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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NO 839, 840,841 필독하시기 바람(SDA 배도의 역사)
여호와께 아뢰며 부르짖음
(민 20:16)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신 26: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삼상 7: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삼하 22: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왕상 17:20-21)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대하 6:19)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대하 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도다. (셀라)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 하나이다,
(시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시 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 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시 34:6, 15, 17)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 시는 도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 55: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 하시리 로다.
(시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로다.
(시 86:5, 7) 주는 선 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 이다.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 하시리 이다
(시 107: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시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 119:145-6)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 이다.
(시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 하시리 로다.
(잠 21:13)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사 19:20) 이것이 애급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렘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욜 1:14) 너희는 금식 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욜 3: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욘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계 10: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계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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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라 다만 믿기만 하면 된다.” 고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대들이 무엇을 믿어야 할는지 저들에게 물어보라. 그대들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율법에 대하여 사단이 꾸며낸 거짓말들을 믿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을 무력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위대하고 보배로운 은혜를 사용치 않으시며, 오히려 그분의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하여 그 은혜를 사용하신다.
과연 바울은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가? 그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러면 계명이 폐하였는가? — 결코 그렇지 않다.] ...
이로 보건대 율법도 [나의 자유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것이 되는가? — 결코 아니다.]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7-12)라고 말하였다. (1SM 347.1)
죄인이 율법을 바라볼 때에 그가 범한 죄들이 자기 자신에게 밝히 드러나며, 양심을 깨우치게 되며 정죄함을 받는다. 그의 유일의 안위와 소망은 갈보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데 있다.
그가 과감하게 허락들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분을 붙잡을 때에 그의 영혼에게 위로와 화평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는 “오, 하나님, 천부께서는 천부의 아들의 이름으로 천부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나이다.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무기력하고, 소망이 없는 영혼이로소이다. 오, 하나님,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나이다.”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1SM 365.3)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기 위하여 그 마음의 눈이 열린 자는, 사랑과 동정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폭군과 같은 존재로, 혹은 냉혹하신 분으로 나타나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기 위하여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나타나실 것이다.
그 죄인은 시편 기자와 함께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 103:13)실 것이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참된 품성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모든 절망이 그의 영혼에서 사라질 것이다. (1SM 371.2)
히스기야 왕에게 발라 준 무화과 반죽 — 히스기야 왕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에게 와서 죽게 될 것이라는 기별을 전해 주었다. 히스기야는 주님께 부르짖었으며, 주님께서는 그를 응답하셔서,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한 마디 말씀을 하시든가 거룩한 손가락으로 한 번 만지기만 하면, 히스기야 왕의 상처를 금방 낫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무화과 반죽을 만들어 그 상처에 바르라는 지시를 주셨다. 그 지시를 따랐을 때에, 히스기야 왕은 건강을 회복하였다. 주님께서 사용하라고 명하신 이 처방을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원고 29, 1911, 일반 원고. (2SM 300.1)
위험에 처한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가장 열렬한 믿음이 섞인 간절한 기도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의 어두운 그늘을 던질 때에 하나님께 매달려 의지하는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탄원을 듣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누구든지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편만한 죄악은 더욱 열렬한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분의 택하신 백성들을 오래 참아주실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그분께 부르짖는 저들의 원수를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SM 372.2)
“오 나의 하나님, 천부의 호감을 전혀 살 수 없을 만큼 무가치, 무가치합니다,”라는 것이 나의 부르짖음이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요청한다.
예수는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원하실 것이다. — 리뷰 앤드 헤럴드, 1881년 11월1일자. (3SM 148.2)
많은 그리스도의 목사들로 하여금 금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성회를 열어 그분을 만날 만한 때에 하나님을 찾게 하라. 그대가 지금 갈보리의 십자가 밑에 엎드려 있을 때에, 그분을 부르라. 스스로 모든 자만을 벗어 버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파수꾼으로서 낭실과 단 사이에서 애통하면서
“주님, 주님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의 기업으로 욕되게 마옵소서. 주님의 뜻대로 취하시되 주님의 백성인 우리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라고 부르짖으라. 오, 기도하라.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 원고 27, 1889. (3SM 189.4)
*** 廊室(낭실) : 성전본관의 서쪽에 있는 행랑
그리스도께서는 불신과 반역으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보응의 형벌을 재촉하고 있는 이 세상을 예루살렘이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다. 타락한 인류의 신음 소리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고민의 부르짖음이 그분의 입에서 새어나오게 하였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불행과 눈물과 피 흘리는 일에서 죄의 기록을 보셨고,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무한히 동정하셨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손으로도 인류의 저주의 물결을 물리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곧 인류의 유일한 도움의 근원이신 그분을 찾아 구하는 자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그분의 영혼을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에 내어 주고자 하셨지만,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오는 자들은 별로 없었다. (GC 22.1)
많은 사람이 로마교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죄인을 위하여 사람이나 천사의 중보가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참 빛이 그들의 마음에 비취게 되자,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리스도는 나의 제사장이시요, 그분의 피는 나의 제물이요, 그분의 제단은 나의 참회 실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맡기고, “믿음이 없은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구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는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GC 74.1)
율법이 사람에게 그의 죄를 나타내 보여 주기는 하지만, 죄를 치료해주지는 못한다. 율법은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해 주는 반면에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죽음임을 선고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죄의 선고와 더러움에서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그의 속죄 제물로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은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롬 3:25) 용서를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양자의 영을 받고, “아바 아버지”(롬 8:15)라고 부르짖게 된다. (GC 467.4)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내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 13)라고 권고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것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될 때,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고전 15:57)라고 부르짖게 된다. (GC 469.3)
만일 죽은 자들이 이미 하늘의 복락을 누리고 있거나, 혹은 지옥의 속에서 부르짖고 있다면 장래의 심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애매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 문제들은 보통의 두뇌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보급되어 있는 이런 교리에서 지혜와 공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거하다가 심판의 때에 그들의 사건을 조사받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는 명령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악인들은 고통의 장소에서 끌려나와 온 땅의 심판장에게 “저주를 받을 너희여 나를 떠나...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21, 41)는 선고를 받게 되는가? 아,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에 대한 수치스런 모독이다. (GC 549.1)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으로 영접될 때, 존경의 마음으로 기쁘게 외치는 소리가 공중에 충만해진다. 두 아담은 바야흐로 서로 만나려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팔을 벌리고 서서 인류의 시조, 곧 주님께서 창조하신 자이며, 창조주께 범죄하고, 그의 죄 때문에 주님의 몸에 십자가의 못 자국을 남기게 한 그 시조를 안으려 하신다.
잔인한 못 자국을 식별하고, 아담은 주님의 품에 안기려 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발아래 그 자신을 던지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친절하게 그를 안아 일으키시고, 그가 오랫동안 쫓겨나 있던 에덴의 본향을 다시 한 번 보라고 명령하신다. (GC 647.2)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껏 속아온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피차간에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였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연합하여 목사들에게 가장 혹독한 비난을 한다.
불충한 목사들은 순탄한 일들만 예언해 왔다. 그들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게 하고, 율법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을 핍박하도록 지도했다.
이제 그 목사들은 실망한 나머지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기만적 활동을 고백한다. 그때 무리들은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우리는 잃어버린바 되었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는 멸망을 받게 되었다”고 부르짖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짓 목사들에게 달려든다. 한때 그들을 가장 존경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 저주를 그들에게 퍼붓는다.
한 때, 그들에게 월계관을 씌우던 손이 그들을 죽이기 위하여 들려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기 위하여 사용되던 칼이, 이제는 그들의 원수를 멸하는 데 사용된다. 도처에 투쟁과 유혈의 참극이 벌어진다. (GC 655.4)
어떤 사람들은 고민하여 간구하는 이 일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무관심하고 부주의한 것 같았다. 그들이 주위에 있는 흑암을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흑암은 짙은 구름처럼 그들을 가두어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사람들을 떠나서 전력을 다하여 악한 천사들을 저항하고자 투쟁하고 있는 자들, 인내로써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그들 스스로를 돕고자 애쓰고 있는 자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급히 그들에게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천사들은 스스로를 돕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자들을 떠나갔으므로, 나는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기도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열렬히 부르짖고 있는 동안, 예수께로부터 나온 한줄기의 빛이 때때로 그들에게로 와서, 그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비추었다. (CCh 338.4)
이 빛과 영광은, 예수님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시고, 시련을 통과한 그 충성된 자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될 때까지 그들 위에 머물러 있었다. 무덤들이 열리자, 성도들이 나와서 불멸의 옷을 입고,
사망과 무덤을 이겼다”고 부르짖었다. 영광과 승리의 함성이 풍부하고, 음악적인 음성으로, 불멸을 입은 모든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동안, 그들은 살아남은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끌어올려졌다. (1T 184.1)
성화는 한순간, 한 시간, 혹은 하루의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 안에서의 계속적인 성장이다. 우리는 다음번에 올 투쟁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단은 살아있고 활동적이므로, 우리는 그를 저항하기 위한 도움과 힘을 얻기 위하여 매일 하나님께 열렬히 부르짖을 필요가 있다.
사단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는 굴복시켜야 할 자아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정지해 있을 장소는 없고, 우리가 도달하여 완전히 얻었다고 할 수 있는 지점도 없다. (1T 340.2)
승천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육체적 구조에 관하여 깨닫고, 시편 기자처럼, “내가 주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하심이라”(시 139:14)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식욕을 도덕적 지성적 능력에 굴복시켜야 한다. 육체가 정신의 종이 되어야지, 정신이 육체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1T 486.3)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랑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서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다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밤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 58:5~11). (2T 33.2)
그대는 이론과, 올바른 교리의 형태에 너무 만족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의 필요는 깨닫지 못하였다. 그대는 신앙의 영적부분을 소홀히 하였다. 그대의 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성령을 위해 부르짖어야 한다.
이것이 영혼 속에 있는 신앙의 생명과 능력이다. 이것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대의 구세주께 굳게 신뢰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2T 223.2)
가장 열렬하고, 열정적이고, 번민하는 기도, 다윗이 부르짖으면서 드린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시 119:40),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시 119:174)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주의 율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시 119:20). 이것이 훌륭한 시편 기자가 소유한 것과 똑같이 씨름하는 기도의 정신이다. (4T 534.2)
다윗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축복이 되게 하고자 시간과 재물을 위탁해 주셨지만, 이 선물들을 쓸데없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낭비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정에서 무서운 힐책을 받을 것이다. (4T 632.3)
말씀과 능력 -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하여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 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사람에게 잠재(潛在)하고 있는 선을 계발시키기만 하면 족하다는 관념은 치명적(致命的) 오해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다.... (FLB 96.5)
정로의 계단 - 하나님이 자애를 깨닫고, 그의 품성의 인자하심과 자부적(慈父的) 온정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하나님의 율법의 지혜로움과 공의로움을 깨닫고, 그 율법이 사랑의 영원한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르짖기를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롬 7:16).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첨가하여 심령의 고민과 절망 중에 말하기를,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라고 하였다.
그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순결과 의로 갈망하여 부르짖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하였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죄의 짐에 눌린 자들의 마음에서 발하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모든 부르짖음에 대한 대답은 다만 하나뿐이니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 함이다.(SC 19.1)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그분을 붙잡을 수 있는 권리를 그대에게 주셨다. 믿음의 기도는 순수한 종교의 핵심이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능력의 비결이다. 기도할 시간을 내라.
성경을 찾고 자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훈련에 맡길 시간을 내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접촉하며 살라. 그대가 이렇게 하자마자 그분께서는 그대를 붙드실 것이다. 강한 손으로 그대를 굳게 붙잡고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편지 38, 18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