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로미어(telomere)라는 단어는 말단(telos)과 부위(meros)라는 그리스어 명사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염색체 끝 부분에 달려 있는 단백질 성분의 반복적인 핵산서열(repetitive nucleotide sequence)을 지칭한다. 핵산서열은 TTAGGG로 대략 2,500회 반복된 형태이다. 이 부분은 세포분열이 진행될수록 점점 짧아져 나중에는 매듭만 남게되면서 세포복제가 멈추어 소멸된다. 이것이 노화와 수명을 결정하는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체세포를 제외한 생식세포와 암세포는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아 무한증식이 가능한데, 이는 암세포가 증식할 때마다 텔로미어를 계속 생성해내는 텔로머라제(telomerase)라는 효소 때문이다. 텔로미어를 생성하는 텔로머라제 효소를 발견한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Helen Blackburn)과 조스택(Jack W. Szostak), 그리고 텔로머라제 효소의 역할을 규명한 캐럴 그라이더(Carol W. Greider) 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텔로미어 역할과 텔로머라제(telomerase)
인체세포의 분열은 약 90회 정도라는 횟수의 제한이 있는데, 이것은 염색소체 양쪽 끝에 위치한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좌우된다. 텔로미어는 분열을 할수록 점점 짧아지는데, 극도로 짧아지면 세포는 기능 상실과 함께 분열을 중단하면서 사멸의 길로 접어든다. 이것이 바로 노화현상이다.
그렇다면 텔로미어를 이용해서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텔로미어를 직접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텔로머라제 효소를 이용하여 짧아진 텔로미어 DNA를 길게하여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런데 분명 이 효소는 인체에 존재하는 물질 중 하나이지만 태아때 활발히 작용하다가 출생 후 작동을 멈춘다. 지난 2010년 하바드의대 대너파버 암연구소는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쥐들의 텔로머라아제 효소를 활성화시켜 젊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실험에 참가한 쥐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처럼 뇌의 크기가 75%까지 줄고 뇌세포 생성이 중단된 상태였으며, 정자 수가 지극히 적고 비장과 창자가 수축돼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험 시작 4주 뒤 쥐의 뇌 크기는 100% 회복됐고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자수도 크게 늘어 번식에 성공했다. 또 장기의 기능이 회복됐고, 회색빛의 털이 검게 변하기도 했다. 인지 능력도 향상됐다. 실험 후 쥐들은 위협적인 냄새가 나는 물체를 피해가는 능력을 되찾았다.
실험을 이끈 로널드 드피노 교수는 "이 실험을 시작했을 땐 노화가 지연되거나 잘해야 멈추는 정도를 예상했었다"며 "회춘은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텔로머라아제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텔로머라아제가 세포 안에서 계속 활성화되면 세포 증식이 끊임없이 일어나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이번 실험의 대상이 된 쥐들은 심각한 노화상태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거쳤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노화한 쥐에 대한 실험도 필요하다.
텔로미어 DNA 영역길이를 측정하여 얼마나 오래 살 지를 예측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텔로미어 길이가 짧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죽는 것은 아니지만 텔로미어 길이 측정은 얼마나 빨리 노화되고 있는지를 추측하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이 텔로미어를 잘 통제하고 조절할 수만 있다면 암세포 치료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텔로미어 생성 원리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은 ‘테트라하이메나’라는 작은 원충류의 DNA를 연구하고 있었다. 1978년 테트라하이메나의 텔로미어를 분석해 염기서열이 매우 특이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텔로미어의 염기는 특정서열(5‘-CCCCAA-3’)이 계속 반복되는 형태였다. 반복 정도는 일정치 않았고, 염색체마다 다양했다.
이후 블랙번의 연구에 동참한 잭 쇼스택(Jack Szostak)은 이 특정서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혔다. 테트라헤이메나의 DNA 조각을 이스트에 넣으면 쉽게 조각조각으로 분해된다. 그러나 텔로미어가 붙은 DNA 조각은 분해되지 않았다. 텔로미어가 DNA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쇼스택은 이스트에서도 테트라하이메나와 똑같이 텔로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둘의 염기서열은 매우 비슷했다. 그것은 진화 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종(種)이 똑같은 방법으로 염색체의 끝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블랙번 실험실의 대학원생이었던 캐롤 글라이더가 인공적으로 합성된 텔로미어 DNA 조각에 세포 추출물을 넣자 텔로미어가 추가로 합성됐다. 이는 세포 추출물에 텔로미어를 합성하는 효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글라이더와 블랙번은 수년 동안 노력해 텔로미어를 합성하는 효소인 텔로머라제(telomerase)를 분리했다. 놀랍게도 텔로머라제에는 DNA와 비슷한 핵산인 RNA가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