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지루할 것이고 재미같은 것은 약에 쓰려해도 없을 여행기일 겁니다.
혹시 일본 여행을 가시면서 그저 벚꽃놀이, 단풍관광이 아닌 일본역사속 문화재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곳들에는 어떤 유래가 있는지 알고 가려는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도막도막의 여행기를 기분이 땡기는 대로 올려보려 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세 인물.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역사는 이 세명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도 한국인들에게도 이 세명의 이름만큼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이름들일 것입니다.
작년 2016년 10월 간사이 여행을 처음 하면서 교토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교토만 다시 여행을 할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이번 5월 황금연휴기간이라서 교토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17곳 위주로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문화유산중 일단 고야산과 아라시야마의 텐류지를 방문했고, 교토에서 역사적 세 인물과 관련된 장소부터 둘러봅니다.
그 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은 아니지만 역사적 세인물중 오다 노부나가와 관련된 절로 '혼노지'가 있습니다.
교토 시청 건너편에 위치해 있어 교토의 한중심가인 시조 가와라마치에서 산조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테라마치 상가내에 있으니 시내 한중심에 있는 절입니다.
<혼노지의 변>은 일본 통일을 목전에 두고 막바지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연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있어났을까? ,,,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단어만큼 부질없는 단어도 없는 법이지만 일본에게나 조선에게나 <혼노지의 변>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사건은 역사적 사실중 실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게된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음력 1582년 6월 2일, 일본 교토(京都) 혼노지(本能寺)에서 일어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모반 사건이 바로 <혼노지의 변>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대의 권력자였고 실질적으로 일본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죽고, 천출로 바늘장사, 미꾸라지 장사를 하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어 신발담당, 화장실 청소담당부터 차례차례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사건의 장소 입니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는 교토 인근을 거의 평정하고 츄고쿠(中国) 등 그때까지 장악하지 못한 지역의 가문들도 세력이 다하여 노부나가에 의해 일본 전역이 통일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부나가로부터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구원병을 이끌고 츄고쿠 지역으로 출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아케치 미쓰히데는 그의 본거지인 탄바(丹波)의 카메야마(亀山)성에서 출전 준비를 마친 후, 5월 29일 1만 3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츄고쿠로 출정길을 떠났고. 노부나가도 머물고 있던 아즈치(安土)성을 떠나 교토의 혼노지로 이동해 있었습니다.
혼노지는 절이기는 했지만 성과 같이 방비가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케치 미쓰히데의 영역이어서 노부나가는 불과 100여 명의 수졸만 이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츄고쿠로 향하던 미쓰히데는 6월 1일 돌연 병력을 이끌고 방향을 돌려 교토로 향해 6월 2일 새벽 미쓰히데의 병력이 혼노지에 도착해 미쓰히데는 병력에게 혼노지를 포위하게 한 후, 노부나가를 공격할 것을 명령, 오다 노부나가는 활과 창으로 맞서다 부상을 입자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장소입니다.
혼노지의 변은 일본 역사 가운데 그 정확한 동기와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최대의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었을까요. 저도 참 의문입니다.
이미 당시 오다 노부나가의 힘을 능가할 이가 없었고 단지 오다 노부나가만 죽인다고 해서 세상이 그를 최고 권력자로 인정하기 상당히 어려운 구조였을텐데 말입니다.
미쓰히데가 노부나가에 대해 반역을 해야 했던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는 설,
츄고쿠 출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
결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된 히데요시의 음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설,
미쓰히데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죽은이는 말이 없는 법이니......
혼노지는
바로 그 혼노지의 변(本能寺의 変) 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절입니다.
1582년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 전부 불타 버려서 사실 158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현재의 장소에다가 혼노지를 새로 지었습니다.
지금은 시내 한 복판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방문이 쉬운 곳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간다면 이 절은 본당조차도 1928년에 새로 지은 것인데다 방장 건물도 현대적인 건물로 혼노지 호텔도 있고 1층에는 커피숍까지 들어서 있을 정도인지라 시내 한중심 인사동에 있는 조계사같은 느낌의 절입니다.
교토의 전통적인 다른 절에 비해서는 그런 면에서 역사적 사실을 뺀다면 시내 한중심에 있어 오가다가 들르기 편해서 그렇지 일부러 구경갈만한 절은 아닙니다.
바로 혼노지 절앞에서 찍은 교토시청 건물입니다. 시청 바로앞에 있는 위치이니 지금은 교토의 한중심에 있게된 절입니다.
건물은 이렇게 현대식 건물이 시청 건너편 큰 도로가에 있습니다.
절 건물이 너무 현대적이어서 낯설기 까지 합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보니 호텔입니다.
왼쪽에는 커피숍까지 입점해 있습니다.
시조 가와라마치 쪽에서 큰길따라 시청쪽으로 걸어가다 보이는 길가의 이런 골목길로 작은 입구도 있습니다.
큰도로가 빌딩 숲 사이로 이런 길이 있다보니 눈에 잘 띄이지 않기까지 합니다.
물론 정문은 테라마치 상가길인 반대쪽에 있습니다.
테라마치상가 쪽에 정문이 이렇게 있습니다.
위 사진의 문으로 들어가보니 교토 시내 한 복판인 곳에 이렇게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물론 혼노지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묘가 있습니다.
하지만 혼노지가 불타면서 시신도 모두 불에 탔기에 오다 노부나가만의 유골은 아니고 당시 죽은 사람들을 모두 합장해 혼노지에 묻었다고 합니다.
담을 따라서는 다른 큰 절 주변에 대부분 있듯 탑두 사원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들은 그런 탑두 사원들의 문.
실제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몸소 나서 싸우다 세가 불리함을 알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로 불을 지른 후 할복 했다하니 오다 노부나가의 유골은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 아케치 마쓰히데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 실제 시신이 묻혀 있고없음 보다는 혼노지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촛점을 맞추어야겠습니다.
게다가 혼노지 또한 당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던 실제 장소는 교토 남부에 위치해 지금은 학교가 들어서 있고 이곳은 혼노지가 불탄버린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리를 현재 자리로 옮겨 새로 지은 절입니다.
그래도 역사적 사건이 중요한 것이니 혼노지(본능사) 한켠에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사당과 묘, 그리고 이 공동묘지 말고, 혼노지의 변 때 죽은 이들을 합장하고 이름을 적어 놓은 곳을 둘러 보시면 좋겠죠?
오다 노부나가의 묘입니다.
법당안 모습입니다.
행사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시내 한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대중분들이 많이들 법당안에 있습니다.
혼노지는 니치렌계(일련)인 법화종의 대본산입니다.
가마쿠라 시대 니치렌(일련)의 가르침에 따르는 종파로 법화경만이 올바는 경전이고 나머지 진언종, 정토종등의 가르침은 모두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파.(니치렌 사망후 여러 종파로 또 나뉘었음)
창가학회, SGI, 남묘호렌케교는 일련종 승렬파의 한 갈래들이면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의 종파입니다. 같은 종교인데도 이런 분파들이 있음이 좀 그렇지만,,,,,
일련종은 일치파를 중심으로 승렬파 일부까지 포섭한 가장 큰 종파이고, 승렬파는 여러 분파로 나뉘었는데 혼노지는 그중 법화종 본문파에 속하며 니치렌계 사찰이 그렇듯 본당 안에는 불상이 없고 명호보존이 모셔져 있습니다.
교토에 있는 절들을 보면 종파의 대본산이 많던데 이렇듯 같은 불교이면서 성불하는 방법, 경전에 대한 해석등에 따라 다양하게 종파가 갈라져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토 여행은 역사적 세 인물의 흔적..
그중 오다 노부나가로 시작을 합니다.
49세의 나이로 사망한 오다 노부나가가 살아생전 즐겨 읊었다던 시로 마무리 합니다.
"인간 오십년
저 세상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만 같구나
한번 태어나
죽지 않는자 어디 있는가"
- 이 해석이 더 시적이고 멋집니다 -
또다르게 해석된 시입니다.
"인생은 오십 년, 하늘 아래를 둘러보건대, 한바탕 꿈이어라.
한 번 목숨을 얻어, 멸망하지 않는 것이 있을 손가."
같은시에 대해 해석이 다른데 내용적으로는 이 해석은 위 해석이 더욱 시적이고 운율도 있고 멋지죠?
당시 일본 평균여령이 50세 정도 되었나봅니다.
그래서 여러 책자들에서도 보니 '인생 50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이 시는 1560년 음력 5월 19일 아침.(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기 22년전이죠)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는 오케하지마(桶狭間) 에서 침략군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 의 대군을 맞아 싸우기로 결심하고 전장에 나가기 전에 춤을 추며 불렀다던 시입니다.
이 싸움이 숫적으로 거의 10배 많은 적과 싸우러 나가기전 부른 노래였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나갔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더랬죠.
전쟁에서는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니 어차피 한번 죽는 목숨 아니겠는가...하며 자위의 내용이 들어 있는 시로 보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실제로 49세에 죽었다보니 후대의 사람들이 이 시가 본인 죽음의 예언이었던것처럼 말을 하지만 그런 의미 보다는 어차피 죽는게 인생인 것이니 뜻하는 바를 행하다 죽자. 이런 뜻을 가진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 전쟁에 출전을 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그저 숱하게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세 인물의 이야기로 일본여행 후기를 시작해 봅니다.
TIP : 혼노지는 일부러 찾아가 구경할 만한 절은 아니고 교토여행을 갔는데 비가 내린다거나 하면 테라마치 상가는 천장이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어있으니 니시키 시장과 묶어서 이쪽을 돌아볼 때 테라마치 상가에 있는 신사와 함께 둘러보면 될 정도이지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갈 정도의 절은 아닙니다.
그냥 근처에 우연히 가게되면 들러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기억해뒀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묘와 사당등 두세군데 포인트만 놓치지 말고 보고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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