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꿈과두레박 원문보기 글쓴이: 봄비, 권예자
꿈과 두레박 제29집 출판기념회
일시 : 2024.11.27. 12:00
장소 : 태화장 泰華荘 (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로 203번길 78 )
꿈과 두레박 회장 이영순
===============================================
'꿈과 두레박 29집'이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외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우리 회원들끼리 조촐하나 풍성하고,
따뜻하게 출판기념회를 하였습니다.
열 사람이라구요?
네, 한 분은 사진 찍으시느라 화면 밖에 계십니다.
단풍이 곱고 또 고운 날,
우리는 회장님의 인사 말씀을 들은 후,
자식 같은 새 책의 출간을 축하하며,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작시를 낭독하였습니다.
허기 / 이형자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창문 앞 추녀 밑에 줄지어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듣고 당신인 듯 서 있네요
흘러 가려거든 두드리지나 말지
헝클어진 마음 유리창 사이로 불러 세워두고
어쩌자고 혼자 밭고랑 굽이돌아 거기쯤 가시나요
어슬어슬 몸을 지워 저 만큼 스며가면 그만인가요
잊어달라 부탁으로 맺혀두고 가시나요
빗물 방울 포개 내려놓고
오래 전에 지웠다며 선명히 커지는 빗물
흘러 그냥 가려거든 부르지나 말지
밭고랑 돌아 흐르는 당신
된장 항아리 / 백경화
할머니 어머니가 쓰시던 질항아리
백 년 넘게 쓰셨던 우리 집 유물
장 담그는 날에는 언제나
"이 단지에 담가야 장맛이 좋아" 하시며
보물 다루듯 정성스럽게 닦아
장을 가득 채우셨다
이젠 모두 떠나시고 그 단지는
내게로 와서
우리 집 장맛을 더해준다
대대손손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고
당신들 손길이 닿았던
당신들의 숨결이 흐르는
그리움과 추억이 향기롭게 묻어나는
우리 집 된장 항아리
볼수록 정겹다
추억이 사는 집 / 권예자
바람 혼자 드나드는
나이 든 골목에
시린 뼈가 걸어간다
기다리는 이 없는
불 꺼진 창을 향해
의무처럼 걸어간다
약속처럼 찾아간다
뿌리치고 돌아서도 귓전에 머무는
요양병원 아내의 기도
집에 가고 싶어
나도 데려가
송곳 같은 그 말에
베이고 찔리며
굽은 허리가 걸어간다
비틀비틀 기어간다
꽃 같은 아내가 환하게 웃어주던
추억이 사는 집을 향하여
어느 개의 기도 / 이영순(지완)
사람의 옷을 입히고
스스로 엄마 아빠라며
말 잘 들으라는 굴욕 앞에
개껌 주는 사람들
시끄럽다 입은 틀어막고
목줄로 묶어 제 갈 길로 끌고 다니며
사랑도 제 맘대로 강요하는 사람들
그들의 동물 사랑
지옥 불보다 뜨거워
너는 하나님 나는 부처님
사람 대신 신을 섬겨 보겠다고
기도하는 개가
뜨겁게 달구는 유튜브
동물의 선각자
인간의 자식 되길 거부하면서
사람의 출산을 기도하는 개
깎을 머리도 없는데, 부처 앞에
목탁을 들었다
바람도 숨죽인 뜨거운 하루 / 박현숙
구순을 훌쩍 넘은 어머니
고향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마음에서 꺼내 놓는 기억의 파노라마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태어나서 자란 옛집에는
탱자나무 감나무 아직도 푸르게 서있고
만개한 붉은 능소화 웃으며 반겨주는데
어릴 적 통통한 이 집 막내딸
백발노인이 되어 돌아온 것을 아는가 보다
시간은 거꾸로 돌고 돌아
그 시절 그 소녀 그 미소를 띤
발그레한 어머니 얼굴
사범학교 다니던 셋째 오빠
함께 연주하던 악단 삼심여 명 데려와
마당 한가득 팡파르가 울려 퍼졌고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며 동네잔치를 벌이셨단다
고향 집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눈빛 하나하나 걸어놓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며
대문을 나서는 힘없는 발걸음
담벼락 아래 채송화 노랗게 빨갛게 배웅해 주고 있다
바람도 숨죽인 뜨거운 하루다
그해 여름 너는 다시 눈을 뜨고 / 오유정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는 말만 믿고
겹꽂이 책장을 샀다
책을 겹겹 꽂아두었다는 이유로 미루던 풍경만 흘러나왔다
먼지가 쌓인 책장을 이해하며
눈망울 선명했던 책을 이리저리 뒤집는다
굳어버린 먼지와 까맣게 잠든 책머리
아직 젊은 이름의 노을이 파닥거리고
이중 책장은 실수야!
기억을 닦아 기념비적인 사건 뒤척뒤척
재활용 박스가 입을 벌린다
삼국부터 인터넷의 나라까지
살점 발라 먹은 생선가시처럼 가지런히
고무장갑은 썩질 않아
일회용이란 무한대로 쓸 수도 있는 것
난 어둠을 너무 헤프게 썼거든
선명해 손톱 밑 알량한 교양들
벨소리 늘어진 현관을 열면
남극 어디선가 배달된 냉동 인간 하나
녹아가는 문자를 꺼내 수신인에 서명한다
본전 뽑기 / 손중숙
고슬밥을 좋아하는 그이
오늘도
죽도 밥도 아니란다
운명을 다 한 그 녀석들이
물러난
서른 두개의 빈자리
명문가의
임플란트를 모셔다
그 자리에 앉혔더니
찬밥 더운밥 안 가리지만
본전은 뽑아야 한다며
뼈대 있는 밥 타령을 한다
씨름하던 밥이 목구멍에서 넘어졌다
본전 뽑기 전에는
세월을 삼키지 않겠다고
용쓰던
뼈대의 승리
후투티 / 정금윤
사진에나 있을 네가
솔밭에 내렸구나
긴 부리에 뒷머리도 뻗쳤으니
멀리서도 금세 알아보네
정수리에 왕관 펼치는 걸 보니
태평성대 이끌던 조상인가 보다
깃털마저 화려하니
겉과 속 모두 갖추었는데도
작고 겁 많은 참새와 나누는
정겨운 한 밥상
공포 / 이영선
문턱을 넘어오는
잦아질 듯한 신음은 공포다
뿌려진 소금에
몸부림치는 미꾸리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방향 없이 헤매며
고통으로 내미는 절규를 마신다
덮쳐오는 너의 신음
내 발목을 타고 올라
손목을 비틀고 머리채 흔들 때
애끓어 막히는 숨통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은
지옥 불보다 더 뜨거워
내가 먼저 타고 있다
저장 강박 / 김정미
옴짝 달싹 못하는 물건들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쌓아 놓고 모아 두고 쑤셔 넣는다
어제의 나를 붙잡듯
또 하나의 물건을 추가한다
버리지 못하는 불안 더미
어느 한 켠에 잊혀진 꿈
숨바꼭질 속의 상실
치렁치렁한 잡동사니 뒤지며
쌓인 시간을 찾아다닌다
끙끙 앓고 있는
소유와 상실 사이로 햇살이 든다
춤추는 고래 / 김인숙
어쩜 좋아
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자꾸 빛을 쏘아 밝혀주잖아
벅차도록
당신이 안겨주는 행복
어디서 어떤 인연을 만날지
알 수 없는 세상
늘 한발 물러설 때
새롭게 다가오는 만남
보석같은 값진 친구를 만난거야
자꾸만 용기를 쥐어주는 너로인해
고래처럼 커다란 꿈을 꾸게 되나봐
덕분에
꿈이 아닌 현실에서
난 춤추는 고래가 되어가는 거야
이렇게 '꿈과 두레박 제29집' 출간 축하를 마치고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
제2부 : 회원 출간 축하
올해는 회원 출간이 두 건으로
10.30. 백경화 작가의 포토에세이 [새들의 노래]가 출간되었고
11.30. 정금윤 시인의 두번째 시집 [바지락 스님]이 출간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백경화 작가의 [새들의 노래]에는 신비롭고 특별한 새 사진과 함께
그에 관련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백로, 왜가리, 청둥오리, 흰뺨 검둥오리, 물총새 등등의 조류와 온갖 꽃들이
틈만나면 나를 불렀다.
그곳은 신비한 세상이었다.
말이 없어도 마음이 통하고
세상 살아가는 진리도 느낄수 있었으니
한나절이던 하루이건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때는 정말 행복했다."
'오리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촬영하는데 옆에서 조그만 논병아리가 큰 물고기를 물고
물 위로 불끈 솟아오른다. 저보다 훨씬 더 큰 물고기를 잡아 어쩌려고... 파닥거리는 물
고기의 몸통 중간쯤을 입에 꼭 물고는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 가만히 있다. 주위도 바라
보며 나도 힐끔 쳐다본다. 그러다가 또 꿈틀거리면 공격하고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하더
니 한참 만에 물고기의 머리가 입 안에 물려있다.
논병아리는 눈을 부릅뜨고 목구멍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캑캑 거리다가 뱉는가 싶다가
도 다시 목을 뒤로 젖히며 넘긴다. 서서히 넘어가는데 목이 길어지고 탱탱해진다. 저러다
가 질식해서 죽는 것은 아닌지. 내 목이 막혀 오는 듯 답답한 느낌이다. 그렇게 한참만에
그 큰 물고기를 삼키고 또 한 번 나를 힐끗 보고는 물속으로 휭하니 잠영한다. '
- 에세이 <작은 논병아리는 큰 고기만 잡는다> 부분
정금윤 시인의 [바지락 스님]의 해설을 해주신 황정산 교수님은
그의 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금윤 시인의 시는 장식적인 언어나 난삽한 지식의 나열, 난해한 지적 놀음이 없다.
싱싱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시어들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처럼
우리에게 부담없이 다가온다. 그런 언어로 우리에게 가슴 깊은 깨달음을 준다.
이것이 바로 정금윤 시인의 시들이 가진 내적 힘이다. '
우리는 시집 [바지락 스님]에 실린 시들을 돌아가면서 한 편씩
낭독하고 출간을 축하했다.
누운 벼 / 정금윤
이만하면 오래 살았다
받아 들인 듯
감사하는 듯
일제히 제 자리에 누워
운구하기 쉽도록
가지런히 손 모으고 있다
우리 꿈과 두레박 회원들은 이렇게
출판 기념회를 마치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내년을 위한 덕담을 나누며 태화장을 나섰지요.
언제부터인지 첫눈이 겨울바람을 앞세우고
소탐스럽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노랗고 붉은 단풍에서,
맑고 정결한 순백의 시간으로 옮겨 갑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더 좋은 시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문우 여러분, 조금 이르지만 미리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꿈과 두레박 동인 드림.
2024.10.24 태안 <신두리 사구>의 일몰,
단풍은 오늘 미르마을 아파트의 단풍입니다.
첫댓글 다복한 꿈과 두레박 식구를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이 새로운 느낌은 무엇일까
오늘 아침 퍼지는 맑은 햇살처럼 기분이 환해집니다
고마워요 권에자 시인님^^
늘 아쉽고, 늘 새롭고, 늘 보고 싶고
만날 때마다 반가운 것도 병이라면 병이죠?
꿈과두레박동인회 소식이 여기까지 여행 오셨군요
언제나 반갑지만 여기서 보니 너무도 예쁘군요
이렇습니다
가슴은 설레고 돌아온 겨울
첫눈을 바라보는 눈길처럼 새로운 희망입니다
한 분 한 분 원대한 숨결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문협 식구들 오래 오래 행복하세요
우리 모두의 2025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지 살짝 기대합니다.
이 시인도 건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귀한책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좋은날 되시고 건필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따뜻한 연말연시 되세요.
축하드립니다 나날이 번창하시기를 빕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푸른 뱀의 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