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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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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소통광장 이순신 최후의 미스테리
김자 추천 0 조회 287 12.09.11 10:15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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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9.11 12:11

    첫댓글 그런일도.....!

  • 12.09.11 13:23

    김자님,
    '이순신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시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왜 물에 빠져죽었다고 생각하지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하고 화살 맞은 거 잖아요...

  • 작성자 12.09.11 13:31

    저는 잠적설에 무게를 둡니다... 제 생각대로 이순신이 소리소문 없이 잠적을 했다면... 부하들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은 이순신을... 물에 빠져 죽지 않았나... 의심했을 거라는 뜻입니다.^^

  • 12.09.11 13:35

    잠적했다는 설도 있군요. 활을 맞고 죽은 장군의 얼굴이 못 알아볼 정도로 훼손되지 않는 한 어째서 이순신 장군이 잠적했다고 하는지요... 죄송^^ 제가 아이들이 읽는 위인전 수준으로만 이순신장군을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 12.09.11 14:25

    당시 국내외 정세를 간추리면... 선조는 어떻게든 조선이...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바랐고... 명나라 군사 역시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고... 왜군 역시 승산없는 전쟁임을 진작에 깨달았고...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왜군과 명군 간에 협상이 진행되어... 명군의 암묵적인 양해하에 왜군이 철군을 서두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순신은 왜군을 끝까지 물고늘어져... 박살을 내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이순신은 선조는 물론이고... 특히 명으로부터도 죽임을 당할 처지에 몰렸습니다. 물론 본인이 자초한 일이지요... 그런 정황 때문에... 잠적설이 나온 겁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추론에 불과합니다.^^

  • 12.09.11 14:05

    숙종때 문신인 이민서는'김충장공유사'에서 "이순신은 싸울 적에 갑옷을 벗고 스스로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적고 있으며.....(혹시 선조와의 관계?)
    고금면 덕동리에 임시로 봉안(안치)하였다가 이듬해인 1599.2월 아산시 금성산에 안장하였고 1614년 어라산(현위치)으로
    이장한것으로 기록, 참고하시길.

  • 작성자 12.09.11 17:58

    ^^그 내용이 우리가 정사로 알고있는 내용이지요... 여기서... 한참 싸울 때 갑옷을 벗고 싸웠다... 그 전후가 의문이지요... 싸움이 끝나갈 무렵... 승리를 확신하고 갑옷을 벗었다면... 그 다음 행동에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졌다?...적의 유탄에 맞아 죽었다? 또한 죽기를 작정하고 갑옷을 벗었으니...자살이 맞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이순신의 최후에 관한 진실입니다..........김충장공유사 건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글에 등장한 내용이지 이순신을 본격 연구한 글은 아니지요? 물론 이민서도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기록한 것도 아니구요...^^

  • 12.09.11 15:18

    전사든 자살이든 배제하고, 장군의 유해를 옮기는 과정을 살펴보면 고금도에 안치되었다 84일 만에 금성산에 장사하였다하는데 이시기는 전시이고 또한 겨울철이므로 시신의 손상(부패)이 적어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됩니다.
    따라서 84일 만에 장사 지냈다면 느린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비취어 볼 때 신속하고 적절했다 할 것입니다.

    이장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이장도 흔히 있는 일이고, 구광터(이장한곳)에 후인이 묘를 쓰는 것은 지금도 흔히 있습니다.

  • 작성자 12.09.11 16:07

    ^^ 본문글에도 나옵니다만... 구광터에 하필 손자가 묻혔다는 게 궁금합니다... 물론 세종대왕의 영릉도 구광터였다는 것은 알지만...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장하고 그 자리에 자신이 묻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

  • 12.09.11 17:03

    청년들이 인터넷의 자료로 역추적해 본 이순신 장군은 키가 180 이 넘었다고 하니 그 때의 기준으로는 초거인이었지요 지휘용 칼도 길이가 거의 2미터였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처녀(임자없는) 애인도 있었고 과부애인도 잇엇습니다. 아무튼 하늘이 이 강토를 지키기 위해 내려보낸 분인 것은 틀링없습니다.

  • 12.09.11 19:50

    많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이젠 정확한것을 알아내기가 거의 요원해졌지요.

  • 작성자 12.09.11 19:58

    ^^ 저는 소설에 기대를 겁니다... 소설의 힘이 사서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몇년전 서울대 논술시험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거든요......^^

  • 12.09.12 15:40

    저도 잠적설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노량해전에서 치열할수도 있었겠지만 숱한 어려운 전장에서도 무패의 명장이 거의 전의를 상실한 왜군을 향한 마지막 전투에서 이순신장군을 비롯한 최측근 명장들 몇몇이 동시 전사했다는것은 상당히 석연치 않다는 내용을 들은바가 있습니다...시끄러워지게 될 정쟁을 피해서 장군을 비롯한 몇몇장수들이 무인도로 은둔하여 천수를 누렸다는 얘기도 들은바가 있습니다....물론 역사에 없는 픽션이지만 드라마에도 나올수있음직한 내용이 아닐까 쉽네요 ^^

  • 작성자 12.09.12 15:50

    ^^오래전에 본 내용이라 제목은 가물가물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명나라에서 이순신의 소환을 요구했고... 이여송의 설득으로 무마했다는 기록과... 이여송이 귀국하면서 이순신에게 명으로 망명할 것을 권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또한 잠적설을 뒷받침해준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또하나는... 명이 지원군을 보내면서... 자국군대 지휘권에 만족했겠는가 입니다...명색이 종주국인 명은 틀림없이 조선군의 지휘권까지도 요구했을 겁니다... 이는 실록에 사실대로 기록할 수도 없는 일... 지휘권 다툼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을 거라 짐작만 할뿐입니다.^^

  • 12.09.13 15:49

    한가지의문은 왜놈들이 서고에 묻혀있어 아무도 알지도 못하는 것을 찾아내어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을 만들엇다고 한다 잊혀진 이순신을 왜 왜놈들이 찾아내어 영웅 만든 이유가 뭘까 왜놈들에게 치욕을 안겨준 인물을 서고에서 잠자는 인물로 잊혀진 영웅을 살여낸 이유가 무척 궁금 했다 왜놈이 이익없이는 절대로 봉사할 위인이 못 되기 때문에 거져 위인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숨은 이유가 있을것이다 하고 때 를 기다리다 김덕생 호랑이 사건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합니다 조선에 백성이 식민지적인 삶을 수긍 잘하게 조선사 편수회를 통하여 역사조작할시 조정에다 욕을하고 분노를 가지게 모함을 하였다 조정에서 이순신이 ㄴ

  • 12.09.13 15:57

    ->>늘 인정을 못 받고 위험인물로 배척을 받아 모함받는 것으로 묘사는 왜독이다 그래서 공을 인정 못 받으니 마직막 전투에서 갑옷도 안 입고 지휘하다 자결하듯이 총탄에 서거는 왜독으로 본다 이내용을 보는 후손들은 얼마나 열을 받고 분노하고 조정을 불신하는지 알것이다 그런 영웅을 대접 못하는 나라에 독립운동 해서 뭐하나 그런 설예가 있으니 독립운동 하지말고 협조백성(친일파)되어라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 일데기를 손댄 것으로 조작이 되어 있다고 본다 어떻게 마직막 전투가 될지 어찌 알 았는지 이상하고 최선을 다하여 장열히 전사 한것을 조선에 정신을 이간질 시키열고 전사를 자결로 조작한 것으로 본다,,,,,,,

  • 작성자 12.09.13 16:23

    ^^ 다른 건 다 좋은데요... 우리가 알고있는 이순신의 대부분은 그가 쓴 난중일기가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난중일기가 휘갈겨 쓴 초서체인지라 해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일기란 개인의 사생활을 기록한 글이라...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한 부분때문에 논란이 있는 것이지... 일기 자체를 왜놈들이 왜곡할 수는 없죠... 세상이 어느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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