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행이 돈 내 삼성에 SW 인재 육성 요청, 대체 대학은 뭘 하나
조선일보
입력 2023.06.27. 03:14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3/06/27/T2VHNHAALFGS3FRZIWIQNNE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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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국내 4대 은행들이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 측에 20억원을 기부하고 SW인재 육성을 요청하는 협약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이원덕 우리은행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 신한은행 정상혁 행장, 하나은행 이승열 행장, 이훈규 아이들과미래재단 이사장./삼성 제공
4대 은행이 소프트웨어(SW) 인력을 양성하는 삼성그룹에 20억원을 기부하고 ‘금융 특화 인재’의 공급을 요청했다. 대학이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는 컴퓨터 개발자 인력을 구하기 위해 은행들이 기업에 SOS를 친 셈이다.
은행 기부를 받은 ‘삼성 청년 SW아카데미’는 대졸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1년간 컴퓨터 코딩 교육을 1800시간 이상 시켜 대학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못지않는 코딩 능력을 갖추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수료생 4000여 명은 1000여 개 기업에 취업했고, 금융회사 취업자도 726명에 달한다. SW 개발자 육성 및 공급은 대학의 몫인데, 대학이 제 역할을 못하자 기업이 그 역할을 대신 떠안았고, 다른 기업들이 그 기업에 돈을 내고 인재를 키워 달라고 하는 것이다.
삼성뿐 아니라 LG그룹은 인공지능(AI) 대학원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AI 전문 인력을 키우고 있다. 포스코·KT·네이버 등도 취준생 등을 대상으로 AI·빅데이터·SW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기업들이 IT 인력을 직접 키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기 사업하기도 바쁜 기업들이 많은 돈을 써가며 왜 이런 인재 양성에 나섰겠나. 대학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생은 넘쳐나는데, 기업들은 필요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이 매년 수천 명씩 모자란다. 반도체 학과보다 문학과, 철학과가 더 많다. AI·빅데이터·배터리·바이오·전기차 등 첨단 산업에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구시대 낡은 과목을 철밥통으로 붙들고 있는 교수들이 대학을 첨단 연구와 수업이 이뤄지는 치열한 현장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하고 안정된 직장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학과 벽 허물기, 학과 간 정원 조정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은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10년 만에 141명에서 745명으로 늘린 반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15년 이상 55명으로 묶여 있었다. 3년 전 첨단 인력 육성을 위해 서울대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을 만들었는데, 지원자가 구름같이 몰렸지만 정원 제한 탓에 40명밖에 뽑지 못했다. 우리 학생들은 연간 1000만원씩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지만 진짜 교육은 졸업 후 다시 받아야 한다. 정말 이래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