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에 걸쳐 입으면 예쁠 거예요."
- 너, 이런 옷도 만들 줄 아니?
"집에서 재봉틀로 한번 해 봤어요."
- 예쁘다. 그리고 잘 입을께.
꽃무늬 조끼, 윤정이가 손수 만들었다며 건네 준 것.
초복날 저녁,
승호네와 세인 다빈과 다 함께 해신탕(오리고기와 낙지)을 먹으러 갔다.
집 근처 백운호수의 맛집들은 이미 예약손님이 꽉 차서 더 먼 곳 왕곡동까지.....
차 속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부자연스러운 이 관계는 언제쯤이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를 두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기를 얼마나 고심했었던가.
물론 혼자만 하는 속앓이였지만.
윤정을 향한 편견의 마음을 더 이상 가져선 안 된다는 사실,
오래 산 경험이 반드시 옳은 것만 간직하였노라고 부리는 억지,
어른의 특권이라기엔 좀 치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이가 오늘 저녁식사를 한다니까,
"엄마, 내 소지품 중에서 영화 티켓 두 장 있을 거야. 그 것 승호오빠와 윤정언니 줘."
- 뭐 하러.... 걔네들은 풍족해. 다빈이 주지.
"그래도...."
나의 옹졸함은 대번에 발톱을 드러내고 움츠렸던 미움의 감정까지
수련에게 그대로 눈치채게 만들면서.
빨간 봉투 속의 영화 티켓 두 장을 일단 가방 속에 챙겨 넣고,
상황 봐서 내놓겠다는 두 마음이라니, 참 비열하기 그지없다.
한참동안 어느 마음이 진짜 내 것인줄 모른체,
쌓아올린 경계의 벽은 본래의 나를 오히려 병들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필시, 그 아이는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지도 몰라.
일그러진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그대로 접목시키면서.
나만 아니면 되는 것을 여전히 굳은 신념이 부족한 탓으로.....
의심 가득한 시간들이 내게 무엇을 남기려나....
윤정이 먼저 손을 내민 격이다.
아직은 미숙한 솜씨지만, 나를 위해서 만든 옷으로
묵혔던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다.
저절로 가방 속에서 수련의 티켓 두 장을 건넸다.
어쩜 나의 맘도 이미 반쯤 접어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아침에 컴퓨터를 켰다.
첫 눈에 들어온 글귀
'허용과 놓아버림에 대하여'
허용이란,
'놓아버림'에 가깝다.
놓아버린다는 건, 모든 것이
하나이므로 내가 얻고자 하는 그것이
이미 내 것임을 깨달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허용의 과정은 먼저는 신뢰하는 데서, 그 다음은
자기 자신에게 늘 진실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거울을 바라보듯 내 마음이 그 곳에 정확하게 쓰여져 있었다.
지나쳐온 마음이 비록 그릇되었을지라도 그건 잘못이 아니기를....
인간이기에 용인되어지는 잘못들 또한
어느 순간 거품처럼 사라져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과정이 필요한 까닭이다.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듯이..... 마지막이 잘 영글어지면 그 또한
찬란하게 빛이 날 상처.
애써 나를 위로한다.
결코 나는 모진 사람이 되지 못함을.
행여 마음이 약해질까, 굳건히 버텼던 벽일랑 이만 허물어 버려도 무방하리라.
중요치 않은 것을 움켜쥐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힐 필요? 없어야 한다.
지금 보여지는 그대로, 그 느낌으로 성실하게 응대하며 살아갈 일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사랑, 그 이름으로.....
2017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