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번째 편지 - 세 가지 여름 피서
프롤로그
지금 시각은 9월 9일 월요일 아침 6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밀려듭니다. 더위가 가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7월, 8월 생애 가장 긴 열대야를 경험하였고,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름이 우리 생애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끔찍한 예언도 있습니다. 지난여름을 돌이켜 보니 생각나는 피서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피서
이 여름, 저희는 부엌, 식당, 거실을 묶어 인테리어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 건축가에게 예쁜 커피숍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10월 초 완성될 커피숍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문제는 그곳의 짐을 다른 공간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제 서재, 침실 모두 짐이 가득입니다. 걸어 다닐 좁은 통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짐입니다. 저는 잘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책상 뒤 창문 옆 작은 공간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지금은 제법 익숙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꽤나 멋집니다. 잠은 이곳에서 자지만 책상에서 공부하기에는 너무 산만합니다. 그래서 사무실로 피신하기로 했습니다.
사무실은 집에서 15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아주 제격입니다. 주말마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밤늦게 퇴근했습니다. 사무실 제 방이 그렇게 아늑하고 쾌적한 곳인지 몰랐습니다.
주말 사무실 피서는 그 어떤 피서보다 멋진 피서였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공부하면서 고시 공부할 때의 추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 적도 있습니다.
두 번째 피서
아이들과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모자이크 공유 별장의 풀빌라를 빌렸습니다. 저는 지방의 3,40평짜리 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곳도 더울 텐데 그곳에서 피서가 될까? 그냥 가족들과 하루를 보낸다는 데 의미를 두자 생각하고 출발했습니다. 차로 2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습니다.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한 공간이었습니다.
뜰에는 길이 20m짜리 작은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야외 수영장에 갈 일이 없습니다. 짐을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 들어갔습니다.
수영도 해보고 수중 걷기도 하고 수영장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수영장에 넣고 그 위에 앉아 명상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시간 반을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영장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생애 처음일 것입니다. 그 수영장은 너무나도 쾌적했습니다. 인피니티 수영장에서 앞 산을 바라보며 혼자 서성대는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베큐로 저녁을 먹고 쾌적한 거실에서 가족 예배를 보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의 통창을 보니 앞산에 안개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눈앞이 심산유곡입니다.
아침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물은 약간 차가웠지만 들어갈만합니다. 1시간을 수영했습니다. 쾌적한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여름 피서 경험 중 단연 최고입니다.
세 번째 피서
저희 회사는 창업 후 지금까지 매달 <마루 파티>를 해왔습니다. 직원들이 대부분 외부 사이트에 나가 있어 한 달에 한 번은 다 같이 얼굴을 볼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회사의 초기 이름 <행복 마루>의 마루에 파티를 붙여 <마루 파티>라는 이름의 행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처음과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준비조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10년이 흐르자 마루 파티는 모두에게 재미없는 숙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마루 파티를 두 달에 한 번 야외에서 진행하기로 변경했습니다.
8월은 마루 파티의 달입니다. 이 더위에 어디를 가나 했더니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과천 계곡으로 물놀이를 간다고 합니다. 과천 계곡 음식점에 자리를 마련하고, 식사 전 간단한 게임을 했습니다.
게임은 보물찾기입니다. 준비조는 구슬 100개를 계곡 땅 위와 물속에 숨겨놓았습니다. 몇 개의 구슬을 찾으면 상품이 주어집니다.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직원도 구슬을 찾으러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처음엔 잘 눈에 띄지 않더니 자세히 보니 구슬이 눈에 띕니다.
"대표님 저 이렇게 많이 모았어요." 나귀녀 경리 실장 손에는 구슬이 가득 있습니다. 그것으로 상품도 받고 구슬을 못 찾은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0대 소녀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게임도 하고, 계곡에 발을 담그며, 닭백숙도 먹는 피서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노니 더운 줄 몰랐습니다. 직원과 같이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재미난 경험입니다.
에필로그
여러분의 2024년 여름은 어떠셨나요. 힘들고 지치셨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는 여름을 떠나보내며 지난 추억을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9.9.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