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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화요 산행을 따라 가기 위해서 출전 준비를 하는 요즘 07 시 전후엔 우리집 거실로 은쟁반 같은 달님이 정신 없이 밀고
들어 오신다.
따끈한 코피 한잔 끓여서 달님과 시공을 초월한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뿔싸 어느새 약속 시간이 임박 하다.
난 일단 뛰었다 하면 나도 모르게 군바리 시절 배웠던 장교 단가 라는 군가를 소리 높여 부른다. 남들이야 미쳤다고 하건 말건.
숨을 헥헥 거리면서 갠신히 오리역에 도착하여 여러 산벗님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내 뒷편에서 주로 구성에서 탑승을 하시던,
우리 느림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지존의 포토 제닉이신 텔미님께서 화려한 광배와 함께 그 모습을 나투신다.
안즉은 나이가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텔미님이 나타 나시자 경포님께서 눈이 화경처럼 커 지면서 마치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양놈 지갑을 줏어 든 사람 처럼 생침을 꿀꺽이는 소리가 엄청 요란하다.
역쒸 경포님은 여성분을 바라 보는 심미안이 빼어 나신 분 이시다.
텔미님은 느림보 원년 오리지날리 멤버라고 하시는데 강 대장님 아파트에 차를 파킹 하시고 걸어 오셨다고 한다.
얼굴 윤곽선이 영화 배우 김 지미를 꼬옥 빼어 닮은 안젤라님과 함께 텔미님은 나 보다 딱 한살 누님 되신다.
난 이 두 분을 뵈올 때 마다 늘상 기분이 좋다. 왜냐구요?
아흔을 넘기신 우리 아버님을 비롯하여 제 주위의 노인네들을 유심히 살펴 보면 자신 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수를 다 하시고
돌아 가셨다는 부고를 접 하면 몹시도 슬퍼 하시면서 애통해 하시는데 이는 돌아 가신 분들이 안타까워서 그리 한다기 보다는
이제는 혹시 자기 차례가 아닌 가 하는 막연한 염려 때문이란 걸 난 요즘에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나 보다 물경 한살이나 더 나이를 많이 먹으신 두 분 누님께서 저리도 젊고 곱다는 것은 최소한 나라는 인간도 일년 정도는 나이를
더 먹어도 아직은 괜찮지 않을 까 하는 자위(마스터베이션을 뜻함이 결코 아님)를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보기 때문이다.
요즘 길을 가다 보면 높다란 철제 건물에 각종 타이어를 잔뜩 쌓아 놓고는 앗! 신발 보다 싼 타이어란 현수막을 걸고서
자동차 타이어를 개값(?)으로 판매하는 가게를 종 종 볼 수가 있다.
지금은 컴퓨터로 조정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손 쉽게, 새 타이어를 장착했을 경우엔 필수적으로 하는 작업이 타이어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원심력의 쏠림 현상을 조정하는 휠 밸런스와 토우잉과 캠버를 조정하여 타이어를 전면에서 보았을 때와 윗면에서
보았을 때의 기울기를 잘 정열하는 휠 얼레인지먼트 두 가지가 있다.
위의 두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으면 차체의 떨림 현상이나 타이어 편마모가 발생하는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기술이다.
중국 어느 땅에 수레바퀴를 전문으로 장착하고 수리하는 노인이 한 분 있었는데 어느 날 지체가 높은 대감댁 뜰에서 수레바퀴를
수선하고 있노라니 사랑채에서 대감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평생 읽어 봐야 배울 것도 없는 헛껍띠기 지식을 읽어서 무신 소용이 있남.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온 이 한마디를 줏어 담을 겨를도 없이 뿔따구가 머리 끝 까지 난 대감이 하인들을 시켜 이 노인을 포박하여
무릎을 꿇리곤 불호령을 내린다.
일자 무식인 네 놈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면 당장 죽은 목숨이란다.
소인은 일평생을 수레바퀴를 고치는 일을 하였던 지라 수레바퀴에 관해선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를 하지만 이 업을
가업으로 계승키 위해서 제 자식놈을 여러 해나 데리고 다니면서 그 기술을 전수해 주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도 제
자식은 수레바퀴를 헐겁지도 않고 뻑뻑하지도 않게 즉 다시 말해서 찰떡 속궁합 같이 제대로 삽입하는 기술을 올바로 터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참고로 어떤 분의 말씀에 의하면 문 창호지를 뚫을 때나 여차직 하여 사비비 용이치 않을 경우엔 침을 약갼
발라 주면 아주 손 쉽게 캬 캬.)
이런 사소한 기술을 직접 눈 앞에서 가르쳐도 그 배움의 길이 멀고도 먼데 대감님이 지금 읽고 계신 그 책이란 것은 수십 수백년
전 어느 때 어떤 사람이 글로서 자신의 뜻을 옮겨 놓았을 뿐이지 않겠습니까?
껍데기 지식을 터득하고 있음이 아니고 그 무었이겠습니까?
대감께서 버선발로 방문을 박차고 나와선 이 노인의 포박을 손수 풀어 드리곤 깊이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고 합니다.
요즘 서점엘 가 보셔요 책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글구
막상 제목이 그럴듯 해서 혹시나 하고 사 보면 남의 글 베끼거나 인용하는 내용으로 온통 도배를 하지 않습니껴?
오르가즘을 모르는 할머니 쎅스와도 가튼 저룬 책 보단 솔직히 말해서 실화를 근거로 한 자전적 돌삐 소설이 헐 잼나지 않아요?
으 으 음 참고로 전 사탕,쵸콜렛,껌,빵 부스레기를 비롯하여 과일 나부랭이 같은 건 보기만 하여도 우선 짜증이 납니다.
쐐주와 커피에 이어 껄쩍지근한 안주꺼리를 마니 마니 좋아 합져. 흐 흐 다음 산행 기대 만땅.
실화 소설 한 편만 더 올려 보고 반응이 션찬으면 한번 클릭하는데 천원씩을 받든지 어쩌던지 해야지 무어.
잔설이 꽤나 험상궂어 보이는 남덕유산 능선길을 하염 없이 오르다 보니 리챠드 버튼과 크린트 이스트웃드가 열연한
독수리 요새를 연상시키는 양지 바른 바위 봉오리 아래서 맛난 점심상이 펼쳐 진다.
오늘은 한 때 분당 일대 요리업계를 완죠니 평정 하셨던 경자 언니께서 들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운 특미김으로 직접 밥을 싸선
여러 산우님들의 입에 직접 쑤셔 넣어 주신다. 역쒸 경자 언니 다운 솜씨 이시다.
우리 조상들은 진품을 뜻할 경우엔 명사 앞에 참 이란 접두사를 흔히 쓰고 쨕퉁일 경우엔 개 라는 접두사를 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참기름이 들기름 보다 한 수 위인 기름으로 알고들 있지만 근쟈에 들어 선 이 들기름의 맛과 향 그리고 인체에
유익함이 널리 알려 지면서 들기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빨치산 출신이었던 작가 이 태(본명 이 우태)님 께서 쓰신 남부군이란 책을 읽어 보면 의약품이 귀한 빨치산들은 산중에서
총상이나 창상을 입었을 경우엔 구들 구들하게 굳혀 두었던 쇠기름을 발랐다고 하는 반면에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 되었던
실존 인물이신 권 경사님의 증언에 의하면 비교적 물자 구입이 용이하였던 경찰관들은 들기름을 필수품으로 갖고 다니다
총상이나 창상을 당했을 때 수시로 발라 주었다고 한다.
염증을 유발하는 찢긴 상처 치유엔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념이란 모호한 기치 아래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태백산맥의 어느 한 산줄기에서 머언 먼 옛날 벌어 졌던 정녕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를 기억하는 이도,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는 지 아무도 모를 이야기 이긴 하지만.
이북 원산 인근에서 발원한 태백산맥은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우리 느림보님들이 지난 주에 산행을 하였던 태백산에서 남서쪽
으로 소백산맥이 이어 지는, 흔히들 말 하는 백두대간이 형성되고 태백산맥의 본 줄기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치 달아 불영계곡을
건너 청량산 일월산에서 다시 한번 더 용틀임을 하곤 내연산 보현산을 거쳐 부산 다대포 까지 이르는 그 길이가 500 킬로나 되는
우리나라 최장의 산맥이다.
일월산이 있는 경북 영양은 이런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한국 전쟁을 전후하여 엄청난 숫자의 빨치산들이 준동을 하였다.
지역 경찰 병력으론 역부족이여서 토벌작전은 주로 국군이 전담을 하였는데 생포한 빨치산들은 일단 농협 창고 같은 곳에 감금을
하였다간 심문을 하곤 죄질이 무거운 골수분자들은 즉결 처분을 하였다고 한다.
머리와 어깨에 요란한 구호가 적힌 띠를 두른 빨치산을 영양 경찰서 마당으로 호송을 하여선 한번에 열명 정도를 세워 놓곤
도열한 군인들이 소총으로 일차 사격을 하고 나선 움직임이 있는 자는 권총으로 관자놀이를 쏘아선 절명케 하는데 경찰서 마당
한켠에 있는 소방 망루에서 소총을 메고 구경을 하던 권 경사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 보고 싶은 욕심에서 마당으로 내려
오는 와중에 경찰 사찰 주임(지금의 경찰 정보과장)이 총살을 지휘하는 국군 소대장에게 경찰 사기를 위해서 마지막 총살형은
경찰 손에 맡겨 달라는 제안을 하곤 이내 소총을 맨 경찰들을 사선에 세우게 된다.
서서 쏴 자세로 소총을 들고 보니 권 경사의 사선에 든 표적물은 열 예닐곱 살 정도나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 있더란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사찰 주임에게로 달려 가서 사실은 잘 아시다 싶이 제가 지금 딸만 넷을 두고 있는 처지인데 도저히 비록 빨치산
이긴 하지만 나이 어린 소녀 아이에겐 총부리를 겨누기가 어렵다고 하니 옆에 있던 신참 경찰관에게 소총을 넘겨 주라고 한다.
요란한 총성과 히뿌연 화약 연기가 걷히고 나니 혈기 방장한 젊은 소대장이 지금 총을 맞은 빨치산 중에서 아직 살아 있어
일어 서는 넘은 천운이라 생각되어 살려 준다고 일갈하니 좀 전에 권 경사의 사선에 섰던 그 소녀가 허벅지에 피를 흘리면서
일어 서더란 것이다.
저 소녀를 치료하고 돌봐 주는 넘이 있다면 당장 장가 함 보내 주겠다고 하니 떡꺼머리 군인들이 한마디로 개떼 처럼 덤벼
들었다고 하는데 오 갈 데가 없는 이 소녀는 경무 주임 관사에서 식모 일을 하면서 우선 숙식을 제공 받다가 출중한 미모와 함께
재능과 언행이 너무도 준수한지라 얼마 후엔 경찰서장 관사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이 소녀의 재능을 아까워 하던 여러 사람들이
결국엔 중론을 모아서 읍내에 있는 농협에 취직을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성행하는 택배업 같은 전국적인 조직이 없던 그 시절에는 각 지방 마다 화물을 운송하던 중소 기업들이 상존해 있었는데
농협의 미곡 같은 걸 운송하는 일로 경북 포항에 근거지를 둔 한 운송회사 직원이 업무차 여러 번을 영양으로 출장을 와서 일을
보던 중 이 소녀를 눈 여겨 보아 두었던 가 보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을 시켜 주고 그 신상을 잘 돌 보아 주겠다며 간청을 하자 그 소녀의 장래를 염려 하던
지역 유지들이 중론을 모은 끝에 허락을 내려 이 소녀는 그 길로 포항으로 길을 떠나 버렸다고 한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더니 그 얼마 후에 있은 빨치산 즉결 처분이 있고 난 다음 날 아침에 거적으로 덮어 둔 시신을 확인해 보니
딱 한구의 시신이 모자라더란 것이다.
경비 전화로 인근의 면단위 지서에 두루 확인을 해 보니 어느 면소재지 지서장이 전화를 받더니 사실은 어제 늦은 밤에 온 몸이
피로 물 들어서 머리 부터 발끝 까지 온통 싯뻘건 한 인간이 엉금 엉금 기어 오길래 문초를 해 보니 총살형을 받았던 빨치산
이더란 것이다. 워낙이 기가 막힌 사연이여서
이 지서장께서 여기 까지 살아 온 것은 아무래도 하늘의 뜻 같으니 너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며 풀어 주었다는 것이다.
1974년 경에 경북 포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던 권 경사께서는 우연히 지방 유지들과 대담을 하던 중에 참으로 놀라운,
그 만이 알고 있는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다.
그 소녀를 데려 갔던 운송회사의 젊고 잘 생긴 청년은 그 회사 사장님의 자제분 이셨는데 결국엔 연분이 맞아 둘은 결혼하는
사이가 되었고 지금은 물론 엄청나게 큰 기업이 된 회사를 아버님으로 부터 물려 받아 회장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식 복도 많아
그 소녀는 이제는 여러 출중한 자제분들을 거느린 남 부러울 것 없는 훌륭한 마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임사 체험이란게 있다.
죽었다가 깨어난 것을 말하는데 이런 신묘한 일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그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저승길을 갔다 온 사람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우선 저승엘 가면 첫째로 물어 보는 말이 이승에서 무슨 일을 했냐는 것이요
이승에서 행한 행위 중에서 가장 혹독한 형벌을 받는 인간들이 바로 남의 헐벗고 배고픔을 돌봐 주지 않았던 수전노란 것이다.
허긴 이승에서 남에게 양식과 옷을 벗어 주는 자비 공덕이 으뜸이란 말이 빈말일 턱이 있겠느냐만 이 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면
남의 생명을 구해 주는 일이라고 한다.
청렴한 성격 탓에 비록 재물을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자식 복이 많아 이남 칠녀를 두었던 권 경사는 지금도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게 잘 사시고 있다. 가슴 아푼 일이라면
아끼고 사랑하던 내 큰누이를 지난 주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앞 세워 보내고 묻어 버리는 아픔을 겪긴 했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하기도 하거니와 한치 앞을 내다 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순천자는 흥 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명심보감의 글귀를 다시 한번 더 마음 속에 새기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뜻 깊은 일에 사용할 따름이다.
하산길은 언제나 킬리만자로의 고독한 표법 처럼 혼자서 청승 맞게 걸어 본다.
산행을 하노라면 가끔씩은 주위의 여성 산우님들 께서 돌삐의 옆지기는 미인 일꺼라는 인사 치례인지 괜히 해 보는 말인지 알 듯
모를 듯한 말씀들을 하신다. 난 쏙으로만 중얼 거린다.
예팬네 낯짜기가 반반하고 성정이 올바르면 집꾸석에서 예팬네랑 해종일 티비 보면서 나뒹굴일이지 미쳤다고 산악회엘 어슬렁
거리느냐구요? 우선 산엘 와서 혼자 걸으면 그너무 지긋 지긋한 잔소리가 없어서 넘 ㅐ 좋다.
무소의 뿔 처럼 혼자 걷는 재미 하나는 사실 쏠쏠한데 거의 평지길에 내려 왔다고 어설픈 판단을 하여 아이젠을 벗기 무섭게
엉덩 방아를 찧더니만 채 열 걸음을 못 가서 또 한번 더 우당탕 하고 자빠 지니 허벅지 안쪽 근육이 몽창 쥐가 나더니만 급기야
걸음 걷기가 불편하다.
사타구니에 밤송이를 찡군 넘 처럼 어슬렁 거리며 내려 오다간 어머나 또 털석 주져 앉다 보니 양쪽 다리에 힘이 없어 스틱에
힘을 과하게 주었나 보나 구렁이 알 같은 거금을 주고 산 스틱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난다.
부러진 스틱 쪼가리를 줏어 들면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타구니에 손을 쑤셔 넣고 잠시 쭈물딱 거려 본다.
휴우 다행히도 다마는 깨지지 않았다.
다마가 깨지면 난 살아 돌아 가도 이미 죽은 목숨이다.
겨울 눈길 산행은 구져 조신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합니다.
두발로님,도미니카님 그리고 손 희정님의 강건 하심을 기원하며 제 작은 정성을 이 세분들께 글로서 공양 올립니다.
다음 산행지인 홍천 가리산에서 세 분의 반가운 얼굴을 뵈올 수 있으면 울매나 좋겠습니껴?
탄천변에서 강구항의 박달 문어 돌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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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틱부러진덕에 다마는온전했네요 ㅋ ㅋ...?
뵙고싶은데... 제성의가부족한가봅니다.
겨울산행 안전이젤입니다.
다마가 안 깨지셔서 천만다행.............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끔 산행하면서 보면 젊어 보이시는분들이 실제는 60대인 거..............
여자분들도 그렇구요...............이상하지요?
돌삐님의 산행기를 읽으신 울님들..
담주 화요일 돌삐님 좋아하시는거 많이 싸 오셔요..
독자로써 최소한의 예의로 쐐주 한병도 잊지 마시구요..ㅎㅎ
두발로님은 다음주 울님들께 인사드리러 나올겁니다.
안단테님은 시간이 좀 걸릴거 같구요..
겨울산행=안전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