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6월 2일)
<고린도후서 3장> “그리스도의 편지와 영광스러운 새 언약의 직분”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18)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5:39-4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 야기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자신이 진정한 사도임을 입증해 줄 사람은 다름 아닌 고린도 교인들임을 밝히면서, 자신의 전도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고 변화가 된 그들을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추천서)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교나 초기 기독교에서는 순회 설겨자들이 유력한 인물로부터 천거서(추천장)을 받아서 회당이나 교회를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고 사례를 받는 관례들이 있었는데,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추천서를 들고 다니면서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을 잘못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자들과 달리 누구로부터도 추천서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역을 했는데, 거짓 교사들은 그처럼 바울이 천거서가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고, 이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기 대해서 바울은 자신은 사람의 추천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사역을 감당하였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참된 사도임을 보증해주는 증거는 사람들이 먹으로 쓴 추천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전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고린도 교인들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는 실질적인 천거서로서 그리스도께서 써주신 편지라고 주장합니다. 즉 죄의 종으로 살다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그들이야말로 바울이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참 사도임을 증거하여 준다는 논리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인간들이 먹으로 쓴 문서를 의지하는 자들은 의문(문자주의)에 속한 자들임을 지적하면서, 그들과 달리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하는 참된 복음 사역자들은 영의 직분에 속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인 복음의 사역자들의 직분이 옛 언약의 사역자인 모세의 직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움을 논증합니다. 6절에서 바울은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의문이란 문자적인 율법 자체를 말하며, 영이란 성령으로 전해지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세가 전한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의 댓가인 죽음을 선언한 것임에 반해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임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직도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마치 모세가 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을 가리고자 수건을 썼던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수건이 덮여 있는 것과 같음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날 때만이 그런 마음의 수건이 벗겨져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얻게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수건이 벗겨져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영광을 보게 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서서히 그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며,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오늘의 기도 ● “날마다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도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가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X/168
첫댓글 아멘
수건을 벗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