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4월 28일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도착 당일 오사카로 들어가지 않고 반대쪽 방향의 와카야마시를 여행한 후 오사카로 들어갔습니다.
다음날은 당일치기로 고야산을 다녀왔고.
3일째인 4월 30일에는 오사카의 일정은 이번 여행에서 전혀 계획이 없기에 바로 교토로 이동을 했습니다.
여러 패스중 간사이 쓰루패스를 하루치 더 있었더라면 히에이잔의 엔라쿠지나, 오하라를 교토로 이동하는 날 갔으면 좋았으련만 막판까지 간사이 쓰루패스는 2일치만 구하게 되고 차선책으로 구한 패스가 한큐패스여서 교토로 이동하는 날 일정으로 한큐패스로 갈 수 있는 아라시야마로 정했습니다.
오늘의 이동 경로는 오사카 한큐선을 타고 교토로 이동하면서 가쓰라역에서 내려 아라시야마로 갔다가 숙소인 시조 가와라마치로 가는 일정입니다.
호린지 ㅡ 텐류지 ㅡ 치쿠린 ㅡ 세이료지 ㅡ 다이카쿠지ㅡ 마쓰오신사 ㅡ 사이호지(갔으나 문닫힘)ㅡ 시조 가와라마치의 일정 입니디
우메다역에서 한큐선을 탔습니다.
급행을 타고 가다가 가쓰라역에서 아라시야마행 기차로 갈아타야 합니다.
급행에서 내리니 바로 옆 플랫폼에 기차가 정차해 있길래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아마도 아라시야마행이려니 혼자 생각하고는 내 맘대로 결정하고 허겁지겁 탔습니다. 타서라도 좀 물어볼껄......
가다가 두 정거장 지나 사이호지 가려고 내렸는데 역무원에게 사이호지 마쓰오신사등을 물어보니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자꾸만 가쓰라 역으로 가라고 하는 것 같은 겁니다.
그럼에도 아라시야마 행 기차인줄 알고 다시 그럼 종점인 아라시야마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동해 상황을 잠시 살펴보니....
아라시야마 행 기차를 탔던 것이 아니라 옆에 대기해 있는 로컬 기차인 시조 가와라마치행 기차를 탔던 거였습니다. 급행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환승한답시고 완행기차를 탄 꼴이었습니다.
다시 거꾸로 두정거장인 가쓰라역으로 가서보니 1번 플랫폼으로 가야 아라시야마행 기차를 탈 수 있던 거였습니다.
덕분에 무거운 배낭을 플랫폼 환승하러 가는 중간에 있는 짐 보관하는 곳이 눈에 띄어 300엔에 보관하였습니다.
다시 돌아와 찾아가기 수월했기에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시간손해는 좀 있었습니다.
짐을 수월하게 보관한 덕분에 먼저 종점이인 아라시야마로 가서 구경후 시간이 되는대로 마쓰오 신사나 사이호지는 구경하기로하고 아라시야마역으로 바로 갔습니다.
아라시야마에서는 <텐류지>가 주 포인트지만 시간 여유가 되니 호린지 부터 들렀습니다.
호린지의 최대 장점은 이렇게 아라시야마의 전경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좋았습니다.
호린지에서는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인지 법당안에 사람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가 사진한장 찍어봤습니다.
호린지는 바로 이 도월교를 놓은 진도창 스님이 머문 절입니다.
호린지를 구경해주고 걸어서 도월교를 지나 아라시야마행의 주 목적인 텐류지(천룡사)로 갔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로 일본 특별명승 및 사적 제1호로 지정된 정원이 있는 곳입니다.
교토의 대표적 명소로 낙동에 청수사가 있다면 낙서엔 천룡사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절입니다.
1333년 고다이고 덴노가 무장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도움을 받아 가마쿠라 막부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3년뒤 바로그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이반하여 고묘 덴노를 등극시키고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이 되었습니다.
고다이고 덴노는 요시노로 내려가 왕조(남조)를 따로 차리고 권토중래할 불굴의 기개를 보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3년뒤 1339년에 죽었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아시카가 쇼군이 고다이고 덴노의 명복을 빌기위해 지은 절이 바로 텐류지(천룡사)입니다.
몽창국사를 개산조로 해서 창건된 절입니다.
처음에는 연호를 따서 역응사라 하였으나 아시카가 쇼군의 권력이 세고, 몽창국사 도력이 아무리 높아도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만 될수 는 없었는데 기존 불교계의 반발과 특히 연력사 승려들이 연호를 빼라고 거세게 항의 했고, 결국 2년뒤 역응이라는 연호를 빼고 이름을 아예 텐류지(천룡사)로 바꾸었습니다.
연호를 사용한 교토의 절 연력사, 건인사도 대단하지만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들고 일어나는 연력사 승려들의 파워도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승병까지 있을 정도였다니...... 결국은 이렇게 세력이 강해진 것이 화가되어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을 받기까지 약 200여년 동안 상당한 세력으로써 역할을 하던 곳이 연력사 이다보니 아시카가 쇼군이 기존의 불교세력을 제압하고 선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천룡사를 거대한 사찰로 만들 작정이었던 겁니다.(일본인들이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장대한 취미가 나오는지 ,,)
이 주변 300만평에 절을 세우는 방대한 구상. 문제는 자금이었는데 지방 다이묘들이 몇 백 석의 장원을 기진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는 게획이었습니다.
몽창국사는 이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원나라에 무역선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당시 무역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습니다다.
통상 중국 비단은 20배, 도자기.서화.사탕은 최소 5배에서 10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무역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과 송나라의 교역은 산신산겐도(삼십삼간당)의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북송에 무역선을 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원나라의 두 차례 침공 이후 끊겼다가 14세기 원나라 말기에 남쪽 양자강 하구 영파를 거점으로 재개되었습니다.
1342년 무역선 천룡호가 원나라에 가게 되었던 겁니다.
이익금 일부를 막부에 납입한다는 조건 이었습니다. 대신 막부는 왜구로부터 지켜주는 댓가로 앉은 자리에서 자금을 챙길 수 있는 돈맛을 본 막부는 천룡사호 이후 여러 번 무역선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원이 망한 후는 막부가 명나라와 정식 무역하는 '감합'무역으로 발전했고, 이로인해 선종이 크게 일어났고, 도자기와 그림 등 중국의 발달된 문화가 속속 전래되어 무로마치시대 일본문화가 꽃피는 물질적. 문화적 자산이 된 것이었습니다.
몽창국사는 도력때문인지 정치력 때문인지 남조 북조 모두에게서 국사칭호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1275년 이세 지방의 한 호족의 아들로 태어나 18세때 동대사에서 수계후 참선에 몰두 1325년 51세때 남선사 주지를 맡아달라 청원.
정토종 사찰이 서방사를 선종 사찰로 개조해 달라는 청을 받고 주지가 된 인물입니다.
천룡사는 이런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절인 것입니다.
텐류지 방장의 현판을 보고..
"방장의 현판은 서법에 충실한 동복사의 방장, 선적 이미지가 은은히 배어나오는 용안사의 방장 글씨에 비하면 너무 목청이 크고 필획이 신경질적이어서 객기가 좀 지나치다는 인상을 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님은 이 방장의 현판을 보고 이렇게 적으셨네요.
천룡사는 그 무엇보다도 조원지라는 바로 이 정원이 백미죠.
선종 사찰이니만큼 명상을 위한 정원이어서인지 정원앞에 앉아 있으면 고요한 마음이 들게하는 곳이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방장 건물로 들어가서 보는 정원보다 방장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떡하니 나타나는 이 정원의 첫느낌이 감동적이라는 글이 생각나 방장에는 들어가지 않고 정원으로 직접 가서 한참을 앉아 고요를 즐겼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와중에도 정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건축이나 정원조성에 대해 잘 몰라도 참으로 멋진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룡사는 1467년 오닌의 난때 전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부흥 복원 시책에 따라 다시 재건. 1815년 또 화재 재건 부흥하려던 차 1864년 금문의 변 때 막부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교토로 들어온 조슈번이 천룡사에 머물자 막부군이 여기에 포격을 가하는 바람에 완전히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무로마치 막부가 세우고 에도막부가 무너뜨린..)
페불훼석때는 사역의 90퍼센트를 정부에 수용되었습니다.
한때 150곳이 넘었다는 탑두 사원이 있을 정도였다니 규모가 짐작이 갑니다.
현재는 탑두사원도 10곳에 불과하고 불타버린 천룡사도 20세기 재건한 절이지만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몽창국사가 조성한 조원지라는 정원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에 이렇게 돌로 다리를 놓아 연결하는 방식의 정원을 조성한 최초의 정원이 바로 이 천룡사 정원이라고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님은 어떻게 말씀 하셨는지 적어보면..
"연못의 한쪽 면은 낮은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어 자연 풍광과 연장선을 그리고 있는데 한쪽은 장대한 크기의 대방장과 소방장 두 건물이 기역자로 연못을 감싸며 마주하고 있다.
자연과 인공이 나란히 마주한 그 공간 안에서 연못은 마치 평온의 절충지대인 양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어느 정원에서도 볼 수 없는 조원지의 멋이고 자랑이다.
조원지의 연못 수면이 앉아 있는 지점과 거의 비슷 이것이 조원지가 평온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3개의 돌더미는 석가삼존석이고, 한쪽에 놓여있는 돌다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 석교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어찌보면 화사한 야마토에의 한 장면 같고 어찌 보면 담담한 수묵산수화를 연상시킨다. 공가의 우아함과 선가의 차분함이 어우러진 것, 그것이 이 조원지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조원지는 지천회유식 정원. 연못 양쪽에 있는 작은 섬을 학섬과 거북섬이라고 안내서에 나와 있는데 학자들은 이런 통속적인 해설을 못마땅해한다.
몽창국사의 작정의도에는 회유의 개념이 없었다고 본다. 연못 주위를 노닐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참선의 이미지로 나아가게 한다는 뜻이 서려 있었다는 것이다.
천룡사 정원의 참뜻과 가치는 다른 데 있다.
헤이안시대 귀족의 저택은 '침전조'라는 형식이 지배적이었다. 1정이라 불린 사방 약 120미터의 울타리 안에 생활공간으로 침전 건물을 짓고는 집 안쪽에 정원을 배치한 구조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집을 지을 때 길가에 바짝 붙여 짓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안쪽에 그윽한 정원을 조성하는 방식은 이 전통에서 나왔다.
침전조 정원은 연못을 조성하고 그 안에 섬과 다리를 배치하여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 기본 컨셉이 자연풍광을 축약하여 재현한 축경이었다.
이 침전조 양식이 사찰 건축에서는 극락세계의 이미지를 구현한 '정토 정원'으로 발전했다. 외형상으로도 침전조와 비슷하지만 개념이 이상적 공간의 재현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우지 평등원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원에 새 바람을 일으킨 사람이 몽창국사였다. 그 핵심적 개념은 선의 이미지를 정원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종래의 정원은 즐긴다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몽창국사가 설계한 정원에는 선적인 관조가 강하다. 선의 수행공간으로서의 정원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텐류지의 정원 조원지에 대해서 유홍준 교수님은 이렇게 쓰셨네요.
덴류지 정원을 돌아나가니 북쪽 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치쿠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일본 죽도의 90%를 이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대나무 밭입니다.
사진에서 많이 봐 왔지만 실제로 보니 참 멋집니다.
다른 곳에서도 대나무 밭을 보긴 했지만 이 곳처럼 쭉쭉 하늘로 뻗어 기개가 장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더랬습니다.
천룡사 북문으로 나가면 절 뒤편 대밭. 일본 죽도의 90%를 만들어낸다는 '사가의 죽림'입니다.
대나무 밭을 따라 올라가다가 노노미야 신사로 알고 갔지만 전혀 아닌 것이었습니다.
좀더 산쪽으로 나 있는 왼쪽길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오른쪽길을 선택했더니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노노미야 신사에 가서 두가지 볼거리를 보고왔어야 했는데 가기전 적어놓기는 엄청 빡세게 적어놓았는데 읽고 제대로 공부해 외워두는 것 까지는 실패를 했습니다.
1.노노미야 입구 검은색 도리이 : 다른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홍색의 붉은 도리이가 아니라 참나무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2.오카메이시(신석) : 거북이를 닮은 돌을 어루만지면서 기도하면 1년 이내에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두가지를 꼭 보고 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덴노의 미혼인 공주를 사제가 되게하여 노노미야 신사에서 3년 봉사후 이세신궁으로 가게했을 정도의 신사라면 규모가 제법 커야하는데 이 신사는 애개개 너무 적은겁니다.
다만 신사 앞의 연못이 크고 훌륭했습니다.
텐류지에서 나와 시간이 되는대로 그 주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절들중 몇군데 들러 보려고 지도에 표시를 해서 갔었습니다.
그중 세이료지(청량사) 입니다.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만든 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절입니다.
세이료지는 원래 사가덴노의 아들이자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인 미나모토노 도오로의 별장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지 1년 되는 해 아마타존상을 안치하고 사찰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북송에서 모셔온 등신대의 석가여래상을 가져오고 석가당을 세우면서 석가여래를 모신 곳으로 더 유명해 졌습니다. 그래도 세이료지보다는 사가석당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나설 때도 여기에서 무운을 기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석가당안에는 이에야스가 헌납한 소지품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에도시대 큰 불이 나서 건물들 자체는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히데요리의 머리무덤, 방장 정원정도가 볼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당에는 국보인 석가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높이는 160센티 좀 넘는 등신대의 불상. 1940년 이 불상을 수리할 때 나온 비단으로 만든 오장육부등 이 석가여래상을 조각한 초넨의 유품도 국보입니다.
에도시대의 다보탑도 있습니다.
세이료지에서 다이카쿠지 가는 길에 있는 두부공장입니다.
이 집이 무슨 영화의 배경이 었다는 글을 본적 있었는데,,,,이 두부 공장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 이었다고,,,
세이료지에서 850미터 떨어져 있는 다이카쿠지(대각사)에 걸어서 갔습니다.
일본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절인 만큼 왕실 문장인 겹국화문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래 사가덴노의 이궁인 사가고쇼가 있던 곳이이었습니다. 그의 사후 사가덴노의 딸이 이 이궁을 절로 바꾸었습니다. 그 후 고사가 법황이 여기로 옮겨오고, 고다우 덴노가 상황이 되어 다이카쿠지에서 출가함으로써 다이카쿠지는 여러 문적 사원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고사가텐노의 후손으로 가메야마덴노, 고다우덴노 등의 계통은 다이카쿠지 계통으로 고후카쿠사 덴노의 후손은 지묘인(지명원)계통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고다우 덴노의 다이카쿠지계가 후에 고다이고 덴노 등 남조의 덴노들이 되고 고쿠카쿠사 덴노의 지묘인계가 후에 북조의 덴노가 되는데 남조와 북조의 강화도 바로 여기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역사에서 유일하게 왕이 두명이었던 남북조 시대가 있었죠. 그때 이야기입니다.)
여러모로 일본사에 의미가 깊은 사원입니다. 남조의 멸망으로 쇠락하였으나 지금의 건물들은 에도시대에 재건된 것입니다. 왕족으로 출가하여 법친왕이 되는 관습이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진 곳 또한 다이카쿠지여서 최후의 문적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사원입니다
텐류지 북쪽문으로 나가면 있는 대나무 밭 치쿠린 같지는 않지만 나름 다이카쿠지 옆에는 대나무 밭도 있었습니다.
다이카쿠지 까지 돌고나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아라시야마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을 서너군데 적어왔는데 마침 일본식 뷔페집을 가고 싶습니다.
관광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발음을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영어로 되어 써있는 일본 식당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니 영 알아듣지 못하더니 그 식당이 일본음식을 파는 곳이고 뷔페식인 식당이라고 말을 하니 결국 알아듣고는 손수 데려다 줍니다. '기야테이'라고 텐류지 길 건너편쪽에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제한 시간 1시간, 뷔페니만큼 음식은 마음껏 먹으면 됩니다.
가격은 2,000엔 ㅎㅎㅎ
점심을 제한 시간내 1시간에 뷔페식 일본 음식점서 먹고 한큐 아라시야마역에서 한정거장 전에 있는 마쓰오 신사로 갑니다. 가기전 아라시야마 전경과 도월교 근처에서 잠깐 휴식좀 취해 주면서 사진도 좀 찍어보았습니다.
아라시야마에서는 이런 정도로 마무리를 합니다.
다시 한큐선을 타고 한정거장 뒤에 있는 마쓰오신사를 잠깐 들었고 거기서 다시 한정거장 뒤에 있는 사이호지에 갔지만 사이호지는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다 시간마저 6시가 되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아라시야마는 텐류지만 보면 할 일 다 한 것같은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텐류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교토의 여행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절이나 신사를 중심에 두고 여행을 하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나머지는 그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
★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일본은 언제봐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워요
음식도 굿이고..😀
일본 가고싶어요ㅠㅠㅠㅠㅠㅠ 여름더위도 엄청나지만 여름 사진 보니 또 여름이 그립네요!!!!!! 빨리 지금 듣고 있는 시원스쿨 일본어로 일본어 마스터해서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