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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성경본문 : 시편 73: 17-28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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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연수서지방의 목회자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신선하고 맛있는 회를 먹기도 하고, 산에도 오르고, 인천과는 많이 다른 바다도 구경하고, 억새풀 사이를 산책하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기도 하고... 참으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3박 4일의 여정 중에서 원래는 수요일 저녁에 미리 돌아오기로 하였는데, 목요일의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일행들과 함께 목요일 저녁에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정을 바꾸는 중에 재밌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를 뒤적거리다가 제주도에 아주 유명한 팥빙수 집이 있는데, 그 집은 사시사철 팥빙수를 팔고, 얼마나 맛이 좋은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한다는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눈앞에서 팥빙수가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주에 가면 어떻게 해서라도 맛을 보아야 하는데... 막상 가보니, 일정이 하도 빡빡하고 제가 머물던 숙소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정을 하루 늦추다 보니 일행과는 다르게 두 시간 정도 빨리 떠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어서 먼저 비행기를 타려고 여행사 사장과 함께 공항으로 막 출발을 했는데... 5분도 안 되어서 비행기 시간이 일행이 타는 비행기로 변경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두 시간 정도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 때 그 팥빙수가 생각났습니다.
여행사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대찬성 이라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일본 TV에도 두 번이나 방송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기가 투합해서 팥빙수 집을 찾아 가면서 온갖 입방정을 떨었지요.
‘역시... 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 나는 안 되는 일도 되게 하셔...’ 가보니 정말 그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려는데... 소문과는 달리 조용했습니다.
입구가 어둑어둑하고 찾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벽에다가 안내문을 붙여 놓았는데... ‘내부수리중’ 이런 말이 써 있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수요일 저녁에는 그곳에 있는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 불만들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다니느라고 무척 피곤한데...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면 딱 좋겠는데... 숙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꼭 교회를 방문해야 하나... 약속한 교회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만했고,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데에는 한 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결국 그날은 거의 열시가 되어서야 일정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교회는 동행한 한 목사님이 처음 목회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아마 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 가 보았던 곳들 중에서 가장 누추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길도 어두컴컴해서 다시 그곳을 찾아 가라고 하면 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옷차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배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쁨이 생기던지...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아 이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하셨구나...’ 게다가 예배가 끝나고 몇 명 안 되는 그곳 교인들이 꾸려준 떡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데... ‘맛 좀 볼까?’ 하다가 다 먹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함께 하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올 때에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요?
물론 발걸음이 가볍고 무엇인가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실 소중한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자리를 찾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치 못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서 하시는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모두가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몸은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을 때에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오묘한 분이셔서 이렇게... 내키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그 시간에 예기치 못한 은혜를 우리들에게 내려 주시기도 합니다.
아마 지난 수요일 제주도의 작은 마을, 작은 교회에 들어가서 제가 경험했던 것이 그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게는 이런 경험이 참 많습니다.
특히 새벽기도의 경우에는 어떤 날은 몸이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면... 좀 쉬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런 유혹을 이기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지 못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이 땅에서 감리교회의 운동을 시작하게 된 존 웨슬리 목사님의 삶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소중한 순간도 그렇게 찾아 왔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영국 런던의 <올더스케이트>라고 하는 한 거리의 모퉁이에서 있었던 집회에 사실 웨슬리 목사는 별로 가고 싶은 기분이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일기에 그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키지 않았던 마음을 물리치고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가...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신앙의 경험을 그날 밤에 그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든지, ‘쉬지 말고 기도하라...’든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과 같은 신앙의 권면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래야만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인처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항상 그렇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에 나오는 일에 대해서도 많은 내면적인 갈등을 겪기도 하고... 그러는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신실하고 올곧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어쩐지 하나님 앞에 서기에 좀 마음에 거리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믿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갈등이 생길 때... 그것을 물리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한 그런 모습이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이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신앙의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과연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 했을까?
시편 42편에서 어떤 한 신앙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전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신의 마음을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서 헐떡이는 것과 같다’(시42:1)고 하였는데... 과연 이 사람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전을 찾으려 하였을까? 생각해 본다면 아니라고 우리는 분명히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적어도 성소를 향하여 집을 나서기 전부터... 그 발걸음을 성전 문 안에 들여 놓을 때까지 끝없이 갈등하고 회의 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이래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 내가 이런 꼴을 당하고서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가?’ 그런 갈등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갈등하게 하는 문제는 참으로 근본적이고,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그의 마음 상태를 오늘 말씀의 앞부분을 보면서 짐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가진 믿음과 현실 생활에서 겪게 되는 일과의 거리감에서 비롯된 고민입니다.
그는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잘 믿고 그가 주시는 말씀을 잘 지키며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셔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배웠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계명을 어기는 일을 아무런 갈등이나 고민도 없이 하는 사람들...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행동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려 하는 사람들... 그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곧 망해 버리거나 세상에서 발붙이지 못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한탄합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v.5)
그들은 거만하기 이를 데 없고, 악한 생각만을 하며, 남을 비웃고, 괴롭히며 온갖 악한 말을 내뱉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아무런 심판이나 벌을 받는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든지... 아니면 죽는 순간에라도 그들이 저지른 온갖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흔히 당하게 되는 작은 고통이나 어려움조차도 비껴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사람들이 잘 살고... 심지어는 죽을 때에조차 조금의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눈을 감는 현실... 그것은 경건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많은 갈등을 불러 일으켰고...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듯... ‘하나님이라고 해서 다 알 수는 없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해서 다 알 수가 있는 것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않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참으로 커다란 고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스스로 한탄합니다.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 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v.13)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보려고 해도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늘 하나님께 책망을 받으며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v.14)
이렇게 악한 사람들은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리고 살고 있고... 하나님을 잘 믿고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기에게는 늘 시련과 고통이 찾아오게 되자... 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고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이제는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고...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나는 그렇게 살 수는 없어...’ 그런 양심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기의 심경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얽힌 이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v.14-15)
이제 그는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고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오늘 하나님의 성소를 찾을 때까지... 그에게는 이러한 깊은 해결할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의 마음이 도저히 기쁘고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여전히 나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의 마음은 이러한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거리낌이 있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찌 이 사람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고민과 갈등이 없는 것일까요?
오늘 이 아침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향하여 발을 옮기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그런 분들이 우리들 중에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렇지는 않더라도, 종종 그럴 때가 있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공통적인 경험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살려 해도 나에게는 이렇게 힘든 일만 거듭되는 것이지? 왜 나에게는...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에게는 이러한 고통이 끝없이 닥쳐오는 것이지? 이런 해결하기에 힘든 고민과 숙제들이 우리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님의 전을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더디게 하고, 무겁게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내면적인 갈등이 사라지고... 다시금 그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과 소망으로 불타오르게 된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17절의 말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v.17)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저는 성소에서 우리를 맞이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오고 나니까... 그 곳에서 자신을 맞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자기의 고민을 드러내어 놓고 고민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의 눈에는 이제껏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죄악을 일삼으며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보니 그들처럼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v.18) 또한 그들이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모아 놓은 재산... 그것은 태산 같이 높아 보이고 자자손손 물려주게 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데에는 하루아침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v.20)
이렇게 마치 신기루와 같은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나니까... 그동안 자신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부러워하였고,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는 것이 깨달아 집니다.
그러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v.21-22)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성소를 찾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구입을 하니까 나도 덩달아서 따라서 사게 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남들은 다 가지는 데 나는 못가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나서 그것을 구입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 와 보면 오히려 내가 왜 이런 것을 샀을까 후회하게 되기도 하는 경우가 없는지요? 그렇게 사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은데...
“하나님의 성소를 찾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한 평생을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기분이나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왔던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깨달음으로 삶을 다시 돌아보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충만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그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부러움을 버리게 하였을까요?
“세상에서 큰소리치면서 잘 사는 사람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이며... 말이며... 그런 것들을 다하며 마치 세상을 즐기듯 사는 사람들... 그들이 세상에서 보여주는 근사한 모습들... 한동안 그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유혹에도 직면하였는데... 이렇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하고... 덧없는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오면서 문득...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하나님의 성소에는 그가 세상에서 창을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는 그들처럼 잘 살거나, 큰 소리를 치면서 살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삶을 누리면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곁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 때에는 몰랐었는데. 그 때에는 자기는 항상 약자이고, 가난한 자이고, 고독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하나님의 성소에 나와서 깨닫게 된 것’.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v.23)
“아!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었구나...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항상 나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셨구나... 그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하나님의 성소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생활 속에서는 결코 알 수가 없었던 부분이지요.
항상 불만투성이 일수 밖에는 없었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와서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묵상하다가 비로소 그러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이 갑자기 행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가 않았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v.25)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서 모든 불평이나 불만, 억울한 마음,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느끼며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v.28)
마침내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런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경험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성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마가1:11)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그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시는 동안에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출3:12)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서 바로와 대면하고.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너를 지켜준다(창28:15)”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채고는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는 길에서 광야에서 잠을 청하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입니다.
야곱 역시 이렇게 그에게 찾아 오셔서 자기를 지켜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돌보심 덕택에 야곱은 고달픈 나그네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찾은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축복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하시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항상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고민과 상처를 안고 하나님의 성소를 찾아오든지, 하나님은 성소에서 우리들을 따스하게 맞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한다. 나는 항상 네 곁에서 너를 지켜준다...’
오늘도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히 채우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렇게 내 곁에 계시며, 나의 가는 길에 함께 하시며, 나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풍족하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