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밭 한 뙈기, 대한민국 참 훌륭하다, 숲에 온 외
한남대학교 전 총장 김형태 장로님이 한교선 단톡방에 공유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비가 오면 /이상희 ■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벼 / 이성부 ■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초가을엔 비가 조금씩 내리고. 맑은 날, 높은 하늘이 계속되어야 한다. 뜰 앞에선 밤시간에 귀뚜라미가 노래하고, 넓은 들판에선 황금물결이 농부의 격앙가라네.)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바 다 3 / 이도윤 ■
썩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움직이는 바다를 보아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아라
그런 자만이 마침내
뜨거운 해를 낳는다.
(** 萬里風吹 山不動 /千年水積 海無量/ 만리밖에서부터 바람이 불어닥쳐도 산은 흔들리지 않고/ 천년동안 물을 쏟아부어도 바다는 넘치는 법이 없다.)
(**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功遂身退는 공로만 남겨놓고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니 곧 정년퇴임의 의미이다.
심는 자와 가꾸는자와 거두는 자가 서로 달라도 그 모두에게 영광이 된다.)
◆ 꽃을 피우는 삶이란 ◆
나무는 심어진 자리에 대해 투덜대지 않습니다.
어디에 심어졌건 그 자리에서 뿌리 깊숙히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온몸에 햇볕을 받아들이며 줄기를 키우기 위해 힘씁니다.
꽃을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꽃을 피우는 삶이란 모든일에 감사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꽃을 피운다는것은 단단히 붙잡는 것입니다.
만약 꽃을 피울 수 없을 때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세요!
살다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꽃을 피우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물아치거나 연일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없을 때는 무리하게 꽃을 피우려 애쓰지 말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세요.
다음에 피울 꽃이 더욱 탐스럽고 아름답도록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자리를 봐 가며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리가 어디든 그곳에서 꽃을 피우세요!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와타나베 가즈코
■ 간 격 / 안도현 ■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소 멸 / 조태일 ■
산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 점 티끌도 안 보이게
나를 지운다.
(** 금년 여름도 서서히 떠나가고 있다. 옛 사람들은 이때쯤 되면 큰 줄부채에 <淸風甘來 處署退伏>이라는 구절을 써넣어 떠나는 더위를 송별하곤 했다.
더워도, 추워도 결국 3개월. <이것도 역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 밤 부터는 무엇인가 덮어야 잠을 잘 수 있을것이다.)
[대한민국 참 훌륭하다]
항공ㆍ우주산업에서 만큼은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던 대한민국에 최근 경사가 이어졌다.
2022.7월. 한국형전투기 KF--21보라매가 최초로 시험비행에 성공하며 세계 8 번째로 초음속 전투기를 직접 개발한 나라가 됐다.
우주분야에서는 2022. 6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로 세계 11번째로 자력 우주로켓 발사국이자 1톤 이상의 실용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번째 나라가 되었다.
이에 더해 최근 2022.8.5일에는 우리나라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달로 향하는 궤적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후발 주자로 출발한 우리로서는 얼마 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물론 일조일석에 된 일은 아니다.
KF--21 시험비행은 1999년 4월 제2차 항공우주산업개발정책 심의회에서 전투기 독자개발 계획을 심의한 이후 23년 만에 이뤄낸 일이며, 누리호 개발도 13년 전인 2010년 3월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다누리호 발사 역시 2013년 달탐사선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한 지 9년 만에 거둔 성과다
모두 당장 눈앞의 성과만 바라봤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KF--21 개발때도 '그 정도 돈이면 최신형 전투기를 사는 게 낫다'는 회의론이 대두됐었고, 우주 개발도 천문학적 세금의 낭비라는 비판을 계속 받았다.
그럼에도 그 일을 계속해온 것은 오직 국가의 미래만 보았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 위성기술의 독자개발, 국제협력 증진, 미래의 달 자원 확보 및 우주 영역 증대 등과 더불어 '새로운 세대(후손)들에게 우주관련 활동에 대한 영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안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교육과 종교계 지도자들이 미션과 비젼. 액션과 커뮤니케이션에 더욱 헌신해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정치 지도자들도 이렇게 열심을 다하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동냥은 못 주나마 쪽박은 깨지 말자.
(2022. 8 월을 보내며)
[온종일 내리는 비는 없다]
노자(老子)는 자연계의 운동방식을 말하면서, 사납게 내리는 소낙비도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도 결국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것이 자연이다(希言自然) 회오리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불어도 아침나절 계속해서 불진 않고(瓢風不終朝) 소낙비가 아무리 세차게 내려도 온종일 내리진 않는다.(驟雨不終日)"
이런 생각의 관점에서 보면 노자에게 自然은 곧 時間이다. 저절로(自) 그렇게(然) 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가 아물고 슬픔이 멈추는 데도 시간이 작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넘어가기 힘든 역경을 만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고 상황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 소나기가 나만 젖게 하려고 내리는 것도 아니고, 저 바람이 나만 해치려고 부는 것도 아니다. 소나기와 바람은 그저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현상일 뿐이지. 그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누구를 힘들게 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면 슬픔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최고의 시간이 순간이라면, 최악의 시간도 역시 순간이다.
老子는 이런 깨달음을 갖고 사는 사람을 도를 품고 사는 사람(同道)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道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시간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 덕성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동덕(同德)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변화는 돌고 돌아(天運循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無往不復)는 생각이다.
(박재희/석천학당 원장)
(** 시간이 지나면 비도 바람도 멈출 것이니 그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여유를 갖자.
소금이 썩겠나, 모래가 싹나겠나 결국 하나님의 섭리대로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 숲에 온 / 유자효 ■
누구나 가슴에 산 하나 지니고 산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늙어가면서
산은 늘 우리의 곁에 있었다.
이웃에 산을 두고 살기에
산은 어느새 우리의 가슴에 들어와 있다
참 고운 생명의 원천이며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기에
산은 세상의 어머니
죽어 돌아갈 곳도 산의 품이다.
산을 사랑하는 자
평화를 해침이 없다
숲을 사랑하는 자
풀벌레 한 마리도
참 고맙다
자, 이제 산에 온
산의 숲에 온
숲 속에서 우리는 슬기로운 자.
숲 속에서 우리는 자애로운 자
숲 속에서 우리는 명상하는 자
숲 속에서 우리는 깨우치는 자
숲은 우리에게 그냥 주노니
그 생명의 힘을 한껏 가져라
반딧불이를 좇아 마을을 헤매던 유년의 추억
이제는 꿈을 찾아 세상을 떠도는 이들
서 있는 키 큰 형제들이 기다리는
숲에 온
사랑하는 이여
그들이 그립거든
숲으로 오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나무를 '서 있는 키 큰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이름인가 ? )
[뿌리가 나무에게/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 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 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등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 시 속에서 '나'는 어머니(아버지)요, '너'는 자녀들일거다. 땅위에서 자녀가 잘 되도록 부모는 땅 속 어둔 곳으로 내려가 수분과 영양분을 뽑아 올리는데 온 힘을 다 기우리며 희생을 감수한다. 조건 없는 일방적 사랑이다. 부모가 돼 봐야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