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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6.
여호와께서 사십 년 동안을 함께 하셨으므로
260621낮 (신2:1-15절)
<1)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5)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8)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0)(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11)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으며 12)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13)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14)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15)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아멘
신명기 2장은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불순종 이후 약 38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도 신실하게 인도하신 은혜를 보여줍니다.
한 절 한절 말씀을 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 신2:1-3절입니다.
<1)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38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38년 동안 같은 광야를 맴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백성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문제와 죄, 상처와 실패를 반복하며 영적 광야를 맴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3절)
광야에도 끝은 있음을 보여 줍니다. 광야를 끝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3절)
하나님은 백성의 광야 기간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도, 기도도, 실패도 기억하십니다.
광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정착하는 곳이 아니라 지나는 길입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길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다시 일어나 전진할 때가 받드시 찾아옴을 믿고 버티시기를 축원합니다.
광야는 끝나는 곳이 아니라 준비하는 곳입니다. 연단하는 곳입니다.
욥23: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
이제는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낙심에서 소망으로,
머뭇거림에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광야를 끝내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예화//
한 소년이 나비 번데기를 보았습니다.
번데기 속에서 힘겹게 나오려는 나비가 불쌍해 가위를 가져와 껍질을 잘라주었습니다.
나비는 쉽게 나왔지만 끝내 날지 못했습니다.
고난 속 몸부림이 날개에 힘을 공급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광야를 주신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감당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광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광야를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광야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광야에도 하나님의 공급이 있으며,
광야에도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하나님은 전진을 명령하십니다.
"북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은 뒤를 보지 않으십니다.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고,
넘어진 마가를 다시 사용하셨고,
핍박자 사울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낙심에서 벗어나고,
죄를 끊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신2:4-6, 8-9절입니다.
<4)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5)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8)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앙생활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광야를 통과하고,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끝납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광야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교만을 깨뜨리시고, 믿음을 배우게 하십니다. 광야 없이 성숙은 없습니다.
광야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입니다. 광야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는 실력을 갖추는 훈련이요 연단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싸우지 말라, 괴롭히지 말라, 양식이나 물은 돈으로 사먹어라...(5,6,9절)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요구하듯이 아주 작은 것부터 순종하는 법을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야를 주시는 것은 그 광야를 통하여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 신2:7절입니다.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었지만 불신앙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패의 시간이고, 낭비된 세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 생활을 회고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선포합니다.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이 말씀은 모세가 직접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모세가 전한 말씀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부족함 없이 공급하시고, 채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필요적절하게 공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족함 없이"는 단순히 물질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셨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원하는 것을 다 주시지 않으셨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만큼 풀을 먹입니다.
하나님도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적절한 때에 주십니다.
다윗은 평생을 돌아보며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은 어떠했습니다. 늘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징징거리고 불평했습니다. 만족해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 됩니다. 우리 인생광야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필요적절하게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늘 부족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면서 감사를 잊고 살지는 않는지요......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이 부족하다 싶어도 하나님은 가장 필요적절하게 공급하시고 채우심을 믿고 늘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아시고"
여기서 "아시고"는 히브리어 '야다'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돌보시고 깊이 관심을 가지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어느 길을 걸었는지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밤에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원망하며 넘어질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눈물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수고를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외로움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시편 56편 8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며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광야의 한 걸음도 하나님의 눈 안에 담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도 땅에 떨어트리지 않으시고 주님의 병에 담고 계심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광야에서 가장 큰 축복은 만나도 아니고 메추라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성막 가운데 임재하시며, 백성과 동행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장 깊이 체험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만나면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가?부터 의심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해 주심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도 감옥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다니엘도 사자굴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바울도 감옥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재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기도의 응답이 더디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광야가 끝나면 우리는 뒤돌아보며 모세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그 모든 길을 아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광야의 길에서도 신실하게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신2:13절입니다.
<13)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다시 인도하십니다. 광야 세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38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즉시 일어나야 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기다릴 줄도 알고 움직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건너기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드러눕고 싶을 때가 옵니다. 그러면 큰 일 납니다. 아무리 낙심되고, 힘을 잃었어도 이제 일어나십시오.... 세렛 시내라고 했는데...세렛은 풍성한 이란 뜻입니다. 풍성한 시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물이 많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물이 많아 위험해 보이는 시내라도 담대하게 건너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일어나서 건너가야 새 역사가 열립니다.
과거를 붙잡으면 미래로 갈 수 없습니다.
▣ 신2:14-15절입니다.
<14)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15)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가데스바네아 이후 38년이 지났습니다.
불순종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광야는 불순종의 세대에게는 죽는 곳이었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광야에서 죄의 세력을 모두 끊어버리셨습니다.
죄의 세력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북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북으로 전진하라는 말씀은 가나안으로 진군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광야는 끝내야 할 곳이기도 하지만, 시작해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옛 사람을 제거 하십니다.
광야 38년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애굽의 가치관을 가진 세대를 정리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몸은 광야에 있었지만 애굽은 아직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애굽으로 돌아가자. 고기가 먹고 싶다. 차라리 노예가 낫다.“ 고 말했습니다.
가나안은 그런 마음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옛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제거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교만, 원망, 욕심, 불순종, 세상사랑, 자기중심성...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광야 같은 연단을 통해서 우리 안의 죄 된 본성을 십자가에서 죽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2장 14-15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광야에서 무엇이 끝나야 하는가?"
어쩌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의
불신앙을 끝내고,
원망을 끝내고,
교만을 끝내고,
자기 의를 끝내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광야에서 끝나야 할 것이 끝날 때 비로소 가나안이 시작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주님, 제 안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옛 사람을 광야에서 끝내 주옵소서.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