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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제봉 어르신은 85세의 나이로 숙명여대 원격대학원에 입학해 최고령 대학원생이 됐다. |
사회복지사 등 자격증만 5개… 실버비즈니스 전공 정규 석사과정 입학
‘노인 여가생활과 패션’ 리포트도… “시작이 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85세 대학원생.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문구의 잘못된 곳을 찾을 일이 아니라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제봉(여‧85) 어르신은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실버비즈니스전공으로 가을 학기에 입학했다. 평생교육의 개념으로 ‘수료’에서 마치는 과정이 아니라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 정식 석사 학위를 받는 정규 과정이다. 우 어르신은 현재 최고령 대학원생으로 같은 과에 최연소 학생은 24세다. 적지 않은 나이, 어르신의 도전기가 궁금하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이 경기도 고양군(現 고양시)이던 시절, 명석하고 꿈 많던 우제봉 여학생은 한 청년의 애끓는 구혼을 물리치지 못하고 결혼에 이른다. 밥과 반찬은 물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새댁이었지만 남편과 시부모, 시동생과 조카까지 총 14명의 대가족을 이룬 시댁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평생을 살았다.
마을 어른들은 “며느리가 아무것도 못해서 어떡하냐”고 했지만 현명한 시어머니는 “못 하는 건 흉이 아니고 못 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오히려 칭찬했다. 지금은 그때의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지만 여전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산다.
그렇게 평생 행복하게 살다가 60세 되던 해,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시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집안에 우환도 겹쳐 마음에 어려움이 컸죠.”
이 무렵 우 어르신은 딸의 간곡한 청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다. 이는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됐다. 현실적인 불안과 갈등은 남편과 함께 한 17년간의 신앙생활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남편과의 사별은 우 어르신의 두 번째 전환점이다. 사별 후 외로움과 허전함이 엄습했지만 이번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우 어르신은 결혼과 함께 접었던 꿈을 한 겹씩 펼치기로 결심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늘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했던 어르신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심적 허전함을 공부로 달랬다. 늘 하고 싶었지만 미루어오던 공부였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멈추지 않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 평생교육사 2급, 미술심리치료사 2급, 시니어종이접기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우 어르신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대학원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진 것을 실제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숙명여대 대학원에 입학하게 됐죠.”
그저 공부하는 것으로 머물 것이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우 어르신의 설명이다. 85세의 나이에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하는 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바로 ‘시니어 패션’이다.
결혼해서 아무것도 못하던 새댁이 단 한 가지 눈에 띄는 솜씨를 지닌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옷 만들기’였다. 시아버지의 한복을 뜯어가며 바느질 순서와 바느질법을 익혔다. 그리고는 새 옷을 지었다. 사실 여고생 시절부터 품이 맞지 않은 교복을 밤새 자르고 꿰매어 고쳐 입을 정도로 옷에는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숙응 교수는 “패션에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시다”며 “한 달에 두 번 있는 세미나와 과제발표, 매 학기마다 가는 국내외 주거시설 탐방 등 어느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첫 번째 과제로 ‘노년층의 여가생활’에 관한 리포트도 제출했다. 노인의 여가 생활이 패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으로 우 어르신만의 시각이 담겼다.
김 교수는 “현대 노년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년층 개개인의 노후 대비는 필연적”이라고 덧붙였다. 100세시대를 앞둔 현대의 노년층은 다른 연령층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한 단계일 뿐 성급하게 인생을 정리하거나 무력하게 생활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 어르신은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교회에서나 대학원에서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극 아이콘’으로 불리는 우제봉 어르신. 50대 지인들도 벌써부터 “어르신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맑은 피부와 꼿꼿한 허리, 범상치 않은 패션 감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총명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이번 달, 1급 미술치료사 자격증 시험을 앞둔 우 어르신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어르신들 이야기는 틀림없어요. 생각했다면 이제는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머물지 말고 시작하세요.”
2014년 11월 07일 백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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