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탱고(Por Una Cabeza) 장면
"Por Una Cabeza"란 "간발의 차이로"라는 뜻입니다. 가사의 내용은 "경마를 했는데 말 머리 하나 차이로 말아먹었네"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뭐 이런 뜻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배우이기도 했던 카를로스 가르델이 작곡했다고 합니다.
[ 영화 <여인의 향기> ]
이 영화는 명배우 알 파치노가 주인공 중 한명인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으로 출연해 시각장애인을 열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탱고씬을 비롯, 페라리 질주 씬, 슬레이드 중령의 연설 등 많은 명장면들로 가득한 90년대 걸작영화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알 파치노는 이 작품으
로 6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오랜 아카데미의 숙원을 풀었습니다. 그는 수상 이전까지 해도 후보에만 7번 올랐었습니다. (사진, 묘령의 아가씨와 탱고를 추는 알 파치노)
영화의 삽입곡 ‘Por Una Cabeza’가 이 영화로 인해 탱고 하면 떠오르는 음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씬에서 영국출신 여배우 개브리엘 앤워와 알 파치노의 혼을 실은 연기가 일품입니다. 영화상의 그의 맹인 연기는 압권입니다. 대부분 장면에서 장황한 대사 처리와 감정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초점 없이 화자를 바라보는 모습은 실제 그가 맹인이 아닐까 할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실제로 본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알 파치노 본인이 하도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 안구 건조증에 시달렸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상복 없던 그의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습니다. 3100만 달러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1억 349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서도 성공했습니다.
이 영화는 명장면이 수도 없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는 탱고 장면이 워낙 인상적이고, 제목도 오해하기 딱 좋은지라 영화의 내용이 남녀의 로맨스가 중심인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기도 합니다. 명장면들 중에서 추가로 꼽자면 영화 후반부 슬레이드의 자살 시도와 그의 연설 장면(아래에서 소개)을 들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또 다른 주인공 찰리 심즈(크리스 오도넬 분)가 다니는 사립 명문고인 베어드 스쿨의 교장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거만한 성품으로 학생들의 미움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자동차와 자신이
흰 페인트으로 뒤덮이는 망신을 당하고 그 범인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심즈를 회유와 협박을 하는 것이 영화의 또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사진, 뉴욕에 도착한 슬레이드와 심즈)
명문대학 추천이냐? 퇴학이냐?라는 찰리에게 향후 인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 교장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입시 제도에서 교장 선생의 추천서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개망신을 준 문제의 학생들을 고자질하라는 교장의 회유와 협박은 심즈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짐이었습니다. 결국은 슬레이드 중령의 사자후를 토하는 명연설로 심즈는 궁지에서 벗어납니다.
Tip :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후아(Whoo-Ah)’라는 감탄사를 많이 뱉어 냅니다. 이 말은 알 파치노에 의하면 영화촬영을 위해 총기 분해와 조립을 가르쳐준 사람의 말버릇이었다고 합니다.
*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영화 막바지에 펼쳐지는 최고의 명장면이 펼쳐집니다. 찰리의 큰 고민 이었던, 말(친구들을 일러 바치는 일)을 할 것인가 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와 관련해서, 프랭크는 감동적인 연설로 찰리의 곤경을 해결해 줍니다.
교장선생의 차에 페인트를 쏟아 붓는 장난을 친 세 명의 학생을 목격한 찰리는 교장으로부터 누군지 말하면 하버드 추천서를 쓰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퇴학이라는 압박을 받습니다.(사진, 사자후를 토하는 슬레이드)
그는 여행 내내 고민하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신념을 지키려 하지요. 그러한 그의 결정에 대해 퇴학을 선언하는 교장에게 사자후를 토하는 프랭크의 연설이 압권입니다.
<교장> 찰리 심즈군, 자넨 은닉자이며 거짓말쟁이야.
<프랭크 슬레이드> 그러나 밀고자는 아니죠!
<교장> 뭐라고요?
<프랭크 슬레이드> 나라도 그랬을 거요.
<교장> 프랭크 씨!
<프랭크 슬레이드> 이건 정말 개수작이오!
<교장> 말조심 하세요. 프랭크 씨, 여긴 베어드 고교지 군대가 아닙니다.
심스 군, 내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프랭크 슬레이드> 심즈는 원치 않습니다. 가치 있는 베어드의 학생이라고 불러줄 필요도 없어요. 이게 뭡니까? 이 학교 교훈이 뭐요? 급우의 비행을 밀고해라, 숨기면 너희를 화형에 처하겠다.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군 달아
나고 누군 남아요. 찰리는 위기와 맞섰고 조지는 아버지 주머니 속에 숨었죠, 그런데 어찌 됐죠? 조지에겐 상을 주고 찰리는 파멸시킨다고요?(사진, 뉴욕에서 페라리를 모는 슬레이드)
<교장> 끝나셨나요?
<프랭크 슬레이드> 아뇨. 이제 겨우 시작한 겁니다. 난 누가 여기 이 학교를 세웠는지 모릅니다. 윌리암 하워드인지 윌리안 제닝스 브라이안튼지 그의 정신은 죽었어요. 만일 정신이 있었다면 사라진 거죠. 당신이 이곳을 밀고자 소굴로 만들었잖소.
만일 학생들을 남자답게 만들고 싶다면 다시 생각하시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 학교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거요? 망치는 거요? 오늘 이 자리에서 벌이는 이 쇼가 대체 뭡니까? 교훈이 될 것이라곤 내 옆에 있는 이 아이뿐이오.
이 아이의 영혼은 정말로 순수하고 타협을 모릅니다. 당신은 아시죠? 밝힐 수 없지만 누군가가 그의 영혼을 사려고 했소. 그러나 찰리는 팔지 않습니다.
<교장> 지나치시군요.
<프랭크 슬레이드> 지나친 걸 한번 보여 드릴까요? 당신은 지나친 게 뭔지도 모르실 거요. 그걸 보이기엔 내가 너무 늙었고 피곤하고 앞도 못 보죠. 만약, 5년 전이었다면 난 이곳에 불을 싸질렀을 거요! 지나치다니,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요?
내게도 당신 같이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소. 그 때는 이런 소년들(월남전에서 나이어린 병사들을 말함)이 그리고 더 어린 소년들이 팔다리가 찢겨 나가는 것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를 꺾으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소. 그건 치료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이번 일이 단지 이 젊은 병사를 퇴학시켜서 오레곤(찰리의 고향)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고 여길 테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그건 그의 영혼을 죽이는 짓이오! 왜냐? 그는 나쁜 인간이 아니니까.
이 애를 해치는 당신은 베어드의 얼간이요, 모두가 악한이요. 그리고 해리, 지미, 트랜트(이상은 교장을 엿 먹인 악동들) 어디 있는지 몰라도 모두 엿 같은 놈들이야!
<교장> 그만 하세요, 프랭크 씨!
<프랭크 슬레이드> 아직 안 끝났어요. 난 여기 왔을 때 이 학교가 지도자의 요람이라는 말을 들었죠. 그러나 이곳에선 요람은 추락했소. 사람을 만들고 지도자를 만드는 분들, 자신들이 어떤 지도자를 만드는지 생각해 보시오. 난
모르겠어요, 오늘 찰리의 침묵이 옳은지 그른지를... 난 판사가 아니니까.(사진, 연설이 끝나고 심즈에게 청중들의 반응을 물어보고 있는 슬레이드)
그는 자기 장래를 위해서 누구도 팔지 않았소. 그리고 여러분 그건 바로 순결함이고 용기죠. 그게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오.
난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언제나 바른 길을 알았죠. 잘 알았지만 그 길을 뿌리쳤어요. 왜냐? 그 길은 너무 어려워서죠. 여기 있는 찰리도 지금 갈림길에 있어요. 그가 지금 선택한 길은 바른 길입니다.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길 바른 인격으로 이끄는 길이죠. 그가 계속 걸어가게 하세요. 여러분들 손에 그의 장래가 달렸습니다. 위원님들 가치 있는 그의 장래를 날 믿고 파괴하지 마세요. 보호하고 포용하세요. 언젠가는 그걸 자랑으로 여기실 겁니다.
[ 알 파치노의 파란만장한 삶 ]
1940년 4월25일 뉴욕 이스트할렘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알프레도 제임스 파치노. 시실리 출신 아버지 살바토레와 어머니 로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와 둘이 브롱크스의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얼마 뒤 조부모와 숙모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생계를 이어야 했던 어머니가 일을 나가 있는 동안 알 파치노는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나면 집에서 혼자 연기하
는 걸 흉내 내곤 했다”는 그는 1년간 청각장애를 가진 두 숙모와 지내면서 대화를 위해 말 대신 몸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기를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쫓겨난 알 파치노는 그때부터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구두닦이, 슈퍼마켓 점원, 경비원 등을 전전하며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잠깐씩 출연했던 그에게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제시한 곳은 말론 브랜도와 더스틴 호프먼을 키웠던 연기학교 액터스 스튜디오였습니다.
알 파치노의 영화 데뷔작은 제리 샤츠버그 감독의 <백색의 공포>(1971). 그는 2년 뒤 제리 샤츠버그 감독과 <허수아비>(1973)에서 다시 만나는데 진 해크먼과 함께 출연한 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알 파치노에게 진정한 영화인생을 터준 것은 역시 <대부>(1972)였습니다. 라이언 오닐, 워런 비티, 잭 니콜슨, 알랭 들롱 등 쟁쟁한 후보들이 마이클 콜레오네 역의 후보로 등장했지만 코폴라는 알 파치노를 고집했습니다.
당시 그는 스크린 테스트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 실수를 연발했지만 코폴라는 스튜디오 간부들의 반대를 묵살하며 알 파치노를 캐스팅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알 파치노는 “누군가 내게 <대부>는 당신이 아니었어도 훌륭한 영화였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
건 사실이다. 난 그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사진, <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는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루멧, 브라이언 드 팔마, 윌리엄 프리드킨 같은 뉴할리우드의 작가들과 보냈지만 술과 담배, 신경안정제에 탐닉하면서 경력은 내리막을 향했습니다.
1985년 출연한 시대극 <혁명>이 실패하면서 4년간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렌 바킨과 공연한 형사물 <사랑의 파도>(1989). 뒤이어 <딕 트레이시>(1990)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였고 <프랭
키와 쟈니>(1991)에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알 파치노의 재기는 <여인의 향기>(1992)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사후추인됐지만 영화사적으로 좀 더 중요한 작품은 <칼리토>(1993)입니다. <칼리토>는 <대부>에서 시작된 알 파치노의 갱스터 연대기에서 하나의 정점이었습니다. 1996년작 <뉴욕광시곡>은 알 파치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사진, <대부>에서)
자연인 알 파치노는 한번도 결혼한 적 없는 남자로도 유명합니다. 연기교사 얀 타란트와 사이에 12살된 딸이 있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여배우 비벌리 안젤로가 최근 쌍둥이를 낳았지만 그가 결혼계획을 발표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 탱고(Tango)이야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 ]
탱고는 1860년경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겨났습니다.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사창가와 술집에서 춤으로 먼저 태어난 것이죠. 그리고 음악이 뒤따라 나왔습니다. 1916년까지 탱고는 다른 곳이 아니라 사창가에서 순번을 기다리던 남자들끼리 추곤 하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탱고에 담긴 아픔과 슬픔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돈을 벌겠다고 홀로 이민을 온 사람들의 절망감과 외로움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창녀들에게서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할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말하자면 다 채울 수 없는 사랑, 즉 총체적인 사랑에 대한 향수가 탱고에 담기게 된 것입니다. 탱고의 음악적 뿌리에는 아프리카적인 요소와 스페인적인 요소가 녹아있고 쿠바의 하바네라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탱고와도 연
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탱고(Tango)의 어원은 라틴어 탄게레(Tangere)입니다. 이는 ‘만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육체보다는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코디언의 일종인 반도네온(Bandoneon),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경쾌하고 활기찬 음악에 맞춰 두 남녀가 상대방을 놓칠세라 공간을 파고들며 환희에 찬 현란한 춤 동작을 선보입니다.
애수에 찬 현악기의 흐느끼는 듯한 선율에 서로를 갈구하는 애절한 눈빛과 고혹적인 표정을 짓고 마지막 절정의 순간 아름다움의 극치 ‘볼의 입맞춤’은 보는 이의 심장을 멎게 합니다.
아르헨티나 정착기 서민들 사이에서 시작된 탱고는 오래지 않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류층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탱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유기적인 결합은 탱고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했고 음악과 춤, 영화, 피겨 등 여러 분야로 확산되면서 인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탱고는 애절한 음악 속에 삶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을 표현한 춤이자 육체로 말하는 또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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