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제사장은
성막과 성전에서 양이나 소를 잡아 제물을 준비하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거룩한 성전의 봉사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지만
제사장, 그들의 손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양이나 소를 잡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게 죽이고 각을 뜨는 작업은
짐승을 잡는 도살자요, 백정의 스킬을 달인의 경지로 가졌습니다.
제사장이 칼을 다루는 솜씨는
검객이 아닐지라도 세프의 칼잡이를 능가합니다.
한마디로 제사장은 오늘날 발골의 달인으로
제물의 각을 뜨는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만약 제사장의 칼이 양이나 소와 같은 제물을 향하지 않고 사람을 향한다면
인간 도살의 참상을 낳을 것입니다.
실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창끝으로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였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민25:7-9)
이 일로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여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인 평화이 언약을 받았습니다.
비느하스의 칼끝에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 시므리요,
함꼐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은 미디안 백성의 한 수령의 딸인 고스비였습니다.
제사장 가운데 사독은 선자자 나단과 함께 다윗의 통치를 온전히 받들었으며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은밀하게 군대의 병권을 움직여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아달랴의 칼에 모든 왕자가 피살되는 가운데 요아스를 숨기고
마침내 왕으로 세워 다윗의 왕통을 계승하였습니다.
레위 자파 제사장의 호전성은
다윗 시대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다윗시대 제사장인 사독은 제사장이 되기 전에 젊은 용사로 다윗의 군대에 편승되었으며
아론의 족장으로 우두머리인 여호야다는 다윗의 군대에 편승된 3천7백명의 두목이었으며
그의 아들 브나야는 다윗의 용사 삼인 가운데 하나로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을 받아 아도니아와 요압을 척살하였으며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큰 공을 세워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칼을 쓰는 제사장의 용맹은
다윗의 왕국을 든든히 세우는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비느하스와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평화의 언약을 받았고 또한 다윗 왕국을 세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사회의 큰 물의와 반향을 불러 일으킨 목사의 칼부림........
비느하스의 공의를 실현하고 다윗 왕국을 세우는 여호와 전사의 칼날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결코 아니지만
기독교의 성직자로 말씀 사역의 칼을 가졌습니다.
올바른 말씀 사역으로 양의 꼴을 먹이지 않고
사역의 칼로 동료인 목사를 적으로 겨눈다면 끔직한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목사의 칼부림이라는 타이틀로 보도된 뉴스와 인터넷 기사는
충격을 넘어 참담하였습니다.
예순 여덟의 목사와 마흔 여덟의 목사는 성직의 굴레로 세상의 빛이 되고
성숙한 인격과 품위로 교회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정잡배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장자 교단 소곡의 목사와 동료 목사와의 칼부림은
성추행과 비리로 추락한 한국 교회를 다시 한번 바닥에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세상의 창으로 보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성경의 기독교가 아니라
불량한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며 세상의 염려 거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거리가 된 한국의 교회는
개혁과 성찰의 골든 타임마저 놓치고 점입가경으로 종교적 탐욕의 불나방이 되었습니다.
경건과 거룩과 성결의 모범으로서의 기독교 성직자인 목사는
언젠가부터 그 위상과 권위가 추락하였고 이제는 완전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안티 기독교의 개독 소리는 허튼 소리가 아니라
점점 진실의 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둠의 빛이요, 세상의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반딧불보다 더 희미한 빛이 되어 어둠에 잠식되고 묻혀가고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 화해와 소통, 인내와 절제의 미덕은 기독교 삶의 모습에서 경건의 모양마저 잃어버리고
교회 공동체는 먹이를 앞에 두고 서로 탐욕으로 으르렁거리는 이전투구의 온상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고스비 사건으로 평화의 언약을 받은 비느하스의 공의는
누가 실현할 것인가?
사울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가 된 젊은 용사 사독과
아론의 집 족장인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 브나야와 같은 여호와 전쟁의 용사는 누구인가?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왕위 찬탈을 종식 시키고
다윗의 왕국을 계승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직임을 감달할 자는 어디에 있는가?
무너진 한국 교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하기 위해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던 베드로의 역할은 누가 할 것인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을 받아
이방의 사도가 된 바울처럼 천하만민에게 참된 진리의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인가?
종말론적인 한국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종교적 탐욕의 불나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사역을 등한시하고 운전대를 잡았던 세상 일을 청산하고
헐벗고 굶주려도 진리의 파수꾼이 되고 복음의 추수꾼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온전히 하여야 합니다.
탐욕의 불나방이 된 앞선자를 따르지 말고.......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로 복음의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 낯선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따라 종교적 탐욕의 불나방이 된 한국 교회는
성경적인 참된 진리의 복음으로 개혁되고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추는 진리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수 십 년 기독교 성직자의 삶으로 성추행과 성폭력과 살의적인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의 갈 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기만 합니다.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은 사랑과 용서의 능력을 잃어 버리고
야욕과 탐욕의 종교적 비전을 성취하는 불나방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성직자로서 목사의 세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습니다.
교회 안의 제직회와 당회, 노회와 총회는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절대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습니다.
목사 백이면 백.....
모두가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가 아니면.........
얽히고 설킨 이해 관계로 고린도 교회 처럼 파당 싸움을 일삼습니다.
교회가 분리되고 노회가 분리되고 총회가 분리되는 과정은
시정잡배의 전쟁터,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우리 나라 근현대사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목사 셋이 모이면 시정잡배가 된다는 말은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증거합니다.
목사의 세계는 은혜의 소통과 겸손의 미덕과 용서하고 관용하는 거룩한 만남이 아니라
같은 동료의 뒷담화와 험담과 비방과 중상모략의 온상, 그 자체입니다.
목사의 적은 목사라는 공식을 만든 말씀 사역의 칼은
같은 동료의 인격을 살해하고 비방하고 험담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물리적인 목사의 칼부림보다 더 무서운 독사의 독을 가진 입술의 칼은
사랑과 용서가 아닌 중상모략으로 인격을 살해하고 모욕하고 모독하고 능멸하는 사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간 도살의 참상을 낳은 제사장의 칼은
오늘날 말씀 사역의 역기능으로 목사의 적을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성직자로서 목사의 삶은
양날의 검을 가졌습니다.
말씀 사역의 순기능은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음의 구원을 얻게 하지만
말씀 사역의 역기능은 숙련된 말솜씨로 뒷담화의 달인이 되고 험담과 비방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인격은 복음의 진실이 되지 못하고.....
거짓 입술과 혀를 가진 불신,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고 사랑과 용서로 가득한 목사의 진실한 인격을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양의 탈을 쓴 위선과 교만한 갑질과 간사한 입질과 탐욕의 이간질에 능숙한 목사의 세계......
그 현상과 실상은 한국의 기독교를 유사 기독교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깨끗한 마음의 청결한 양심을 가진 목사 몇 명이 있어야 한국의 기독교가 사이비 종교 집단이 아니라
참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가 될지 주께서 지으신 청명한 하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