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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잠깐 계단에 올라오는데 아마 이렇게 자녀가 사탕을 물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어머님이 사탕 먹으면 안 돼 뭐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걸 인사로 할까 말까 하다가 이분들은 시험에 들 분들은 아닌 것 같아서 인사의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사탕 먹어도 됩니다.
웃자왈 인사인데
오늘 설교 양식은 제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설교 양식입니다. 소설이나 이렇게 같은 문학에 많이 쓰여지는 옴니버시스 제가 영어를 밤에 배워가지고 발음이 낮에는 잘 안 돼요. 그래서 옴니버스식 진행의 형태 가진 설교예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건 어떤 의미를 의미하냐 하면 주제나 소재를 가지고 약간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이렇게 짧게 짧게 여러 편 나눠서 하는 것을 옴니버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동안 제가 설교의 주제들을 정말 많이 잡아놨어요.
근데 이게 내용이 많으면 함주 설교로 잡을 수 있겠는데 어떨 때는 뭐 그렇지 않은 분량도 있고 해서 오늘은 그동안 제가 잡아놓았던 설교 주제 세 가지를 여러분이 함께 나누고 그래서 내용에 좀 일치가 없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든 성령이라는 주제 아래 약간 묶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한번 따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자 다시 한 번 따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자.
우리의 예배의 목적과 그리고 기도의 목적, 사역의 목적에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녹아 있을 때가 있어요. 그게 100% 잘못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예배를 잘 드릴 테니까 이렇게 해 주세요. 내가 봉사를 열심히 할 테니까 이렇게 해 주세요라는 마음이 우리의 예배나 봉사의 기저에 깔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근데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이 어리거나 삶의 문제가 많을수록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기도에 그리고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땀과 수고에 문제는 하나님이 반응을 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용의 의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이 반응하시지, 이용의 의도가 남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하나의 우리의 예배에 반응하지 않으시는 것 여러분 기도에도 예배에도 하나님의 반응이 있어야 정상이에요. 노라고 응답하시든 예수로 응답하시든 어떻든 응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그것을 이용하려는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이 언제 이렇게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시향을 넘어올 수 있었던 계기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결단을 할 때부터였어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하란을 떠나는 그 자체도 큰 믿음이었지만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 계기가 언제냐 하면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는 그때부터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용하려는 신앙이 순종하려는 신앙으로 그때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시간이 필요해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에서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신앙으로 바뀌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람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쉽게 알아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우리가 좀 지쳐요. 왜냐하면 주변에 나의 가까이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친구로 다가오거나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오는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를 이용하려고 오니까 내가 조금만 내가 가진 걸 자랑해도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내 주변에 붙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지칩니다.
여러분 사람도 자기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과 반대로 도우려고 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차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똑같은 거죠.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을 가진 성도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성도를 하나님이 잘 구분하신다는 거예요.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기적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순종을 기다리신다.
할렐루야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늘 기적을 기대해요. 하나님 우리 교회를 크게 부응해 주십시오. 근데 하나님은 저에게 뭘 말할까요?
그 기도가 간절해질수록 너는 순종해라. 더 크게 순종해라라고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 여러분과 저의 삶에 뭔가를 해 주실 것을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하나님 여러분과 저에게 이제 이전과 다른 순종을 해라. 더 크게 순종해라고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적은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에요. 특별히 신앙 안에서 믿음 안에서의 기적은 기다린다고 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순종할 때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목장 교회라는 공동체 위에 기적을 행하시고 또 남 일출이라는 이 개인적인 삶 위에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뭔가를 기대하고 계시다면 뭔가를 바라고 소망하고 계시다면 순종하기 시작해 보십시오. 그때 항상 하나님의 응답이 오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요. 도움을 기다려요. 그렇지만 순종의 자리에 신숙하게 가지는 않아요.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순종하는 자리에 설 때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순종이 늦어지는 만큼 하나님의 응답도 늦어지고 하나님의 일하심도 늦어지고 하나님의 역사도 늦어집니다.
신명기 1장 36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 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오.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로망인 가나안 땅은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됐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일하게 순종을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20세 이상 중에는 여호수아, 갈렌만 가난안 땅을 밟게 했던 거예요. 순종하지 않았던 모세도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갈렙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기적 때문이 아니라 순종 때문이었던 거죠.
베드로전서 1장 22절은 우리가 좀 잘 접해보지 않은 내용들이 좀 담겨 있어요. 같이 한번 22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뜨겁게 비차 사랑하라.
순종은 교회와 성도를 깨끗하게 한다는 거예요. 지금 이 땅에 교회가 순결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순종하는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많이 없어졌기 때문인 거죠.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지 못하면 거짓 없는 사랑, 순결한 사랑을 받지 못해요. 근데 깨끗한 영혼은 순종할 때 하나님이 그 교회와 성도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도덕적인 정결함이 영적인 정결함을 반드시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영적인 정결함의 진짜 조건은 순종이에요. 그러니까 그 교회나 성도가 언제 정결해질 수 있느냐 순종할 때 정결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순결해지지 않으면 깨끗한 사랑 이게 십자가의 사랑인 거죠. 이 사랑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정결한 사랑 깨끗한 사랑은 순종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까요?
죄를 덜 지어서 여러분과 저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의 근원에 죄가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죄를 안 지어요?
죄를 안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거죠. 순종하는 것으로 우리의 영혼이 순결해져요. 그리고 그렇게 순결해진 공동체와 개인이 깨끗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교회가 회복이 돼요. 이 교회라는 공동체는 그냥 단순히 한두 사람의 열정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회복이 돼요.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니까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지 않고 영혼이 깨끗하지 않으면 뜨거운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왜 그 많은 열정적인 성도들이 어디로 갔나요?
이 땅에 우리가 그렇게 말하든 그 믿음의 열정적인 어르신들은 다 어디 갔나요?
물론 죽으셨죠 다 천국 가셨죠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때 그분들이 있었다면 지금도 그분들 같은 분이 여기 있어야 정상인 거죠. 이 땅에 차고 넘쳐야 정상인 거죠. 사라진 건 순종인 거죠. 그때도 그들은 죄를 지었고 범죄했어요. 그때 그때 그들의 교회들도 문제가 있었어요. 지금의 교회도 죄를 짓고 지금의 교회도 문제가 있어요.
그럼 뭐가 없어졌어요?
순종이 없어진 거죠. 우리는 자꾸 순종을 목회자가 성도들을 잘 통제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덕목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목회자가 자꾸 성도들을 잘 이렇게 통제하려고 설교를 하고 막 가르치는 것을 그걸 이제 순종의 순종이란 항복이라 생각해요.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목회자든 성도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영이 깨끗해지지 않고 영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랑을 하나요?
계산적인 사랑 기적을 바라는 사랑, 은혜를 바라는 사랑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1장 22절을 고대 성경에 보면 이 성경 사본이 좀 여러 개가 있어요. 성경의 원본은 없습니다. 이제 사본으로 성경의 원본을 유추해서 우리가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 거죠. 사본에는 이 22절에 성령을 통하여 그리고 변함없이라는 이 단어나 문구가 추가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22절을 이것을 넣어서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립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하여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그러니까 어떤 의미냐 하면 성령이 진리에 순종하게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면 그 성령이 우리를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순종은 곧 성령의 일하심의 역사라는 거죠.
성령의 한 영혼과 교회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크게 일하실수록 순종이 더 강력하게 그 개인과 공동체 안에 나타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자 또한 순종의 영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들도 베드로와 많은 제자들이 순교의 명령 앞에서 순종으로 그의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도 순종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인 거죠.
그러니까 성령을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행동과 말을 많이 한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 잘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순종하게 되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생명보다 사명이 우선입니다.
한 번 더 합니다.
생명보다 사명이 우선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면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내가 달려갈 길과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성령이 바울에게 결박과 환란이 각 성에서 바울을 기다린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성령이 가지 말라는 건 아니죠. 사실을 상황을 바울에게 정확하게 많은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 인지를 시켰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전혀 거리낌 없이 복음을 전했고 로마로 가는 길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님께 받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욱 귀하게 여겼기 때문인 거죠. 그러니까 목숨보다 복음 증거의 사명을 더 귀하게 여기었습니다.
여러분 사명과 비전이 현실이 언제 이루어질까요?
여러분 저도 비전이 있고 여러분도 비전이 있어요. 몇 번 말씀드렸던 거지만 제 노트 갤럭시 노트를 말해요. 노트 안에는 여러분도 있지만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들이 한참 이렇게 적어놨어요.
근데 대부분은 아직까지는 안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이 생각을 했어요. 내가 목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안 이루어진 비전이 많다니 뭐 이런 생각이 정말 가끔씩 이렇게 들어요. 오늘 말씀에 그 답에 일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사명을 완수하게 하느냐 이것은 사명이 삶의 1순위가 될 때요. 삶에는 1순위, 2순위, 3순위가 있는데 실은 2순위, 3순위는 삶의 큰 영향력으로 나타나지 않아요. 뭐만 나타나느냐 1순위가 가장 강력하게 삶의 영향력을 끼쳐요.
이런 거죠. 어떤 성도들은 정말 교회를 열심히 해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교회 일을 해요. 근데 그분에게는 교회가 하나님의 일이 1순위가 아니고 자녀가 1순위예요. 그렇다면 이분은 교회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비전을 이루지 않아요. 하나님이 언제 우리의 사명이 사명 되게 하고 비전을 현실화시키냐 하면 그것이 진짜 내 삶의 1순위가 될 때예요.
여러분 오늘 말씀 정말 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비전과 사명을 품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안 이루어주실까요?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그것을 말을 하지만 그건 이순이에요. 그건 삼순이에요. 그건 사순이에요. 문제는 인생에 있어서 2순위와 3순위는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뭐만 그의 영혼을 육체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할까요?
1순위만 그래서 영혼 구원이 1순위가 될 때 하나님이 그 교회 가운데 영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거고, 교회 회복이 1순위가 될 때 교회의 회복을 이루시는 거예요. 왜 사도 바울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력하게 쓰셨냐 하면 그의 삶의 1순위는 복음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들이 하나님의 역사들이 하나님이 2순위와 3순위 된 공동체 가운데 기쁘게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완전히 일하시지 않는다. 이런 의미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기쁘게 일하시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2순위 3순위 됐다는 것은 내 쾌락이 별도로 있고요. 내 즐거움이 별도로 있어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쾌락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공동체에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위해 특별히 자기 비전이 아닌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명이 정말 1순위가 될 때 우리는 그 사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하는 어떤 기도의 내용이 있어요?
그게 정말 여러분의 삶의 1순위가 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이루어 주셔요. 보통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그게 2순위, 3순위, 심지어 100순위까지도 멀어져 있어요.
여러분 당연히 우리의 기도와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기도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당연히 받지 않으시죠?
사의 사명이 진정한 1순위가 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경험합니다. 바울의 사명 복음 전하는 것이었죠. 바울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죄인이 되는 것,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복음 전함이 그의 1순위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9절 말씀입니다. 같이 한 번 읽습니다. 시작
복음을 인하여 내가 제인과 같이 메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삶의 1순위가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서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잖아요. 학교 앞에서 엿을 녹여서 막 이렇게 대문에 교문에 붙여놔도 그거 부끄러워하지 않잖아요. 학교 선생님들에게 막 따져도 그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처녀가 1순위니까 여러분 정말 어떤 것이 내 생애 1순위가 되면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생애 1순위였고 그가 자기에게 준 사명 복음 전함이 그의 생애의 1순위였어요. 그래서 죄인 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매임이 없었던 거예요. 감옥에 가는 것에 대한 아무런 매임이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 전해지는 것이 그의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 복음의 역사가 있었다는 거예요.
영혼 구원의 역사는 정말 영혼을 일순위로 삼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거예요. 교회 부흥의 역사도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많은 재단에 허락해 주셔요. 근데 요즘은 워낙 지역이나 이런 상황이 좀 급변해서 그렇지 않은 동료도 있긴 있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고정된 도시 큰 변화가 없는 도시에서의 부흥은 정말 그 성도들이 부흥이 1순위가 되어서 기도하고 헌신하는 공동체에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이 부흥하지 않는 것은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이 그들의 삶의 1순위가 아닌 거죠. 심지어 목회자도 1순위가 아닌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했던 바울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허락하셨고 그래서 그의 생애를 통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주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순간에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셔요.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서 자기 영혼을 아끼지 않는 자기 삶을 아끼지 않는 성도와 목회자를 사랑하시고 그런 교회를 사랑하셔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에게 사랑받음의 조건이에요. 사랑받음의 조건 누가 기도하죠?
왜 하나님 나는 안 사랑해 주세요. 하나님이 다 사랑하시죠 근데 하나님의 반응에는 차이가 있어요. 사랑은 아시는데 하나님의 반응은 달라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막 뭔가를 줘버리면 그 결과물이 어떠할지 다 알잖아요.
결국 물질도요. 순종하는 사람에게 줘야 그 물질이 하나님의 기쁨에 사용돼요. 교회를 향한 영원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 사람에게 물질을 줘야 그 물질이 교회와 영혼을 위해 쓰여지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기도의 응답에는 주저주저 머뭇머뭇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장 8절의 요지는 성령이 우리를 사명자로 살게 한다는 거예요. 성령의 일하심이 없으니까 사명자도 증인도 없다는 거죠.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된다 이렇게 막 약속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성령의 일하심이 없으니까 사명자도 증인도 없는 거죠. 그러니까 성령 없이 예배하고 성령 없이 세상을 이 땅의 삶을 살아가고 여러분 이거는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우리가 뭔가를 잘했냐 못했느냐를 따지기 전에 내가 과연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인가를 살펴야 됩니다. 이게 보다 더 무서운 게 없어요. 제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절망이 어디 있을까요? 가난한 게 더 큰 절망일까요? 병이 더 큰 절망일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않는 게 가장 큰 절망이죠. 여러분 가족, 우리 목장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는 한 번 따라하겠습니다.
영원한 것은 기도이고 참된 것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합니다.
영원한 것은 기도이고 참된 것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부흥의 근원에는 기도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기도가 기도에 집중한 성도가 있었던 거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했고, 그 모여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고, 성령이 임한 이 사람들을 통해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거죠.
그러니까 초대 교회는 기도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기도가 성령 받게 했고, 성령이 기도하게 했고, 계속되는 기도가 성도들을 새롭게 했고, 새롭게 된 성도들이 영혼 구원의 현장에 있었고 그래서 많은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어요. 그래서 한꺼번에 수천 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예배 앞에서 교회가 영혼 구원 앞에서 교회가 영적인 전쟁 앞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 땅의 교회 위에 성도들이 위에 임하신 날이 오늘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였어요. 기도가 성령을 임하게 했고, 성령 받은 영혼들이 끊임없이 기도함으로 교회는 성령 공동체가 되어 복음 증거의 역사를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기도가 멈춰진 것입니다. 성령이 기도하게 하고 기도가 성령을 일하게 하는 거예요. 기도는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 또한 기도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요즘 여러분에게 어떤 성령의 일하심이 있습니까?
이게 없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교회 다니면 안 돼요.요즘 여러분의 영혼과 삶에 어떤 성령의 임하심이 있냐고요 여러분 이 교재나 이 경험 안에 교회가 놓여져야 돼요. 그게 진짜 교회고 진짜 성도의 모습인 겁니다. 최근에 제가 가장 기뻤던 것은 기뻤던 것 중에 하나예요.
이거 하나만 기쁜 건 아니고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는 자녀가 자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방원을 받았다는 거예요. 막 기도하는데 내 입에서 다른 언어가 나와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기뻤어요. 여러분 기도에 집중하면 영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인생에 일어날 영적인 일들은 기도의 결과물인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데 그 어떤 영적인 일들이 여러분 영혼 속에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기도의 자리로 가셔야 됩니다. 교회를 보통 우리가 영적 공동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공동체라는 의미예요. 근데 이 영적인 일들은 기도할 때 일어나요. 기도에서 멀어지면 영적인 역사가 메말라집니다. 기도가 계속되면 영적인 일도 계속 일어나고 영적인 변화도 계속 일어나요.
우리가 잘 모르는 리즈 하월즈라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윤학렬 감독이라고 부흥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고 얼마 전에 이제 영화관을 통해서 이제 좀 상영이 됐어요. 그래서 저도 보지는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보니까 성도들이 많이 보진 않죠. 이 사람이 부흥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리샤월즈 생가에 가서 이렇게 촬영을 하면서 그의 기도 제목을 봤대요. 기도 제목 아마 이제 저처럼 저도 똑같이 1, 2 이렇게 적어놨나 봐요. 근데 이 사람의 19번째 기도 제목이 남한 사우스 코리아에서 여러분 놀랍지 않나요?
우리의 이 땅에 교회의 부흥은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의 기도의 결과물이라는 거죠. 여러분과 제가 잘나서 누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마 이 당시에 리지 헐즈가 있을 시대에 사우스 코리아는 거의 의미 없는 나라였어요.
근데 어떻게 나만을 품고 기도했을까요?
여러분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사람의 종이 아닌 성령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해야 성령의 종이 돼요. 성령은 지금도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거죠.
여러분 기도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여러분 이 리즈 하월즈가 히틀러와 나치에 좀 맞섰던 사람이에요. 유대인을 학살하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이렇게 몰아갔던 히틀러와 나치 위협에 맞섰던 곳도 그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도가 변한 사람 때문인 거죠.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가 변한 사람을 찾으셔요. 따라 하겠습니다.
나도 기도가 변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에 기도가 변한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이 1순위 된 기도, 하나님 나라가 1순위 된 기도, 생명이 영혼 구원이 1순위 된 기도가 이 재단에 많아질 때 하나님이 그 증거를 저와 여러분 앞에 갖다 놓으실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