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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스크랩 조선의 사화(士禍)
박희용 추천 0 조회 422 18.03.09 14: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士禍 란 朝鮮時代에 정치적인 반대파에게 몰리어 朝臣(조정의 관리) 및 선비들이 참혹하게 禍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조선조에서는 개국한 이래 유교를 국교로 삼아 文을 숭상하고 유학을 널리 장려 하였

으므로 우수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선비사회, 즉 儒林은 매우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主義, 思想, 感情,鄕土 의 관계 등으로 인해 여러 파벌을 형성하였는데 그 뿌리는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벌은 조선세조 때에 싹이 뜨기 시작하여 성종 때에 이르러 反目은 더욱 심해졌는데

그중에는 서로 意氣가 상통하는 파도 있으나 서로 對立 또는 반목하는 파도 많았다.

 

대표적인 파당은 세조의 왕위찬탈건에 가담하여 높은 지위와 부귀를 누린 훈구파(勳舊派)  내지는 기호파

(畿湖派),여기에 반대하여 不事二君의 명분에 따라 節義를 지킨 절의파(節義派), 세조의 찬탈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기회를 보아 조정으로 진출하여 자신들의 사상과 포부를 펴보려던 사림파(士林派) 내지는 영남파(嶺南派), 그리고 중국의 죽림칠현을 따라 서울 동대문 밖 죽림에 모여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세월을 보낸 청담파(淸談派) 등이었다.

 

이들 각파는 서로 논쟁이 따르는 대립과 투쟁에서 패자는 반역으로 몰려 지위를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었고 한 파가 승리하면 이에 대한 또다른 새로운 반대파가 생겨 사화를 야기 시켰다.

이러는 동안 정치의 기강은 더욱 문란해 지고 뜻있는 선비들이 관직을 버리거나 아예 단념하고 서당, 서원을 세워 유생을 교육시키면서 정치의 비판의식, 복수관념이 응집되어 당파의 결합을 굳게 한 것이 후기 당쟁을 격화 기키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뜻있는 선비들의 향토복귀와 후진교육은 공리적이며 세속적인 관학(官學)에 수양과 진리탐구의

참다운 학문연구인 사학(私學)의 근원(根源)을 이루게 하였다.

 

 

 

 

癸酉(계유) 병자사화(丙子士禍)

 

단종 1년에서 세조 2년(1453~1456)에 걸쳐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절개있는

신하들에게 화(禍)를 입힌 사건이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즉위하였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위찬탈의 야심을 갖고 김종서, 황보인 등의 중신을 살해하는 한편 친동생인 안평대군 마저 사사하고 전권을 장악하여 재위 2년만에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분개하여 "하나의 태양 아래서 두 명의 왕을 섬길 수 없다"고 외친 절의파 학자들에 의해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났다. 세조는 이를 알고 성삼문 등 여섯 사람을 참형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강원도 영월로 귀양보낸 후 뒤에 賜死(사사) 시켰다.

 

사화순절신(士禍殉節臣)

 

황보인(영의정). 김종서(좌의정). 정 분(우의정). 안평대군 이 용(세종의 3째 아들). 화의군(세종의 아들).

금성대군 이 유(세종의 6째 아들). 한남군 이 어(세종의 아들). 영풍군 이 전(세종의 아들). 이 양(우찬성),

송현수(단종의 장인). 권자신(단종의 외삼촌). 정 종(단종의 매부). 정효전(태종의 사위). 민 신(이조판서).

조극관(이조판서). 권 완(돈령판관). 김문기(이조판서). 박중림(이조판서). 박 정(운검사). 성 승(도총관).

박팽년(자는 인수, 호는 취금헌, 시호는 충정). 성삼문(자는 근보, 호는 매죽당, 시호는 충문).

하위지(자는 천장, 호는 단계, 시호는 충렬). 이 개(자는 청보, 호는 백옥헌, 시호는 충간).

유성원(자는 태초, 호는 낭간, 시호는 충렬). 유응부(자는 신지, 호는 벽량, 시호는 충목).

김시습(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시호는 청간). 조 례(자는 주옹, 호는 이계, 시호는 정절).

남효온(자는 백공, 호는 추강, 시호는 문정). 이맹전(자는 백순, 호는 경은, 시호는 정간).

성담수(자는 이수, 호는 문두, 시호는 정숙). 원 호 (자는 자허, 시호는 정간). 박영연(정랑).

박인연(호는 경춘헌, 교리). 박대년(박사). 박기년(호는 동재, 수찬). 성삼빙(부사). 성삼성(정랑).

성삼고(장신). 박 쟁(도총관). 박승문(박쟁의 아들). 송석동(장신). 김현석(거창현감).이유기(도진무).

윤영손(단종의 이모부). 허 조(집현전 수찬). 권 서(녹사). 이의영(별시위). 이말생(이의영의 형).

정 관(이의영의 처남). 이정상(별시위).최득지. 최지지(최득지의 아우). 조청노(단종의 이모부).

봉여해(판서). 이 휘(참의). 이우직(의춘군). 황보석(참관). 황보흠(직장). 김승규(김종서의 아들).

이보흠(자는 경부, 호는 대전). 이종검(이보흠의 종형). 윤처공(군기판사). 이명민(선공부정).

이현노(교리). 이경유(종성부사). 원 구(진무). 조 번(녹사). 김대정(반인). 이징옥(함길절제사).

허 후(우찬성). 조수량(사감). 안완경(감사). 지 정(감사). 이보인(목사). 이의산(한산군). 박이영(목사).

김말생. 박계우. 유계랑. 이종덕. 이 노. 원 주. 김자인. 조경완. 조석강(병사). 황귀존(사알). 이석정(중추).

조순생(이의). 조불연(안평대군의 사위). 조완규(진사). 황의헌(군수). 고덕칭(현감). 최덕지(집현전 학사).

권 완(판관). 조숭문(병사). 유구산(감사). 봉석주(병조판서). 강 순(좌의정). 남 이(태종의 외증손, 군수).

조유례(중추). 성문치(대호군). 이우량(덕양군). 조충손(조광조의 할아버지, 성균사예). 하강지(하위지의형).

하소지(생원,하위지의형). 하기지(학유,하위지의아우).엄흥도(호장). 조상치(시호는 충정). 이 번(감사).

송 간(형조참판). 정지산(자는 언평, 호는 포옹). 성 희(자는 용희, 호는 인재). 권 절(자는 단조,시호는 충숙).

정 보(감찰, 정몽주의 손자). 김우생(승지). 최선문(공조판서). 우계근(사직령). 권산해(첨정). 구인문(교리).

유자미(감찰). 윤수동(군자정). 이동인(북부령). 이성동(돈령참봉). 성 소(돈령참봉). 조변융(조상치의 아들).

이현동(호는 옥계). 이덕생(정종의 7째 아들). 이 섭(밀은군). 이 동(공조참판). 이 옥(순화군). 이 돈(전은군).

이 억(해안군). 이순(현감). 유중문(장신). 이징석(판중추). 기 건(호는 청파). 이수형(평시령). 윤 혜(정랑).

송경원(도사). 송 희(현감). 서 한(진사). 김한계(직제학). 이견기(호판). 신말주(호는 귀래정). 김숙자(사예).

민심언(형조참의). 정극인(정언). 홍 연(집의). 이지활(운봉현감). 안 상(도정). 조 명(호는 인촌). 김계금(지평). 이 집(훈도). 강희안(호는 인재). 민회삼(집의). 심 선(호는 망세정). 유 윤(진사). 유 문(호조참판).

서 호(사인). 김효신(호는 간재).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 4년(1498)에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新進士類)가 류자광(柳子光)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건이다.  당시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자 사관(史官) 이었던 김일손이 훈구파의

비행과 스승인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올렸는데 이전부터 갈등을 느껴오던

훈구파의 류자광과 윤필상(尹弼商) 등이 이것을 문제삼아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방한 것이라고 연산군

에게 고해 바쳤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직 문하(門下)의 수많은 사림파 선비들이  화(禍)를 당하게 되는

는데  무오년에 일어난 사건이라 하여 무오사화 라고 한다.

 

士禍殉節臣(사화순절신)

 

윤필상(자는 양좌, 본관은 파평). 이극돈(자는 사고, 호는 사봉, 아호는 익평, 좌찬성). 김종직(자는 계온,

호는 점필재, 본은 선산, 시호는 문간, 형조판서). 김일손(계운, 호는 탁영, 본관은 김해, 이랑). 권오복

(호는 수헌, 본관은 예천, 교리). 권경유(교리, 본관은 안동). 이 목(자는 중옹, 호는 한재, 사관, 본관은 전주).

허 반(자는 문병, 부정. 본관은 양천). 강 겸(본관은 진주, 정랑). 표연말(자는 소유, 호는 남계, 동중추, 본관은 신창). 홍 한(참의, 본관은 남양). 정여창(자는 백욱, 본관은 하동, 정랑). 이 총(자는 백원, 태종의 증손자).

강경서(자는 자문, 호는 초당, 좌승지, 본관은 진주). 이수공(자는 중평, 본관은 광주, 전륜). 정승조(한림).

정희량(자는 허암, 검열). 이종준(자는 중균, 호는 용헌, 사인). 최 부(자는 연연, 호는 금남, 본관은 나주).

이 주(자는 주지, 본관은 고성, 정언). 이 원(자는 랑웅, 호는 재사당, 본관은 경주, 좌랑). 이유청(좌의정).

김굉필(본관은 서흥, 좌랑, 시호는 문경). 박한주(자는 천지, 본관은 밀양. 헌납). 임희재(자는 경여, 임사홍의 아들). 이계맹(자는 희순, 본관은 전의, 찬성). 강 혼(자는 사호, 호는 목계, 본관은 진주, 판중추). 강 진.

강백진(본관은 신천, 김종직의 생질). 정성근(자는 이신, 승지). 성중엄(자는 계문, 호는 청호, 홍문박사).

유 헌(자는 백여, 대사관). 권오기(자는 협지, 호는 졸재, 권오복의 아우).강중진(판교, 강백진의 아우).

이수의(이수공의 아우, 한림). 김처신(환관). 박시형(밀양부사). 강 집(강겸의 아우, 교리).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 10년(1504)에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성종의 비) 복위(復位) 문제로 연산군이 일으킨 사건이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尹氏)는 평소에 질투가 많아 폐비(廢妃)가 되었다가  사사(賜死) 되었는데

여기에 많은 선비들이 관련되어 있었다.

이때 야심만만 했던  임사홍(任士洪)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잔존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이 사건을

연산군에게 고해 바쳤다. 연산군은 평소 어머니인 윤씨 사건에 대해 의혹이 많았던 차에 이를 알게

되자 그 사건에 관련된  많은 선비들을 처형하는 한편 폐비 사건 당시의 대신들이었던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등을 부관참시(剖棺斬屍) 하였다.

 

 

 

 

병인사화(丙寅士禍)

 

연산군 12년(1506)에 일어난 사화로서 무오, 갑자 사화(士禍) 때에 화를 입지 않고 누락된 자들을 찾아내

죄를 묻고 벌을 가했던 사건이다.

 

士禍殉節臣(사화순절신)

 

이 종. 이 정. 정 붕. 채 수. 이현보. 이례견. 강경서. 유 우. 안응세. 신영복. 이 청. 강응정.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 14년(1519)에 남 곤(南袞), 심 정(沈 貞) 등 훈구파의 재상(宰相)들이 당시 새로운 혁신을 감행한

젊은 선비들에게 화(禍)를 입힌 사건이다.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정치를 개혁하고 패기에

넘치는 조광조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등용하여 성리학(性理學 :주자학)을 크게 장려 하였다.

이에 조광조(趙光祖) 등은 중종의 신임을 받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행하고 자격이 없는 공신들의

공신호(功臣號)를 박탈 하는 등 과격한 혁신정책(革新政策)을 썼다. 여기에 불안을 느낀 심 정. 남 곤,

홍경주 (洪景舟)등이 갖은 모략(謨略)과 음모로서 조광조 일파가 민중의 지지를 받아 반역(返逆)을

꾀하려 한다고 주장하여 30대 젊은 선비들이 죽음을 당하고 이를 옹호한 대신(大臣)들이 파면되거나

죽음을 당하였다.

 

 

 

 

신사사화(辛巳士禍. 誣獄)

 

중종 16년(1521)에 안처겸(安處謙) 일파 들이 심 정, 남 곤 등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건이다.

기묘사화로 인하여 세력을 잃은  안 당(安塘) 의 아들 안처겸은 남 곤, 심 정 이 사림을 해치고 왕의 총명을

흐리게 한다하여 이들을 제거 할 것을 모의 하였다. 때마침 안처겸은 모친상을 당했는데 남 곤의 부하 송사련은 여기에 문상 온 조문객의 명단을 적어 이들이 대신들을 해치려 한다고 무고하여 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는 큰 옥사가 일어났다.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고도 한다.

 

己卯, 辛巳士禍 殉節臣

 

조광조(대사헌), 김 정(시호는 문정), 김 구(시호는 문의), 김 식(대사간). 기 준(응교). 안 정(주서).

신광환(신숙주의 손자, 시호는 문간). 심달원(교리), 정광필(영의정), 안 당(시호는 정민), 이희민(지평).

이장곤(찬성), 정 완(이랑), 신명인(진사), 이약영(진사), 양팽손(자는 학포), 신잠(자는 원량), 안처근(학유),

이계맹(찬성), 이윤검(동지), 한 충(승지), 윤은필(감사), 이 자(참판), 윤자임(승지). 숭선부정 이 양, 김윤종,

허산정, 유용근(병사), 정 응(전한), 최산두(사인), 파릉군 이 경, 안 찬(교수), 최숙생(찬성), 이 청(사인),

김세필(참판), 이희강(이랑), 김안국(참찬), 권 발(찬성), 김정국(감사), 구수복(좌랑), 윤 구(좌랑), 조은경

(이랑), 유성춘(이조좌랑), 김광복(예판), 안처순(현감), 이 구(한림), 성수침, 조 우(좌랑), 김명윤(찬성),

성수종(성수침의 아우), 민희현(정언), 안처성(수찬), 김 익(정언), 신준미(한림), 김신동(대사간), 방귀온

(좌랑), 박공달(좌랑), 도 형(좌랑), 유 정(정언), 민세정(도사), 이 과(참판 이상신의 아들 대사간), 경세인

(저작), 이 령(수찬), 권 전(수찬), 최 운(현감),  박수량(현감), 노 필(도사), 최수성(호는 원정), 문 근(참판),

이사균(호는 눌재 시호는 문강 부제학), 유 운(호는 항재 시호는 문경 대사헌), 신 상(호는 위암 시호는 문절 판서), 안경우(판관), 이충건(주서), 이 부(정언), 박 상(호는 눌재 목사 시호는 문간), 이연경(정언), 조 변,

조 욱(장수현감), 문선(호는 한고), 신 변(좌랑), 봉천상(참봉), 노우명(참봉). 김대유(호는 삼족당 응교),

유맹달(참봉), 강녕부정 이 임, 장성수 이엄, 김석홍(참봉), 송호지(교리), 성세창(호는 둔재 시호는 문장

좌랑), 유인숙(이조판서), 이성동(참의), 공서린(대사헌), 안처겸(자는 백애 학유), 강 은(전적), 고 운(좌랑),

윤세호(판서), 이영부(자는 응서 이조정랑), 오 준(판서), 하 정(부사), 김태암(호는 허암 찰방), 형사보,

임 권(참판), 홍연필(부제학 호는 묵재 시호는 문희), 정충량(자는 국간), 서경덕(호는 화담), 허 자(찬성),

채세영(검열), 김인손, 윤 개(호는 회재 영의정, 정 원(승지), 이홍간(펑사), 민유경(교리), 유경유(습독),

정 경(좌랑), 김 필(전적), 김기서(참봉),  목희증(사전), 허 금(허침의 아들), 홍사부(도사), 송분충(악공),

안승복, 최인석(서리), 장 옥(판교), 허백기(참판), 김명원(호는 월봉), 전 균(제학), 학 연(홍문관의 노복),

조광임(지평), 홍순복(호는 고암), 목세평(호는 현헌), 오희안(이조좌랑), 권 색, 이 빈, 송구례, 심 례, 김해,

박 소(사간), 정충정(승지), 이 중(정랑), 박 번(호는 인덕정), 주원기(판중추 시호는 문절), 이사검(목사),

이 성(전의감소두), 박 훈(시호는 문도), 정철현(훈도), 정의손(충찬위), 송호례(현감, 김부광, 이세손,

박자일, 양산보, 피 장, 산곡구, 박 영(참판 시호는 문목), 남 주(전적), 안 찬(의관), 김천귀(천인),

 

 

 

 

을사사화(乙巳士禍)

 

명종 원년(1445)에 왕실의 외척(外戚)인 대윤과 소윤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세자(인종)의 외숙인 윤 임 (尹任) 일파의 대윤과 경원대군(명종)의 외숙인 윤원형(尹元衡) 일파의 소윤

사이에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졌는데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파에서 득세 하였다.

 

士禍殉節臣

 

유 관(좌의정), 유인숙(이조판서), 윤 임(장경왕후의 아우 찬성), 곽 순(사간), 백인걸(찬성), 노수신(이조

좌랑), 권 발(찬성), 이언적(찬성).장 황(사인), 박광우(사간), 이 림(이조참의), 이약해(직제학), 나 식(참봉),

이 진(이림의 형 참의), 성세창(좌의정), 안명세(검열), 이 황(자는 경호 호는 퇴계 전한), 심 령(도사),

양윤신(감찰), 구수담(참판), 정 자(정랑), 김 저(지평), 윤 결(수찬), 한 숙(참판), 정 원(승지), 이 염(봉교),

이문건(자는 자발), 신거관(이조판서), 이수경(자는 백춘), 황 부(부정), 정희등(장령), 김홍도(자는 중원

호는 남봉 목사), 안경우 (현감), 모산수(정랑), 성 우(자는 중려 성대곡의 형), 윤흥의(자는 강숙 윤임의 아들 진사), 이원록(자는 정서 이사의 조카 정랑), 정 욱(자는 종주), 이중열(이조정랑), 계림군 이 유, 허 자(찬성),

이 휘(정언), 민제인(정언), 이덕응(윤임의 사위 주서), 유 감(대사간), 윤 준(윤결의아우 주서), 최익국,

윤흥인(윤임의 아들), 윤흥례(윤임의 아들), 송인수(참판), 이연경(교리), 유 정(전적), 염유선(생원), 최대임,

송 순(참판), 양윤온(이조좌랑), 박민헌(교리), 민기문(대사성), 장언량(판윤), 임형수(목사), 최대관, 이 규,

나 숙(부제학), 이 담(교리), 송희규(집의), 김진종(헌납), 신백령(진사), 배광의, 이인정, 최순학, 홍 현, 홍륜,

변 복, 김난상(정언), 이약빙(이약수의 아우 이조정랑), 권응정(권응창의 형 참판), 이천계(사인), 권 물(장령),

윤강원(판교), 윤충원(윤강원의 아우), 안세형(안심의 父), 조 박(한림), 정유심(정자의 父), 이 란(이휘의 형 예조정랑), 이언침(장령), 정 염(정순봉의 아들), 정 작(목사), 성자택(공조정랑), 한 주(집의), 이 해(참판),

유창문(이조정랑), 안순서(유생), 유희춘(참찬), 권은창(참판), 유경심(대사헌), 손흥적(장령), 안 소(주서),

나윤침(전적), 남 주(전적), 이 양(지평), 김경희(생원), 심 호, 안 함(안정소의 형), 김충갑(정언), 홍봉세,

이홍남(공조참의),

 

 

 

 

정미사화(丁未士禍)

 

명종 2년(1547)에 을사사화의 여파로 일어난 사건이며 일명 벽서(壁書)의 옥사(獄事)라 한다.

전라도 양재역 벽에서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  이 기 등이 권세를 농간하여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글이 발견되어 정권을 잡고 있던 이 기. 정명순 등이 을사사화때

제거하지 못한 반대세력 들을 고발하여 수백명의 연류자가 화를 입은 사건이다.

 

士禍殉節臣

 

김 희(김안로의 아들), 이홍윤(이약수의 아들), 이수성(이유성의 아우), 이후정(이홍윤의 아우), 김 택,

연 원(연백재의 조카), 안 소(안암의 아우), 박승임(정랑), 안세장(복자), 김의순(복자). 이 양(지평),

남 주(전적), 김경희, 송인수, 유희춘, 권응창, 김난상, 임형수, 송희규, 손홍적, 이약병, 안 함, 심 령,

이언침, 이 담, 민기문, 윤강원, 윤충원, 권 물, 조 박, 권응정, 이 진, 이천계, 김 진, 유경호, 박민헌,

허충길, 나윤침, 김희연,성자택,연백재, 이유성, 손수검, 손수양, 무송수, 지억년, 지칠동, 이 치, 손수공,

이복기, 배몽성, 안희봉, 안희우, 안 매, 이경심, 안세형, 이 명, 김여부, 김 규, 우수평, 이구수, 임 복,

최 함, 최대림, 최대수, 차헌지,

 

 

 

 

을유사화(乙酉士禍)

 

명종 4년(1549)에 이홍남(李洪男). 이홍윤(李洪胤) 형제의 난언(亂言)을 상주(上奏)하여 이홍남이 모역죄

(謨逆罪)로 몰려 그의 아우  이홍윤 등이 능지처참(陵遲處斬) 되는 한편 이에 연류된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계축사화(癸丑士禍, 禍獄)

 

광해군 5년(1613)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몰아내기 위하여 대북파인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등이

일으킨 사건이다. 경상도 문경새재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권세를 잡고 있던 이이첨 등은 이 사건이 김제남(金悌男)(영창대군의 외숙) 등과 관계가 있다고 고발하여  영창대군은 서인(庶人)으로 폐봉(廢封)

되어 강화에서 죽음을 당하였으며 김제남은 사사(賜死) 당했다. 계축화옥(癸丑禍獄)이라고도 한다.

 

士禍殉節臣

 

김제남(자는 공언 정흥부원군 대비의 아버지), 한준겸(자는 익지 호는 유천 서평부원군), 김 권(청풍군),

이 광(의창군), 김상용(좌의정), 이정구(좌의정), 이덕형(영의정), 이항복(영의정), 이원익(영의정),

오윤겸(영의정), 유영경(영의정), 서 성(병조판서), 이홍로(감사), 신 흠(호는 상촌), 박동량(판서),

조희일(참판), 최기남(자는 흥숙), 기자헌(자는 자정), 김덕함(이조참의), 정 구(대사헌), 정 온(정언),

정홍명(사직), 조 직(유생), 권 임(유생), 정부형(장의), 홍무적(생원), 정택뢰(진사), 김효성(생원).

엄 성(한림), 윤 전(장령), 권 화(승지), 나무춘(학유), 윤 방(영의정), 이성구(영의정), 이신의(부윤),

김지수(승지), 조국빈(참의), 이 익(장령), 이시언(정언), 송영구(감사), 최동식(집의), 민유경(도정),

오 익(동지), 정광경(참의), 이희성(서성도정), 송갑조, 김우급, 이상형, 조수성, 김여성, 김상윤, 이안진,

오익창, 김준업, 김응정, 유 순(주부), 민광란(선전), 강석기(월당),조수윤(전한), 이현문(전의),

이유형(자는 덕보 호는 춘파 도사), 김 령(자는 자준 호는 계암 사간),

 

 

 

 

기사사화(己巳士禍, 換局)

 

숙종 15년(1689)에 서인과 남인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서인의 송시열(宋時烈) 등은 소의장씨(장희빈)의 아들(후에 경종이 됨)을 원자(元子)로 책봉하는것은 시기가 빠르다고 반대했는데, 이를 계기로 실각 중이던 남인들이 왕을 충동(衝動)하여 서인들이 축출(逐出) 당하는 큰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고도 한다.

 

士禍殉節臣

 

송시열(유상), 조태상(양원군), 이광한(용계군), 이원성(완흥군), 남두극(의풍군), 박 빈(밀림군), 이상진,

김수항(영의정), 김수흥(영의정), 민정중(좌의정), 이단하(좌의정), 이입신(흥양군), 오두인(판서), 이인화,

박태보(응교), 이세화(판서), 김석주(호는 식암), 이사명(판서), 김익훈(참판), 신범화, 김만중(호는 서포

형조판서), 이익수(시호는 충간 판서), 김유경(생원), 강민저(유생), 김일진, 박동명, 김리성(호는 시은),

최홍순(현감), 채이장(병사), 정최적(시호는 의민 감찰),

 

 

 

 

신임사화(辛壬士禍)

 

경종 1년(1721)에서 경종 2년 사이에 일어난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신축(辛丑), 임인(壬寅) 양년에

걸쳐 일어났다 하여 신임사화라고 하며, 일명 임인옥(壬寅獄) 이라고도 한다.

심신이 허약한 경종(장희빈의 아들)이 즉위하자 노론파 김창집(金昌集) 등의 건의로 왕세제(王世第)

연잉군(영조)으로 하여금 대리청정(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봄)을 실시하게 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소론파의 김일경(金一鏡) 등은 노론측이 왕의 신병(身病)을 조작하여 발설

하였다 하여 노론 4대신(四大臣)인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健命), 이이명, 조태채를 탄핵(彈劾)하고

유배(流配)를 보내는 등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士禍殉節臣

 

김창집(호는 몽와), 이이명(호는 소재), 이검명(호는 한포재), 조태채(호는 이우당), 이만성(호는 귀락당

시호는 충숙), 홍계적(호는 수허재 시호는 충간), 김운택(호는 백운헌 시호는 충정), 김제겸(호는 죽취 승지),

김민택(호는 죽헌 수찬), 조성복(호는 퇴수재 집의), 이홍술(훈련대장), 이우항(총융사), 윤 각(총융사),

윤 각(총융사), 백시구(평안감사), 이상집(통제사), 심 진(전라병사), 유취장(훈련중군), 김시태(황해병사),

김용택(호는 고송재), 이천기(광흥주부), 심상길(공조좌랑), 정인중(의영직장), 이희지(응재), 홍의인(종묘

직장), 홍철인(홍의인의 아우 진사), 이기지(이이명의 아들 진사), 김성행(김제겸의 아들), 서덕수, 이명좌

(진사), 이 헌(이우황의 아들 여주목사), 양익표(귀성부사), 우홍채(재령군수), 오종서(성균박사), 정수관

(부사), 방만규(전설별제), 김창언(김창집의 사촌아우 찰방), 이덕준(첨추), 조 송(첨사), 형의빈, 김일관,

김창도(김창집의 재종제), 유후장(유취장의 아우), 이승조, 이정식, 이빈홍, 백 망, 백립(백망의 아우),

김극복, 전인좌(군관), 현덕명(포도군관), 이상건(별장), 장세상(내관지사), 홍순택(역관), 이씨 이영(궁인),

이씨묵세(백망의 성이 다른 재종매 대전궁인), 백씨열이(백망의 종매), 임 창(자는 회이), 이의연(자는 방숙

호는 유시당), 이유룡(사간), 박치원(장령), 이중엽(수찬),

 

 

 

                                                                                                      -   사진 :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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