨어져 내린다.
준수의 눈가에서 부서지는 혜진의 눈물.
가만히 눈 뜨는 준수.
눈 안에 눈물이 가득한 혜진.
준수가 혜진을 끌어당겨 혜진을 눕히고 혜진의 눈을 입술로 덮는다.
6#거리(밤)
유흥가의 거리.
네온과 밤늦은 취객과 술 취한 여인과 흐느적거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물결.
7#한강의 다리(밤)
교각을 밝히고 있는 조명등에 반사되어 흐물거리고 있는 강.
8#준수의 오피스텔(밤)
그 전경.
그런 모습들이 느릿느릿 이어진다.
9#준수의 오피스텔 안(밤)
벽에 기대앉은 준수의 품에 안겨있는 혜진.
잠자듯 편안한 미소.
준수: 그만 돌아가세요.
혜진: ...
준수: 짐을 마저 싸야겠어요.
혜진: 조금만 더 이따...
준수; 시간이 없어요. 준비할게 많다구요.
몸을 움직이려는 준수.
혜진: 부탁이야, 준수씨.
준수: (다시 앉는) ...
혜진: 아침에 준수씨 떠나는 거 보고.
준수: 일어나세요.
준수 몸을 빼서 일어나며 혜진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준수: (옷장으로 가며) 집까지 바래다 드려요.
혜진: ... (바라보는)
준수: 파리에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가방을 챙기는 척 수선을 떠는 준수.
여전히 그런 준수를 바라보는 혜진.
이윽고 손을 멈추는 준수.
준수: (등 돌린 채) 그만 가세요.
혜진: ...
준수: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볼게요.
혜진: 약속했잖아. 죽을 거면 내 앞에서 죽겠다구.
준수: 간다니까요. 아침에 공항으로 나가서 다애와 함께 떠날 거예요.
혜진: ...
준수: (돌아서며) 그럼 공항까지 같이 갈까요.
혜진: ...
준수: 그냥 날 혼자 내버려두면 안돼요. 당신이 내 앞에 그러고 있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구요.
혜진: 며칠만 더 기다리면 안돼. 성구씨 부검기록 보면 성구씨가 왜 죽었는지가 밝혀진다구 했잖아.
준수: 그건 상관이 없다니까요.
혜진: 왜 상관이 없어.
준수: 자살이든 타살이든 무슨 상관예요. 성구가 왜 죽었는지 난 알고 있는데요.
혜진: ... (안타까운)
준수: 네, 나예요. 내가 성굴 죽였다구요.
혜진: 하지만.
준수: 다시 시작할까요. 오타루의 벼랑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혜진: ...
준수: (보다가 웃으며) 나 지금요 행복해요. 이렇게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구요.
혜진: ...
준수: 다애하고 함께 떠날 거예요. 말했잖아요. 살 수 있는데 까지 살아보겠다구요.
혜진: ...
준수: ...
환하게 웃어 보이는 준수.
얼른 돌아서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바라보는 혜진.
혜진: (소리) 그 순간 난 깨달았다. 그 무엇도 준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10#부근 거리(밤)
혜진이 온다.
혜진: (소리) 나는 준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의 힘으로. 그러나 그는 떠나갔다. 나를 남겨두고.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는 앰블란스.
번쩍이는 시그널.
바라보는 혜진.
달려가는 앰블란스.
혜진: (소리) 내가 어리석었다.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은 내가.
11#준수의 오피스텔 안 테라스(밤)
난간 위에 우뚝 서있는 준수.
12#다른 거리(밤)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혜진.
혜진: (소리) 준수가 원한 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준수는 그가 살아온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13#준수의 오피스텔 안 테라스(밤)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준수.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준수.
웃고 있다.
참으로 행복한 미소다.
마치 바람에 팔랑이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그렇게 추락하고 있는 준수.
혜진: (소리) 준수에게는 내 사랑마저도 그를 옭아매는 속박이었는지도 모른다.
14#혜진의 아파트 앞(밤)
혜진이 온다.
멈추는 혜진.
동원의 차가 주차장에 멎어있다.
혜진: ...
바라본다.
운전석 쪽에 눕혀졌던 시트가 올라오며 동원의 모습이 보인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동원.
힐끔 혜진 쪽을 보더니 당황해서 얼른 하품을 멈추는 동원.
못 본 척 가만히 고개 돌리는 혜진.
차 문 열고 내리는 동원.
동원: 전화가 안 되길래 잠깐 와서 말만 전하고 가려고 했는데...
혜진: ... (본다)
동원: 별 건 아니고.
혜진: 그럼 나중에 전해주세요.
가는 혜진.
동원: 나 회사 그만뒀어.
혜진: (멈춘다)
동원: 신중호 그 친군 내가 당한만큼 고스란히 돌려줬는데.
(※수정)
혜진: ... (가만히 고개 떨군다)
동원: 회사에선 본부장 자릴 주겠다고 했어.
혜진: (뭔가 치밀어 올라) 미안해요, 그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안으로 간다)
동원: 무슨 일 있어?
혜진: ... (멈추는)
동원: 흥(비웃듯) 그 친구 다애하고 파리로 떠난다면서? 왜 그게 서러우신가.
혜진: ...
동원: 지금까지 뭘 하다 왔는지 다 알고 있어. 속에서 욕지기가 치민다구. 그래두 그걸 꾹 참고 기다렸더니.
혜진: ...
등 돌린 채 꼼짝 않는 혜진.
동원: (한숨쉬며) 좋아, 더는 잡지 않겠어. 이혼을 하든 말든 당신이 결정해. 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 거니까.
혜진: ...
등 돌린 혜진이 큭 흐느끼는 모습처럼 보인다.
동원: (부아가 치밀어) 왜, 다애 대신 당신이 따라가지 그랬어.
동원이 거칠게 내뱉는데 혜진이 돌아선다.
흠칫하는 동원.
혜진의 두 눈에 가득한 눈물.
혜진: ...
동원: (좀 찔끔해서 웃으며) 뭐 누가 죽기라도 한 거야, 울긴 왜 울어.
혜진: ...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멈칫해서 입을 다무는 동원.
혜진: ...
고개 돌리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혜진.
우두커니 바라보는 동원.
15# 혜진의 아파트 거실(밤)
들어오는 혜진.
멈춘다.
밖에서 요란한 찻소리.
16#동. 앞(밤)
달려가는 동원의 차.
(※수정)
프론트윈도우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동원: ...
화가 나서 와이퍼를 강으로 작동시키는 동원.
17#동. 거실(밤)
베란다 문에 서서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혜진.
바깥 베란다 창에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밖에서 본 혜진의 모습이 빗물에 얼룩 거린다.
혜진: (소리) 그를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준수도 그럴 것이다. 준수는 깊고 깊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그저 멍하니 서있는 혜진.
더욱 거세지는 빗물.
18#준수의 오피스텔 앞(밤)
택시가 와서 서고 내리는 박병식.
이형사가 손을 흔들며 온다.
19#동. 위쪽 공터(밤)
경비원이 투덜거리며 흐르는 물을 뿌리며 바닥을 닦고 있다.
이형사가 위쪽을 가리키며 뭔가 열심히 설명한다.
박병식: ...
준수의 방을 올려다보는 박병식.
20#인천공항 출국장 안
카트에 올려놓은 다애의 여행용 가방들.
다애: ...
벤치에 앉아있다.
출국장의 전자시계를 본다.
이른 시간이다.
가만히 한숨 내쉬는 다애.
명자: (오며) 다애야, 들어가 봐야 되는 거 아냐. 출발 시간 다 돼 가는데.
다애: ... (핸드폰만 만지락 거린다.)
명자: 오늘 같이 못 떠나면 이삼일 후에 따라온다고 했다면서.
핸드폰 벨소리.
얼른 받는 다애.
다애: 준수씨? (반가워하다 굳어지는) ... 네... 네,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요...
명자: 누구야?
다애: 네, 말씀하세요...
가만히 듣기만 하는 다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흠칫해서 보는 명자.
핸드폰 든 손을 떨어뜨리는 다애.
명자: 왜 그래, 다애야.
다애: ...
명자: 말 좀 해봐.
다애: ... 죽었대.
명자: 누가...
다애: ...
명자: 준수가.
다애: ...
어이없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울듯이 웃는 다애.
21#혜진의 아파트 공원
전화 끊고 핸드폰 쥔 손 흔들다 한숨 내쉬는 박병식.
혜진이 온다.
일어나는 박병식.
혜진: ... (가만히 바라보는)
박병식: ...
꾸벅 목례를 하더니 벤치 끝으로 물러나 앉는다.
혜진 다른 벤치 끝에 앉는다.
박병식: 어저께 밤에 국과수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강성구씨 부검기록 말입니다. 그 결과가 나왔다구요.
혜진: ...
고개 숙이고 있는 혜진.
박병식: 궁금하지 않으세요?
혜진: ...
움직이지 않는다.
박병식: 강성구씨 부검기록에서 타살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살이거나 실족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 친구 결백이 밝혀진 셈인데...
혜진의 눈치 본다.
움직이지 않는 혜진.
박병식: 그 친구가 좋아할 거 같애서 연락받자마자 전활 걸었죠. 그런데 전화기가 꺼져있더라구요. 뭐 급할 거 없는 거 같애서 아침에 연락을 해주려고 했는데... 같이 계셨죠.
혜진: ...
박병식: 오피스텔 경비원이 웬 여자가 올라가는 걸 봤다고 하던데 부인 맞죠?
혜진: ...
고개 들어 박병식 보는 혜진.
그 눈에 가득한 눈물.
당황해서 고개 돌리는 박병식.
박병식: 미안합니다.
손등으로 코를 한번 훔치고 다시 혜진 보는 박병식.
혜진: ...
눈물이 흘러내린다.
당황해서 다시 고개 돌리고 잔기침하는 박병식.
22#인천공항의 출국장 안
다애: ...
명자: 어떡할래.
다애: ...
명자: 그래두 한 번 봐야지.
다애: 왜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몰라. 준수씨한데... 하동원씨한테 벗어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어. 편하게 사는데 길들여져 있었으니까.
명자: ...
다애: 만일 준수가 아니고 딴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명자: 그게 되냐, 아무하고나 사랑에 빠지는 거 아니잖아.
다애: (보더니) 그렇지? (웃어 보이려고 한다)
명자: (엄지손가락 펴 보이며) 이거잖아, 준수씨.
다애: ... (바라보더니) 들어갈래.
일어나는 다애.
명자: 비행기 타려구.
다애: 준수씨 선물이잖아. 파리 가서 새 출발하라는. 준수씨 소원대로 떠나야지.
카트 끌고 항공사 카운터로 가는 다애.
명자: 다애야.
멈추는 다애.
명자: 파리 가서 좋은 사람 만나. 그래야 좋아할 거야, 준수씨.
다애: 응,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다애.
울음이 터질 거 같아서 얼른 돌아서 카트 밀고 가는 다애.
23#혜진의 아파트 공원
박병식: (눈치 보며) 솔직히 말해서 그 친구가 자살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혜진: ...
박병식: 그렇잖습니까. 그렇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혜진: ... (본다)
박병식: 미안합니다. 부인은 그 이율 알고 계실 거 같애서.
혜진: ... (바라보는)
박병식: 같이 계셨죠?
혜진: (고개 돌리며)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강성구씨 부검 기록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요.
박병식: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살 수 있었는데 왜.
혜진: ...
박병식: 혹시 이준수씨가 강성구씨의 죽음에 대해서 다르게 얘길 하던가요. 가령 부검기록이야 어찌됐건 그날 거기서.
혜진: (본다) ...
박병식: (말을 멈추는) ...
혜진: 왜 그렇게 알고 싶어 하세요.
박병식: 사실을 밝혀야 하니까요.
혜진: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구요. 사실을 밝히는 게.
박병식; (웃으며)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니까요.
혜진: ... (바라본다)
박병식: (웃으며) 같이 계셨죠?
혜진: ... 네.
박병식: 왜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혜진: ...
박병식: 말릴 생각이 없었습니까..
혜진: ...
박병식: 내 말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혜진: 준수씨가 원했어요...
박병식: ... 뭘... 말씀입니까.
혜진: ...
문득 하늘을 보는 혜진.
긴장해서 바라보는 박병식.
혜진: 무섭다고 했어요... 죽는 게.
박병식: ...
혜진: ...
스르륵 눈을 감는 혜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한 가지 뿐예요.”
24#준수의 오피스텔 안(밤) (회상)
무릎 꿇고 혜진을 움켜잡고 있는 준수.
준수: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 하지만 내가 죽어야 할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어요.
혜진: 그건 준수씨 잘못이 아니잖아.
준수: 내가 성구를 죽였다니까요. (와락 혜진을 끌어안으며) 세상을 다 속일 수는 있어도 당신을 속일 수는 없어요.
혜진: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자수하면 되잖아.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준수: (혜진을 다시 움켜잡으며)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요. 난 그걸 잘 알고 있다구요. 변하지 않는 건 죽은 거 뿐예요. 살아있는 건 다 변한다구요.
혜진: (준수를 얼싸안으며) 다애하고 떠나. 죽는 건 안돼. 파리든 어디든 가서 다애하고 새 출발을 하라구.
준수가 혜진을 밀치듯 하며 일어난다.
혜진: 안 된다니까, 준수씨.
겁에 질려 준수의 손을 움켜잡는 혜진.
그 손을 잡아 가만히 놓아주고 일어나는 준수.
이윽고 준수의 손을 놓치고 고꾸라지듯 바닥을 짚는 혜진.
준수: 시간이 멈추면 내 고통두 멈출 거예요. 그리고 우리들 사랑두 멈추겠죠.
혜진: ...
숨이 막혀 준수 본다.
준수: 그럼 그 누구도 우리 사랑을 뺏어갈 수 없어요. 시간이 멈췄으니까요. 그 누구도 당신을 내게서 뺏어갈 수 없다구요.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가는 준수.
펄럭이는 커튼.
스르륵 눈을 감는 혜진.
그 얼굴에 바람이 불어 닥친다.
25#혜진의 아파트 공원(현실)
혜진: ...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다.
미소 같은.
박병식: 무서워했다구요? 이준수씨가.
혜진: ... (가만히 눈을 뜨더니) 죽은 게 아닐 거예요.
박병식; 네? (놀라서 보는)
혜진: 영원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면 그건 죽은 게 아니잖아요.
박병식: ...
뚱해서 바라보는 박병식.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세운다.
그리곤 혜진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혜진: ...
환하게 미소 짓는다.
26#거리
박병식의 차 온다.
신호에 멈춘다.
27#동. 안
박병식: ...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박병식: (소리) 이준수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사실이 아니겠지만... (빙긋 웃더니) 늙었나? 그런 환상을 믿다니.
뒤에서 경적 소리.
신호가 바뀌었다.
(※수정)
부지런히 기어 넣고 차를 모는 박병식.
28#어느 선착장
중년여인이 유골함을 안고 사내의 부축을 받으며 온다.
배에 탄다.
사내가 선착장을 손짓한다.
돌아서는 중년여인.
혜진이 서있다.
바라보는 중년여인.
중년여인: ...
혜진: ...
중년여인: ...
중년여인이 고개를 숙여 혜진에게 인사하고 고개를 든다.
혜진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혜진: ...
고개를 든다.
바다로 나가고 있는 배.
바라보고 서있는 혜진.
멀어지는 배.
29#강회장의 별장 앞
박병식의 차 와서 멎는다.
철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는 박병식.
30#동. 마당
박병식이 온다.
정원수를 다듬고 있는 강회장.
박병식: 어젯밤에 이준수가 자살을 했습니다.
강회장: (가위질만 하는) ...
박병식: 타살 가능성도 살펴봤습니다만.
강회장: 죗값을 받았구만.
박병식: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성구씨의 죽음은 자살도 타살도 아닌 것 같습니다.
강회장: (힐끔 보더니) 그래?
박병식: (미소 짓듯) 성구씨가 살해됐다면 이준수 역시 살해됐다고 봐야죠.
강회장: (힐끔 보더니) 재미난 논리구만.
다시 정원수만 다듬는 강회장.
박병식: 더 궁금한 건 없으신지.
강회장: (대답 없다) ...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서 가는 박병식.
강회장: 이봐, 박선생.
박병식: (돌아본다)
강회장: ... (바라보더니) 수고했어요.
박병식: ...
바라보다 또 한번 목례하고 돌아나가는 박병식.
그런 박병식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강회장.
기묘한 미소.
(※수정)
31#명자의 새 액세서리가게 앞
쇼윈도 창에 붙어있는 세일광고.
‘70%세일’
‘왕 대박’
‘블란서 이태리 직수입 액세서리’
(※수정)
32#동. 안
물건 정리하고 있는 명자.
문 열리는 종소리.
명자: 어서오세요.
대답이 없자 비로소 문 쪽 보는 명자.
우체국 집배원이 서있다.
명자: (가서 우편물 받으며) 웬 고지서가 이렇게 많이 날아오는지 정말 못 살겠네. 장사두 안 되는데.
집배원 간다.
명자: 수고하세요, 고마워요.
노래 부르듯 인사하고 우편물을 하나씩 들춰보는 명자.
명자: 에게게, 이게 뭐야.
엽서를 본다.
에펠탑이 그려진 엽서다.
명자: 기집애, 일년 넘게 소식이 없더니 기껏 엽서 한 장이야. (뒷면 보더니) 와, 기집애 드디어 좋은 사람 만났구나.
엽서에 “나 결혼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명자.
(※수정)
33#국립박물관 주차장
소형 관광용 버스가 들어온다.
깃발 들고 내리는 혜진.
관광객들 내려서 혜진을 따라간다.
34#동. 앞
안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
다 들어가고 나면 혜진 지쳐서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요즘은 얼굴 보기 힘드네. 피차 바빠서.”
미세스리가 온다.
혜진 반가워서 웃는다.
미세스리: 요즘두 깃발 모으고 있는 거야?
혜진: (웃으며) 습관이 되서 버리기가 그래요.
미세스리: 몇 개나 모았어.
혜진: 한 백 개 되려나.
미세스리: 백 개가 뭐야, 이백개두 넘겠다. 갈게. (웃으며 가려다 멈추며) 참, 내일 혜진씨 쉬는 날이지.
혜진: 네, 왜요.
미세스리: 이번에 들어온 팀이 삼백 명이 넘는 단체 손님이잖아. 나 혼자 몰고 다니려니까 어찌나 힘이 드는지.
혜진: 도와 드려요.
미세스리: (보더니) 아냐, 애들 만나는 날인데 (다시 가다가 책 흔들어 보이며) 번역 잘했드라. 다자이 오사무.
주차장 쪽으로 가는 미세스리.
혜진: ...
손에 든 깃발을 내려다본다.
피식 웃더니 미세스리를 향해 가만히 흔들어 보인다.
35#혜진의 아파트 거실(밤)
들어오는 혜진.
혜진: (불 키며) 복순아, 엄마 왔다. 복순아.
부엌에서 달려 나오는 복순이.
혜진: (안아주며) 왜 거기 들어가 있어. 엄마가 불 꺼놓고 나가서 무서웠어?
복순이를 달래주는 혜진.
36#동. 앞
동원의 차가 온다.
뛰어내리는 나리와 나래.
나리: 엄마.
현관 입구에서 복순이 안고 기다리고 있는 혜진.
달려가는 나리와 나래.
동원: 뛰지마, 다쳐.
차에서 내리는 동원.
달려가서 복순이를 안고 좋아하는 나리와 나래.
복순이를 내려놓자 공원으로 앞질러 달려가는 복순이.
그 뒤로 쫓아가는 나리와 나래.
혜진: ...
웃으며 보다 동원 본다.
동원: ...
차에 기대서 보다 손들어 보이는 동원.
37#아이스크림 집의 야외 탁자
옆 테이블에서 복순이 아이스크림 먹이며 좋아하는 나리와 나래.
혜진: 복순이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 주지마, 배탈 나.
들은 척도 않고 아이스크림 먹이는 나리와 나래.
혜진; ...
웃고 마는 혜진 동원을 본다.
동원: 어때?
혜진: 뭐요.
동원: 여행사 일.
혜진: 이젠 베테랑 됐죠, 뭐.
동원: (훑어보며) 냄새가 나네. (웃는다)
혜진: 어때요, 요즘도 쉬고 있어요.
동원: 아냐, 그동안 궁리하던 사업 시작했어.
혜진: 무슨 일인데요.
동원: 돈 장사지 뭐. 내가 잘하는 게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혜진: (미소)
동원: 갈게.
혜진: (얼른) 나리야, 아빠 가신대.
복순이 아이스크림 먹이는 재미에 들은 척도 않는 나리와 나래.
혜진: 나래야.
동원: 내버려둬. 내가 얼른 가길 바라고 있을 텐데... (웃더니) ... (한숨쉬듯 혜진을 바라본다)
혜진: ... 가세요, 그럼.
동원: 사업 잘 되면 위자료... (멈춘다)
혜진: ... (웃으며) 네... 더 주세요.
동원: ...
늦은 한숨 내쉬고 일어나 길가에 세워놓은 차로 간다.
바라보는 혜진.
동원의 차 떠난다.
혜진: ...
가만히 한숨쉬고 애들 본다.
복순이와 놀고 있는 나리와 나래.
38#여의도 공원
증권회사 건물들.
동원; ...
바라보다 한숨 내쉬는 동원.
현필: 본부장님.
현필과 대진, 석환이 손 흔들며 온다.
동원: 어서들 와.
현필: 본부장님 살찌셨네요. 집에서 노는 게 좋으신가 봐요.
동원: 니들은 어떠냐.
현필: 죽을 맛이죠.
동원: 신중호 잘 있냐.
현필: 땡잡았죠. 다 죽은 목숨 본부장님이 살려주고 나갔는데.
동원: (대진 석환에게) 니들은 어때.
대진: 본부장님한테서 좋은 소식 오기만 기다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석환: 뭐든지 빨리 시작하세요. 신중호가 볼 때마다 잡아먹으려고 든다구요.
현필: 야, 니들 뒤에 가서 그러면 안 되지.
동원: 니들 사표 내라.
현필: 네?
대진: 시작하시는 겁니까.
현필: 뭘 하려고 하시는데요.
동원: 알 거 없어. 어떡할래 니들.
대진: 내야죠.
석환: 야호. (환성을 지른다)
동원: 현필이 넌.
현필; 안내면요.
동원: ...
현필: 그럼 날 죽이실 거 아녜요.
헤헤 웃어대는 현필.
동원: 삼 년 안에...
증권가의 빌딩을 가리킨다.
동원: 저기다 빌딩을 하나 세우자.
긴장해서 동원을 보는 현필, 대진, 석환.
동원: 우리 네 사람 이름으로.
신나서 환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주고받는 현필, 대진, 석환.
벌렁 누워 팔베개하고 싱긋 웃는 동원.
39#어느 찻집 앞
혜진이 온다.
수수한 옷차림이다.
40#동. 안
들어오는 혜진.
혜진: ...
둘러본다.
모자를 쓴 다애가 손을 흔든다.
혜진: ...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다.
천천히 가서 다애 앞에 앉는 혜진.
다애: 저 결혼했어요.
혜진: ... 그래요. (미소)
다애; 서울 있을 때 미국서 변호사 한다는 사람하고 맞선 비슷한 거 본 적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알았는지 파리까지 쫓아왔더라구요.
혜진: ...
다애: 뭐 좋아하진 않지만 싫은 것두 아니라서요.
웃어 보이는 다애.
혜진: 축하해요.
다애: 준수씨 생각 많이 하시죠?
혜진: (보더니) 다애씬.
다애: 가끔 하죠. 많인 안 해요.
혜진: ...
다애: 부인은요.
혜진: 거의 못 하고 살았어.
다애: ...
혜진: 잊어버리려고 노력두 했지만 사는 게 바빠서.
다애: 요즘두 여행사 일 하세요?
혜진: 뭐 다른 재주가 있어야지.
다애: 부럽네요.
혜진: ...
다애: 나 같으면 벌써 포기하고 편한 길 찾았을 텐데.
혜진: (미소)
다애: 하 선생님 재혼했어요?
혜진: 하겠지.
다애: 그럼 애들 주겠네요.
혜진: (웃으며) 그래서 열심히 돈 모으는 중야.
다애: 하여간 대단하시네요. 쉬운 길 놔두고 어렵게 사시느라고.
혜진: 그만 일어나 볼게. (일어나려는데)
다애: 잠깐만요.
혜진: ...
다애: ...
핸드백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는다.
혜진: ...
다애: 파리 갈 때 내가 준수씨 짐을 가져갔어요. 나중에 따라온다고 해서... 결혼하면서 짐정릴 하다보니까 이게 나왔어요. 그래서 혹시 날 주려고 했나 하고 손에 끼어 보니까 안 들어가는 거예요.
혜진: ...
다애: 끼어보세요.
혜진: (멈칫)
다애: ...
반지를 집어 혜진의 손에 끼어주는 다애.
다애: 딱 맞네요.
혜진: ...
물끄러미 반지 낀 손을 내려다보는 혜진.
다애: 부인 주려고 샀었나 봐요. 결국 못 주고 말았지만.
혜진: ...
다애: 저 먼저 갈게요.
일어나 가버리는 다애.
혜진: ...
반지 낀 손을 가만히 어루만져보는 혜진.
시큰하다.
41#어느 거리
또박또박 걸어오는 혜진.
쓸쓸한 모습이다.
혜진: (소리) 정말 오랫동안 준수를 잊고 살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행사 일에 매달렸다. 그나마 한달에 두 번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아니 준수를 잊은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준수를 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문득 걸음을 멈추는 혜진.
일단의 젊은이들이 브레이킹 댄스를 추고 있다.
떠오르는 혜진의 미소.
킥 동작을 하는 춤꾼.
원킥, 투킥, 쓰리킥에 이어 백투킥을 펼쳐 보이는 춤꾼.
구경꾼들의 탄성과 박수.
혜진: ...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가만히 손뼉을 따라 치는 혜진.
다음 춤꾼이 우쭐거리며 나온다.
거리의 스타인지 요란한 구경꾼의 환성.
혜진: ...
순간 숨이 막힌다.
춤꾼은 준수다.
대뜸 베이비 동작으로 들어가는 준수.
이어서 앉아서, 누워서, 한 팔로 베이비 동작을 이어가는 준수.
혜진: ...
멍하니 바라본다.
환호성에 정신을 차리고 보는 혜진.
베이비 동작을 마친 준수가 손을 흔들며 퇴장한다.
저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준수를 찾는 혜진.
베이비 동작의 춤꾼이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준수가 아니다.
혜진: ...
왈칵 치솟는 눈물.
42#다른 거리
도망치듯 가고 있는 혜진.
43#어느 공원
혜진 온다.
힘없이 벤치에 주저앉는다.
그 위에-
“세상은 내가 그리워하는 대로 변해요. 내가 바다를 그리워하면 세상은 바다가 되구요...”
천천히 고개를 드는 혜진.
건너편 분수대 축대 위에 준수가 서있다.
“내가 산을 그리워하면 세상은 산이 되요. 내가 혜진씰 그리워하면 세상은 온통 혜진씨로 변하구요. 당신이 날 그리워하면 세상은 온통 내 모습으로 가득할 거예요.”
저도 모르게 벤치에서 일어나는 혜진과 분수대에서 혜진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던 준수가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서 허공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이 교차된다.
혜진: ...
저도 모르게 손을 조금 드는 혜진.
떨리고 있는 혜진의 손.
준수를 바라보는 헤진.
준수가 팔을 쭈욱 뻗어 허공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44#혜진의 의식
18회에서-
준수: 내가 보고 싶으면 손을 들어 아무데나 만져보세요. 이렇게.
뒤에서 혜진의 손을 잡아 들어올린다.
준수: 만져보세요.
혜진: ...
준수에게 손 잡힌 채 움직여보는 혜진.
준수: 내가 느껴져요?
혜진: ... (미소)
준수: 난 당신이 보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눈을 감아요. 그러면 당신이 떠오르죠. 내가 손을 들어 허공을 더듬으면 거기에 당신이 서있구요.
45#어느 공원
하늘 높이 손을 들고 있는 준수.
혜진: ...
조금 들고 있던 손을 더 올리다가 멈추는 혜진.
분수대를 본다.
청년이 손을 흔들고 있다.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젊은 여자.
혜진: ...
청년에게 매달리는 젊은 여자가 장난치며 웃고 떠들더니 서로 어깨를 두르고 가버린다.
혜진: ...
실망해서 손을 내리고 벤치에 가서 앉는 혜진.
물끄러미 분수를 바라본다.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물줄기.
청년이 서있던 빈자리.
혜진: ...
손을 조금 들어본다.
분수.
혜진: ...
조금 더 손을 들어본다.
분수대 그 자리에 준수가 서있다.
혜진: ...(미소)
일어나며 손을 머리 위까지 들어보는 혜진.
분수대를 바라본다.
준수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쏟아지고 있는 분수.
혜진: ...
손바닥을 펴서 허공을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그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
혜진의 얼굴에 떠오르는 환한 미소.
스르륵 두 눈을 감고 숨을 한 것 들이마시는 혜진.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는 혜진의 손끝을 따라 도시와 하늘이 펼쳐진다.
그 위에 혜진의 소리.
“그래, 그리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거야.”
(※수정)
혜진: ...
눈을 떠서 다시 분수대 본다.
준수가 서있다.
손을 들어 하늘을 만지고 있는 준수.
마치 대답하듯 손으로 하늘을 더듬는 혜진.
그렇게 주고받는 혜진과 준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