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碑木)의 슬픈 사연
40년 전이었다. 언덕배기에 호박을 심을까 해서 구덩이를 파면 여기저기서 뼈 조각이며 하얀 해골이 나왔다.
밭을 일구려고 괭이질을 하면 간간히 괭이 손잡이가 부러졌다. 쇠 조각이 나온 것이다. 어떤 것은 커다란 파편이었다.
그런가 하면 계곡이며 능선에는 군데군데 녹 슬은 철모와 탄피가 나왔다.
어느 날은 밭이랑에서 썩어가는 개머리판과 카빈총이 나왔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등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오래 동안 뭍여있던 주인공은 어떤 분일까?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
20대 한창 나이에 산화한 것일까? M1 소총이 아니라 카빈총인걸 보니 소대장이었겠지!
첩첩산골 이끼 덮인 돌무덤에서,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하얀 목련꽃이 수줍게 피어있다.
포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서 이름 모를 젊은이를, 비바람에 긴 긴 세월을 지켜주고 있는 그 새하얀 목련꽃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궁노루는 사향노루다. 하루는 보초가 사향노루를 잡아왔는데 사향 냄새가 내무반 안에 진동을 했다.
밤마다 사라진 짝을 찾는 노루의 애닲은 울음소리 때문에 소대원 모두가 잠을 설쳤다.
작사 한명희(韓明熙, 1939~) 1964년 임관 후 7사단 백암산 OP에서 근무
동양방송에서 라디오 DJ로 일하다 통금 때문에 귀가하지 못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과거 군 시절 비목(碑木)이 떠올라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까꿍 아침산책 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