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16. 미사 해설 – 시작 예식 (1) 시작 예식의 의미와 입당에 대해서
미사의 시작을 알리고, 당일 미사의 목적을 알려주며, 나아가 한자리에 모인 교우들의 일치를 이루도록 돕는 역할. 이것이 바로 미사의 “시작 예식”입니다. 어떤 만남이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하느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미사에서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작 예식”을 통해 그 만남을 시작합니다. 곧 시작 예식은 예수님의 거룩한 잔치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한 첫 만남의 순간, 거룩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시작 예식은 “입당(입당성가/제대인사) – 성호경 - 인사 – 참회 – 자비송 – 대영광송 – 본기도”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입당입니다. 사제는 제의실에서 제의를 갖추어 입고 미사 준비를 마친 다음, 제단으로 나와 예를 표합니다. 이때 신자들은 “입당성가”를 부릅니다. 입당성가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성전으로 들어오는 사제(대사제 그리스도의 대리자)에 대한 환영의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 신자들이 부르는 입당성가는 미사를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드러내며,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모으고, 그들을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시키기 위해(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7항) 필요한 부분입니다. 만일 입당할 때 성가를 부르지 않는다면 입당송을 신자들, 또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 또는 독서자가 낭송할 수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8항).
입당 예식의 전체적인 의미는 입당을 통해 미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제와 함께 마음으로 제단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 입당행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사제가 봉사자들만의 행렬로 변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입당의 의미까지 퇴색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사제만이 행렬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의 행위이기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대리자와 함께 공동체의 잔치에 행렬한다는 점을 의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입당 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미사 전례의 입당 노래는 끝까지, 아니면 적어도 2~3절까지 충분히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구원의 신비를 거행할 준비를 하게 할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당성가에 대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입당 때에 부르는 성가는 전례력에 맞는 곡을 택해야 합니다. 절대로 성가대나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선호도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응답하라 ‘전례’] 전례는 어떻게 거행되는가?
예비자들을 교리교육시키면서 면담을 하면서 묻는 질문 중에 “천주교 신앙을 가지려는 동기가 무엇입니까?”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둘러싼 다른 요소들 때문에 천주교에 입문하거나 다른 종교에서 개종을 합니다. 성당의 고요함과 엄숙함, 신부님과 수녀님의 모습, 천주교 신자들의 삶의 모습 등등.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을 통해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가 없느냐?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과 직접 실존적 체험을 하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분을 드러내는 여러 요소들(말, 음악, 동작, 장소)을 통해서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전례도 감각적인 표징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느님이 행하신 구원으로 신자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의 인간은 ‘호모 심볼이쿠스’(Homo Symbolicus)
카르투시오회의 수도자 오귀스탱 길르랑은 언어와 침묵에 대해 말하면서 몸과 영혼의 결합이 인간 전체를 이루는 필수 요소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언어는 단지 표면적인 껍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표현하는 그 몸 자체입니다. 이 몸과 그 영혼 사이에는 본질적인 결합이 존재합니다. 영혼은 몸을 위해 필요하고, 몸은 영혼을 위해 필요합니다”(‘그들은 침묵으로 말한다’에서). 몸을 지닌 인간은 상징을 사용하여 소통을 하며, 하느님의 피조물 중에서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창세 2,19)라는 창세기의 구절을 통해 인간은 창조때부터 의미를 지닌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생물에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그 이름을 대면 다른 인간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소통 능력을 하느님은 주셨습니다. 상징을 통해 소통하는 인간은 호모 심볼이쿠스입니다.
기호(sign)의 일종이면서도 기호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상징(symbol)
상징은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실재를 가리키는 형식을 포괄하는 기호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상징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표지의 역할을 하는 기호의 일반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또한 여타의 기호와는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상징은 “두 겹의 지향성”을 품고 있습니다. 상징이 아닌 기호는 자기가 말하려는 것을 가리키는 지시적인 역할만 하지만, 상징은 문자대로의 의미를 넘어서 제2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때(dirt)’가 묻었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얼룩이나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물리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더 나아가 ‘때’는 또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얼룩진 양심’이나, ‘나는 때 묻은 사람이다’ 등의 표현에서처럼 물리적 때가 아닌 인간의 특정한 조건이나 상태를 가리키게 됩니다.
둘째로 단순한 기호는 유비(類比)나 연상 관계가 없을 때도 사용되지만, 상징은 유비적 관계나 연상 관계를 근거로 합니다. 구약성경의 희생 제사에서 신에게 올리는 것은 고기가 아니라 연기와 향인데, 그것은 위로 올라간다는 속성 때문에 신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인 제우스에게는 뿔이 위로 향한 황소를 제물로 바치고,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는 땅으로 고개를 향하는 모양을 한 돼지를 바치는 것도 이러한 유비적 연상 관계를 통해 설명됩니다.
셋째로 기호는 가리키는 의미의 대상을 바로 나타낼 수 있으나 상징은 이러한 기능을 넘어서 그 대상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예를 들어 묵주반지를 끼고 있으면 그 사람은 천주교를 믿으며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는 신자라는 배경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교 전례상징의 근간인 성경 상징
앞에서 말하는 상징의 특징은 각 종교의 예배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교도 고유의 상징의 세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하여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인간 상호 간의 소통을 수월하게 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場)인 전례에서 특히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경의 상징을 근간으로 합니다.
‘상징’에 상응하는 단어로 σημείον(세메이온)이 있으며, 징표나 표지를 뜻하며, 구약에서는 80번, 신약에서는 60번 나타납니다. 구약의 성경적 상징들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창조의 상징’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 모습으로’(창세 1,26 참조) 창조하신 사람에게서 정점에 이릅니다. 2) ‘사건의 상징’은 커다란 구원의 때를 이루는 것으로 그 정점은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 3) ‘예식적 상징’은 이스라엘 축제와 전례적 가르침을 말합니다. 4) ‘형상의 표징’은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이 수행한 구원의 임무나 백성에게 도움을 주는 구체적 역할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이러한 상징은 연속성을 지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시려고 ‘창조의 상징’을 사용하셨고 ‘사건의 상징’과 ‘예식적 상징’이 예고한 것들을 이루시면서, 이 상징들이 당신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구원 능력을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동작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마르 7,33-35; 8,22-25; 요한 9,6 등).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루카 23,46)는 표현은 이제 유다의 성전 예배는 끝이 나고 새로운 예배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리라는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인간 성화를 위한 전례 상징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할 수 있는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지체들이 완전한 공식 예배를 드린다”(전례 헌장 7항).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처음부터 주님께 받은 상징(사도 2,41-42)과 다른 많은 상징들(사도 8,17;1티모 4,14; 5,22; 야고 5,14-15 참조)을 사용하였습니다. 전례 상징은 구원 역사에 대한 성경적 전망과 상징적 표현과 효과를 인간의 삶 안에 연장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고 그 말씀에 의존하지만, 전례에 참석하는 이들의 신앙을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전례 상징들입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외우고 손을 합장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아주 잘 드러내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이것부터 천천히 집중해서 한다면 성화의 한 걸음을 딛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21) 미사의 영성 : 은총에 대한 응답(화답송)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가끔 자신의 삶에 허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껏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돌아보면 항상 뭔가 부족하고 후회가 되곤 합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보다 자기만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뭔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이렇게 세상을 원망하고 내 삶에 대해 불평하곤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내 힘으로 열심히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내 힘으로 악착같이 살아갈 것이라고 혼자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 나에게만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우리의 삶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혼자 힘으로 살아온 것 같은 삶일지라도 그 삶의 뒷면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사랑이 있었음을 우리는 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다가왔던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모퉁이마다 만난 천사 같은 분들의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도,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섭리를 통해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항상 있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겸손된 마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도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특히 제1독서를 통해 과거의 시간 속에 다가온 하느님의 말씀이 단지 과거의 메아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 ‘지금 여기서’ 내 삶에 건네는 하느님 사랑의 초대임을 깨닫곤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지난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고 은총이었음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그래서 독서 후에 하는 화답송은 ‘다가온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로 화답’하는 찬미와 감사의 노래가 됩니다. 지난 시간 내가 받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노래입니다. 내 삶의 어둠에 비춰진 빛에 대한 감사이고, 내 슬픈 시간의 눈물을 닦아 주시던 하느님 손길에 대한 찬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를 바탕으로 찬미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는 약속이며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 ‘화답’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기뻐서 우리의 ‘입으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화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찬미하며 응답’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하느님 은총에 대한 응답의 노래인 “화답송”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투정을 부리던 그 순간조차도 당신 자비로 돌보시던 하느님의 그 따뜻한 사랑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건, 오직 내 삶을 그분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응답의 노래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응답하라 ‘전례’] 전례는 누가 거행하는가? 전례의 거행 주체
빛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흰색 하나인 듯 하지만 프리즘을 투과하면 다양한 색들이 드러나듯이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공동체는 하나인 것 같지만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본받아 여럿이지만 하나이고 또한 하나이지만 여럿인 교회공동체이지요.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며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늘 함께 있겠다고 예수님은 약속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교회는 모든 전례의 참된 주례자는 그리스도라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의 ‘행위’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36항).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주례하셨듯이 지금도 교회에서 모든 전례에서 주례하고 계시며 미래의 천상 전례에서도 주례하십니다.
교회의 전례 중에 봉독되는 요한 사도의 묵시록은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묵시 5,6)이라는 표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우리에게는 하늘 위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히브 4,14)라며 예수님은 참된 희생제물이면서 동시에 참된 대사제라고 성경은 알려줍니다.
성사 전례의 교역자, 직무 사제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인 교회는 주님 안에서 모든 신자가 거룩하고 왕다운 사제직을 수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영적 제물을 봉헌하고, 자신을 어두움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불러 주신 그분의 힘을 널리 알립니다(1베드 2,5.9 참조). 그런데, 주님께서는 신자들이 한 몸으로 결합되도록 신자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들을 교역자로 세우셨고 이들이 수행하는 사제직을 ‘직무사제직’(교회 헌장, 10항 참조)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공동체를 위한 교회 직무를 수행하는 봉사자들을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불립니다. “성부께서 축성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께서는(요한 10,36 참조) 당신 사도들을 통하여 그 후계자들, 곧 주교들을 당신의 축성과 사명에 참여하게 하셨다. 주교들은 자기 봉사직의 임무를 여러 단계로 교회 안의 여러 아랫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전수해 주었다”(주교, 사제, 부제 서품 예식, 총지침, 2항).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에서 하느님 신비의 으뜸 분배자요 모든 전례 생활의 지도자이며 촉진자요 수호자입니다(로마미사전례 총지침, 22항 참조). 성사에서 주교만이 거행할 수 있는 것은 성품성사와 견진성사입니다. 신부는 주교의 협조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위해 세례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를 주례합니다. 봉사직무를 위해 주교로부터 안수를 받은 부제는 전례에서 세례와 혼인을 주례하고 성체를 보존하고 분배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준성사를 집전하고 장례식을 주재합니다.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위대한 공헌을 드러내는 ‘보편 사제직’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특성을 잘 설명해줍니다. “대 사제 주 그리스도께서는(히브 5,1-5 참조) 새 백성이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셨다’(묵시 1,6; 5,9-10 참조)”(교회 헌장, 10항).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신자들은 직무 사제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제직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에 합체되어 그리스도교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호를 받고, 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려고 힘씁니다. 또한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는 사명을 부여받습니다(교회 헌장, 11항 참조).
미사에서의 신자들의 특별한 봉사
미사를 위해 모인 모든 신자는 전례 행위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함께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노래하며, 특히 공동으로 제물을 바치고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이러한 일치는 신자들이 공동으로 하는 동작과 자세에서 잘 드러납니다(로마미사경본총지침, 96항 참조).
미사 거행 때 특별한 봉사나 임무를 수행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봉사인지 하나씩 알아보지요.
일반적으로 복사라고 하는 시종은 제대에서 봉사하고 사제와 부제를 돕는 직무를 받습니다. 주요 임무는 제대와 거룩한 그릇을 준비합니다. 공식적으로 시종직을 받은 봉사자는 필요하다면 비정규 성체 분배자로서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일도 합니다. 독서자는 복음을 제외한 성경을 봉독합니다. 또한 보편 지향 기도에서 지향을 알리고, 독서 사이의 화답송과 알렐루야를 할 수 있습니다.
성가대는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부분을 여러 가지 노래 형태에 따라 부르며, 더 나아가 신자들이 노래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제의실 담당자는 미사 거행에 필요한 전례서, 전례복, 다른 필요한 것들을 성실히 준비해줍니다.
해설자는 필요에 따라 짧게 해설과 권고를 하여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며, 거행의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해설은 미리 신중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간단명료해야 하며, 신자들에게 잘 보이는 알맞은 자리에 위치하지만, 독서대에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전례에 참여하러 오는 신자들을 환영하고 안내하는 봉사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을 ‘전례 봉사자’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깊은 신앙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형제들을 사랑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아서 서로 일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본당공동체에서 보면 지나친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중시하여 공동체의 선익을 해치는 개인주의적 태도나 몇몇이 그룹을 형성하여 공동체의 일치를 방해하는 분파주의의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태도와 분파주의적 성향은 교회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천한 여종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조하신 동정녀 마리아의 겸손한 태도를 본받아 다른 교우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레지오 단원들은 전례에서도 능동적 참여의 모범이라 생각합니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20) 미사의 영성 : 과거가 의미하는 것(독서)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든지, 또는 억울한 오해를 받아 계속 그 일로 속상함을 느낀다든지…. 이렇게 지난 삶 속에는 우리가 잊고 싶은 과거의 모습이 하나쯤은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 과거는 때때로 내 삶에 멍에로 다가와 나의 오늘을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때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 ‘그때는 왜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까…. ’ 그렇게 지난 시간의 아픔과 상처는 오늘의 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의 오늘을 나답게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잊고 싶은 과거가 항상 내 삶의 짐이 되기만 하는 걸까요? 만약 상처 입은 과거가 나의 오늘을 지배하면, 그때 그 과거는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통해 과거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과거는 나의 오늘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미사 독서 때 듣게 되는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들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이야기를 전해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지난 시간 속에 주어졌던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오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 속에서 우리의 절망을 보고, 그들의 눈물 속에서 우리의 눈물을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절망과 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통한 희망과 사랑 또한 봅니다. 신앙인이 과거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은 단지 지난 시간 속에 상처받았던 아픔의 순간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통해 아픔 속에서도 용서를 발견하며, 눈물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참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속 과거의 이야기가 우리의 오늘에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미사 독서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은 과거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항상 현재라는 시간과 공존을 통해 신앙인들에게 구원의 신비를 열어 보여 줍니다. 이 말씀은 현존하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말씀이기도 하며, 하느님 구원 업적의 기념과 선포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오늘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낳고 기르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힘을 얻습니다. 그러하기에 과거에 그냥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그 과거를 통해 새로운 오늘을 살아갈지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말씀은 늘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 말씀이 내 삶에 열매 맺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진정 그 말씀이 나의 오늘 속에 반짝이며 빛날 수 있다면,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는 초대 속에 우리는 비로소 진실한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13. 미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1)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인 미사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각자의 삶의 완전한 의미도 되찾을 수 있는 미사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님께서는 미사에 관해 설명하시면서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삶의 원동력을 받아 나아가기 위해선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인 미사를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미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보편교회가 강조하는 미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눠보았습니다.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미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자세히 다뤄보고자 합니다.
“미사”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Missa”에서 유래됐으며, 이를 있는 그대로 발음한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미사입니다. 실제로 이 용어가 처음부터 사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빵 나눔”, 2~3세기에는 “감사기도, 감사”, 4세기에는 “제사, 봉헌, 성무, 집회” 등으로 불렸습니다. 5세기에 이르러 서방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의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 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 안에 물려준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만찬 제사를 지칭하는 의미>로 “미사”라는 단어가 통용됩니다. 그리고 1562년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미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미사는 성부께 드릴 수 있는 진정한 봉헌 제물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예절”. 이러한 설명과 함께 그리스도가 봉헌한 것과 같은 것을 교회도 봉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바탕으로 미사의 성격은 교회의 공적 행위로서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에서 신자들과 함께 예절을 거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사의 성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공동체적 행위로의 전례”임을 강조함으로써 참된 미사의 성격을 재차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참여로 미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타인의 기도가 아닌 우리의 기도이고, 교회의 사적 행위가 아닌 공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이 마치 음악회를 보러온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교회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의 태도는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의무감으로 참석하는 미사가 아닌 마음을 다해 함께하려는 마음으로 참여할 때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과 마주하게 됩니다. [2022년 7월 3일(다해) 연중 제14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차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14. 미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2)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은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의 구조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주의 만찬인 미사 때에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을 기념하여 미사성제를 봉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사제를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이 같은 지역적 교회 집회에서 ‘단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가장 뚜렷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십자가상 제사의 계속인 미사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단체 속에 실제로 현존하시며, 사제의 인격과 당신의 말씀 속에 현존하시며, 본체적으로는 온전히 성체의 형상 속에 현존하시는 것이다(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7항).”
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7항에 의하면 미사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 <한자리에 모이다>, <그리스도의 현존> 등이 언급됩니다. 곧, 미사의 구조에는 이 세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현존을 중심으로 봉헌하는 제사의 개념은 미사의 구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이 두 부분이 긴밀히 연결되어 단 하나의 예배 행위를 구성한다. 미사 때에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체를 제공하는 식탁이 마련되며, 여기서 신자들이 교육을 받고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밖에 개회식과 폐회식의 예식이 첨가되어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8항).”
하느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현존(말씀과 성체)을 중심으로 봉헌하는 미사, 이러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미사의 구조는 하느님 백성들이 지금을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모든 미사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작 예식 – 말씀 전례 – 성찬 전례 – 마침 예식
오늘날 교회는 신자들이 함께 만나 하느님 말씀을 듣고 나눕니다. 그리고 성체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십니다. 이러한 말씀과 성체를 통해 얻게 된 힘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미사의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미사 전례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미사의 구조는 우리에게 능동적인 참여를 돕기 위해 제시됩니다. 공동체가 미사의 구조에 따라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 힘은 구체화됩니다. [2022년 7월 10일(다해) 연중 제15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차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15. 미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3)
미사의 구조는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마침 예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이 하나의 미사가 네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사에서 하나의 예식으로만 참된 목적인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나 인간의 성화를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미사의 구조는 단절된 예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이 어우러져서 일치된 공동체를 드러내는 거룩한 만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미사는 사제나 신자들만이 하느님에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서 하느님과 함께 전례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적인 행위만큼이나 모든 이들의 내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방관자적인 태도가 아닌 능동적으로 이 만남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의 완전함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사 구조의 성경적 근거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루카 24,13-35)들과의 만남을 통해 드러납니다. 두 제자들 사이에서의 대화(시작 예식),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며 말씀을 나눔(말씀 전례), 빵을 나눔(성찬 전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기쁜 소식을 전함(마침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는 미사의 기본 구조를 맛보게 합니다. 미사의 구조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임을 드러내고 있고, 미사 중에 사제들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상징과 표징)들을 통해 거룩한 소통이라는 차원으로 거행됩니다. 미사의 주체는 분명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의 참여 없이는 완전한 미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미사 전례 안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베푸시는 은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들도 있기에 분명 미사는 대화이며, 거룩한 소통입니다. 미사의 구조는 의무 조항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한 거룩한 만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사에서는 말씀과 양식이 하나가 됩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앞당겨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표징이 빵을 떼어 나누고 잔을 함께 마시는 몸짓으로 응축되어 드러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