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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박해림 작가(왼쪽)와 박정아 작곡가(사진=이철준 기자) |
“이 작품과 저는 인연이 길어요. 데뷔(2016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하기 전인 2014년 받은 텍스트거든요.
(뮤지컬 ‘모래시계’ 제작사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장우재) 대표님께서 ‘모래시계’ 대본집 두개를 주시고는 보조작가처럼
도와줄 수 있냐고 하셨죠. 그때부터 대본과 드라마를 보며 타임라인으로 정리했어요.”
박해림 작가는 뮤지컬 ‘모래시계’(8월 14일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의 출발점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8년을 함께 하면서 사명감이 컸다”며 어느 시대에도 발맞추는 “고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해림 작가의 ‘사명감’, 박정아 작곡가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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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박해림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
“송지나 작가님이 처음 이 작품 쓰셨을 때가 33살이셨대요. 제가 처음 ‘모래시계’의 대본을 받았을 때도 33세였어요. 누군가
33세에 만들어낸 작품을 당시 33세였던 ‘내가 잘 지켜야 겠다’ ‘망치지 말아야 겠다’ 사명감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은 있어요. 여전히 이 텍스트를 존경하고 있죠. 이 작품이 지금 잘 맞는 이야기면 좋겠고 앞으로도
(시대에 따라) 잘 수정돼 가면 좋겠어요. 그렇게 고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해림 작가의 말에 박정아 작곡가는 “창작자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관객들도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송지나 작가님의 드라마 원본 대본을 보고 느낀 무언가에 대해 창작자들이 일종의 책임감 혹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동의를 표했다.
“이전에 했던 작품들과 ‘모래시계’는 결이 다르긴 해요.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다음 텀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뮤지컬 ‘모래시계’는 故김종학 연출, 송지나 작가, 최민수·고현정·박상원·이정재 등 주연의 동명 드라마(1995)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방송 당시 국민들의 귀가길을 앞당긴 작품으로 격변기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박태수(민우혁·온주완·조형균,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 윤혜린(나하나·박혜나·유리아), 강우석(최재웅·남우현·송원근)의 이야기다.
2017년 조광화 연출, 박해림·오세혁 작가, 김문정 음악감독, 오상준 작곡가, 신선호 안무감독 등이 초연 무대를 올렸고
두 번째 시즌에는 뮤지컬 ‘데스노트’ ‘어쩌면 해피엔딩’ ‘그레이트 코멧’ ‘난쟁이들’ ‘킹키부츠’ 등과 연극 ‘환상동화’
‘알앤제이’ 등의 김동연 연출, ‘최후진술’ ‘해적’ ‘마마돈크라이’ ‘트레이스유’ 등의 박정아 작곡가·음악감독 등이 새로 합류했다.
◇박해림 작가의 영진, 박정아 작곡가의 모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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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박정아 작곡가(사진=이철준 기자) |
박해림 작가, 신선호 안무감독, 홍문기 의상디자이너, 우석 역의 최재웅을 제외하고는 싹 바꿔 돌아오면서 넘버, 장면 연출,
세 사람의 관계, 등장인물 등이 변화를 맞았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징어게임’으로 전세계를 휩쓸었고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연출작 ‘헌트’를 월드프리미어로 선보이며 박수갈채를 받은 이정재가 연기해 사랑받았던 혜린의
보디가드 백재희의 부재와 그 빈자리를 채운 서영진(김수연·송문선)의 합류다.
박해림 작가는 “작품마다 저를 투영하는 캐릭터를 넣는다. ‘땡큐베리스트로베리’의 버나드, ‘전설의 리틀 농구단’ 상태
같은 친구들”이라며 “이 작품에서는 영진에 감정이입하고 제 생각을 투영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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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박해림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
“영진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태도가 참 좋아요. ‘거창한 얘기 하고 싶은 거 아니고 기사 하나 내자는 데 내가 뭘
잘못했냐? 난 그냥 특종을 원하는 것뿐이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사회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그를 위한
주춧돌이 되기를 원하는 캐릭터죠.”
그리곤 영진에 대해 “태수·혜린·우석의 하숙집 꼬마였다가 2막에서 기자로 만나게 되는 인물로 세 친구의 뒷세대”라
소개하며 “5.18광주민주항쟁은 1980년의 일이지만 실제적으로 기사에서 인정하기 시작한 건 1988년이다. 8년 동안
언급이 금지됐던 비극을 제일 처음 기록한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드라마가 방송하던) 1995년과 1999년 사이에는 엄청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2, 3년 차이도 세대차가 꽤 크게 느껴지던
시기였어요. 그 1990년대에 제가 실제로 느꼈던 그 세대차를 적용한 인물이죠. 앞서 간 언니, 오빠를 보고 따라간 세대라고
할까요. 언니, 오빠들이 뭘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도움을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박정아 작곡가는 “줏대 없이 넘버를 쓸 때마다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다 보니 모든 인물에 제가 투영돼 있다”며 “넘버를
쓰다가 울기도 많이 운다”고 털어놓았다.
“혜린이 곡을 써야 하면 혜린이 모드가, 태수나 우석이 넘버 작업을 해야하면 태수나 우석이 모드가 돼요. 그렇게 곡을
써놓고는 혼자서 시뮬레이션도 많이 해봐요. 가장 극적인 순간에 노래를 해야 하니까 몇발짝을 떼야 하고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계산해야 하거든요. 이때는 이런 느낌이겠지, 리듬은 이렇게 구르고 음정이나 키는 여기까지 가야할 것 같지
등 다양한 부분들을 계산하죠.”
◇태수 같은 태수들, 다른 듯 닮은 우석들 그리고 ‘파워풀’ 혜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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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태수 역의 민우혁(왼쪽부터), 온주완, 조형균(사진제공=인사이트) |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태수와는 달리 강인함 속에 연약한 지점들이 있어요. 뮤지컬에서는 싸워도 음악 안에서
싸우거든요. 민우혁·온주완·조형균 배우는 셋 다 그냥 태수 같아요. 일단 이 배우들은 넘버 소화력이 뛰어난데다 본인의
색이 강한 배우들이죠. 그 색을 태수에 잘 입혀내고 있어요.”
태수 역의 민우혁, 온주완, 조형균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박정아 작곡가는 초연에도 우석을 연기했던 최재웅에 대해 “대사를
하고 노래만 해도 그냥 검사 같은 배우”라며 “검사 말고 다른 역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고 밝혔다. 박해림 작가는
“감정을 배제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는 우석”이라며 “속도감 있게 진행하면서도 사이 사이에 감정이 섬세하게 흘러간다”
고 말을 보탰다.
“그래서 긴박감이 있으면서도 섬세하죠. 초연배우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이해나 표현이 완전 달라요. 아무리 극이 변화를
맞아도 빠르게 소화하죠. 새로 만들어진 이번 시즌도 포인트를 빠르게 잡아내 자신 안에서 빠르게 표본을 만들어 나가는
배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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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우석 역의 최재웅(왼쪽부터), 송원근, 남우현(사진제공=인사이트) |
또 다른 우석 역의 송원근에 대해서는 “배우 자체의 성정이 밝은 사람”이라며 “신이 무거워질 때마다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간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1막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데도 극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송원근 배우가 먼저 만들어나가는
장면들이 있는데 되게 재밌어요. 1, 2막을 극과 극으로 표현하는 우석이죠.”
박정아 작곡가는 남우현에 대해 “성격 자체가 열려 있다. 다른 배우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빨리 받아들인다”며 “우석 중에
제일 모범생이이면서 생각 보다 남자”라고 전했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완전 다른 듯한데 또 되게 비슷해요. 태수의 노래들은 이큐(EQ, 이퀄라이저)가 걸린 느낌이라면 우석의
곡에는 이큐가 덜 걸려야 해요. 뭔가 단단하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세 배우(최재웅·남우현·송원근)의 목소리는 굉장히 닮은
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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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혜린 역의 나하나(왼쪽부터), 박혜나, 유리아(사진제공=인사이트) |
이어 나하나의 혜린에 대해서는 “너무 해맑다”며 “나하나의 혜린과 남우현의 우석이 함께 하면 참 해맑다. 특히 1막에서는
정말 고등학생 같고 너무 행복해서 마지막까지 그냥 행복하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같은 얘기를 하고 같은 결심을 하고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렇게 해맑던 친구들이 저렇게도 변해갈 수 있구나 싶어요.
박혜나 배우는 순간 집중력이 굉장해요. 순간적으로 몰입해야하는 장면이나 표현에서도,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빠르게
빠져들어요. 혜림이 시간을 넘나 들곤 하는데 가장 잘 이해하고 원숙하게 표현해 내죠.”
박해림 작가는 유리아에 대해 “정말 똑똑하고 본인을 연출할 줄 아는 친구”라며 “어떤 장면에서 자신이 두드러져야하고
어느 때에 다른 사람들을 잘 받쳐줘야하는지를 너무 잘 안다”고 밝혔다. 박정아 작가 역시 “끝까지 갈 수 있음에도 스스로가
어디까지 해야 혜린 캐릭터에 맞는지를 빨리 계산할 줄 아는 배우”라고 부연했다.
“세 혜린이들 모두 파워풀해요. 1막에 혜린이들의 웃음 포인트가 있는데 배우마다 달라서 재밌어요.”
◇첫 호흡에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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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박해림 작가(왼쪽)와 박정아 작곡가(사진=이철준 기자) |
“개인적으로 (박)해림 작가 작품 중 ‘전설의 리틀 농구단’을 좋아해요. 안산에서의 초연을 보고 호감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선지 ‘모래시계’로 처음 작업을 함께 하는데도 서로에 적응하는 기간이 빨랐어요. 서로 호흡을 맞추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이제 이렇게 가면 되겠구나’하는 시점이 평균치보다 빨리 와서 편하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죠.”
박정아 작곡가의 말에 박해림 작가는 “저희 두 사람이 공유하는 모토가 있다”며 “우리는 직업인이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 안에 규칙적으로 좋은 것들을 보고 좋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는 데 힘을 쏟자는 생각”이라며 “영감을
바라는 삶은 우리에겐 없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박해림 작가의 말에 박정아 작곡가도 “저희가 공연의 첫 출발”이라며 “저희 때문에 그 출발이 늦어지거나 극의 완성도가
쌓일 시간을 늦춰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동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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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박정아 작곡가(사진=이철준 기자) |
“저희가 작가이고 작곡가다 보니 영감이 오기를 기다려서 작업해야하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시기적절하게 완성해서 끌고
나가야 하는 책임감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해림 작가도 작업속도가 빨라요. 어떤 의견을 얘기하면 피드백도
굉장히 빨라요. 언제 무엇을 던지든 바로바로 답이 오죠. 그래선지 처음 함께 작업을 하는데도 잘 맞아서 치밀하게 쌓아갈 수 있었어요.”
7월 개막하는 ‘전설의 리틀농구단’과 더불어 현빈·손예진 주연의 동명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신작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
’(9월 개막 예정)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박해림 작가는 “제 안의 것을 꺼내기보다 이미 있는 이야기의 각색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그 각색 과정이 좋아요. 기존의 것들을 제 안에서 소화해 표현하고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담는 작업이 좋아요.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그런 과정을 함께 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좋겠어요.”
장기화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최후진술’ ‘알렉산더’ ‘우주대스타’ ‘마마돈크라이’
‘트레이스유’ ‘해적’ 등을 무대에 올렸던 박정아 작곡가는 향후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신작
두편을 준비 중”이라며 “빠르면 올 하반기, 내년 상반기 중에 공연될 신작들”이라고 귀띔했다.
“저는 쓰고 싶은 곡이나 작품이 없어요. 대본이 오면 그게 제 창작의 출발점이 되고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그때부터는 또 줏대 없이 그 얘기가 같이 하고 싶어져요. 활짝 열어둔 상태로 그 이야기를 음악어법으로 어떻게 풀어낼까를
고민하죠. 작품 의뢰를 받으면 부탁하는 게 ‘작가가 생각하는대로 나둬주세요’예요. 뮤지컬에서는 음악을 먼저 쓰는
경우들도 있지만 저는 1차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가 받아들여 음악을
입혀야 어색하지 않거든요. 언제나 설레면서 기다리는 것 같아요. 어떤 대본이 들어올까, 어떤 이야기가 나에게 올까…
기대하면서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