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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10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1그 때에 예수께서 聖靈에게 이끌리어 魔鬼에게 試驗을 받으러 曠野로 가사 2四十 日을 밤낮으로 禁食하신 後에 주리신지라, 3試驗하는 者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命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對答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魔鬼가 예수를 거룩한 城으로 데려다가 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記錄하였으되 저가 너를 爲하여 그 使者들을 命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記錄되었으되 主 너의 하나님을 試驗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魔鬼가 또 그를 데리고 至極히 높은 山으로 가서 天下 萬國과 그 榮光을 보여 9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敬拜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記錄되었으되 主 너의 하나님께 敬拜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魔鬼는 예수를 떠나고 天使들이 나아와서 隨從드니라" (마태복음 4:1-11)
서론: 본문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시험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는 도리(道理)의 사도시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다면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들의 삶에도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으면 시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에게도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시험은 언제나 사람의 자격과 성품을 시험하는 인격적 테스트입니다.
시험을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라고 합니다. '페이라스모스'는 좋은 의미이든지 나쁜 의미이든지 '시험' 또는 '유혹'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서는 '시험'이란 말이 사람이나 어떤 사물의 성질을 파악하고 능력을 테스트(test)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시험이란 말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을 시험하고 파악하는 '테스트'(test)의 의미로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유혹하다, 유혹하고 시험해서 나쁜 길로 빠뜨린다는 '템프트'(tempt)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실 목적으로 하는 시험은 테스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격을 시험하는 '테스트'입니다. 그러나 의심과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템프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목적으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결과적으로 템프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하는 시험은 언제나 템프트(tempt)입니다. 마귀의 이름은 "시험하는 자"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4:3,에 마귀를 "시험하는 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디아볼로스는 마귀, 참소하는 자, 대적하는 자, 시험하는 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성도가 죄를 짓고 넘어지도록 유혹하고, 성도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참소하고 고자질하는 일을 합니다. 마귀는 성도를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고 넘어지면 하나님께 참소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에 보면 마귀가 욥을 시험하고 하나님께 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깨어있지 못하고 정신 못 차리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베드로전서 5:8,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템프트'가 아니라 '테스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직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할 훈련이 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도 시험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하시는 시험은 '템프트'가 아니라 '테스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은 인격적인 시험이며, 신앙의 연단과, 신앙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계발시키고, 불신자들에게 벌을 내리시며, 마음으로 진리를 받들지 않는 자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시험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진실한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시험을 통과해서 더 큰 축복을 받지만, 불신자들은 시험을 통해 심판을 받고, 가라지와 염소와 같은 위선자들은 시험을 통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들의 불신앙과 위선이 폭로되는 것입니다. 시험은 성도의 믿음과 인격을 연단하고, 신앙의 옥석(玉石)을 구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명을 감당할 자격이 있고, 복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야고보서 1:13,에서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감히 성자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태복음 4:1,에도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 누구에게 이끌려 가셨습니까? 성령에게 이끌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주장하신 분은 마귀가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시험하셨는데 마귀를 시험의 도구와 수단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 시험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시험은 영광과 승리 다음에 찾아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마귀도 많이 역사한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승리의 영광에 도취해 있을 때와, 만족과,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역사합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승리 다음에 위기가 오고, 성공 다음에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과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과 영광이 최고조에 달할 때 시험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세례와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메시아의 신적인 능력을 충만하게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마치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메시아의 능력이 최고에 달했을 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신앙과 인생에서 영광과 승리의 순간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시험은 영광과 승리 다음에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각각 신령한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로 빵을 만들라는 시험과,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과, 마귀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첫째, 돌로 빵을 만들라는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꼭 필요한 것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2,에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과 물,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잡수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모세나 엘리야처럼 완전한 금식을 하신 것입니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금식은 몰라도 열흘 이상 하는 장기 금식은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합니다. 장기간 위에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으면 창자가 붙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도 마시지 않고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고 얼마나 음식이 먹고 싶겠습니까? 40일 금식한 사람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배가 부르도록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마귀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의 배고픈 약점을 이용해 시험한 것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성도의 약점을 이용해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혈기를 부리게 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교만과 허영심을 부채질합니다. 또 항상 돈, 돈 하는 사람은 돈으로 시험 들게 하며,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거짓과 헛된 자랑으로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돈에 약한 사람, 명예에 약한 사람, 이성에 약한 사람, 사람은 누구나 돈, 명예, 이성,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약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의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항상 마귀의 공격과 시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돌로 빵을 만들라는 시험은 예수님의 능력을 통한 시험입니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명해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굶주리면 되겠느냐? 네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능력을 행사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돌로 빵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재능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남용하여 죄를 범하도록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대로 예수님이 돌로 빵을 만든다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영적 허영이나 자신의 향락을 위해 사용하는 결과가 됩니다. 마귀는 그 사람의 특별한 재능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유혹합니다. 재물, 권세, 지식, 웅변, 미모 등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범죄하지 않도록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롭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마귀의 시험을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신명기 8:3,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떡과 같은 먹는 음식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60만 명입니다. 60만 명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얼마나 많은 양식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양식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치지 않았습니다. 60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먹은 양식은 땅의 소산이 아니라 '만나'라는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빈 그릇을 가지고 광야로 나가 '만나'를 주어다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에 순종해서 양식을 얻고 생명을 유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시험은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려봐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마태복음 4:6). 마귀가 인용한 성경은 시편 91:11-12,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성경 말씀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91:11-12,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이지 고의적으로 위험을 자초해도 구해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처럼 마귀는 성경을 인용해서, 성경말씀으로 성도를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경을 모르고 신앙의 지식이 없으면 마귀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도 종교적 이단일수록 성경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휴거파 등 이단일수록 성경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지 않고 자기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을 편식합니다. 성경 공부하고 성경을 알아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은 영적 허영심과 헛된 자만심을 부추기는 시험입니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서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보호해줄 것이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라겠습니까? 인간의 허영심과 과시욕, 명예욕을 부추기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16,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물리치셨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마귀는 절대적인 신뢰를 가장하여 실제로는 죄악된 인간의 의지를 부추기려고 하였다. 그 자신이 쓸데없이 위험에 처하게 하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께는 묻지도 않고 그에게 구해줄 것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 자취한 위험 가운데서는 안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뜻대로 결정한 다음에 하나님이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시험은 마귀에게 경배하면 천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두 가지 시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나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와 타협하면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신앙에서 원칙을 훼손한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도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13,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타협하지 않고 거절해서 마귀가 제안한 것을 다 소유하셨습니다. 신앙은 요령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해야 승리하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신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중에는 '마귀박사'들이 있습니다. 신학박사 위에 마귀박사란 학위를 하나 더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귀박사들은 그들의 신학적인 지식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데 열을 올리고,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때문에 마귀박사라고 합니다. 마귀박사들 중에는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가진 예수가 어떻게 높은 산이나 성전 꼭대기에 올라갈 수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똑똑한 것 같지만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에 그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비록 현실이 아닌 성령에 의한 환상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분명히 인격적인 체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이상 중에 새로운 성으로 데리고 가셨고(에스겔 40:2), 밧모섬에 있던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새로운 체험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1:10, 21:10). 성경을 의심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테스트이며 마귀의 시험은 템프트인데,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템프트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메시아의 자질과 능력을 시험하는 테스트이며,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시험을 받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돌로 빵을 만드는 시험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시험입니다. 또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시험은 영적 허영심과 헛된 자만심을 부추기는 시험입니다. 마귀는 영적 허영심과 헛된 자만심을 가진 사람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마귀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시험은 성도가 세속적인 것을 얻기 위해 죄악과 타협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셔서 마귀가 제안한 모든 것을 다 차지하셨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2:18,에서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험 당한 성도를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