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말은 한 뿌리였다'_<문화어 수업>을 읽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 전 이야기이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예비 장인, 장모님을 찾아갔다. 나의 처가는 거창 두메산골, 그 옛날 거창사건이 있었을만큼 깡촌이다. 예비 사위가 온다하여 동네 몇 안되는 이웃들과 인근 도시로 나간 형제들이 찾아와 나를 반겼고 오랜만에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안방에는 남정네들은 한 상에 둘러앉아 술잔을 돌리고 안방 미닫이문 넘어에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부억문 곁엔 내 얼굴을 보기위해 며느리들이 서 있으며 부억과 안방의 가족들에게 새로운 이에 대한 정보를 묻는 듯 하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왁자지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나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도 못 알아 듣는다.
태어나 평생 서울에서만 자랐던 나에게 거창의 방언은 외계어였다. 젠틀하신 장인어른께서 웃고만 있던 내게 물으셨다. "정서방, 한 40% 알아듣나?" 나는 '예'라고 대답했고, 주의 아낙네들은 "에이, 오데요, 아닐겁니더, 아마도 90%는 못 알아들을겝니더", 그 말이 맞다. 단어에 억양이 가미되고, 첫 만남이 긴장됐던 터라, 실제는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전혀 못 알아듣는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 '그냥 웃지요'. 마치 소통이 전혀 안되는 외국에 홀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외국어는 배우고 익혀야 되지만, 방언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고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십수년이 지난 요즘은 제법 그 말이 친숙하다. 몇 가지 어려운 단어들이 있지만, 자세히 듣고 생각하노라면 그 뜻을 헤아릴수 있다. 그리고 몇 개의 단어나 조사들을 못 알아듣는다 하여도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국어학자 한성우는 "지역마다 다른 말들도 결국은 한국어라는 커다란 틀 속에 포함되는 말이고, 남과 북의 말도 본래는 한 뿌리였다"고 말한다. 당신은 북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는가? 이 땅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언어가 어느정도 동화되었지만, 남한에 첫 발을 내딛는 탈북민들을 만나면 소통이 여간 어렵지 않다. 외래어를 많이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남북민이 언어가 이렇게 다랐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울말을 표준어라 하고 북한은 평양말을 문화어라 한다. 우리는 표준어가 정통이고 문화어가 방언이라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문화어가 세종때의 언어와 닮아 있다. 남한의 구어 'ㅈ,ㅊ,ㅉ'는 북한의 구어 'ㄷ,ㅌ,ㄸ'로 바뀐다. 세종때 사용한 '그렇디', '하디'와 같은 말을 북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남한에서는 '그렇지', '하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우리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처음 만난 사람, 처음 생활을 하는 지역의 방언이 그들에게 한국말로 들리지 않을까? 어릴때 로버트 할리의 구수한 대구 사투리를 들으며 신기해 했었다. 그때는 연출인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가 경상도에 정착해 경상도 사람들과 생활하니 자연스레 한국어도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성우가 탈북한 기자 설송아와 함께 집필한 <문화어 수업>에서는 두 종류의 한국어 교제가 소개 된다. 하나는 성경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존 로스 목사가 집필한 <한국어 초보>이고, 또 한 권은 1902년에서 1904년에 이르기 까지 러시아 카잔에서 집필된 <한국인을 위한 철자교과서>, <노한 회화>, <노한 소사전>이다. 먼저 소개한 존 로스의 <한국어 초보>는 평안도 방언으로 집필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카잔에서 펴낸 한국교제들은 함경도 방언으로 집필되었다. 다양한 방언으로 소개된 한국어, 이 모든 방언이 한국어 이다.
도서 <문화어 수업>의 부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이다. 여기서 다음 세대는 통일이후의 세대가 아니라 통일로 가는 세대를 말한다. 남북의 2국가, 2체제가 유지되지만,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해 나가려는 세대, 어떻게 하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세대가 통일로 가는 세대이다. 70여년의 긴 세월간 많은 언어만큼이나 많은 이질감이 있는 남북의 상황이지만, 결국 한국어가 한 뿌리에서 나왔듯이,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은 같은 조상을 둔 같은 민족이다. 비록 남북이 다름은 있지만, 우리 서로 소통하여 더불어 함께 한반도에서 살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