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의 삶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5:13-16)
1. 소금의 삶 (13)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방지함으로 음식 고유의 신선한 맛을 보존해 주듯 성도 역시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진리를 사수함으로써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는 사해의 습지나 개펄 또는 그 근처의 바위 등 불결한 곳에서 나는 소금에는 석고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쉽사리 변질되어 알카리성의 독특한 소금의 맛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변질된 소금은 소금의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밖에 버리워졌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뭇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경고의 음성을 들게 됩니다. 변질된 소금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니듯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치 못하는 성도들도 역시 천국 백성으로서 합당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명심하고 오염되고 타락한 세상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의 삶으로써 천국 백성답게 소금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빛의 삶 (14-16)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 사물을 분별하게 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그런즉 성도가 세상의 빛으로 비유된 것은 진리의 빛된 삶으로써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세상을 환히 밝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빛의 근원을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에 속한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참빛 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도의 삶은 빛을 발산하는 빛의 삶이 됩니다. 참으로 빛의 속성은 널리 퍼지는 것이요 가리울수 없습니다. 마치 산위에 동네가 숨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지 팔레스타인의 동네들은 대부분 산 위나 비탈에 세워져서 태양빛이 비췰 때에 모두 확연히 드러납니다. 또한 등경 위의 등불이 집안 모든 사람에게 널리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가정에는 등경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높이 둠으로써 등불 빛이 방안 널리 밝히도록 합니다. 아무도 등불을 낮고 구석진 곳이나 더욱이 말(곡식을 퍼담는 그릇) 아래 두고 등불을 차단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불을 켜는 이유는 어두움을 밝히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빛이라면 숨거나 감추기 위함이 결코 아니요 되도록 널리 분명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히고자 함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의 동네처럼, 등경 위의 등불처럼 빛을 사람들 앞에서 널리 비추라고 합니다. 빛에 속한 빛의 자녀답게 어두움의 세상 가운데서 빛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해석했습니다.(에베소서5:8-9) 이처럼 빛된 성도의 삶은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며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도의 빛된 착한 행실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소금과 빛의 삶이 성도가 이 땅에 존재할 이유요 목적이 됨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소금과 빛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