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추밭에 인삼도 잡초다 ]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란 없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기준일 뿐이다.
‘해충(害蟲)’과 ‘익충(益蟲)’의 기준이 인간의 삶의 유불리에 의하여
규정된 것처럼 매우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변별 기준이다.
송나라의 철인 주자(朱子)는 이렇게 노래했다.
“미워서 뽑으려 하니 잡초 아닌 것이 없고,
좋아서 두고 보자니 꽃 아닌 것이 없다.
이는 모두 다 한 밭에서 나는 나의 마음이로구나”
若將除去無非草 -(약장제거무비초)
好取看來總是花 -(호취간래총시화)
내 마음 가짐에 따라 잡초로도 보이고 꽃으로도 보인다.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하찮게보면 모든 게 잡초로 보이지만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잡초도 꽃으로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 세상 모두가 꽃이다.
순자(荀子)는 말하기를
“하늘은 복록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쓸모없는 초목을 기르지 아니한다.”라고 하였다.
天不生無祿之人 -(천불생무록지인)
地不長無名之草 -(지부장무명지초)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이 없듯 마지못해 살아있는 꽃은 없다.
아무렇게나 태어난 인생이 없듯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생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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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잡초란 없다.
단지 있어야 할 제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되었을 뿐이다.
주역 계사전에는 “방이유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群分)”이라 했다.
“삼라만상은 그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진다.”라는 말이다.
이 천지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고 이탈한 것이 바로 잡초이다.
밀밭에 보리가 나면 보리가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이 잡초이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셈이다.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꽃도 풀이나 다름없다.
무밭에서는 산삼이 또한 잡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꼭 필요한 자리나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지만,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도 눈치 없이 뭉개고 있으면 잡초가 되고 만다.
보리밭에 난 밀이나 밀밭에 난 보리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하면 결국엔 잡초가 되어 뽑히고 말 뿐이다.
자고로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밭의 인삼인가? 인삼밭의 무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만큼, 남아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는 인생에 더없이 중요한 법이다.~^^
<출처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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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친구 ]
한 사람이 길에서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참 오랜만일세. 지난번 싸운 그 친구하고 화해는 했는가?"
"내가 잘못한 거 없는데 내가 왜 그 친구와 화해를 해?
그 친구는 아주 나쁜 사람이야~! 응징의 대가를 받아야 해.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없어." 친구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는 앞으로 절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되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는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자네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분명 자네도 모르는 자네의 허물과 잘못을 누군가는 말없이 용서를 해주었을 거야~
그런데 자네는 그 친구를 용서해줄 수 없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 받는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네"
이 말을 들은 그 친구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자신에게 잘못한 그 친구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좋은 친구야.
<출처미상>
첫댓글 애당초 잡초란 없다.
단지 있어야 할 제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워서 뽑으려 하니 잡초 아닌 것이 없고,
좋아서 두고 보자니 꽃 아닌 것이 없다.
이는 모두 다 한 밭에서 나는 나의 마음이로구나” 좋은 말씀에 머물다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