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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사카에서 고야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날입니다. 고야산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2016년 10월에 간사이 지방을 여행할 때 주유패스로 오사카를 전부 돌다시피 했더니 더이상 오사카를 돌아보는 일에는 미련이 남지도 않거니와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 또한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오사카는 일정에서 완전 제외를 하고 지난번에 턱없이 부족했던 교토와 오사카에서 당일치기도 다녀올수 있는 근교 와카야마시와 고야산을 일정에 넣어 보았습니다.
간사이 쓰루패스가 있으니 정말 편합니다.
오사카 남바역이나 신이마미아역에서 난카이 선으로 간사이 쓰루패스를 활용하여 갈수 있었습니다.
고야산 마지막 한 구간이 케이블 카로 되어 있었지만 철도회사에서 산까지 기차가 갈 수 있게 하는 개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그냥 역 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구간을 케이블카로 가지만 추가로 케이블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간사이 쓰루패스가 있으면 고야산 버스 이용도 가능하니 고야산 다녀올때 아주 유용한 여행자 교통패스였습니다. 버스요금은 간사이 쓰루패스가 없으면 매우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1일 2일 자유 이용권도 있던데 가격이 꽤 비쌉니다.
고아산역에서 내리면 버스를 타고 25분정도 가면 오쿠노인마에 버스 정류장 - 오쿠노인행을 타고 가면 됩니다.
오쿠노인 정류장에서 돌아오면서 센주인바시 버스 정류장에 내려 곤고부지, 단조가란, 다이몬 세 군데를 걸어서 돌아보면 됩니다. 이렇게 돌아보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난카이 신이마미야 역 1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고쿠라쿠바시 고야산행 쾌속급행열차를 타고 종점인 고쿠라쿠바시 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직행은 하루 5회밖에 없어서 중간에 하시모토에서 갈아타고 가면 됩니다 . (요금은 870엔. 간사이 쓰루패스 무료)
고야산 직행 열차가 없을 때는 같은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하시모토행 급행열차를 타고 종점인 하시모토역까지 간 다음, 내려서 고야산행 열차로 갈아타고 가면 되어서 그렇게 타고 갔습니다.
고야산에서 가장 좋은 일정은
오쿠노인 ㅡ 곤고부지 ㅡ 단조가란 ㅡ 다이몬 ㅡ 도쿠가와 이에야스영대 순이 좋습니다.
고야산역에 도착하면 맨 먼저 2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오쿠노인부터 다녀오는 것이 좋습니다.
뇨닌도라고 고야산 1200년 역사중 1000년동안 여자들은 고야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 뇨닌도까지만 와서 기도하고 갔다는 절인데 이곳은 그냥 패스 했습니다.
그리고 오쿠노인 돌아보고 다시 버스 타고 고야산쪽으로 돌아오다가 센주인바시에 내리면 그곳에서 곤고부지. 단조가란과, 다이몬은 걸어서 다니면 될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고야산 바로 전역에 내리면 고야산역으로 가는 이런 케이블 카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표를 통과시키지 않고 바로 연결해서 탈 수 있도록 되어있어 안내에 따라 이동해 승차를 하면 됩니다.
고야산역에 내려 2번 버스 정류장에 대기해 있는 오쿠노인행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니 산속이라서인지 벚꽃이 도심보다 늦게 피어 완전 절정에 있습니다.
벚꽃 시즌을 지나고 여행이 시작되어 안타까웠었는데 일정을 고야산으로 잡고보니 산속 기온이 아무래도 도심보다 낮아서 4월 29일인데 벚꽃이 활짝 피어있어 반갑기만 했습니다.
오쿠노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참배객들에게 아주 인기입니다.
불교의 성지에 해당하는 고야산인데 묘가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20만기 넘게 묘가 있다는 것을 보니 풍수지리상 이곳이 명당인가봅니다.
참배로 사이의 수백년된 삼나무들이 즐비하여 삼림욕하며 산책하듯 걷기 딱 좋은 길이었습니다.
수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뺵빽하게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도요토미 정권의 오봉행중 필두였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를 지지하였던 아사나 나가마사와 그의 아들이자 기슈번의 초대 번주인 아사노 요시나가및 그 후계들의 무덤입니다.
이 곳의 묘는 이렇게 당대 내놓으라하는 집안의 가족묘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망이라는 소설에 이름이 한두번씩은 등장했던 인물들의 묘가 많습니다.
묘가 많으니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심이 당연해 보입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때나 볼 수 있는 불상 목욕..
수향지장입니다. 물로 지장보살을 씻어 공양하는 곳입니다.
어묘교(오뵤바시)라는 이 다리를 지나면 구카이를 모신 어묘가 있습니다.
이 다리를 지날 때는 반드시 합장하고 1배하고 지나가야 한다는데 홍법대사에 대한 존경심이 일본내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교토에도 곳곳에 홍법대사의 숨결이 있었습니다.
홍법대사 어당 가는 길입니다.
고야산 오쿠노인은 진언종의 개조인 홍법대사 공해(구카이)의 무덤입니다.
일본 진언종에서는 아직도 구카이는 죽지않고 무덤 안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고, 더불어 최고의 성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홍법대사 구카이가 모셔진 이곳에 무덤을 썼기 때문에 현재 20만기에 이르는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특히 전국 다이묘의 60%이상이 이곳에 무덤을 쓰고 있고 무덤 축조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지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인 곳이라는 것이죠.
이곳에 모셔진 무덤은 실제 화장한 유골을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홍법대사와 가까워지기 위해 유골의 일부나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모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 종파를 가리지 않고 역대 고승들도 여기에 무덤을 썼습니다. 정토진종이나 일련종 고승들도 여기에 무덤을 쓸 정도입니다.
가장 추앙받는 스님중 한명인 홍법대사의 묘.
홍법대사, 공해, 구카이,,모두 같은 사람 다른 이름입니다.
헤이안 시대 최징과 더불어 최고의 승려로 이름을 떨쳤고 이곳 고야산에서 수행중 일본 왕실에서 도지(동사)를 지으며 동사의 주지자리를 맡아 달라 요청하여 교토역 근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도지의 주지가 되었던 스님입니다.
이 분은 아마도 천재였던 모양입니다.
관료가 되려고 공부하다 한 스님을 만나 불교에 감화되어 31세에 스님이 되었다는데 독학으로 중국어, 산스크리트어까지 능통하게 익혔고,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인 제자들을 제쳐두고 3개월만에 혜과스님의 법통을 잇는 수제자가 되어 일본으로 되돌아와 일본에 밀교를 일으킨 장본인 입니다.
홍법대사 어당에는 홍법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등롱당으로 건물은 1965년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입니다.
1940년 히데요시 봉영회에서 세웠다고 합니다. 뒤의 큰 오륜탑이 히데요시의 것이며 그 앞에 동생 히데나가, 어머니의 무덤등이라고 합니다. 히데요시의 묘에는 관복을 입은 히데요시의 목상을 봉납했다고 합니다. 실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은 교토에 있습니다.
이 무덤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차남인 유키히데야스와 그 어머니인 초소인 오만노카타의 무덤입니다.
유키 히데야스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지 못했고, 사실상 인질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로 보내져 이름도 이 두 아버지의 글자를 하나씩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친부모보다 양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더 좋아했다고 하며 유키 히데요시도 이에야스보다 히데요시를 더 존경했다고 합니다. 주색을 탐했다고 하며 매독으로 삼십대에 죽고 말았는데 병으로 코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왼쪽 무덤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적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오만노카타의 무덤으로 본래 두 건물 모두 극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며, 안에는 금박을 입힌 석탑이 있다고 합니다.
돌로 석실이 만들어져 있는데다 이끼며 엄청 오래된 묘가 아닐까 했는데 약 400여년 전의 묘인 것입니다.
스님으로 유명한 법연 상인(상인이란 성인의 경지에 올라있는 높은 수준의 스님에게 붙여주는 고유명사)의 묘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일본 정토종의 시조인 원광대사 호넨(법연)의 묘입니다.
역시 종파에 관계없이 많은 승려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워낙 삼림이 울창하여 좋은 공기 마시며 산책하듯 돌아볼만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고야산으로 오는 주변 경관을 보니 울창한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평지는 없고 산으로 계속 이어진 지역을 기차도 복선도 아닌 단선으로 놓여져 있을 정도의 산악지대였습니다.
참으로 척박한 지역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차를 타고 왔더랬는데 고야산은 산악지역으로 쭉 이어지던 그런 산악지역의 정점을 찍는 곳이었습니다.
과거의 수도였던 교토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고 산중 깊은 곳이라 수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역이었을 것 같습니다.
오쿠노인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센주인바시로 갔습니다.
곤고부지, 단조가란, 다이몬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곤고부지는 도지의 진언종과 함께 총본산을 자처하는 고야산 진언종의 총본산입니다.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홍법대사(구카이)는 당에서 유학하여 밀교를 배워와서 덴노의 큰 신임을 받았으며 이후 전설에 따르면 수행에 적합한 여러 땅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신들의 외호를 받아 고야산을 발견하고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이후 구카이는 덴노로부터 고야산을 하사받았고 이후 성장 발전하였고.
나라 불교와의 갈등은 천태종과 달리 이들이 기존 권력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타협하였고, 또 천태종의 엔라쿠지(연력사)처럼 승병이 설치되지도 았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 왔으며 전성기에는 2천여 곳의 사찰이 고야산 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약 100여개 사찰이 남아 있습니다.
고야산 최대 위기는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립으로 그는 엔라쿠지를 정벌한 후 각지의 진언종 승려를 죽이고 고야산을 공격하려 했는데 마침 그 직전 혼노지의 변으로 그가 죽어 고야산은 화를 면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고야산을 정벌하려 했는데 무사출신 승려의 중재로 사찰령 토지의 많은 부분을 바치고 고야산은 생존할 수 있었답니다.
종루 : 와카야마현의 지정문화재이며 본래 세이간지의 건물로 19세기 재건한 것입니다
본래 곤고부지(금강봉사)는 고정된 사찰이 아니라 고야산에 있는 사찰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었습니다.
20세기 이후 종교법인을 등록해야 하면서 세이간지(청암사) 와 코잔지(흥산사)라는 가장 큰 사찰 두 곳이 통합해 지금의 곤고부지 자리로 이전하고 곤고부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청암사는 히데요시의 보리사로 지어진 사찰로 관백 히데쓰구도 이곳에서 자결한 곳입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승려의 수행 생활공간인 대소는 총본산 곤고부지(금강봉사)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고 금당, 부동당, 등 중앙 신앙의 권역을 단조가란(단상가람)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하되 기본적으로 곤고부지의 관리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지금도 고야산의 권역은 단조가란(단상가람)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독립하되 기본적으로 곤고부지의 관리를 받도록 했고, 어째튼 그렇기에 지금도 고야산내 여러 건물과 문화재의 소유관계가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대소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일본 최대의 석정이 뒤에 있고 히데쓰구가 할복했다는 방도 있습니다.
종합권을 1500엔을 구매하면 고야산지역의 곤고부지, 단조가란, 도쿠가와영대등을 모두 돌아볼 수 있습니다.
프리랜ㅅ
단조가란(단상가람) 입구 사복로입니다.
오쿠노인부터 대문까지의 길쭉한 고야산 경내의 모습을 구카이는 용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그중 이 부분이 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뱀의 배 길이라는 이름에서 사복로라고 부른답니다.
단조가란(단상가람)이란 곤고부지의 중심부, 즉 신앙공간에 해당하는 곳으로
본래 고야산은 근본대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조가란을 중심에 놓고 여러 사찰이 난립한 모습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이후 토지와 대지의 소유권 문제들이 생기면서 지금의 총본산 곤고부지를 세우고 , 단조가란도 곤고부지의 소유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상 고야산 전체의 신앙지 역할을 하며 나머지 각각의 사찰은 수행과 생활의 공간입니다.
단조가란의 건물은 수차례의 화재로 부동상 등 몇개의 건물을 제외하면 다 재건된 것이며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도 많습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동탑으로 헤이안시대 후기 시라카와덴노의 명령에 따라 지어졌으며 수차례 소실되어 지금의 탑은 1984년 재건된 것.
삼매당인데 삼매수행의 의식을 하던 곳으로 지금 건물은 19세기에 재건된 것입니다.
삼매당 앞에는 헤이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이쿄가 심었다는 사쿠라가 있습니다.
근본대탑.. 20세기 재건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다보탑은 구카이(공해)가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계속 세우고자 했으나 결국 그의 조카이자 2대 좌주인 신넨의 대에 세워졌고 안에는 태장계 대일여래을 중심으로 금강계 사방불과 16주의 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재로 소실 되어 오랫동안 재건되지 않았으나 1937년 홍법대사(구카이)의 입정 1100년을 기념하여 재건하였습니다.
근본대탑의 화려한 내부 모습입니다. 따로 들어가면 입장료는 200엔
육각경장..
도바 법왕의 황후가 지었다고 하나 지금의 건물은 1934년에 재건한 것이랍니다. 시계방향으로 한번 돌리면 대장경을 한번 읽은것이라는.... 문맹이 많았을 테니 글을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해도 불교에 귀의할 수 있는 쉬운 방법으로 접근하게 했던 건물이죠.
이 입간판 아래쪽에 등산로가 나 있었습니다.
과거 고야산 순례길이며 99굽이길이라고 합니다.
이 삼문 앞 도로는 일본의 아름다운 드라이브길 100선 안에 드는 길로 잘 알려져 있는 도로입니다.
산속이라 그런지 현재 기온이 13.9도네요. 이런 낮은 기온 덕에 벚꽃이 늦게 피어 벚꽃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일본 여행시 벚꽃철을 지나게 되면 이런 고야산이나 , 엔라쿠지가 있는 히에이잔, 같은 곳을 여행하면 약간 늦게피는 벚꽃 구경도 할 수 있고 좋을 것 같습니다.
단조가란을 나와 조금 걸으니 다이몬이 나옵니다.
높이 25미터의 도다이지나 지온인 삼문과 맞먹는 규모의 문입니다.
건립당시는 조금 더 아래쪽에 있었으나 화재가 난 이후에 1705년 현재의 자리에 재건한 중요 문화재입니다.
문 앞쪽으로 가보니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나 있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스님이나 신도들이 그 길을 걸어서 이 삼문을 통해 절로 들어갔겠죠.
도쿠가와 이에야스 영대.
에도막부 268년의 권세를 누리게 만든 초석을 다진 인물의 영대이고 쇼군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도 실제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죠.
이 영대는 에도막부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1대쇼군인 도쿠가와 이야야스와 2대 쇼군 히데타다를 모신 사당이 있는 곳입니다.
에도 막부가 시작되어 2대 3대를 거치면서 아마도 가장 안정기로 접어드는 3대 이에미쓰시절에 많은 것들이 재건되고 지어졌으며 이 사당도 역시 그 때 만들어진 곳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족묘에 이어 뛰어난 스님들의 묘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대(도쿠가와의 묘는 도쿄 북쪽을 지키는 신이 되겠다며 도쿄 북쪽 닛코시에 묻어달라해서 거기 묻고 신사도 만들었죠)에 이르기까지 고야산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고야산이 풍수지리상으로는 좋다고 알려진 명당자리인 모양입니다.
오사카에서 기차타고 교외로 소풍간다는 개념으로 당일치기로 잘 돌아보고 오사카로 갑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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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