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한나에게도 매 순간 속을 뒤집어 놓고 격동시키고 후벼 파는 '사람 가시(막대기)'가 있었습니다. 남편 엘가나의 두 번째 부인인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는 무자한 한나를 같은 여자로서 가엾게 여겨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무자하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한나의 마음을 찌르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려댔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나는 브닌나로 인하여 속이 상하고 천불이 나고 분노가 끓어오를 때마다 브닌나와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브닌나와 그 일로 다투거나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성소에 올라가 통곡하며 하나님께 그 상한 마음을 토설하게 된다(삼상 1:9-11).
맞습니다. 성경에는 "참는 자가 복이 있다(약 1:12)"고 말하지만 정확한 뉘앙스는 참는 자가 아니라 "참아지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죄(?)로 인하여 무조건 참고 또 참으며 할 수만 있다면 나를 격동시키는 사람과 안 부딪히려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다 보니 삶의 질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도 기쁨도 상실한 채로 분노 게이지가 하루에도 수없이 레드라인을 넘나듭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그와 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나를 찌르는 그 사람과 수평적으로 부딪히지 말고 한나와 같이 수직적인 방법을 통해 풀어야 어떠한 분통이나 억울함의 늪에서 헤어날 수가 있습니다.
참고 버티고 견딤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는 정말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문제의 접근 방식은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심은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지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참아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론 1%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어떻게 시시때때로 속을 뒤집어 놓고 진땀을 나게 하고 마음을 극도로 긴장시키고 불안케 하는 그 사람에 대하여 참아질까요?
우리 주변에는 참지 못해서 혹은 참아지지 않아서 낭패를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만큼 성도의 삶에 참는 일은 핵심사항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아~ 내가 그때 참았더라면 내가 그때 분노를 조절했더라면 내가 그때 조금만 더 견디고 버텼더라면~이라고 회한을 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참는 일은 물 붓듯이 부어지는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한나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기에 수평적으로 브닌나와 부딪히지 않고 수직적인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은혜의 보좌인 기도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통곡(삼상 1:11)했고 오래 기도했습니다(삼상 1:12). 그런 과정 중에 놀라운 일을 한나는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통곡하며 오래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과 풀러그인(plug-in)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마음을 통했다(삼상 1:15)"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열심히 오래 기도해도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기도는 부질없는 기도일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자제품이 있더라도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 흔한 휴대폰 충전도 못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교회서 살다시피 하고 매일 새벽을 깨워 기도를 드리고 자주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과 접촉(플러그인), 즉 '통함'이 없다면 우리의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며 브닌나를 향한 분노(짜증+혈기)는 결코 참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참는다'라고 말합니다. '참을 만큼 참았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의 정확한 표현은 '참은 게 아니라 (벼른 것)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억지로 누루고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지적이고 종교적인 참음'이 아니라 '저절로 참아지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수시로 통해야 합니다. 통하는 기도, 통하는 예배, 통하는 봉사, 통하는 사역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열매를 맺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를 수시로 격동시킨 브닌나는 한나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파견한 도구이며 통로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를 죽을 만큼 힘들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그 누군가로 인하여 감사를 심어야 합니다. 그가 없이는 주가 원하시는 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참을 수 없는데 참아야 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참는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이제는 참는 것을 뛰어넘어 참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아지는 은혜"를 받아야 하고 참아지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성소에 나아가 통곡하며 오래오래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독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통하게(플러그인)되고 비로소 그 어떤 브닌나를 만나고 브닌나와 공존하더라도 참아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고 우리는 그로 인해 놀라게 될 것입니다. "얼굴에 다시는 수색 (愁色)이 없으니라(삼상 1:18)" '참아지면' 얼굴에 수색이 없고 '참으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이 참는 것과 참아지는 것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응답은 우리를 격동시키는 브닌나가 제거되거나 브닌나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여전한데) 우리의 얼굴에 수심이 없어지는 신령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독대함으로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와 내가 플러그인 되는 것입니다.
복된주일 기도제목들 다 응답 받고 늘 행복한 삶을 축복받는 주일과 한 주간 건강하게 보내세요.
첫댓글 주일을 맞이하며
첫시간에 올려준 감동의 글입니다
평안한 주일 되시고
뭐니뭐니해도 건강하세요
한 주도 꿈을 가지고 온전히 감당하며 피곤치 않게 지내세요.^^
주일 잘~보내셨어요?
이번 한주도 승리하며
건강하게 지내시고
예쁜 가을 보시거든 올려주세요^^
평안한 잠 자요~~~
이번 주도 해피하게 잘 지내시고 날마다 행복한 시간들 보내세요.^^
승리하며 나아가는 가을 되십시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화이팅 하세요.^^
안개가 심한 아침이네요
조심해서 다니시고
오늘도 승리승리하셔요!
평온한 하루 건강한 하루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항상 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