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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03월24일 [화엄사 흑매&하동 십리벚꽃길&쌍계사&불일폭포] 탐방일정
회비 41,000원 3월19일 송금 완료, 36번 좌석
산 : 구례군 화엄사(華嚴寺)
산행코스: [ 화엄사 입구~화엄사~구층암~의상암 野梅~연기암~청계암~미타암~내원암~금정암~지장암 뒤편 올벚나무~화엄사 입구 ]
(약 5.9km)
일시 : 2023년 03월 24일(금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2시간 소요)
06:50~11:00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1 번지에 있는 화엄사 입구 주차장으로 이동 (291km) [4시간10분 소요]
11:00~11:10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1 번지에 있는 화엄사 입구 주차장에서 탐방 출발하여 화엄사로 이동
11:10~11:20 화엄사의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4사자3층석탑(국보 제35호) 등 국보 3점과 각황전과 영산전 사이에 있는 흑매(黑梅)를 탐방
[화엄사(華嚴寺)
사적 제505호.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이다. 1979년 황룡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기록에 754년(경덕왕 13) 황룡사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화엄사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했다고 되어 있다.
1424년(세종 6)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1702년(숙종 28) 중건했다. 가람배치는 대웅전 앞에는 동서 5층석탑이 비대칭으로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절은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화엄사상을 펼쳐나간 곳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에는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4사자3층석탑(국보 제35호) 등 국보 3점을 비롯하여 대웅전(보물 제299호) 등의 17세기 건축물이 남아 있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화엄사의 봄엔 특별한 ‘문화재급’ 볼거리가 한 가지 더 생긴다. 각황전 앞의 홍매화. 이 홍매화 나무는 조선 숙종(1674~1720) 때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의 나이만 300살이 넘으니 화엄사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사에 비하면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오랜 세월이다. 이 홍매화가 특별한 것은 수령뿐만이 아니다. 오랜 불심이 꽃에 깃든 덕분일까, 다른 홍매화들에 비해 유난히 검붉은 꽃 때문에 ‘흑매화’로 불리는 유일한 나무이다. 덕분에 봄이 오면 이 흑매화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매화는 나무를 심은 이나 사연, 지명에 의해 그 이름이 제각각 달리 불리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백양사의 고불매와 선암사의 청매화(선암매), 산청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단속사지의 정당매 등이 있다. 마치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듯 각각의 나무에게 이름을 붙이고 친근하게 불러주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매화 사랑이었던 것이다.]
11:20~11:25 구층암(九層庵)으로 이동
[茶禪一如 향기 품은 구층암 봉천암
대웅전을 지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대숲을 벗어나면 흑백 사진에서 보던 작은 암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층암(九層庵)이다. 1961년 각황전을 중수할 때 주위에 널려 있는 부재를 수습하여 세운 삼층석탑이 원래부터 제자리 있었던 것처럼 당우와 조화를 이룬다. 댓돌 위에 신발이 여러 켤레다.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나 들러 차를 마시고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다실이며 법이 오가는 설법전이다.
화엄사는 차(茶)가 가장 먼저 들어오고 사사자삼층석탑 공양인물상의 손에 든 공양물을 차로 보는 등 차 성지이기도 하다. 각황전 뒤편에서부터 구층암 봉천암 멀리 차일봉 능선에 이르기까지 야생차 산지다. 구층암은 ‘차 성지’ 화엄사의 오늘이다.
구층암은 한국불교사에 이름난 선원이었다. 1900년 청하탄정선사가 설선회를 설립하여 경허선사를 모시고 선원을 열었으며 근세 한국불교사 최초의 비구니 선맥(禪脈)으로 존경받는 법희스님이 용맹정진했다. 그 역사와 전통을 이어 전국적으로 이름난 선원으로 만든 주인공은 도광스님이다. 스님은 1969년부터 1975년 7월까지 구층암과 봉천암에 선원을 개설하여 생사를 걸고 정진했다. 가행정진하면서 고무신을 신고 걸망을 짊어지고 화주하여 선원을 외호하기도 했다. 스님은 담양 보광선원을 운영 할 때도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며 선원 운영 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대중의 수행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전강스님이 한 시절 조실을 지내고 일타스님도 방부를 들였던 전국에 이름난 선원이었다. 일타스님이 구층암에서 정진하던 당시 모습을 정찬주의 소설 <인연>에서 만날 수 있다.
“일타는 화엄사 선방에 하안거 방부를 들였다. 화엄사는 쌍계사와 달리 비구 대처 간의 시비가 전혀 없었다. 관광객이 드문드문 들르지만 수행하기에 아주 조용하고 기운이 좋았다. 더구나 선방으로 운용되는 구층암은 대웅전 바로 뒤 백여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인데도 경내와 달리 깊은 산중처럼 적막했다.
구층암의 천불전이나 요사채도 대웅전처럼 400여 년 된 건물이었다. 그러니 구층암 선방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단순한 방이 아니라 지리산 산신령이 드나들고 조왕신이 상주하는 신령한 공간이었다. 구층암 선방 너머로는 지리산 계곡물이 소리쳐 흐르고, 천불전 계단 옆에는 모과나무 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리산에 자생하는 모과나무였다. 고목이 되면 목재로 사용하는 듯, 천불보전 앞 요사채를 받치고 있는 울퉁불퉁한 모과나무 기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타는 모과나무 기둥 사이의 마루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구층암에서 서른 걸음 거리에 자리한 암자가 봉천암인데, 이곳에 전강이 화엄사 선방의 조실로 머물고 있었으므로 화엄사 스님들은 봉천암을 조실채라고 불렀다.“
구층암은 그 이전에도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대들보였다. 정법(正法)이 퇴색하던 조선 후기에는 강원으로 법을 지켰으며 조선불교가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던 구한말에는 60인이 수행하던 백련결사 도량이었다.
구층암과 함께 있는 봉천암도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 봉천(鳳泉) 이름에서 보듯 차(茶)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연기조사가 천축에서 마야차를 가져와 시음하고 화엄전(華嚴田)을 만든 것이 지리산 차의 시초다. 음력 2월 28일을 연기존자 기일로 삼아 사부대중과 신도들이 대웅상적광전에 모여 다례제를 지내며 추모 행사를 했으며 차 잎 따는 시기가 되면 스님들은 화엄전으로 가서 울력을 했다. 어느 날 화엄전 뒤 숲에서 환한 빛이 나는 것을 본 한 스님이 다가가 보니 봉황이 내려와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샘을 만들면서 봉황이 왔다는 봉래암(鳳來庵)이라 이름 붙였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헌종 12년(1846) 후봉선사(嗅峰禪師)가 그 터에 중창하며 봉천암(鳳泉庵)이라 명명(命名)하고 운수납자가 용맹 정진하는 선원(禪院)으로 삼았다.
도광스님은 당신이 정진했던 구층암에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은사 동헌스님을 병간호하며 극진히 모셨다. 1983년 9월 구층암에서 동헌스님이 입적하고 이듬해 9월 도광스님이 이 곳에서 이생에서의 몸을 벗었다.]
[구층암 옆길로 50m도 채 안 가는 거리에 의상암(義湘庵)이 있다. 스님들 이외에는 의상암이라는 암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의상암 아래에 네모난 작은 연못이 있고, 이 연못 바로 앞에 천연기념물 매화, 일명 야매(野梅)가 있다. 수령 450년 이상. 천연기념물 제 485호로 하얀 매화, 즉 백매(白梅)다. 오직 한 그루인데, 웬만해선 만개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11:25~11:30 모과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구층암(九層庵)의 요사채와 구층암 옆에 있는 의상암(義湘庵)의 천연기념물 제 485호 야매(野梅, 白梅라고도 부름)를 탐방
11:30~11:45 연기암(緣起庵)으로 이동
[화엄사에서 4km 가량 떨어진, ‘치유의 길’ 끝에 자리한 연기암은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전에 먼저 세웠던 암자로 알려져 있다. 화엄사의 모체인 셈이다. 이 곳에 서면 구례읍과 섬진강이 내려다 보인다.
1980년대 은사 도광스님을 이어 화엄사 주지를 맡은 종원스님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연기암을 다시 중창했다. 암자를 일으키면서 길도 새로 냈다. 암자 옆으로 난 샛길에 차가 다니는 길을 내면서 연기암에 이어 암자가 새로 들어섰다.
연기조사는 서기 544년 연기암을 창건하고 이후 화엄사 연곡사 대원사 귀신사 등을 창건하여 지리산 곳곳에 화엄사상을 펼쳤다고 한다. 화엄사적지에 나오는 이 창건연대는 정유재란으로 화엄사의 모든 기록이 소실된 뒤 쓰였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창건주 ‘연기조사’는 공인된 역사다.
1978년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발문에 황룡사 연기(緣起)법사가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논란이던 ‘화엄사 창건주 연기법사’는 공식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신라 수도 경주 황룡사와 백제권역 지리산 화엄사의 관계, 화엄사가 차지하는 위상도 밝혀졌다. 자현스님(중앙승가대학 교수)은 2020년 12월 발표한 ‘화엄사 사적 창건기록의 타당성 분석’에서 “연기는 8세기 중반에 유행한 황룡사의 자장계 화엄의 전승자이며, 국가적인 후원 하에 호남의 안정과 신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황룡사를 떠나 호남에 화엄사를 개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6·25전쟁 당시 불탄 연기암을 1995년 원응당 종원스님이 복원했다. 대웅상적광전, 문수전, 관음전, 원응당, 적멸당 등을 지었다. 종원스님은 은사 스님을 이어 화엄사 주지를 맡아 일주문 만월당 원융료 청풍당 등을 중창하여 가람을 일신했다.
은사 스님을 이은 현 주지 만해스님은 연기암에 또 다른 세상을 펼쳤다. ‘한 번 돌리면 경전 한 권을 읽는 공덕과 같으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는 마니차(윤장대)를 만들고 화엄성지 화엄사와 지리산이 갖고 있는 의미를 살려 책을 든 대형문수보살 입상을 세웠다.
그리고 최근에는 화랑을 개원했다. 가람이 문화도량이어야한다는 주지 스님의 원력을 담았다. 연기암 문수갤러리 첫 전시는 법관(法觀)스님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열고 해외를 비롯 수많은 전시회에 특별 초대될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면서 은둔의 수행자다. 선과 점만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개척해온 스님은 추상화 단색화 선화 화가 승려 수행자로 불린다.
연기암을 나와 노고단 방향으로 올라가다 차일봉 아래로 방향을 튼다. 이정표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다. 외부의 방문을 불허하며 꼭꼭 숨은 용혈암이다. 작은 집 한 채만 있는 이름 그대로 암자다. 스님 한 분이 수행 중이다. 홀로 밥하고 빨래하는 불편을 감내하며 인적이 끊긴 토굴에서 오직 참선 정진에 매진하는 수좌다. 몇 년을 있겠다는 기약 없이 공부에만 매진한다.]
11:45~11:50 연기암(緣起庵)의 마니차(높이 10.5m로 국내 최대 윤장대)와 문수보살상(높이가 13m에 달하는 국내 최대 문수보살상)을 탐방
11:50~11:55 청계암(聽溪庵)으로 이동
[연기암에서 화엄천 다리를 지나면 청계암이 나온다. 청계(聽溪),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법당과 요사채만 있는 작은 암자다. 1992년 종경스님이 요사채를 창건했으며 현재는 화엄사 주지와 초심호계원장 등을 역임한 종단 어른 종걸스님이 주석한다.]
11:55~12:10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동
[미타암 입구에는 석조 불상 세 기가 서 있고 그 앞에 연못이 있다. 2001년에 복원했다. 비구니 암자다. 원래 비구니 스님들은 금정암에 있다가 미타암으로 옮겼다 한다.]
12:10~12:20 내원암(內院庵)으로 이동
[미타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임도변에 내원암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 석불좌상이 앉아있는 내원암은 다른 암자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다.]
12:20~12:25 금정암(金井庵)으로 이동
[금정암(金井庵)은 화엄사를 대표하는 산내 암자다. 조선 명종 12년(1562) 설응선사가 창건하고 고종 때 칠성각을 건립했다. 1991년 화재로 소실 된 후 각심스님이 1993년 중건하고 1998년 법당과 요사채를 중건했다. 화엄사 주지를 지낸 종렬스님이 중창했다. 화엄사가 한눈에 바라 보이는 곳에 있고 예전에는 선원의 역할을 했다.
금정암은 이름 그대로 암자 석축 아래에 보호각으로 덮인 샘이 있다. 하루가 바뀌는 시간인 자시(子時)에 물을 마시면 기운이 오르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금정암은 당우들이 화려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3층 목탑형식을 띤 극락보전이다. 대웅전격인 반야보전의 화려한 단청과 아름다운 문살 등도 눈길을 끈다.]
12:25~12:30 금정암(金井庵)의 본전인 반야보전(般若寶殿)과 3층 목탑 형식의 극락보전(極樂寶殿)을 탐방
12:30~12:40 지장암(地藏庵)으로 이동
[화엄사와 흑매화를 아는 이는 많아도 지장암 뒤편에서 350여 년 동안 자리를 지킨 올벚나무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올벚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8호라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벚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할 법도 하지만, 올벚나무는 의연하게 봄기운을 흰 꽃에 담아낼 채비만 하고 있다.
여기에 올벚나무가 심어진 사연이 재미있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화엄사를 중창한 벽암스님이 심은 것이다. 병자호란(1636~1637년)이 끝난 후 조정에선 유사시에 대비하여 벚나무를 많이 심게 하였다. 벚나무 껍질은 창이나 칼의 자루를 만드는 귀중한 군수자원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한 벽암대사도 이를 잘 알았기에 화엄사 주변에 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때 심은 나무 중에 3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홀로 살아남은 게 바로 이 나무이다.
“한 100년 전까지는 이 나무 말고도 한 그루가 더 있었는데, 적묵당을 보수할 때 베어서 마루를 깔았지요.”
지나가던 스님은 마지막 남은 올벚나무의 외로움이 안타까운 듯 바라본다. 어쨌든 무기와 건축의 재료로 쓰려던 본디 목적에 맞게 쓰였으니 그 희생이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버티고 지내온 세월이 아깝고, 그 빈자리가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님은 “식목일 즈음이면 우리 피안앵이 하얗게 될 것”이라며 그때도 꼭 오라고 한다. 이때는 흑매화가 지기 직전이자 올벚꽃은 피기 시작하는 시기여서 화엄사가 가장 화려해지는 때란다.
흔히 올벚나무를 피안앵(彼岸櫻)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열반세계에 도달하는 나무’란 뜻이다. 그 오랜 세월 봄마다 세간의 이목을 모두 받는 흑매화를 언덕에서 바라보면서도 피안앵은 시기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을 것이다. 100여 년 전 유일한 벗이 잘려나가는 광경을 보면서는 마치 자신의 몸이 잘리는 듯 괴로워했으리라. 인고의 세월을 지켜온 올벚나무에게서 해탈한 고승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12:40~12:45 지장암의 천연기념물 제38호 올벚나무(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벚나무)를 탐방
[천연기념물 제38호인 올벚나무는 수령이 약 35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화엄사 지장암 뒤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벚나무는 꽃자루와 암술대에 털이 있고 꽃잎들이 항아리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름의 '올'이라는 접두사는 다른 것보다 빠르다는 뜻으로, 다른 벚나무 종류보다 빨리 꽃을 피운다.]
12:45~13:00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1 번지에 있는 화엄사 입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화엄사 탐방 완료
13:00~13:40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1 번지에 있는 화엄사 입구 주차장을 출발하여 경남 하동군 화개로 525 번지에 있는 쌍계사 입구로 이동 (25km) [40분 소요]
산 : 하동군 [쌍계사&불일폭포&화개 십리벚꽃길]
산행코스: [ 쌍계사 입구~쌍계사~불일폭포 왕복 4.6km~쌍계사 십리벚꽃길~(도보 이동 6.2km)~화개장터~화개면사무소 ] (도보 10.8km)
일시 : 2023년 03월 24일(금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 소요)
13:40~13:50 경남 하동군 화개로 525 번지에 있는 쌍계사 입구에서 탐방 출발하여 쌍계사(雙磎寺)로 이동
13:50~14:00 월정사 팔각9층석탑과 유사한 모양의 석탑으로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9층석탑,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魚山)’이란 불교 음악을 작곡한 곳인 팔영루(八泳樓), 고려후기 승려 진정국사가 창건한 사찰건물인 팔상전(八相殿)과 그 안에 있는 보물 925호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와 보물 1365호 팔상탱(八相幀),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 현판 글씨와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 현판 글씨를 추사 김정희가 쓴 금당(金堂=六祖頂相塔殿)에 모셔진 육조정상탑(六祖頂上塔), 최치원이 쓴 탑비의 서체가 우리나라 금석문 가운데 으뜸인 국보 47호 진감국사 대공탑비(眞鑑國師 大空塔碑), 조선 인조 10년(1632) 다시 고쳐 지은 보물 500호 대웅전(大雄殿)과 그 안에 모셔진 보물 1364호 삼세불탱(三世佛幀)과 보물 1378호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사보살입상(四菩薩立像), 고산 스님이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본따 만든 쌍계사 금강계단(金剛戒壇)과 금강계단 뒤편의 삼존마애불을 탐방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 (722년) 삼법 대비 두 화상께서 선종의 육조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渴花處 :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봉안하라" 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찿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 (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진감 혜소 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 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를 널리 보급 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옥천사'가 지리산에 두 곳이 있으므로 '쌍계사' 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 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9점(대웅전, 쌍계사 부도, 팔상전 영산회상도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팔영루, 팔상전 등 20점의 지방지정 문화재를 포함하여 총 30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의 암자가 있고, 조계종 25개 본사 중 제 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진감국사 대공탑비(眞鑑國師 大空塔碑)는 885년(헌강왕 11) 헌강왕이 입적한 혜소(慧昭)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어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887년(진성여왕 1)에 완성되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
쌍계사는 차(茶)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도의국사와 동시대에 활약한 진감선사가 육조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최초로 전법한 도량이자 차의 발생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이다. 그러므로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 진다.
현재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혜능선사의 정상(頂相:두개골)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 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과 금강계단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을 이어온 종합수행 도량으로서 쌍계총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리산 자락과 쌍계계곡, 쌍계사가 한눈에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템플스테이관은 2018년에 완공되어 최신식 쾌적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하동의 명소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14:00~14:50 불일폭포(佛日瀑布)로 이동
[높이 60m, 너비 3m.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는 10경(景)의 하나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의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쌍계사 계곡에 위치하며, 쌍계사 북쪽 불일평전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의 물은 쌍계사 계곡을 지나 화개천으로 흘러든다. 폭포의 모습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하며, 폭포수 옆으로는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절벽이 있다.
절벽 끝에는 신라 말기 진감국사가 창건한 불일암이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있다. 폭포수 위에는 5색 무지개가 자주 떠오르며,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냉기를 느끼게 할 정도로 시원하여 여름철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입구에는 야영장 및 숙박·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위에는 쌍계사와 부속암자인 국사암·칠불암 등이 있으며, 특산품으로 40여 종의 약초를 배합하여 만든 불로주가 유명하다. 화개면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지방도가 나 있다.]
14:50~15:00 사진촬영
15:00~15:50 쌍계사를 거쳐서 쌍계사 입구로 회귀
15:50~17:20 화개 십리벚꽃길을 걸어서 화개장터로 이동
[화개 십리벚꽃길은 흔히 ‘혼례길’이라고 부른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 남녀가 꽃비를 맞으며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이 꽃길은 낭만적이고 인상적이어서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다.]
17:20~17:30 휴식
17:30~17:40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71-9 번지에 있는 화개면사무소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7:40~21:50 "좋은사람들" 버스로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71-9 번지에 있는 화개면사무소를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이동 (307km) [4시간10분 소요]
화엄사 암자 탐방 안내도
[쌍계사&불일폭포&삼신봉] 지도
하동 십리벚꽃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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