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⑮
베데스다 연못(예루살렘)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한복음 5:1-2, 5)
성지답사를 하다 보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나름 발휘했던 놀라운 상상력이 현장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답사객들은 자기가 그려왔던 마음속의 가짜 그림들을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진품으로 바꾸어 걸기 위한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기념사진 한 장 남겨가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베데스다 연못이 우리 마음속의 그림을 바꾸어 걸어야 할 장소 가운데 한 곳이다.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양문(또는 사자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 약 40m쯤 걸어가면 오른편에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시원한 녹색의 정원이 답사객들을 반긴다. 정원을 거쳐 예쁘장한 교회(성 헬레나)를 지나면 곧바로 베데스다 연못을 만나게 된다.
베데스다 연못의 기원은 주전 8세기, ‘윗수도 샘물’(Upper Pool/사7:3, 왕하18:17, 사36:2)로 올라간다. 성전산 북쪽에서 기드론 골짜기를 향해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아 빗물을 담수했던 곳이다. 지금도 베데스다 연못에서 구약성경 시대 계곡을 막았던 댐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주전 200년경에 이르러 베데스다 연못은 대제사장 시몬에 의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 기존에 있던 연못 남쪽에 새로운 인공 연못을 만들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연못이 바다처럼 넓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후부터 예수님 당시까지 베데스다 연못은 구약시대의 댐을 중심으로 두 개의 연못이 존재했다. 그리고 베데스다는 헤롯 대왕(주전 37~주후4)이 근처에 새로운 연못(이스라엘 연못)을 만들면서 연못의 기능보다는 병을 고치고, 이방 종교적 풍습들이 행해지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베데스다의 모습은 그 원형과는 사뭇 다르다. 구약의 댐을 중심으로 연못 일부만 남아있고 대부분은 흙으로 메워져 있다. 다만 발굴 작업을 통해 커다란 연못의 실체는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베데스다를 찾아가서 보게 되는 것은 남쪽 연못의 일부와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던 기념교회, 그리고 연못 가운데 십자군 시대에 세워졌던 기념교회의 흔적이다.
그런데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놀라운 요소들이 많은 곳이 베데스다다. 첫째로 연못의 깊이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베데스다를 찾는 이유는 이곳이 요한복음 5장 사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물속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 고침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요5:4). 그런데 우리가 이 연못을 보고 놀라게 되는 것은 성경 사건의 배경이 되기에는 연못이 너무나 깊다는 것이다. 병이 치유된다 해도 연못이 너무나 깊어서 물속에 빠져 죽을 정도로 깊다. 그러니 이 사건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놀라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리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많은 분은 단순히 믿음으로 이 의문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해결하기 전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면 연못 동편에 웅덩이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나의 웅덩이에 ‘요한복음 5장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곳’ 이라는 녹색 판에 하얀 글씨가 쓰인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결국 그 깊은 연못의 물이 동했던 것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조그만 웅덩이의 물이 동했던 것이다.
정작 우리를 더욱 놀라게 만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베데스다의 모습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다. 예수님이 이곳 베데스다 연못을 지날 때는 마침 유대인의 명절 기간이었다(요5:1). 명절에는 외국과 이스라엘의 각 지방에서 15~20만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유명한 장소로 소문난 베데스다 연못으로 몰려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이곳은 원근 각처에서 몰려든 각종 병자로 넘쳐났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을 지날 때, 이곳은 자비를 구하는 유대인들과 병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수님은 그때, 이곳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셨을까?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왜 하필이면 38년 된 병자와 눈을 마주치셨을까? 예수님이 병자에게 하신 질문과 대답, 병자가 예수님께 행한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비를 베푼다는 베데스다의 의미,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양들, 자비를 얻기 위해 몰려든 종교인들과 병자들, 38년 된 병자와 예수님의 대화, 그리고 38년 된 병자의 절규 모두 한 장의 그림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5장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곳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 양문 곁에서, 그리고 은혜와 자비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자비를 상징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 무엇보다도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신 주님의 질문과 이에 답하는 38년 된 병자의 절규가 귀에 꽂힌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5:7)
38년 동안 친구도, 이웃도, 종교인도, 사회도, 국가도 이 병자를 방치했고 그에게 무관심했다. 38년 동안 이 병자에게 쌓인 것은 무관심에 대한, 사람과 사회를 향한 분노뿐이었다. 주님은 이 사람의 분노를 통하여 나와 교회와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이 병자의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서 있는 심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